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부적(5)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털로 덮인 상체, 굵어진 손가락 끝에 튀어나온 발톱과 같은 것, 사람과 호랑이가 반씩 섞인 듯한 얼굴. 그러나 관절이 다르게 굽어있을 망정 두 발로 섰으며, 입을 벌리자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인간의 말을 한다.
“나는 태령 윤문의 기완이다. 네 이름을 말해라.”
인간의 말을 하지만 목소리의 울림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대형 스피커 옆에서 비트 강한 댄스곡을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직이 말하는데도 그 울림이 몸을 진동했다. 반만 변한 상태라도 호랑이는 호랑이라는 건가. 말할 때 드러나는 송곳니를 보자 내 몸을 꽉 물고 흔들어서 찢어버리는 환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래도 통성명 정도는 하고 나서 물어뜯을 모양이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나도 대답했다.
“김해명.”
기완이 표정을 구분할 수 없는 호랑이 얼굴로 나를 들여다보았다. 거짓말인지 아닌지 알아보려는 것 같았다. 알 게 뭐야. 호랑이와 맨손으로 싸우게 생겼는데 해명 도령이고 뭐고.
“어째서 네가 그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름값을 하길 바란다.”
기완이 나직이 말했다.
“이름이 뭐?”
나도 모르게 대꾸했다.
고작 한걸음 반 떨어진 거리에 야수와 뒤섞인 모습을 한 두려운 남자가 서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울컥 올라온 말을 생각 없이 뱉어버린 것이다.
“이름이 뭐 어쨌다고. 태령 윤문이 어쩌고, 웃기거든. 내가 너와 싸우고 싶다면 그건 네가 태령 윤문의 기완이란 이름이어서가 아니야.”
그 생각 없는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말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저 남자가 싫다. 슈트 무리와 같은 패거리일 때부터 싫었고 소년을 물건 취급할 때 더 싫어졌고 죽을힘을 다해 용기를 낸 소년을 잔인하게 가지고 놀았을 때 완전히 싫어졌다.
제 사람이면서 슈트들을 사냥개 취급하는 것도 싫고 하찮은 것 보듯 우리를 내려다보는 것도 싫고 고작 이름 두 글자에 가치를 매기는 것도 싫었다. 싫다. 그 감정이 뱃속에서부터 전신으로 천천히 퍼졌다. 감정에 온기가 있는 것 같았다. 그의 투기 앞에서 차갑게 식었던 몸이 더워진다.
기완의 얼굴이 털로 덮여있는데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일그러졌다. 내가 한 말 중 어떤 것이 기분을 상하게 했는지, 혹은 그를 싫어하는 내 감정이 전해진 건지도 모른다. 해명이란 이름에 갖췄던 약간의 예의가 투기를 넘어선 살기에 부서지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그가 들이닥쳤다. 한 발짝 반의 거리라야 보폭을 넓힌 한 걸음이다. 움직였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코앞이었다. 본능적으로 내민 양팔이 그의 주먹을 막았으나 내 몸은 충격과 함께 뒤로 날아갔다.
등 뒤에서 시멘트벽이 움푹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몸 걱정할 틈이 없었다. 일격에 나를 벽까지 날려버리고 금세 따라붙은 기완이 아까와는 반대편 팔을 휘둘렀다. 간신히 피한 순간 머리 옆의 벽에서 파편이 튀었다.
숨 돌릴 겨를도 주지 않고 다음 공격이 이어졌다. 주먹 대신 손가락을 펼쳐 휘두르자 칼날 같은 손톱이 살갗을 긁었다.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붉은 선 네 개가 쭉 그어졌다. 슈트들에게 칼날로 두들겨 맞아 이미 바둑판같던 팔이었으나 새로 생긴 상처가 더 쓰렸다. 긁힌 상처 위로 간질간질하니 피가 맺히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처음으로 피를 본 상황에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거리를 벌려보려고 공중으로 훌쩍 뛰어올랐지만 더 빠르게, 그리고 더 높이 도약한 기완이 위에서부터 킥을 날렸다. 볼썽사납게 바닥을 굴렀어도 아픈 것보다 먼저 다음 공격을 막아야 했다. 허공에서 떨어져 내린 기완은 바닥에 발이 닿기도 전에 나를 향해 칼날 같은 손톱을 휘둘렀다.
잡았다.
