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31화 (31/218)

주머니 속 안심국(2)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마치 솥뚜껑을 솥 안에 집어넣는 것 같은 장난이다. 이런 짓궂은 장난을 하는 건 보통 도깨비였다. 혹시 최사장은 도깨비에게 미움 살 행동이라도 했던 게 아닐까.

“제가 그런 것을 믿는 사람이 아닌데 무당을 불러 굿이라도 해볼까 싶었습니다. 워낙에 이치에 안 맞는 일이라…. 그런데 식당 손님 중 한 분이 김사장님의 수리점에 대해 이야기해 주셔서 연락드렸던 겁니다. 요전에도 전화했다가 귀국한지 얼마 안 되셨다고 해서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참이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유감이 좀 쌓였는지, 최사장은 푸념과 하소연을 섞어 말하고 나서 부인에게 대추차 말고 시원한 음료수를 달라고 했다. 목이 타는 것 같았다.

“그냥 남은 문도 마저 떼어 버리고 새로 달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굳이 두 달 동안 문짝을 반만 달고 있을 바에는 그편이 나은 것 같은데. 내가 청구하는 수리비도 꽤 만만찮을 테고 말이다.

“그게, 이 건물이 이래보여도 역사가 깊습니다. 우리 집안의 일이기는 합니다만, 증조부께서 지으신 뒤로 이 집에서 할아버님 5남매, 아버님 7남매, 저희 6남매가 다 나고 자란 곳입니다. 전쟁통에도 살아남은 집인데 수리는 해도 부수거나 바꿀 생각은 꿈에도 없습니다. 저 문만 해도 처음 집을 지을 때부터 달려있던 것이란 말입니다.”

이야기하는 최사장의 얼굴에서 이 집에 대한 자부심과 고집이 반짝였다.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집안사람들이 쭉 살아왔다니 그럴 만도 하겠지.

“문에 관한 것 말고 다른 일은 없었나요? 두 달 전쯤 해서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났다든지. 아니면 못 보던 물건을 봤다든지.”

내 질문에 최사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니 날마다 수백 명이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요. 물건은…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요 몇 달 동안 주방에도 식자재나 새로 들이지 새 물건이랄 것은 없고, 기껏해야 생활용품 사는 것 말고는…”

“식당에서 사는 사람도 있어요?”

생활용품이라는 말에 내가 물었다.

“식당은 아니고, 바로 뒤에 안채가 따로 있습니다. 거기에서 저희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기억나는 이상한 일 같은 건요? 밤에 불빛이 돌아다녔다든가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든가.”

도깨비에 미련을 가지고 재차 캐물었지만 최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영업 중일 때야 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만 식당 문 닫고 나서는 시끄러울 일이 없습니다. 이상하다고 할 만한 것은…”

대답하던 그가 고개를 기울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아닙니다. 이상하다고 할 일은 아니고…. 문이 저렇게 되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요새는 식당에 손님도 적어지고 저나 가족들도 잔병치레 하는 일이 잇달아 생기고 해서 말입니다. 집안에 이상한 일이 하나 있으니 무슨 일이 생겨도 그 탓을 하게 되나 봅니다.”

최사장은 이마에 주름을 지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 뒤로도 식당이나 집에 관해 이것저것 물었지만 딱히 도깨비로 의심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방안에 놓인 문짝을 이리저리 살펴보았으나 거기에서도 역시 특별한 기운은 느낄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처음 식당에 들어올 때도 문 자체에서는 뭔가 특별한 것을 느끼지 못했었단 말이지. 굳이 특별한 거라면…

역시 의심스러운 것은 그 남자다. 바지저고리에 상투 틀고 있던 체격 건장한 그 남자.

‘그런데 그 사람이 도깨비는 아니었단 말이지.’

창고의 도깨비들과 친해진 이후로 이제 도깨비라면 물건의 모습이거나 사람의 모습이거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 특유의 음랭하면서도 생기 있는 기운은 제법 멀리서부터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 남자가 도깨비였다면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게다가 애초에 도깨비가 대낮에 돌아다니는 것을 즐기는 편도 아니다.

뭘까?

얼핏 봐서는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사극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차림이어서 그렇지 요즘처럼 입고 있었다면 분명 못 알아봤을 터다. 혼령은 절대 아니고. 도마뱀 같은 동물도 아닌 것 같고. 목신이나 용신은?

지금까지 만나 본 인간 아닌 것들의 느낌을 하나하나 돌이켜 보고 있자니 목신과 용신 쪽에서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아니. 목신도 용신도 아니다. 목신에게서 느끼는 나무의 푸릇하고 온화한 기운 같은 것이 없었다. 용신을 대할 때 전해지는 서늘하고도 친숙한 느낌 같은 것이 분명 그 남자에게는 없었다.

