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45화 (45/218)

이름 없는 나무(3)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사람의 다리가 둥치가 되어 거기에서부터 가지가 뻗어 나왔다. 그 가지가 방안에 숲처럼 우거져 푸른 잎을 무성하게 펼치고 있었다.

이 기괴한 광경에 나는 우뚝 서서 할 말을 잃었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하반신이 나무가 된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팔걸이에 손을 올려놓은 채 눈을 감은 모습이 마치 나무를 깎아 만든 인형 같았다. 윤기 없이 여윈 볼을 덥수룩하게 기른 머리카락과 수염이 덮고 있었다. 소매에서 빠져나온 손도, 수염 아래로 조금 드러난 목도, 나무가 되어 버린 발목도 가여우리만큼 깡마른 모습이었다.

여자가 그의 옆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환…”

그녀가 이름을 불렀지만 남자는 미동도 없었다. 눈에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풀었다 잦아드는 옷자락으로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자주 잠이 들어요. 잠들면 스스로 눈을 뜨기 전에는 깨울 수 없고요.”

여자가 일어나서 말했다.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백은호를 쳐다보았다.

여우 요괴는 어둠 속에서 파르스름하니 빛을 발할 것 같은 눈으로 남자를 쏘아보았다. 평소보다 차가운 얼굴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가늠할 길이 없다.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무심히 관찰하는 것도 같고, 굶주린 눈으로 먹이를 노리는 것도 같고, 복잡한 내심을 감추려는 것도 같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라.”

말이라도 걸어봐야 하나 싶을 정도로 오랫동안 남자를 노려보던 백은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여자는 잠든 남편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수심 어린 눈 밑으로 그늘이 졌다.

“그이가 사람이 된 후로, 우리는 이곳에 숨어 이목을 가리고 매사에 주의했어요. 알고 있겠지만 길상과인 저는 사람이나 요괴를 피해야 했으니까요. 환이 여우인 동안에는 그를 두려워해서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지만 사람이 되고 나서는 달라졌어요. 그래도 몇 년 동안은 잘해왔어요. 집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거든요. 밖으로 나가야 하는 일은 환이 대신 했고…”

그건 꼭 나랑 같네. 물론 나는 길어야 일 년도 안 되는 기간만 기억할 뿐이겠지만.

“그런데 6년쯤 지나고부터인가 문제가 생겼어요. 사실 저는 그때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최근 환에게 듣고서야 알게 되었지만요. 그이의 말에 따르면 아주 먼 곳으로부터 우리를 노리는 결계가 만들어지고 있었대요.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는 결계가, 마치 그물로 강 밑바닥을 쓸어가듯이…”

그녀는 말하다 말고 오싹 떨었다.

“그 그물이 몇 년 동안 차츰차츰 다가와서 이제는 이곳을 완전히 포위해버린 거예요. 환은 방법이 있다고 했지만 그렇게 말하고 며칠 뒤에 갑자기 걸을 수 없게 되었어요. 몇 주 후부터는 다리에서 뿌리가 나기 시작했고요. 그리고 뿌리가 난지 3주 만에 이렇게 되었어요.”

여자는 어두운 방안을, 두려움과 혐오에 찬 눈으로 둘러보았다. 남편의 몸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 방을 가로지르며 푸릇하니 생기 넘치는 나뭇잎을 가득 매달고 있는 광경을.

“그래도 환은 별문제 아니라고 했어요. 모든 것이 끝나면 원래대로 돌아온다고요. 저도 그렇게 믿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이가 변했어요. 본래의 환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밤낮없이 잠들어 있고, 깨었을 때도 저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이상한 말을 해요.”

“무슨 말을 했는데요?”

내가 묻자 여자는 추운 듯이 자신의 팔을 쓰다듬었다.

“화를 내는 말이었어요. 누군가에게 호통을 치는 것도 같고…이름을 부른 적도 있는데 사람의 이름 같지는 않았어요. 매일 부르는 이름도 다르고 깨어나서 말하는 시간도 제각각이었어요. 그런 일이 열흘 넘게 계속되고, 환의 몸은 점점 말라가는데 나무는 더욱 울창해지니 더는 기다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를 찾아왔다고 그녀는 말했다.

“왜 방을 이렇게 어둡게 했지? 환이 그렇게 하라고 했나?”

여자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어두운 방안을 천천히 돌아다니던 백은호가 물었다.