다시 그 손톱에 긁힐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팔을 내밀어서 나도 모르게 깍지 끼듯이 잡고 말았다. 반대편 손이 잇달아 날아들었으나 이미 잡힌 손 때문에 균형이 흐트러져 아까 같은 위력이 없었다. 그것을 휘어 감듯이 피해 손목을 낚아챘다.
양손을 잡힌 기완이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들이쉬는 숨과 함께 그의 가슴과 어깨가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양 손에 강한 힘이 가해졌다. 손목을 틀어 빼내려는 시도 같은 것은 아예 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일 작정이었다.
깍지 낀 손가락을 꽉 죄어 당기고 잡힌 손목을 바깥으로 밀어낸다. 그것을 상대하여 나 역시 손가락이 꺾이지 않도록 끌어 모으고 벌어지려는 다른 쪽 팔을 앞으로 당겼다. 힘겨루기였다.
양 팔에 쏟아지는 힘을 상대하는 내 팔과 그것을 버티는 하체에서 우둑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기완도 같았다. 슈트의 천이 팽팽해지도록 부풀어 오른 근육이 힘을 줄때마다 꿈틀거렸다. 털로 덮인 얼굴이 아까보다 더 일그러져 있었다. 내 얼굴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왜…
온 신경을 힘겨루기에 집중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마음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째서 이 남자는 이렇게밖에 하지 않는 거지? 아니, 이렇게밖에 하지 못하는 거지? 백은호와 호각을 이루리라 생각했던 그의 공격은 백은호만큼 날카롭지도 않았고 빠르지도 않았으며 빈틈없지도 않았다.
몇 번이나 벽에 바닥에 내던져졌지만 나는 여전히 그와 힘을 겨룰 수 있다. 타격이 적다는 뜻이었다. 발톱으로 할퀴어 난 상처 외에는, 부딪친 곳이 욱신거리는 정도가 다였다. 구미호 여화와 싸울 때와 비슷했다.
처음 나타났을 때 나를 압도했던 그의 기운은 여전했다.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릴 때는 뱃속까지 진동하는 느낌에 오싹해졌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그와 부딪치고 힘이 오가는 상황이 쌓일수록 그 두려움이 점점 사라졌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걸까? 아니다. 나를 노려보는 그의 표정은 살기로 물결치고 있었다. 화내고 있다. 기회만 있다면 이빨로 물어뜯어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다는 얼굴이다. 자신의 힘에 대항해 밀리지 않는 나를 보며 분노하는 한편 당황하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나는 이 남자가 위험하다고 확신했던 걸까? 백은호와 비교했을 때 그보다 훨씬 강할지도 모른다고…
한숨소리가, 기억 한편에서 들려온다.
- 뒷일을 생각하면서 움직이라고 했잖습니까. 이기려는 마음만 가득해서 그런 식으로 달려들면 죽게 됩니다. 실전에서는 두 번째 기회가 없으니까요. 아, 다섯 번째 기회…군요.
비꼬는 충고를 몇 번이나 받았지만 잘 고쳐지지 않았다. 상대하다보면 좀처럼 이길 수 없어서 화가 나고, 그러다 보면 막무가내로 돌격하게 되었다. 백은호의 말이 맞다. 그런 식으로 공격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렇게 되어버렸다. 절대로,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가 나를 위험하게 만들 리가 없다고 믿고 있었다.
‘아…그런 거였어.’
기완이 백은호보다 위험하다는 예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확실히 그랬다. 기완은 나를 죽일 수도, 심하게 다치게 만들 수도 있었다. 마음이 내키면, 그리고 상황이 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 얼마나 강한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구미호 여화와 상대할 때도 비슷했다. 그녀의 실력은 백은호에 미치지 못했지만 나를 먹이로 보고 공격하던 그녀 앞에서 도망치기 급급했다. 위험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두려웠었다.
‘속도는 약간 빨라. 힘은 나와 호각. 순발력은 나보다 높고, 기술응용력은…’
가슴 앞으로 당기던 오른손을 갑자기 놨다. 놀란 기완의 무게중심이 흐트러졌다가 재빨리 도로 균형을 잡았으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내 발차기가 그의 왼쪽 옆구리에 확실히 들어간 것이다.
깍지 낀 채로 잡혀있던 팔을 단단히 당기며 그 팔 밑의 옆구리에 내지른 공격이었다. 피하거나 흘려낼 수 없었다. 충격을 받은 틈을 놓치지 않고 팔을 얽어 비틀며 메치자 손쉬울 정도로 간단히 내동댕이쳐졌다.
