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41화 (41/218)

요지경(2)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색종이와 시리얼은 물론 플라스틱 조각에 앵두 씨앗도 가리지 않고 먹는 먹성 좋은 눈알이 이 요지경 안에 살고 있다는 거다.

“혹시 이거, 가보라든가, 비싸게 주고 산 물건이냐?”

만일의 경우를 위해 물어보았다. 이 안에 이상한 녀석이라도 있어서 없애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몰랐다.

“길에서 주웠대요.”

길에서 아무거나 줍지 마. 아니 주웠으면 주인에게 돌려줘. 그런 거 유치원에서 안 배우냐?

“그냥 없애 버릴까 생각했지만 안에 든 것의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요. 음…스승님께 여쭤 보면 이런 일에 또 끼어들었다고 야단맞을 테고…”

그래서 야단 안 맞을 것 같은 나한테 왔구나. 나야말로 남의 교육방침에 끼어들면 안 될 것 같은데. 나 혹시 녀석의 스승님에게 미움 받게 되는 거 아닐까. 그렇지만.

뭐 혼내줄 사람이 있다니 좋네. 적어도 그 사람은 제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것을 확실히 말해주고 있다. 내 스승인 누구와는 완전히 다르잖아.

“알았으니까 두고 가. 해결될 때까지는 내가 맡아줄 테니 네 친구에게 걱정 말라고 해.”

잠깐 어른인 건 잊고, 스승에게 유감이 있는 제자의 기분으로 동병상련을 느끼며 말했다. 녀석의 안심하는 표정을 보니 아닌체하면서 꽤 걱정하고 있던 것 같다.

“그런데 너 혹시 그동안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술법이나 부적 같은 거 팔면서 알바하고 있던 건…”

놀려주려고 툭 던졌지만

“아니거든요.”

녀석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돌아와서 대꾸했다. 뭐, 지금 표정이 더 중2답네. 녀석은 백은호스럽게 태연히 3층으로 가버렸다.

“그럼….”

어디 볼까?

요지경의 작은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에 들어있던 꽃과 나뭇잎이 거의 없어졌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벌써 다 먹어치운 모양이다. 속도가 빨랐다. 이 요지경 먹이려고 그동안 재경이란 녀석이 넣었을 것들을 생각하니 무서울 만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자지 않았을까. 밤새 모두 먹어치워 버리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요지경을 작업 선반에 내려놓고 그것을 쳐다보는 나도 조금은 그랬다. 이 안에 뭔가를 더 넣을 생각이 없었다. 남은 꽃과 나뭇잎을 다 먹고 나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지켜볼 참이었다.

뭔지도 모르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란 건 묘하게 불안했다. 거기에서 무슨 요괴가 튀어나오든 상대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서도 심장이 두근두근 빨라지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초단위로 시간을 헤아리면서 초조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달그락달그락, 드디어 요지경이 소리를 냈다. 왔다. 동그란 몸체가 소리를 낼 때마다 조금씩 흔들렸다. 마치 안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 같다.

어디 나올 테면 나와 보라며 지켜보고 있는데 그 뿐, 소리는 잠시 후 끊어지고 요지경은 다시 고요했다. 움직임도 전혀 없다.

밖으로 뭔가 나온 적은 없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켜보았으나 눈에도 귀에도, 그리고 살갗을 간질이는 기운들 속에서도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뭐지? 끝났나? 먹을 게 더 없으니까 그냥 조용해진 걸까? 조금 더 기다렸지만 변화는 없었다. 아아…. 내키지는 않는데 아무래도 해봐야 할 것 같다.

나는 허리를 숙이고, 요지경의 작고 동그란 구멍 위에 눈을 댔다. 한쪽 눈을 감고 다른 쪽 눈에 초점을 맞추어 내부를 들여다보자 전보다 어두워진 그 안에서, 꿈벅…동그란 눈알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을 떼고 싶은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눈앞에서 눈알을 보고 있는 기분이라는 게 정말 기괴했다. 눈알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거야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이쪽을 보는 눈에서 악의나 삿된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요지경에서 멀어지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눈알을 마주보자 저쪽에서도 꿈벅꿈벅 눈을 깜박이며 나를 쳐다본다. 깜박인다는 것은 눈꺼풀도 있다는 거네. 눈알뿐인 것이 아니라…. 그런데 눈알과 눈꺼풀만 있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것이 웬 눈알인고.”

남자의 목소리로 말을 한다. 보이지 않지만 입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눈알이라니. 눈알 주제에 멀쩡한 사람인 나를 눈알취급 하고 있는 거냐?

“댁이야 말로 눈알이잖아.”

나도 모르게 대꾸하자 요지경 안의 눈알이 조금 더 빠르게 눈을 깜박거렸다. 그리고 점잖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 사람은 개라 하오.”

예?

얼토당토않은 소개에 잠시 멍청해졌다. 사람인데 개라니 무슨 소리야. 멍하니 있는데 눈알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산 이가의 개요. 초면에 실례했소만 안구의 주인장께서는 성함이 어찌 되시오?”

이 말을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아아, 생물학적 분류가 개(犬)라는 말이 아니었구나. 이름이 개였어. 어떤 부모인지 자식 앞날을 망치려고 작정하셨나. 개가 뭐야, 개가.

