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40화 (40/218)

요지경(1)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도대체 내가 운영하는 동천 만물수리점은, 손님이라야 일주일에 대여섯 명도 안 오는 곳인데 매일매일 찾아오는 ‘것’들은 손님보다 많다.

아침이면 자살이라고 해야 할지 자해라고 해야 할지 혼자서 와장창 깨지는 유리 장식품-이 녀석의 정체는 아직도 모르겠다-이 모닝콜.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드는 도깨비들은 창고가 소굴이니 어쩔 수 없고, 점심때 무렵이면 창문 앞에서 목신 둘이 들으라는 듯이 잡담을 나누고, 오후면 하나도 안 반가운 십대 중반의 소년이 유하를 핑계로 들이닥쳐서 한 시간씩 놀다가 갔다.

한 시간 동안 뭘 하는지 궁금해서 문 앞을 기웃거리는 것도 창피한 일이고, 녀석에게 물어봐야 뚱한 얼굴로 “남이사.”라는 게 고작이었다. 유하에게 지나가는 말로, 하나도 안 궁금하지만 문득 생각났다는 투로 물어본 적이 있는데 나를 한 번 쓱 쳐다봤을 뿐 별 말 없이 가버렸다.

난 아무래도 고용인과 고용인의 방문자에게 따돌림 받고 있는 것 같다.

“안녕하세요.”

녀석은 작업장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 나는 쳐다도 보지 않고 쓱 지나가며 입만 놀려 인사한다. 그래서 오늘도 그러려니, 나 역시 눈길을 안 주고 요즘 새로 생긴 취미인 물품출납서 읽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다.

창고에 드나든 신기한 물건들 이야기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점은 이 집안에 수년 동안 남아있는 내 물건이 오로지 이것뿐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기록. 과거의 기록이었다.

뭔가를 남길 생각이었다면 여기가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며칠째 수년 전의 낡은 공책으로부터 지금의 것까지 꼼꼼히 읽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창고를 거쳐 간 무수한 물건들과 각 주인들의 사연 외에 특별한 게 없었다.

“저기요, 아저씨.”

간줄 알았던 녀석이 아직 작업장에 있었다. 유하더러는 누나라면서 난 왜 아저씨냐.

녀석을 돌아보자 뚱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인다.

“왜?”

“고칠 물건이 하나 있는데요.”

있는데 뭐?

말을 꺼내놓고 녀석은 좀 머뭇거리다가 이마를 찡그렸다.

“물건 주인이 제 친구인데 학생이라서요. 돈이 별로 없거든요. 지금 오만육천 원 정도…일주일 후에 10만 원 더 모을 수 있대요. 혹시 수리비 할부도 돼요?”

나도 모르게 풉 웃어버렸다. 녀석의 얼굴이 붉어졌다.

“되냐고요.”

목소리가 거칠어진다.

“고칠 물건이 뭔데? 우선 보고 나서.”

“물어보기만 하려고 안 가져왔어요. 할부 되면 맡기고…”

“음, 설마 야동 CD가 망가졌다든가 숨겨놓은 파일을 찾을 수가 없다든가 사이트 주소가 날아갔다든가…”

돈 문제로 제법 진지해진 녀석에게 농담을 던지자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거든요.”

“그럼 가져와봐. 간단한 거면 공짜로도 고쳐줄 수 있고.”

나 장사 이렇게 해도 되나?

어쨌든 녀석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런데 너 몇 학년이야?”

“중2요.”

“중학생이 어떻게 일주일 만에 10만원을 만들어? 용돈을 그렇게나 받아?”

“용돈도 있고, 게임기랑 이것저것 팔려고 내놨대요.”

그러면 다행이고. 용돈 범위 안에서 할부도 가능하다고 알려주자 녀석이 기분 좋아진 얼굴로 갔다.

그리고는 다음날, 녀석은 늘 오던 시각에 다시 와서 뭔가 길쭉한 물건을 내밀었다.

