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나무(4)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우리는 숲 같은 서재로 돌아가서 환의 부인에게 알아낸 사실을 말했다. 백은호식 솔루션을 들은 그녀는 슬픔과 의심이 섞인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이해가 된다. 사실 백은호가 환의 다리를 자르자고 할 때 나도 조금은 의심했었다. 정말 방법이 그것뿐일까? 다른 길이 있지만 외면하고 있는 게 아닐까? 잠깐의 외면으로 길상과를 얻을 기회가 오잖아. 과거에도 노린 적이 있다 하고.
아니 어쩌면 나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알고 있을 거예요, 섭.”
여자가 백은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환이 죽어도 나를 갖지는 못해요.”
한 오리의 빈틈도 없이 단호한 목소리였다. 진심이다.
“아아, 알지. 그 대단하신 부부애.”
비꼬듯이 대꾸했지만 백은호도 진심이다. 어쩐지 알 수 있었다.
여자, 규희가 입술을 깨물면서 의자에 잠들어있는 남편을 내려다보았다. 어둑한 빛 속에서 그는 나무를 깎아 만든 사람인 것처럼 메마르고 무표정했다. 덥수룩한 머리나 수염이 잔뿌리처럼 보였다.
“정말로 그것이 최선인가요?”
그녀가 다짐하듯 물었다.
“내게는 그렇다.”
백은호가 대답했다.
묘하게 여지를 둔 대답이었다. 그것을 예민하게 깨닫고 규희는 백은호를 올려다보았다가 이윽고 내게 눈을 돌렸다. 붙잡는 것 같은 시선이다. 그녀의 눈이 묻고 있었다. 당신은? 당신에게는 다른 방법이 있나요?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길상과의 마음을 얻고 싶어서인지 단순히 동정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안심하라고 말하고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 작업장에서 봤던 환한 미소가…아냐. 그 전에, 더 예전에 나는 본 적이 있어. 언제였더라.
정말로, 햇빛에 안기는 것 같이 따뜻한 미소였는데. 깊은 곳에서 기억의 조각이 반짝였다. 그녀는 부드러운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었다.
“걱정 말아요.”
그때 그녀로부터 들었던 말을 나도 모르게 했다. 백은호가 나무라는 듯이 나를 힐끗 보았지만 이미 뱉어버린 말은 어쩔 수 없었다.
“둘 다, 괜찮을 테니까.”
대책 없이 장담해 버리고 말았다. 규희가 나를 말끄러미 올려다보더니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작게 웃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걱정 안 할게요.”
규희는 훨씬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분명히 기억해냈으리라 생각한다. 과거에 그녀 자신이 내게 했던 말을.
- 걱정 말아요, 도령. 틀림없이 둘 다 괜찮을 테니까요.
전후 사정 같은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가 위로하던 목소리만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 나는 그 말을 듣고 정말로 걱정하던 마음이 사라졌었다. 내가 단순했는지, 아니면 그녀의 위로가 믿음직했던 건지.
규희가 손님들을 위해 다과라도 준비하겠다며 서재를 나가자 백은호는 문을 툭 건드려 닫은 다음 나를 향해 돌아섰다. 나를 향한 그는 이미 ‘한심한 것을 보는 백은호’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뭐, 잔소리 들을 각오는 했으니까.
“없을 줄은 알지만 예의상 묻겠습니다. 대책이 있습니까?”
알면 묻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뚱하니 대답을 못하고 있자 백은호는 짜증 서린 한숨을 담배연기처럼 뿜어냈다.
“아까도 말했지만 도령의 기억력을 신뢰하기 힘드니 한 번 더 알려드리겠습니다. 환이 말한 결계의 배후는 제 실력으로 알아낼 수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유효한 방법은 두두을이 더 이상 그를 침식하지 못하게 막는 것뿐입니다.”
아까 말한 거 다 기억하거든요.
불평하고 싶었지만 백은호의 성미를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 입을 다물고 있자 그가 계속해 말했다.
“이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가능성도 거의 없는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습니다. 도령이 머물 수 있는 시간에 한계가 있기도 하지만 저 역시 이곳에 오래 있을 마음 따위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어쩌라고.
“하루입니다.”
백은호는 딱 잘라 말했다.
“단 하루만 도령의 억지에 장단을 맞춰 드리겠습니다. 대신 내일 이 시각까지 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제 방법을 따르도록 도령도 도와야 합니다.”
환의 다리를 자르지 않고도 구할 방법이 있는지 하루만 찾아보자는 말을 참 길고 힘들게도 한다.
어차피 환에게도 시간이 별로 없었다. 다리에서 비롯되어 하반신을 장악한 두두을의 기운은 피부를 덮고 살갗 안으로 파고들어 환을 위협하고 있다. 이대로 며칠만 지나면 그가 인간이었다는 흔적 하나 남지 않고 온전한 나무신, 두두을이 되어 버릴지도 몰랐다.
