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낼 수 없는(3)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나와 백은호는 박선생을 따라 집 뒤편의 낮은 산자락을 돌았다. 우거진 나무 사이에 잘 보이지 않는 좁은 산길이 있었다. 좁지만 땅이 제법 다져지고 나무를 쳐낸 흔적도 있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가 골짜기를 지나서 한 번 더 산자락을 넘자 좀 더 정비된 등산로가 나타났다.
등산객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평일 낮이고 아직 등산을 즐기기에 더운 날씨여서 그런지 산은 한적하니 조용했다. 갈림길마다 알록달록한 색의 산악회 시그널만 팔락였다. 구름이 끼었을 뿐 환하고 바람도 제법 불어 등산하기 좋은 날씨였다.
박선생은 나이가 있어 약간 걱정했지만 의외로 지치지 않고 걸었다. 매주 등산하는 보람이 있는 것 같다.
백은호는 청회색 시어서커 원단의 슈트에 넥타이와 구두와 행거치프의 색까지 맞춘 결혼식 하객 차림으로 사뭇 가볍게 산을 탔다. 이따금 하산하는 등산객들의 시선을 심하게 끌었기 때문에 나는 멀찍이 뒤에서 일행이 아닌 척하며 갔다.
박선생의 속도에 맞추어 우리는 한 시간 만에 움막이 보이는 곳까지 닿을 수 있었다.
“저기에, 보이나?”
등산로에서 조금 벗어난 비탈에 서서 박선생이 나무 사이를 가리켰다. 과연 움막이라는 말대로 나무에 비닐과 찢어진 텐트를 끈으로 잡아매서 누덕누덕 만들어 놓은 거소가 보였다. 나무 사이에 친 노끈마다 뭔지 모를 약초들이 한 묶음씩 매달려 말라가고 있었다. 움막 옆에는 물받이 통으로 사용되는 것 같은 스티로폼 박스들과 빈 병, 우산, 그 밖의 자질구레한 것들이 대중없이 쌓여 있다.
좀 더 가까이 가보자 움막 뒤편 풀숲 사이로 생선뼈와 조개껍질 같은 것들이 무수히 보였다. 박선생의 말대로다. 움박 옆의 잡동사니들을 슬며시 뒤져보자 의외로 여러 가지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아직 새 것 같은 라디오라든가 두꺼운 옷, 신발, 개봉 안 한 통조림이나 음료수 캔도 보였다. 사온 걸까?
“아무도 없군요.”
멀리서 힐끗 본 것만으로 알아차렸는지 백은호가 말했다. 내게도 사람의 생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어디 약초라도 캐러 갔겠지.”
백은호가 비닐을 들춰 움막 안을 들여다보았다. 밖에서만 슬쩍 보는가 했더니 컴컴하고 좁은 안으로 불쑥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금세 나오는 그의 손에 반짝이는 작은 조각이 하나 들려 있었다.
“뭐야?”
얼핏 꽃잎을 닮은 모양이었다. 엄지손톱 크기에 얇고 반질거리는데 무지개처럼 고운 빛이 흘렀다.
“물고기 비늘인가…?”
박선생이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백은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저는 아래로 좀 더 내려가 보겠습니다. 도령은 기다렸다 이 움막의 주인을 만나보시죠.”
말하자마자 그는 대답도 안 듣고 비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백은호!”
불러봤지만 뒤도 안 돌아본다. 뭔지 의심스러운데. 그렇지만 자리를 비운 사이 움막의 남자가 올 수도 있고 한 시간 동안 평소 이상의 속도로 산을 탄 박선생이 힘든 기색이어서 따라가자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이 좀 넘었을 것 같은데…. 나는 괜찮다지만 박선생은 어쩌지. 백은호가 서두르는 바람에 먹을 것은 물론 물 한 병도 안 챙겨서 온 참이었다.
박선생이 땀으로 번들거리는 이마를 훔치며 나무 그늘에 주저앉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는 나이 치고 제법 지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평소보다 무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움막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고, 일단 위치는 알았으니 박선생은 돌아가라고 할까 망설이는데
“당신들 뭐요!”
위쪽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탈을 따라 웬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9월 하순이라도 더운 날씨인데 긴 팔 옷에 각반과 장갑까지 갖추고 어깨에는 작은 배낭이 걸려 있었다.
나도 모르게 기운을 읽었지만 요괴는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이다.