지름 5cm, 길이 30cm가량의 원통이다. 나무로 만들어 반질반질 윤을 내놓은 겉모습이 수수하면서도 정밀했다. 통의 한쪽에 작은 구멍이 있고 반대쪽은 불투명한 유리로 막혀 있었다. 망원경인가 생각했으나 작은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보자 아니었다.

“요지경(瑤池鏡)이잖아.”

흔히 만화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삼각형으로 짜놓은 거울 안에 작은 물체를 넣어서 그것들이 반사되는 모습을 즐기는 용도로 만든다. 요지경 안에서 작은 꽃과 나뭇잎들이 아름다운 패턴을 이루고 있었다.

“뭐가 보여요?”

소년이 내게 물었다.

“뭐가 보이긴 꽃이랑 나뭇잎이 있으니까 그게 보이지.”

“다른 건 없어요?”

귀신이라도 보인다고 하던? 요지경을 이리저리 흔들어 내용물의 위치를 바꿔 봐도 별 거 없었다.

“꽃, 나뭇잎. 그리고…열매인가? 동그란 게 세 개 있네.”

“그건 앵두씨일 거예요.”

소년이 약간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아까 앵두를 세 개 넣었거든요.”

그래? 앵두를 세 개 넣었으니까 앵두씨가 세 개 들어있지. 어? 그게 아니라…

“씨를 넣은 게 아니고 앵두를 넣었어?”

잘못 들었나 하고 다시 묻자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앵두 세 개요. 씨가 아니라.”

다시 들여다보자 분명 꽃과 나뭇잎 사이로 씨앗처럼 작고 동글동글한 것이 보인다. 이 안에 뭐가 살고 있나? 과일을 먹는…벌레?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녀석이 다시 물었다.

“꽃이나 나뭇잎, 앵두씨 말고 다른 것은 안 보여요?”

사실 뭐가 있다고 해도 금방 못 알아볼 것 같았다. 요지경이란 게 원래 그렇잖아. 거울과 거울 사이에서 무수히 반사되어 눈앞이 어지럽게 복잡해지는 광경인데. 안 그래도 눈앞이 어질어질, 머리가 좀 아프려고 한다.

“그냥 가르쳐주면 안 되겠냐?”

찾아내는 건 포기하고 겸손하게 묻자 녀석이 백은호스러운 한숨을 쉬었다.

“저랑 재경이만 확인해봐서 정확하지는 않은데,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위장천(偉丈天)이 보이는 것 같아요.”

아, 다섯째 형이 있는 곳.

“그럼 선계(仙界)와 연결된 물건이란 거냐?”

자연스럽게 대답을 해놓고 나서 나는 잠시 방금 들은 목소리가 내 것이 맞나? 하고 멍하니 생각했다. 방금 뭐랬지? 내가.

“맞아요. 재경이…제 친구요. 걔가 본 걸 들었는데 인계는 아니었거든요.”

소년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잠깐. 잠깐.

손을 들어서 잠시 대화를 멈추고, 나는 한순간에 복잡해진 머릿속을 헤집었다. 방금 내가 녀석이 위장천이라고 한 말을 듣고 당연하다는 듯이 선계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나는 위장천인지 뭔지 그런 말은 당최 처음 들어보거든. 게다가 그 전에 뭐라고 생각했었지?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으로 분명히 뭐라고…생각을 했었는데. 중요한 말이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 그래요?”

내가 한참 얼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겨있자 마침내 소년이 물었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위장천이라는 게 뭐였지?”

바보처럼 보일 것이 분명한 질문을 하자, 소년은 바보를 보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참 꾸밈없는 놈이네.

그러나 이내 한숨을 쉬고 질문에 답한다.

“흔히들 선계라고 부르는, 삼계 십이천의 아홉 번째 하늘이에요. 하늘이라기보다는 세계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몰라서 물으시는 거예요? 아니면 내가 어디까지 아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거예요.”

“대충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더 이야기해 봐. 그러니까 거기가 신선들이 사는 곳이란 말이냐?”