우리 모두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일단 하루의 유예기간이 생겼지만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더구나 두두을인지 뭔지 들어본 적도 없는 신이고 보니 바다 한 가운데 똑 떨어져있는 것처럼 막막했다. 무엇보다 환과 규희를 노리고 수년에 걸쳐 좁혀왔다는 결계를 어떻게 찾아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수상한 점은 있군요.”
서재로부터 시작해 집안을 돌아다니며 꼼꼼히 조사하고, 집 밖으로 나와 다시 주변을 샅샅이 살핀 후에 백은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두두을 정도의 신이 움직였는데 길을 찾을 수가 없다니 이상한 일입니다. 요괴는 말할 것 없거니와 한낱 혼령도 음기를 남기고 짐승조차 발자국을 남기는데 어디에서도 두두을이 들어온 흔적이 없습니다. 들어왔다기보다는 이곳에서 현신한 것 같군요. 마치 여기에 환과 길상과가 있다는 것을 잘 아는 듯이 말입니다.”
“그게 이상한 거야? 결계가 오랜 시간동안 점점 좁혀왔다고 했잖아. 여기가 환의 은신처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게 아닐까.”
말해 보았으나
“그랬다면 결계의 흔적을 제가 찾았을 겁니다.”
곧바로 반박 당했다.
“게다가 이 집은 환의 술법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도령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집안 곳곳에 부적과 신물을 두어 바깥의 기운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 여기에 길상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도 쉽게 이 안에서 두두을이 현신하게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예. 전혀 눈치 못 채서 죄송하네요. 그런데 쉽게 할 수 없다는 건, 어렵게는 가능하다는 거잖아. 내가 묻자 백은호는 조금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 길이 있습니다만.”
하여간 무슨 말을 절대 간단하게는 안 해요. 그러니까 그 길이 뭔데?
“사람을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이 집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환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약한 술법이나 매개가 될 만한 물건 같은 것을 지니게 한다면 멀리에서도 어렵지 않게 수작을 부릴 수 있을 겁니다. 다만 한두 번으로는 안 됩니다. 여러 번 드나들어야 할 겁니다.”
“그럼 최근에 여기 자주 드나들었던 사람이 누군지 물어보면 되겠네.”
아, 뭔가 실마리가 나온다. 좋아했으나, 백은호의 표정은 차가웠다.
“굳이 물어볼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이곳으로 온 뒤 그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고 외출해야 할 때는 환이 직접 나갔습니다. 그런 집안에 자주 드나들었던 사람이라면 한 명뿐입니다.”
택배 기사님? 웃으라고 한 말이었지만 백은호는 조금도 웃어주지 않았다. 이 여우요괴는 나하고 개그 코드가 안 맞는 것 같다. 웃기는 건 포기하고 그 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려던 찰나에 답이 떠올랐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리고 즉시 부정했다.
“왜입니까. 그 외에 다른 사람이 이 집에 드나들었을 리 없고 환이 매개를 갖고 들어가는 실수를 했을 리도 없습니다. 모든 경우를 고려해 가능성 있는 사람은 한 명뿐입니다.”
백은호와는 개그 코드만 안 맞는 게 아닌 것 같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뭣 때문에 녀석이 스승을 위험하게 만들겠어.”
“스승을 위험하게 만들 이유가 없다고 확신하는 까닭을 모르겠군요. 자고이래로 스승을 배신하는 제자가 없었던 것도 아니며, 그들이 모두 처음부터 악하거나 어리석었던 것도 아니었을 터입니다. 실제로 그는 이미 세 달 전에 스승을 위험에 빠뜨릴 뻔하지 않았습니까.”
백은호가 냉정하게 말했다. 틀린 소리는 아니다.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없었다. 확률만을 따진다면 확실히 그랬다. 하지만 녀석은 아니다.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 확률이나 가능성이 문제가 아니었다. 녀석이 그럴 리가 없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아니라면 아니야.”
결국에는 억지에 가까운 주장밖에 할 수 없었다. 백은호는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가 짧은 한숨을 뱉었다.
“믿고 있다는 겁니까?”
목소리에 조소가 섞여 있었다.
“과연, 배신당한 기억이 없는 도령이나 할 생각이군요.”
백은호가 내뱉듯이 말했다. 단어 사이의 억양을 미묘하게 바꿔서 한 말이었다. 내가 배신당한 적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배신당했으나 그 기억이 없다는 의미로 들렸다.
물어봐도 소용없겠지? 약속을 했다니까.
“그 녀석은 아니야.”
