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 속의 아이들(2)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이수민이란 아이디도 함께 검색해 보자 둘에게 들었던 내용들이 조금씩 나왔다. 아까 들은 자주 가는 사이트란 여기가 맞는 것 같다.
그럼 뭐야, 마니마니가 중2 녀석 여동생이란 거잖아. 내 소문은 인터넷에서 들었다더니 자신이 그 소문을 뿌리고 다니는 장본인이었다. 앙큼한 것. 어리다고 방심했어. 중2 녀석과 남매라는 걸 깜박했네.
그건 그렇고 웃기는 일이다. 수 개월 전 인터넷에서 나에 대한 글을 읽었을 때 내가 그 글을 쓴 장본인과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었다.
온라인 안에서 만나는 글이란 누군가의 말과 생각임이 분명하지만 그 사실을 인지하면서 읽게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마치 들에 저절로 피어난 꽃이나 풀처럼 임자 없는 것 같이 여겼던 걸까. 사실 그 꽃이나 풀을 키운 사람이 가까이 있고 보자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봐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방금 여기에 있었다. 또 하나가 며칠 전에도 여기에 있었고. 아마도 맞는 것 같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우연히 여기 온 것이 아니다.
환의 말을 멍하니 되새기고 있을 때 백은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조건에 맞는 곳을 찾았습니다만, 뜻밖에 재미있는 것이 있더군요.”
여우 요괴에게 재미있는 것이란 뭘까 싶은데
“그것과 함께 말씀하신 아이도 데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곧 도착합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백은호는 전화를 끊었다. 어제는 귀찮다는 듯이 말하더니 의외로 기분이 좋아 보인다.
잠시 후 건물 앞에서 차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작업장으로 들어온 백은호의 옆에는 며칠 전 본 소년과 함께 열 살이나 되었음직한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가만, ‘말씀하신 아이’가 저 남자아이니까 ‘뜻밖에 재미있는 것’이란 저 여자아이인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곧 알 수 있었다. 물론 겉은 나무랄 데 없는 여자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감쪽같이 속일 수 있겠지. 하지만 인간 특유의 기운도 생기도 없고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요기’라고 할 만한 것만 일렁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래도 두 번째 만났다고 남자아이, 수민이 나긋하게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한 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목발도 없이 서 있는 모양이 꽤 불안했다. 녀석에게 의자를 권해주고 백은호에게 얘들을 언제까지 돌려보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글쎄요.” 같은 무책임한 대답을 들었다.
“뭐야, 너 보호자에게 안 물어보고 데려왔어?”
“근처에 없더군요.”
야, 백은호. 그거 납치거든. 유괴라고.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저 여자애는 상관없지만 남자아이는 보호자가 걱정하고 있을 거 아냐.
“6시까지 가면 돼요. 밥 먹는 시간 늦으면 혼나니까.”
백은호 대신 수민이 대답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도 모르고 씩씩하기 짝이 없다. 아니 집에서는 얘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부러 얼굴을 험상궂게 만들어놓고 녀석에게 을러댔다.
“야, 임마. 너. 모르는 사람이 같이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 가르쳐 주든? 덥썩 따라가서 차타야 하는 거야? 만일 나쁜 사람이었으면 어쩔 거야? 응? 이번에는 다행히…”
…여우 요괴였지만.
백은호를 힐끗 보자 무시하는 얼굴로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었지만, 다음에는 절대로 모르는 사람 따라가고 그러면 안 된다? 응? 큰일 나!”
나름 무섭게 야단친다고 했는데 듣고 있던 꼬맹이는 벙긋 웃어버렸다. 야, 귀엽게 웃지 마라. 정든다.
“그래서 저도 안 가려고 했는데 세희가 괜찮다고 해서요.”
말하며 여자아이 쪽을 돌아보았다. 이 여자애는 이름도 있는 요괴인가 보다. 그러나 사람이 아닌 것 외에는 딱히 위험하게 보이지도 않고 새침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는 모양이 귀엽기도 하고. 정체를 모르니 장담할 수는 없지만 백은호의 반응도 나쁘지는 않다.
어쨌든 일단은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중2 녀석과 여동생의 말처럼 꼬맹이는 광신대학교 근처, 선예원이라는 보육원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세희라는 여자애 요괴 역시 그곳의 원아로 취급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 요괴도 부모가 없으면 고아니까. 하지만 요괴는 요괴라 사람과 다른 데가 있었다.
“이모랑 다른 애들이 그러는데, 세희한테 귀신이 씌었대요.”
“그걸 어떻게 알아?”
내 물음에 꼬맹이는 여자애의 눈치를 힐끗 보고 좀 작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귀신이 세희한테 말해줘서 뭐든 다 알고 있대요. 뭐 숨겨놓은 거랑, 나쁜짓 한 거랑, 그런 거 다 말해준대요. 그래서 애들이 세희를 싫어해요. 형들이랑 누나들이 때리기도 하고, 애들이 막 놀려요. 이모한테 말했는데 짜증내요.”
아마도 사람과 다른 점 때문에 여자애 요괴는 따돌림 당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세희는 맨날 이불장 위에 숨어 있어요. 책장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요. 원장 선생님이랑 이모들이 보면 막 혼내는데 맨날 맨날 올라가요. 귀신이 그렇게 시킨대요. 그래서 저번에 아저씨한테 귀신 쫓아달라고 왔었잖아요. 귀신이 없어지면 세희도 이상한 일 안 할 거고 애들도 안 놀릴 거 같아서요.”