“아뇨. 제가 했어요. 나무가 너무 빠른 속도로 자라는 것 같아 조금이라도 속도를 늦춰보려고요. 나무에게는 빛과 물이 필요하니까…. 물은 환에게도 필요하니 어쩔 수 없겠지만 빛이라도 가리면 좀 느려지지 않을까 하고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커튼 레일이 촤르륵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방안으로 빛이 쏟아졌다. 방안의 전경이 환히, 더욱 똑똑히 보였다. 날씨가 흐려 빛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방을 가로지른 수많은 가지들이 파르르 떨어 반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자가 불안한 눈으로 백은호와 남편을 번갈아 보았다.

“물을 충분히 섭취하게 하고 창은 늘 열어둬. 우리는 잠시 나갔다 오겠다.”

백은호는 말하더니 신호도 없이 먼저 밖으로 나갔다. 나도 더 머물고 싶은 곳이 아니라 허둥지둥 따라 나섰다.

백은호는 밖으로 나가자 집을 떠나 천천히 걸었다. 뭔가 생각에 잠겨있는 것 같았지만 겉보기에는 느긋한 산책이었다.

“환이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겠어? 그건 도술이야? 아니면 뭔가 들린 거야?”

물론 나는 산책이나 하고 있을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집에서 좀 멀어진다 싶자 백은호에게 캐묻기 시작했다. 그는 질문하도록 내버려두고 있다가 내 목소리가 좀 높아지자 귀찮다는 듯이 대꾸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도령도 봐서 알고 있을 터입니다. 귀로 듣거나 냄새를 맡는 일이라면 모르겠으나, 보고 느끼는 것이야 저나 도령이나 다를 바 없으니 스스로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습니까.”

귀찮아하는 것 치고는 긴 대답을 해준다. 그 말에 나도 방에서의 기억을 돌이켜 보았다. 서재에 들어갔을 때, 반쯤 나무가 된 남자를 마주봤을 때, 거기에서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더라.

서재는 마치 숲속 같았다. 공기도 냄새도 그랬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두운 방안에서 냄새만으로 그렇게 확신해버리지는 않았을 터다. 나무들의 기운, 그런 비슷한 것이 그 안에 있었다. 신목을 찾아갔을 때 안개 터널 안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나무들의 기운을 하나하나 읽었던 그 느낌이었다.

“나무…목신…아냐. 그보다는 신목에 더 가까웠어. 그런데 사람의 기운이 섞여 있어서 명확하지 않고, 거기에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묘한 기운. 그런데 낯설지 않은. 어쩐지 최근에 비슷한 것을 느낀 적이 있는데…

적확한 단어를 찾아낼 수 없어서 되는대로 중얼거리다 마는 나를 백은호가 힐끗 쳐다보았다. 말하려 하기보다는 내 말을 기다리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가 뭔가 알려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도 좀 더 내 기억에 집중했다.

별로 멀지 않은, 정말 최근인데. 뭐였더라. 사람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고, 요괴도 아니고, 귀신도…

하나하나 세어 보던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 남자다.

태령 윤문의 일로 백은호가 산신을 끌어들였을 때, 여우 요괴 위에 덧씌워져 있던 흰옷의 그 남자다. 그의 느낌이었다.

“산신…”

사람 같으면서 아니며 나무 같으면서 신이다. 그 기운조차 하나로 명확하지 않고 그 모든 성향들이 뒤섞여 있었다.

“꽤 근접했군요.”

백은호스럽게 얕보는 듯한 말투였으나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저렇게 말한다는 것은 이미 그것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근접했다니, 그럼 뭐라는 거야?”

숨 가쁘게 묻는 내게 그가 담담히 대답했다.

“두두을입니다.”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를 단어가 나왔다.

“두두리라고도 합니다.”

못 알아듣는 내게 백은호가 덧붙였다. 두두을이고 두두리고 다 몰라. 자아, 부디 어린아이에게 하듯이 친절하고 단순하게 설명해 주겠어요? 백은호씨.

입 밖에는 내고 싶지 않은 부탁을 두 눈에 가득 담아 바라보자 백은호는 한숨과 함께 설명했다.

“일종의 목신입니다만 도령이 늘 보는 목신과는 다릅니다. 그것들은 신이라기보다 정령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그에 비해 두두을은 확실한 신이며,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숭배를 받았던 기록이 있습니다. 비형랑 설화에서 이어진 신앙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옛날이라 확실치는 않군요.”