내 재촉에 소년은 눈썹을 찡그리면서도 성실하게 대답했다.

“인계에서는 주로 선인(仙人)들이 드나드니까 선계라고 부르지만 사실 선인뿐 아니라 요괴나 도사들도 곧잘 이용해요. 여우굴도 그렇고, 아저씨네 창고만 해도 그렇잖아요.”

여우굴이라고 말하면서 소년은 잠깐 표정이 굳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위장천은 인계를 이루는 네 개의 하늘 가운데 가장 위쪽에 있고, 그곳의 주인인 위장천왕에게는 이 세상의 기운이 원활히 흐르도록 하는 순환의 책임이 있어요. 때문에 네 개의 하늘에 모두 닿아 있어서 그만큼 여러 사람에게 여러 가지로 이용되는 거죠. 옛날이야기 속의 도사들이 흔히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든가, 학이 날고 오색구름이 피는 곳에 오두막을 짓고 산다든가 하는 건 모두 인세가 아니라 위장천인 거예요.”

내 창고가 어딘지 좀 이상하다는 것은 물론 알고 있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을 때 창고의 문이 있는 곳이 밖에서 보면 벽이라는 걸 알고 꽤 고심했었으니까. 결국 ‘도깨비 소굴이니 도깨비 조화겠지.’ 정도로 생각하고 신경 꺼버렸지만.

“그래서 네 친구가 본 게 뭐였는데?”

“이야기로는 이곳저곳 들여다본 것 같은데 문제는 가장 최근에 본 곳이에요. 정확히 뭘 본 건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걔가 보고 있다는 걸 저쪽에서도 알아차린 것 같아요.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생겼대요.”

이상한 일이란 요지경 속의 물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원래 안에는 반짝거리는 색종이 조각들이 들어있었다. 어느 날 그것들이 모두 사라지자 소년의 친구 재경은 대신 먹으려고 가져왔던 시리얼을 몇 개 집어넣었다. 장난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 그것도 사라졌다.

가족은 부모님과 재경, 이렇게 셋뿐이었다. 방에도 가끔 세탁물을 갖다 주거나 청소를 하려고 엄마가 올 뿐이다. 엄마가 보고 버린 건가 생각한 재경이 이번에는 플라스틱 장난감 조각을 넣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그것도 사라져버렸다.

엄마에게 묻자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플라스틱 조각이 사라지자 재경도 슬슬 오기가 생겼다. 이번에도 장난감 조각을 잔뜩 넣고, 늘 눈에 보이는 곳에 두었다. 학교에 갈 때도 가지고 갔다. 그날 밤 재경은 자꾸만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와 얕은 잠에서 깨어났다. 소리는 요지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어둠속에서 작고 단단한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불을 켜자 소리가 멈췄다. 요지경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불을 끄자 다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달그락 달그락. 소리는 분명 요지경 안에서 나오고 있었다.

무슨 벌레라도 들어간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 재경이 뚜껑을 열어보려고 했지만 애초에 그 요지경은 뚜껑이 없었다. 안을 들여다보기 위한 작은 구멍이 있을 뿐이다. 50원짜리 동전보다도 약간 작은 그 구멍에 눈을 대고 안을 들여다 본 재경은 거기에서 벌레가 아니라 이쪽을 빤히 바라보는, 동자와 흰자가 있으며 실핏줄이 보이는 분명한 눈알과 시선이 마주쳤다.

“잘못 본 거 아닐까. 잠이 덜 깨서 꿈하고 헷갈렸다든지.”

겉보기에 아무 문제없는 요지경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내가 말했다. 이야기를 듣고 다시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눈알 같은 것은 없었다. 게다가 씨앗도 없었다.

“그 플라스틱 조각들은 꺼내서 버린 거냐?”

소년에게 묻자 고개를 저었다.

“조금씩 양이 줄어들다 며칠 후에 다 사라졌대요. 그게 모두 사라져버리면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그 후로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안에다 이것저것 넣어주고 있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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