한 말을 되풀이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확률은 낮겠지만 이라고, 그는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사람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저로서는 알 수 없이 복잡한 고도의 술법을 쓴 것입니다. 그런 자라면 저나 도령에게 하루 만에 꼬리를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중2 녀석이 범인이라고 생각하라는 거야 뭐야.
“아까보다 더 멀리 가보자.”
천천히 걸어 점점 집에서 멀어지다가 백은호가 결계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며 수색을 중단한 곳이 가까워지자 내가 제의했다. 백은호는 기대라곤 1나노그램도 없는 얼굴로 앞장섰다.
우리는 마을에서 벗어나 얕은 언덕과 밭으로 이루어진 곳을 돌아다녔다. 길이 점점 좁아졌다가 잡초와 관목이 우거진 곳으로 변했다. 이런 곳에 밭을 만들어 놓으면 도대체 어떻게 일하러 오는 건지 궁금할 정도로, 깊숙한 곳까지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앞서 가던 백은호가 멈칫 섰다.
“조금 빨리 가겠습니다.”
그가 말하더니, 곧바로 바닥을 차고 몸을 날렸다.
뭐가 조금 빨리야! 한 걸음에 거의 15m씩 날아가고 있잖아. 휭 하니 가버리는 여우 요괴를 따라 나도 속도를 올렸다. 열심히 뛰었지만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의 거리만을 겨우 유지했을 뿐이다. 이러다가는 놓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 그가 멈추었다.
인적이라고는 아예 없는 산속이었다. 환의 집과 마을로부터 직선거리로 거의 2km는 될 것 같았다. 멀리 가보자고 말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오자는 뜻은 아니었는데.
약간 숨이 거칠어진 나와 달리 매무새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백은호가 선 자리에서 주변을 한 번 휘둘러보았다. 집중하여 무표정한 얼굴에 의문이 떠오르는 것을 봤다.
뭘 본 걸까. 내 눈에는 흔해빠진 야산일 뿐이었다. 본 게 아니라면 느낀 걸까.
사방에 빼곡한 나무들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기운을 읽어보았다. 그늘지고 인적 없는 곳에 흔한 음령한 기운이 약간, 드문드문 나이 많은 나무들에 목신과 작은 동물이 느껴질 뿐이다.
백은호는 그늘진 계곡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갔다. 뒤를 따르던 나는 갈수록 간질거리는 듯한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마치 얼음으로 만든 실이 한 올 한 올 공중을 떠다니다 피부의 솜털에 닿은 것 같았다.
얼음의 실은 걸을수록 더욱 많아졌다. 체온이 조금 내려가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아예 공기조차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느껴질 때에야 백은호가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그의 옆에 서서 눈앞에 펼쳐진 아수라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계곡 한 쪽이 무너져 있었다. 비 같은 것 때문에 저절로 무너진 흔적이 아니다. 나무가 뽑히고 꺾이고 땅이 파이고 바위가 부서져 흩어졌다. 마치 거인 둘이서 격투를 벌인 자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격렬한 흔적 위로 피부를 차갑게 만드는 냉기와 두두을의 기운이 뒤섞여 있었다.
“두두을이 여기에서 왜…?”
조금 당황한 것 같은 백은호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영문을 모르고 있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여서 이 파헤쳐진 계곡과 뒤섞인 기운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복잡했다.
“주위를 돌아보겠습니다. 속도를 낼 생각이니 따라오기 힘들 것 같으면 그냥 여기에 계십시오.”
백은호가 말하더니 이번에는 아까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번쩍 사라져버렸다. 달리거나 날거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예 사라져버린 것이다. 사라진 그의 모습이 수십 미터 앞 나무 사이에서 다시 번쩍 나타났다가, 그것을 도로 잔상으로 만들며 또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에는 더욱 먼 곳에 개미만한 크기로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따라가고 뭐고, 눈으로 쫓아가기도 힘들다.
그렇게 사라진 백은호는 한참 후, 거의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되돌아왔다. 표정은 떠나기 전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환의 집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거기에서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뭘 확인할 생각인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내가 묻자 마지못한 듯이 “부적을…”이라고만 대답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환의 집으로 가자 백은호는 자신이 말한 대로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벽이나 문설주에 붙어있는 부적들을 확인했다. 부적뿐 아니라 돌멩이 같아 보이는 장식품, 대충 만든 부처상, 벽에 걸린 칼이나 거울 같은 것도 일일이 만져보았다.
집안을 한 바퀴 돈 다음에야 그는 서재로 다시 돌아가서 여전히 잠들어 있는 환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그를 꿰뚫어 보려는 듯이, 눈도 깜박이지 않고 바라본다. 뭐가 담겨있는지 모를 눈이었다.
“인간이라는 건가….”
중얼거리는 백은호의 목소리가 혼란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