‘하지만 목신과 용신이 떠올랐다는 것은…’

어쩌면 그 남자도 목신과 같이 생물에 깃든 귀신이거나 용신과 같은 신의 권속인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도무지 이놈의 세상에 신이라는 것은 얼마나 많으냐고. 아이도 신이 주고 복도 신이 주고 하다못해 병도 재앙도 신이 주는 거잖아. 옛날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인간의 생로병사에 관여하는 신의 이름만 해도 당장 대여섯 개가 떠오른다.

거기에다 생물에 깃든 귀신 정도로 생각하면 아예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남자를 찾아서 직접 물어보는 거겠지. 처음의 그 죽일듯이 노려보던 걸 생각하면 순순히 대답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식당을 나와 문짝 하나만 남은 대문으로 돌아가 보자, 하나뿐이지만 완강하게 닫힌 문짝이 그 남자와 비슷해 보였다. 밀어보아도 꿈쩍하지 않는다. 아래위로 살펴보아도 어디가 걸리거나 꽉 낀 것은 아니다. 돌쩌귀도 이상 없어 보이고.

문 가장자리에 손을 대고 강한 힘으로 밀어보았다. 사람이라면 낼 수 없는 수준의 완력, 요괴나 도깨비와 겨룰 수 있을 법한 힘이었다. 보통의 나무였다면 휘어지거나 이기지 못해 부러질지도 모를 정도의 힘을 약한 수준에서부터 조금씩 더해 마침내는 가진 힘을 거의 쏟아 부어 문을 밀었다.

끼이이익 -

문짝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휘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금이다. 게다가 나무로 만든 문 자체가 휘었다기보다 미는 힘을 가로막던 보이지 않는 힘이 휘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이 문에는 뭔가가 씌어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힘 낭비하는 것을 그만두고 문에서 조금 물러났다. 있는 힘을 다해 밀고 있을 때는 어쩐지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 같던 문이 지금은 오래되어 삭고 거뭇하게 때가 탄 오래 된 나무일뿐이었다.

아까의 남자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집 주변과 식당 안, 최사장의 허락을 받아 안채까지 드나들어 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감쪽같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인간과 구별되는 어떤 기운조차도 딱히 느껴지지 않는다.

자랑은 아니지만 이런 저런 존재들을 만나오면서 익숙해졌달까 요령이 생겼달까, 그들과 인간의 기운을 어느 정도는 구분할 수 있게 된 요즘이다. 덕분에 언제나 수리점 창문 앞에서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실은 길가에 심어진 두 그루 이팝나무였다는 것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 내가 날마다 들었던 이야기는 두 목신의 수다였던 셈이다.

식당 안에는 손님들이 많아서 그들을 일일이 구분할 수는 없지만 인간 특유의 기운이 모여 있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 안에 다른 존재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낌새가 느껴져야 했다.

대문에 요괴에 필적하는 내 힘을 밀어낼 정도의 힘이 씌워졌는데도 그 근원을 좀처럼 알아차릴 수가 없다는 거다. 무슨 이유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도움이 필요했다. 도깨비 중 하나에게 메밀묵이라도 주면서 데려와 볼까 싶다.

잠시 수리점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려고 식당 안에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뒷덜미가 섬뜩하니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한 발 크게 뛰어서 식당 안쪽으로 5m정도를 이동해버렸다. 누가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중에 없었다. 뛰고 나서 뒤를 돌자 내가 방금 들어온 출입문으로 정오의 햇살이 하얗게 깔리는 것이 보였다.

구름을 통과하지 않은, 생생한 햇살이었다.

말도 안 돼! 나흘 동안 계속 흐릴 거라더니!

절규하고 싶은 심정으로 바깥을 확인하자 조금 걷힌 구름 사이로 푸르스름한 하늘이 보였다. 이래서는 나갈 수가 없다.

허둥거리며 유하에게 전화를 하자 “다시 흐려지겠죠.”라는 무심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녀의 말과 달리 구름은 점점 줄어들어 갔고 저녁이 될 때까지 햇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사장과 부인과 직원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을 받으며 식당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했다.

직원들은 뭔가 지시를 받았는지 내게 참견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일만으로도 바빠서 그럴 겨를조차 없었지만 사장과 부인은 이따금 나를 볼 때마다 “어떻게, 원인을 아시겠어요?”라든가 “뭐가 좀 나왔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때마다 웃는 낯으로 대충 얼버무리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런 식으로 나는 낮 동안을 온통 식당 안에서 보냈다. 끔찍한 시간이었다. 할 일 없이 12시간 가까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수리점에서도 늘 있는 일이지만 거기에서는 적어도 눈치 볼 일이 없었다. 게다가 정 심심하면 도깨비도 있고 인터넷도 TV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화장실에 숨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게 다였고, 배터리가 거의 떨어져가자 그것조차 불가능해졌다.

