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33화 (33/218)

세 번째 부적(1)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식당의 대문 수리에 이틀이 걸려버렸지만 아직 내게는 이틀의 흐린 날이 남아있었다. 유하에게 다른 약속이 있는지 확인하고 오늘과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손님을 받지 않겠다고 다짐해 놓은 다음 나는 산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전처럼 뛰어다닐 수는 없고 일단 산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흐린데다 언제 비가 올지 모르니 등산객은 많지 않겠지. 산까지만 가면 신목은 곧 만날 수 있을 터다.

크로스백에 지갑과 핸드폰, 약간의 간식을 챙겨서 나가려는데, 어딜 싸돌아다니다 며칠 만에 돌아온 삽살개가 나를 보고 왈왈 짖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못 놀아줘. 형이 좀 바쁘거든.”

생각해 보니 평소에도 놀아준 적은 없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도무지 꼴이 보여야 놀아주든 밥을 주든 하지. 쟤가 우리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인지 다른 집 강아지인데 우리 집에 가끔 놀러 오는 건지 모르겠다.

하긴 생각해 보니 집안에 딱히 강아지용 사료도 없어 보이고, 개밥그릇이나 개집 비슷한 것도 안 보이기는 했다. 깨어난 첫날부터 봤고 나와 친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당연한 것처럼 내가 기르는 개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닐지도 모른다.

“소오. 소오.”

삽살개가 팔짝팔짝 뛰며 개답지 않은 목소리를 냈다. 소오 소오는 또 뭐야? so so? 아니면 소(牛)가 두 마리?

국적불명의 단어에 잠시 고심하는데 쾅 하고 문이 열렸다. 열리는 것과 동시에 사람 하나가 뛰어들고는 다시 급히 닫혀버렸다. 창문을 가린 블라인드를 젖혀서 흐릿하니 밝은 작업장은, 잠시 고요한 가운데 방금 뛰어든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 울렸다.

몸피가 날렵한 소년이었다. 열너덧 살 쯤 되어 보인다. 어깨를 들썩여 숨을 쉬면서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날카로웠다. 양쪽 무릎을 약간씩 굽히고 한쪽 발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었다. 문을 닫은 손이 등 뒤에서 보이지 않게 조금 움직였다. 언제라도 문을 열고 다시 뛰어나갈 것 같은 자세다.

경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남의 집에 대뜸 뛰어들어 놓고 집주인을 경계하는 건 무슨 경우냐. 뭐하는 녀석이냐고 물으려는데 문밖에서 우르르 달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를 들은 녀석이 움찔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이 대여섯 명 지나간 것 같다. 발소리가 무거운 걸로 봐서 녀석과 같은 또래의 학생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소년의 흐트러진 교복은 몇 번 바닥을 뒹군 것처럼 지저분했고 손등에는 긁힌 상처, 바지의 무릎은 찢어진 곳도 있었다. 어디선가 꽤나 험하게 구르다 온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의 발소리를 듣고 반응을 보이는 건 소년뿐만이 아니었다. 삽살개는 더 격렬했다. 소리를 듣자마자 녀석은 문 앞으로 달려가 낑낑거리며 발로 문을 긁어댔다. 나가고 싶은 것이다. 그러더니 발소리가 한편으로 멀어져가자 이내 문을 떠나 소리가 이동하는 방향으로 달리다 벽에 닿자 왈왈 짖어 댔다.

소리가 떠나간 곳을 향해 짖다가 나를 쳐다보는 삽살개는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털투성이의 저 얼굴에서 내가 어떻게 표정을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발소리가 안 들리고 나자 삽살개는 소년의 발밑으로 조르르 달려가서 아까의 국적불명 의미불명 단어를 되풀이했다.

“소오. 소오.”

삽살개의 목소리가 들렸을 리 없겠지만, 소년은 발밑에서 돌아다니는 개를 보고 날카롭던 표정이 한결 풀렸다. 그러더니 나를 보고 적반하장의 질문을 했다.