“제 이름은 김해명…인데요.”

목소리는 삼십대 후반쯤, 그러나 어투가 점잖고 예스러워 어쩐지 개울의 용신이 생각났다. 혹시 또 야단맞을지 몰라 말을 조심했다.

“오오, 본관이 어디요?”

이분이 이름을 대니까 호적을 파시네. 그런 거 모르는데요. 내 이름 석 자만 알고 있는 데다 주민등록 등본을 확인해 봐도 나만 혼자 달랑. 유하의 말로도 일가친척 하나 없는 몸이라니까.

“몰라요, 그런 거. 천애고아라서요.”

어쩐지 조금 기분이 상해서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눈알이 꿈벅거리며 동자를 좌우로 굴렸다.

“미안하게 되었소. 말을 거는 사람은 오랜만이라 내가 경우도 따지지 않고 하고 싶은 말만 했구려. 용서하오.”

이렇게까지 하니 오히려 내 쪽에서 미안해진다.

“아뇨. 뭐…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거기는 어디죠?”

청학동이 아니라면 조선시대일지도 몰라. 의외로 용신 같은 신의 권속이라 이쪽 세계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녀석이 했던 말을 생각해 보면 정말로 위장천이라는, 아홉 번째 하늘인 걸지도 모른다.

내 말에 눈알이 지그시 가늘어졌다.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윽고 물었다.

“한 번 와 보려오?”

“거기로…요?”

“어떻소. 괜찮으면 들러보오. 나도 내 벗도 바깥 사람을 본지 오래 되었다오. 잠시 이야기라도 나눠주면 우리에게는 감사한 일이오.”

어딘지는 말해주지 않고 일단 오라니. 어떻게 가는가는 둘째 치고 정말로 가도 될까? 하는 생각에 망설였다.

보이는 것은 눈알뿐이다.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상대가 누구인지, 인간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본인 말로는 한산 이가 사람이라는데 거짓말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고, 본래 인간이었더라도 지금까지 인간일 거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게다가 저쪽이 과연 어디인지. 여우굴처럼 들어가는 건 내 마음대로지만 나가는 건 주인 마음인 곳인지, 옛날이야기 속의 도원경처럼 바둑 한 판 구경하고 나왔더니 수십 년이 흘러버리는 곳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망설이는 내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눈알이 부드러운 모양으로 휘어졌다.

“미안하오. 내가 또 어려운 부탁을 쉽게 했구려. 이 사람의 생각이 짧았소이다.”

글쎄.

상대가 누구인지 저기가 어디인지 몰라도 일단 나는 이 요지경을 맡은 상태였다. 요지경에 관한 모든 것을 확실히 알아낼 필요도 있다.

“그쪽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내가 묻자 눈이 반가운 기색을 띄며 커졌다.

“오오, 와주는 게요? 감사하오. 오는 거야 그리 어렵지 않소. 옷자락을 조금만 이쪽으로 밀어 넣어 보시오. 내가 잡아당겨 데려오리다.”

옷을 잡아당기겠다고? 이 요지경 속으로?

팔도 안 들어갈 것 같은 굵기의 요지경 안으로 내 몸이 꾸역꾸역 끌려들어가는 상상을 하자 오싹해졌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꽁무니 뺄 수도 없고. 어디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티셔츠의 아랫자락을 요지경의 구멍 안에 조금 밀어 넣었다.

2cm쯤 들어갔다 싶은 순간 옷자락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안에서 내 옷을 잡은 것이다. 눈알이 어떻게 옷을 잡지? 궁금한 것도 잠시였다. 옷과 함께 내 몸이 요지경 쪽으로 확 당겨졌다.

“어엇!”

몸이 끌려가는 느낌과 함께 시야가 기묘하게 비틀어졌다. 눈앞의 정경이 나선으로 휘어졌다가 이내 수십 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번쩍거렸다.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그것을 지나고 나자 내 몸은 잠시 허공에 붕 뜬 것처럼 중력에서 벗어났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리고는 곧장 아래로 추락했다.

“왓!”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지만 사실 아픈 건 아니다. 바닥은 푹신한 이끼가 깔려 있었고 떨어진 것도 불과 1미터 정도. 놀란 것은 아마 내 앞에 있는 ‘것’때문이겠지. 나를 보며 꿈벅거리는 커다란 눈알.

사람이라며! 한산 이가의 개란 사람이라며! 이 모습이 어디를 봐서 사람인데!

들짐승의 머리에 뱀처럼 긴 몸, 네 개의 발은 갑옷 같은 비늘을 번쩍이며 용한한 발톱으로 땅을 움켜쥐었고 느릿하니 철썩이는 긴 꼬리 끝에서 흰 실타래와 같은 아름다운 털이 흔들렸다. 머리에는 사슴뿔, 귀는 소와 같고 코는 돼지를 닮았으며 메기처럼 긴 수염이 두 가닥 자란 이 모습. 전신을 덮은 녹색의 비늘을 반짝이는 이 신묘한 모습은 어떻게 봐도 용이다.

그 용이 코앞에서 커다란 눈알을 끔벅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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