마침내 식당을 정리할 시각이 다가오는데도 날씨가 흐려질 기미가 안 보이자 나는 최사장에게 식당에서 밤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여기에서…말입니까?”

“예. 한밤중에 확인할 것이 있어서요. 뭣하면 저랑 같이 계셔도 괜찮고요.”

확인할 것이 있다는 말은 핑계였지만 반쯤은 사실이기도 했다. 그 남자의 정체가 뭐든 인간이 아니라면 낮보다는 밤에 나타날 가능성이 더 높을 터다.

“아닙니다. 계시는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렇게 묻는 걸 보니 대문에 생긴 변고 때문에 꽤 겁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식당을 정리하는 시간도 다른 곳에 비해 빠른 편이고, 직원들도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걸 보아 어서 여기를 나가고 싶어 하는 눈치다.

“TV를 좀 써도 될까요?”

씩 웃으며 내가 물었다.

직원들은 서둘러 작업을 마치고 식당을 떠나갔다. 최사장이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부인은 간식거리라며 식당의 자랑인 고기 요리와 도수가 약한 전통주 한 병을 남겼다. 그들이 모두 떠나자 적막해진 식당에 나 혼자 남았다.

어차피 흐려질 때까지 건물 안에 숨어있을 셈으로 남겠다고 했으니 마음 편하게 밤을 보내야지 싶었다. 대문에 씐 이상한 것은 창고의 도깨비들에게 물어보면 뭔가 나올 테고.

그런 생각으로 TV를 켜놓고 시간을 때우다 문득 잠이 들었다. 얕게 들었는지 TV 소리가 계속 들려와 자면서도 짜증이 났다. 잠기운이 달라붙어 무거운 눈꺼풀을 꿈적거리며 내 옆 어딘가에 있을 리모컨을 더듬거리며 찾았다.

손바닥에 리모컨이 잡히자 전원 버튼을 찾는데 TV에서 영어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작년에 개봉한 헐리우드 영화가 자막 방송중이었다. 하지만 내가 들은 건 분명 한국어였다.

멍하니 TV를 보면서 생각하는데 잠든 나를 짜증나게 만들었던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석 달이 넘었잖소. 석 달이! 상량께서 굳이 아니 가시겠다면 나라도 문짝을 떼서 메고 갈 테요!”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에 이어

“그러지 마오. 이 집이 어떤 집인데. 5대에 걸쳐 우리가 보살핀 아이들을 생각해 보오.”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어르듯이 들려왔다. 그러나 여자의 말은 그를 달래긴 커녕 오히려 더 화를 돋우어 놓은 것 같았다.

“그러니 더 괘씸하다는 게야! 전쟁 끝나고 그 험한 시절에 역신이며 지장부인이며 원혼이며 하다못해 떠도는 잡신까지 그것들을 다 가로막고 제 놈들을 보호해 준 게 어딘데! 그 후로 50년 넘게 기르고 보호하고 살핀 공이 어딘데! 선대주 죽고 3년 만에 고맙다는 인사도 못 받는 처지가 되었단 말이지! 이게 말이 되나!”

천둥이라도 울리는 것 같은 목소리로 남자가 한탄과 분노를 섞어 쏟아내자 그에 동조하는 목소리도 생겼다.

“그러니 말이우. 상량께서도 참을 만큼 참지 않으셨수? 나도 하루에 골백번씩 내 자리에 손 드나드는 거 귀찮아 죽을 지경이고.”

간드러지는 목소리의 여자였다. 이내 아까의 부드러운 여자 목소리와 걸걸한 남자 목소리가 다투어 오가고, 또 다른 목소리도 섞여 대화는 소란스러워졌다.

이때쯤 이미 잠이 홀랑 날아가 버린 나는 리모컨을 내려놓고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살금살금 다가가고 있었다. 소리는 출입구를 조금 지나, 손님들 방으로 이어지기 전 툇마루를 흉내 내어 만든 널찍한 로비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만들 좀 허게. 속 시끄럽네.”

소란히 다투는 목소리들을, 칼칼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찍어 누르듯 막았다. 실랑이가 단번에 그쳤다. 나는 병풍 모양의 파티션 뒤에 몸을 숨기고 조심히 머리만 내밀어 목소리들의 주인을 확인했다.

툇마루 한 가운데에, 그들은 둥그렇게 모여앉아 있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