비형랑이라면 적어도 1500년 전의 일이다. 백 년쯤은 우습게 생각하는 여우라도 천오백 살은 안 된 모양이다.

“그럼 뭐야, 환이 두두을이란 신에게 당했다는 거야?”

“두두을은 역신이나 지장부인과는 다릅니다. 이유 없이 인간과 접촉하거나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환이 두두을을 노하게 할 만한 일을 했을 리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합리적인 의심은 길상과를 노리는 누군가가 두두을을 이용했다 라는 정도겠지요.”

두두을을 이용했다? 신을 이용할 수도 있는 건가. 아, 하긴 그때 백은호도 산신을 불러내서 태령 윤문 사람들을 쫓아내기는 했지. 하지만 신이란 그렇게 쉽게 움직이고 이용할 수 있는 거였어?

“짐작일 뿐입니다. 신앙이 쇠퇴하여 숭배하는 이도 없는 몰락한 신일지라도 아무나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적어도 환에 버금가는 실력이 아니라면 어렵습니다. 그 정도의 실력자는 이 땅에서도 몇 되지 않습니다.”

그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태령 윤문의 도사도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환과 그의 부인에게 문제가 생긴 지 이미 수 년째라고 해도, 실제로 위기가 닥친 것은 불과 두 달쯤 전부터의 일이다. 태령 윤문과 충돌한지 한 달 후인 셈이다. 우연이라면 우연일 수 있지만 아니라고 생각하면 걸리는 것이 많았다.

“환이 말했다는 결계는 뭐지? 그것에 관해 아는 게 있어?”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도술은 제 특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천라지망의 일종이 아닌가 싶군요. 원하는 대상을 가두는 것에 찾아내는 것까지 포함된 술법이라면 상당한 수준의 도사가 아니면 안 됩니다. 더욱이 상대는 환입니다. 인간이 되었다고 해도 그의 술법은 지식도 정교함도 변함이 없을 터입니다. 환의 특기야말로 바로 그것이니까요. 제가 아는 최고의 도사가 그입니다.”

와아, 저거 칭찬이지? 백은호가 칭찬을 했어. 저 여우 요괴가 최고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다니. 쓸 일이 없으니 까먹어버린 줄 알았는데.

“뭡니까, 그 표정은. 제가 본 도령의 얼굴 중에 최고로 바보 같아 보입니다.”

아…그래. 이런 용도로 쓸 수도 있겠구나.

“됐고요, 두두을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해결책도 아는 거겠지?”

살짝 삐쳐서 퉁명스럽게 묻자 그는 태연히 고개를 저었다.

“말씀 드렸잖습니까. 두두을을 사용할 정도라면 상당한 수준의 도사가 아니면 안 된다고.”

그리고 백은호는 상당한 도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뭐야, 그럼 못한다는 거야?”

당황한 나와 달리 그는 남 일처럼 느긋했다.

“그럴 수도 있지요. 환이 두두을에게 침식된다면 저로서는 길상과를 얻을 기회가 오는 것이니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물론 두두을을 이용해 환을 공격했던 그자와 먼저 싸워야 하겠습니다만.”

야, 야. 백은호. 그건 너무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이라고! 뭐…그런데 과부가 된 길상과라니 묘하게 유혹적이기도 하…김해명! 김해명! 정신 차려!

“그, 그래! 그 작자! 두두을을 이용한 그 자를 찾아내면 되는 거잖아! 안 그래? 굳이 신과 싸울 필요는 없잖아.”

마음속의 잡생각을 쫓아내며 말했다.

“그럴 생각이기는 합니다만, 여기까지 나와 봤는데도 결계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군요.”

백은호의 말을 듣고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우리는 환의 집이 까마득하게 보일 정도로 멀리 와 있었다. 그것도 집을 중심으로 나선을 그리며 몇 번이나 원을 그린 뒤였다.

백은호는 걸음을 멈추었다.

“이렇게까지 흔적을 감출 수 있는 상대를 제가 찾아내는 것은 무리입니다. 저로서는 돌아가서 두두을을 몰아내는 편이 나을 것 같군요.”

몰아낸다면 어떻게?

“나무로 변한 부분을 잘라버리고 두두을이 더 침식할 수 없도록 봉인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야…. 너 사람의 다리를 싹둑 잘라버린다는 말을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해도 되는 거냐? 아, 그래. 이 녀석은 요괴였지.

잠시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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