기술응용력은 꽝이다.
쓰러졌던 기완이 벌떡 일어났다. 신체에는 거의 타격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나를 보는 두 눈이 분노와 살기로 이글거렸다. 시선에 물리력이 있었다면 이 순간 나는 종잇장처럼 찢어졌을지도 모른다.
크헝 - !
뱃속까지 떨리는 포효가 작업장 안을 뒤흔들었다. 소름이 오싹 돋는 기세였으나 이번에는 호승심이 두려움을 압도했다.
심장에서 끓어오른 간질거리는 듯한 흥분이 핏줄을 타고 전신으로 내달렸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손끝이 움찔움찔 떨렸다. 긴장이 정수리로부터 등줄기를 타고 내려와 허리를 휘감았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쪽으로 달려드는 기완의 모습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한 발, 또 한 발을 강하게 박찰 때마다 두꺼운 허벅지가 바지의 천을 팽팽하게 당기는 것이 보였다. 발에 맞추어 앞뒤로 오가는 팔과 꽉 쥔 주먹과 목덜미의 털가죽을 밀어내며 도드라진 동맥이 보였다. 꽉 문 이빨과 주름진 코와 불타오르는 듯한 눈동자가 보였다.
내게 휘두르기 위해 뒤로 빼낸 오른팔과 미리 돌아가는 허리와 틀어져서 크게 내딛는 오른발이 보였다.
날아온 주먹을 바깥으로 비껴내고 비어있는 허리에 주먹을 날렸다. 두꺼운 근육과 그 밑의 갈비뼈가 텅 울린다. 단단하게 짜인 몸이 되받아치는 충격에 팔이 저릿했다. 그러나 그 몸은 주먹이 나간 방향으로 크게 휘청거렸다.
기완의 왼발이 대리석 타일을 우득 부수며 버틴다. 반격할 틈을 줄 수는 없었다. 왼발을 축으로 돌아 회전이 실린 팔꿈치가 등을 찍었다. 흔들린다. 한 번 더! 등을 보이고 있는 기완의 목을 팔에 걸고 허리를 숙이며 당겼다. 들어메치기라고 하기에는 무식한 짓이었지만 기완의 몸은 크게 원을 그리며 뒤집어져서 바닥을 부수며 처박혔다.
인간이었다면 목뼈가 부러지거나 다리뼈가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일어났다. 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렸지만 이번에는 두려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싸워도 그가 진다.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기완 역시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짐승이 섞였던 몸이 스르르 풀리며 처음의 인간 모습으로 돌아갔다.
“나를 내보내라.”
계단 쪽을 향해 기완이 말했다. 그 말에 응하여 마치 파문이 퍼지듯 주변 정경이 한차례 흔들렸다. 우리는 다시, 창고에 도깨비가 있고 문밖에 슈트 무리가 있는 그 어두컴컴한 작업장으로 돌아왔다.
기다린 것처럼 출입문이 열리고 흰옷의 도사와 슈트의 사내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명령을 기다리는 듯 기완을 바라보았으나 그는 말없이 작업장을 가로질렀다.
“오늘은 간다.”
출입문을 나서며 그가 던지듯이 말했다. 흰옷의 도사도 슈트의 사내들도 그와 우리를 한 번씩 번갈아봤을 뿐 이의 없이 뒤를 따라 나갔다. 수리점 앞을 떠나는 찻소리가 잇달아 들려왔다.
“오늘은 간다니 내일 오겠다는 소리야?”
내일 또 이 난리를 벌이자는 건가. 욱신거리는 몸을 주무르며 백은호를 돌아보자 그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계단을 내려왔다.
“그는 다시 안 올 겁니다. 자존심이 강한 자입니다. 이길 수 있으리란 확신 없이는 다시 나타나지 않겠지요.”
아, 그거 다행이네.
“대신 다른 자가 올 겁니다.”
뭐…?
어이없음과 힘 빠짐과 고달픔과 짜증이 섞인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으나 백은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보다 설명이나 해 주시죠.”
도도한 태도로 내 시선을 튕겨버리며 그가 말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셨기에 뒷세계에서 손꼽히는 경호팀과 태령 윤문의 도사들을 상대로 싸우고 계셨던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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