꼬맹이 치고는 차분하고 조리 있게 말하더니 눈을 깜박이며 세희를 쳐다보았다. 방금 한 말 때문에 기분이 나쁜지 확인하는 기색이었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코앞에서 오가고 있지만 세희라는 요괴는 새치름한 얼굴로 못들은 척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안 왔어?”
다리를 다쳐서 못 왔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지만 모르는 체하며 물었다.
“오려고 했는데요, 세희가 이불장 위에서 안 내려와서요. 제가 데려오려고 이불장 위로 올라갔거든요. 그런데 떨어졌어요. 그래서 다쳐서 병원에 갔어요.”
꼬맹이가 이야기하는 동안, 처음으로 여자애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쌀쌀맞게 고개를 외로 꼬고 있던 여자애가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팍 숙이더니 눈치를 보듯 소년을 힐끗거렸다. 음? 미안해하는 건가?
“근데 명근이가 이모한테 일러서 세희가 맞았대요. 원장 선생님이 또 이불장 위로 올라가면 다른 데로 보내버린다고 그랬대요. 그런데 애들이 그러는데 세희가 원장선생님한테 뭐라고 막 그러니까 원장선생님이 울었대요. 그래서 나중에 제가 세희한테 물어봤거든요. 뭐라고 말했냐고요. 그러니까 세희가 말해줬는데…”
꼬맹이는 한 번 더 여자애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원장선생님 방 금고에 애들이 있다고요.”
무서운 비밀을 알려주는 것처럼, 꼬맹이의 얼굴이 약간 겁에 질려 있었다.
“아이들?”
설마 진짜 아이들이 있을 리는 없고. 혼령이나 뭐 그런 게 있다는 거겠지.
“예. 다섯 명요. 이름도 말해줬어요.”
이름도 있다니 요괴는 아니고 혼령 맞는 거 같은데.
“애들이 배고프다고 맨날 울어서 원장 선생님이 먹을 것도 갖다 줬대요.”
…혼령이겠지.
“장난감도 주고요.”
…혼령일 걸.
“근데 원래는 여섯 명이었대요. 하나는 몇 달 전에 죽었대요.”
…혼령이 죽을 리가 없잖아!
백은호를 힐끗 보자 무료한 얼굴로 선반에 놓인 공구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니까요 아저씨, 세희한테 붙은 귀신도 쫓아내고 금고에 있는 애들도 구해주시면 안돼요?”
나를 말똥말똥 올려다보며 꼬맹이가 물었다. 귀신은 그렇다 치고 금고 속에 애들이 있다는 건 당최 뭔 소린지. 그건 역시 말한 장본인에게 물어야겠지?
“금고 안에 아이들이 있다는 건 정말이야?”
여자애 요괴에게 물었지만
“…….”
대답은커녕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세희는 다른 사람한테 말 안 해요. 처음에는 말했는데 다 놀리고 화내고 그래서요. 이제는 안 해요. 화났을 때만 말해요.”
꼬맹이가 대신 대답했다.
음…이것 참.
꼬맹이가 귀신이 씌었다고 생각하는 이 여자애는 본래가 요괴다. 그러니 귀신을 쫓아내 주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다. 금고 안에 있다는 아이들도 직접 가서 확인할 수 없으니 뭐가 있는 건지 알 도리가 없고.
난처했다. 꼬맹이에게 해줄 수 있는 긍정적인 대답이 없었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위험한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 나는 아직 여자애 요괴의 정체조차도 몰랐다.
“일단 늦기 전에…”
돌아가라고 말하려는데 문이 벌컥 열리고 중2 녀석과 여동생이 들어왔다. 이젠 아주 남매가 함께 내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어요.
하지만 잘 됐다 싶은 게, 두 꼬맹이가 문제의 장본인인 걸 알게 되자 남매는 대번에 친절해져서 전부터 잘 아는 사이인 것처럼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눴다.
중2 녀석은 여자애를 보고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아차린 듯 했지만 경계한 것도 잠시, 여동생과 비하면 따사로울 정도로 다정하게 대해주는 걸 보니 XY 염색체의 힘은 위대하고. 여동생 쪽은 아이들을 대하자 어제와 달리 어른스럽기 그지없게 누나의 역할을 해냈다.
녀석들이 한데 뭉쳐 있는 동안 나는 백은호를 계단 위로 불러냈다.
“금고 안의 아이들이란 거, 뭔지 알겠어? 넌 가봤을 거 아냐. 그 보육원에.”
백은호는 아까부터 쭉 좋은 기분 그대로 느긋하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요. 떠도는 혼령이 한 둘, 근처에 보였을 뿐 다른 기척은 없었습니다.”
“확실해?”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으니 장담할 수 없지요. 요괴의 눈을 속이는 방법이 한 둘인 것도 아니고. 그러나 그럴만한 자가 노앵설을 두려워할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처음 듣는 단어가 나왔다.
“노앵설? 뭐야, 그게?”
내 질문에 백은호는 잘난체 포즈로 나를 내려다보더니 턱짓으로 계단 아래쪽, 작업장을 가리켰다.
“사람이 아닌 것은 알고 계셨을 터입니다.”
그 여자애 말이구나.
백은호는 여기에서 보이지 않는 작업장에, 마치 보이는 것처럼 눈길을 주며 입술을 당겼다. 어쩐지 위험해 보이는 기분 좋은 미소가 입술을 타고 흘렀다.
“노앵(老鶯)이라 하면 늦봄에 지저귀는 꾀꼬리. 그 꾀꼬리와 같은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혀 설(舌)자를 붙여 노앵설이라 합니다. 목소리도 아름답거니와 죄 지은 자가 감춘 비밀을 엿보고,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눈을 지녔으니 그 가치를 아는 자에게는 가위(可謂) 보물이라 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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