“아저씨 여기서 뭐해요?”

갸름하니 곱상한 얼굴과 달리 제법 굵은 사내아이의 목소리였다.

“일단 나는 아저씨가 아니고…”

“아줌마도 아니잖아요.”

버릇없이 내 말을 끊으며 녀석이 대꾸했다. 난 아무래도 10대의 사내아이들과 별로 상성이 안 좋은 것 같다. 참을 인(忍). 머릿속으로 참을 인자를 흘림체로 휘갈겨 쓰며 이어서 말했다.

“물론 아줌마도 아니고, 이 집 주인인 형이란다.”

“구라 치지 마요.”

소년이 쏘아붙였다. 참을 인(忍).

“내 말의 어느 대목이 구ㄹ…거짓말이라는 건데?”

“아저씨 이 집 주인 아니잖아요.”

참을 인(忍). 내가 아닌 건 집주인이 아니라 아저씨라니까.

“내가 주인 맞거든?”

“웃기지 마요. 여기는 도깨비 소굴이라 사람은 못 살아요.”

뭐?

녀석의 말이 뜻밖이어서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내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녀석의 얼굴에 득의한 표정이 떠올랐다. 밀어붙일 찬스라고 생각했는지 녀석이 계속해 말했다.

“오늘같이 흐린 날에는 특히 잘 나온다고요. 구경하려고 온 모양인데 도깨비에게 잘못 걸리면 혹 붙이는 정도로 안 끝날 걸요. 나오기 전에 가는 게 좋아요.”

이것 봐라?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 것 같다.

흐린 날이 도깨비 활동하기 좋은 때인 것도 사실이고, 단순하지만 변덕 심하고 장난기 많은 도깨비에게 잘못 걸리면 된통 당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것은 물론 여기가 도깨비 소굴이라는 것까지 아는 이 소년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사람 같기는 했다. 엊그저께 가택신들과 사람을 좀 혼동하기는 했지만 미묘하게 다른 점도 있는 것을 구분해냈었다. 소년에게 가택신과 같은 이질감은 없었다. 그러면 뭘까? 그냥 호기심 많은 학생? 아니면 혹시 나처럼, 보통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걸까?

“그러는 너는 왜 여기 들어왔는데? 너도 주인은 아니잖아.”

“너도 라고 말한 건 여기 주인이 아니라는 걸 인정한 거죠?”

질문에 대답은 안 하고 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다.

“그렇다 치고 왜 왔는지나 대답해 보시지.”

멋대로 생각하게 내버려 두고 다시 물었다. 조금 전 들려온 발소리와 관련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소년은 내 질문에 얕보는 듯한 눈을 하고서 대답했다.

“도깨비 만나러요.”

저 표정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안 드는 누군가가 생각나. 그게 누군지 떠오르려는데 녀석이 다시 말했다.

“저기 있네요, 도깨비.”

그리고는 내 어깨너머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창고의 문이 있는 자리다.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본 순간 화륵 하고 작은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다. 백은호가 부적을 쓸 때 들었던 소리. 동시에 녀석이 왜 마음에 안 드는지 깨달았다. 그 깔보는 듯한 표정이 백은호와 똑같았다.

녀석이 부적을 쓰는 걸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었다. 주위가 흐릿하니 안개로 가려져 있었다. 사방이 뿌옇게 보이지 않는데 어디선가 휙 푸르스름한 불빛이 눈앞을 가로질렀다.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한 번 더 휙, 이번에는 붉은 불빛이 안개 속을 날아갔다. 목 안에서 구르는 듯한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조심해요. 도깨비에게 들켰어요.”

안개 속에서 소년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갑자기 나타난 안개, 날아다니는 불빛, 웃음소리. 확실히 다른 사람이었다면 겁먹었을 상황이다. 그런데 나는 이 집 주인이거든. 게다가 저 날아다니는 불빛이 도깨비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고.

“내 생각에는 도깨비가 아니라 나한테 들킨 것 같다만.”

웃음을 참으며 말하자 안개가 크게 일렁였다. 눈속임 뒤에 숨은 소년의 내심을 본 것 같았다. 놀랐냐? 애송아.

“일어나라, 석.”

소년의 속삭임이 다시 들려왔다. 안개 속에서 뭔가 뭉쳐 오르는 것이 보였다. 형체가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컸다. 높이는 내 키를 한참 뛰어넘고 부피는 몇 배가 될 것 같다. 형체가 있던 곳에서 휘웅 하고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안개의 베일을 찢으며 회색 돌덩이가 날아들었다.

재빨리 피했지만 내가 서있던 자리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바닥이 조금 울린 것 같기도 했다.

“야, 임마! 미쳤냐?”

사람을 상대로 바닥의 대리석이 부서질 정도의 공격을 가하다니 뭐 이런 녀석이 있어? 바짝 긴장해버렸다. 어린애라고 방심할 일이 아니었다. 바늘 끝처럼 신경을 곤두세우자 보이지는 않지만 뭉클뭉클 흔들리는 안개 속에서 녀석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과 이어져 불쑥 불쑥 움직이는 기운도.

녀석과 이어진 기운이 다시 이쪽으로 움직였다. 거리를 확인하고 날아오는 그것을 받아치려는 순간에

“앙 - ”

나보다 먼저 휙 뛰어오른 덩어리가 있었다. 털가죽? 삽살개?

“야!”

안개 속에서 소년의 날카로운 외마디소리가 들렸다. 종이가 부욱 찢기는 것처럼 눈앞의 안개가 찢겨 사라졌다. 다시 어두컴컴한 작업실로 돌아왔다. 삽살개에게 손을 물린 소년이 당황한 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호오라.”

네가 도움이 되는 때도 있구나, 멍멍아.

그런데 도와줬다기에는 어딘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손을 물린 소년은 별로 아픈 표정도 아니었고 개에게 화를 내고 있지 않았다. 삽살개도 녀석의 손을 물었다기보다는 입안에 덥석 넣고서 맛보고 있는 표정이었다. 꼬리까지 살랑살랑 흔들고 있다.

소년이 천천히 손을 빼냈다. 손등에는 이빨자국이 살짝 나 있을 뿐이다.

나는 녀석의 발밑을 뒹구는 돌멩이에 눈길을 보냈다. 호두만한 크기의 차돌에 붉은 색으로 뭔가 쓰여 있었다. 그 앞에는 바닥의 대리석이 세 장, 움푹 들어간 채로 조각조각 부서져 조금 전의 엄청난 공격이 허상이 아닌 것을 증명했다.

“아저씨, 부적 따라 온 사람…아니에요?”

여전히 나를 경계하는 눈으로 보면서 소년이 물었다. 부적을 따라 온 사람이라고? 그게 뭐냐고 물으려는데 바깥에서 다시 아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길 양쪽에서 우르르 몰려온 발소리가 수리점 앞에 하나둘 멈추기 시작했다. 문 쪽을 보는 소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소년이 출입문과 창고의 문을 번갈아 보았다. 바깥의 사람들과 창고의 도깨비 사이에서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마침내 발소리가 일제히 이쪽으로 다가오자 소년은 결심한 것처럼 바닥의 돌멩이를 주웠다.

“아저씨, 도망가요!”

그러니까 아저씨가 아니라고.

항의할 기회도 주지 않고 소년은 창고를 향해 뛰었다. 동시에 출입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저기다!”

“잡아!”

사나운 목소리가 겹쳐 울렸다. 첫눈에도 운동 깨나 했을 것 같은 건장한 사내들이었다.

하나같이 단정하고 어두운 슈트에 짧은 머리, 째진 눈매를 하고 있다. 어쩐지 식사 하셨냐고 물을 것 같은 외모인데, 영화에서 봤음직한 조폭 무리와 다른 게 하나 있다면 모두 귀 한쪽에 이어마이크를 걸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조폭이고 이어마이크고 생각은 나중이었고 어쨌든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소년과 슈트 무리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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