50대 후반쯤 되어 보였다. 건장하고 날렵한 몸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온 그는 우리를 번갈아 보더니 박선생에게 눈길이 닿자 갈색으로 그을린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얼굴이 낯이 익는지 기억을 더듬는 눈치였다.
박선생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일전에 한 번 봤는데 기억 하시려나 모르겠네. 왜 그때 저 윗길에서 같이 오이 하나 나눠먹었잖습니까.”
박선생의 말에 남자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기억해낸 모양이다.
“그런데요? 남의 집 앞에서 뭐하쇼.”
그렇다고 태도가 좋아진 것은 아니다.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쏘아보며 그가 들고 온 배낭을 내려놓았다. 경계할 법도 하지. 여기는 등산로에서 보이지도 않고 길도 아닌 비탈을 한참 내려와야 하는 곳이니까. 집이라기에는 쓰레기장처럼 보이는 곳이지만 남자에게는 소중한 안식처일 것이다.
박선생은 남자의 퉁명스러운 태도에 개의치 않고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오늘, 친구가 찾아온 참에 흥이 나서 아무 생각 없이 산을 탔단 말입니다. 여기까지 와서 보니까 물도 없고 몸은 지치고. 그런데 사람 보기도 힘들어서 물 좀 나눠달라고 할 곳에 없는데 마침 선생 생각이 나더란 말이오. 그래 물 한 모금이나 얻어먹을 수 있을까 해서 와봤지요.”
와아…. 사람의 연륜이라는 게 거짓말로도 드러나는구나. 전혀 거짓말 같지 않은 훌륭한 거짓말을 눈 하나 깜짝 않고 하는 박선생을 나는 새삼 쳐다보았다.
머리가 허연 노인이 목마르니 물 좀 달라는 말을 거절할 수는 없었는지, 남자는 불편한 얼굴을 하고서도 움막 안으로 들어가 생수병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오래 사용했는지 플라스틱 병의 아래쪽에 푸르스름하니 이끼가 끼어 있었지만 박선생은 웃는 낯으로 달게 마셨다.
“커어. 물 맛 좋다. 어디서 이렇게 맛있는 물을 떠오는 겁니까? 우리집 뒤편에도 약수터가 하나 있는데 거기보다 이 물이 더 달달하니 잘 넘어가네.”
박선생의 말에 남자의 얼굴이 다시 험상궂어졌다.
“물 마셨으니 가보쇼.”
손까지 휘휘 저으며 쫓아내는 것이 아무래도 우리가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이대로 쫓겨나나 싶은 순간
꽈르르르 -
엄청난 소리가 박선생의 뱃속에서 울렸다. 도저히 못 들었다고는 못할 정도로 큰 소리였다. 박선생의 얼굴이 붉어졌다.
“허허…늙으니 똑똑해지는 건 뱃속 시계뿐이구먼. 이거 창피하게…”
멍하니 박선생을 보고 있던 남자가 실소를 터뜨렸다.
“라면 끓일 참인데, 같이 드쇼. 그래갖고 집에나 갈 수 있겠소?”
남자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었지만 박선생이 손을 저었다.
“아이구, 그렇게 폐를 끼칠 수는 없지요.”
“미안하면 다음에 올 때 오이나 한두 개 갖다 주시든가.”
남자는 움막 안에서 버너와 냄비를 꺼내더니 생수통의 물을 붓고 라면 끓일 준비를 했다. 물이 끓는 동안 그는 배낭을 뒤적여 버섯과 뭔지 모를 파릇한 채소를 꺼내 물에 대충 씻은 다음 칼을 가져와 그것들을 쑹덩쑹덩 썰었다. 오래지 않아 버섯과 채소가 듬뿍 들어간 라면이 완성되었다.
젓가락이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나와 박선생은 근처에서 나뭇가지를 잘라 대신했다. 세 남자는 둥글게 앉아서 냄비 위로 머리를 모으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깨끗이 먹어치웠다. 반찬은 시어빠진 김치가 전부인 식탁이었지만 라면은 맛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남자가 움막 안에서 반쯤 남은 소주병을 꺼냈고 박선생도 나도 마다하지 않고 한 잔씩 받았다. 배가 차고 술이 한 잔 들어가자 남자의 표정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박선생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날씨 이야기에서 산 이야기, 사람들 이야기로 주제를 옮기다가 결국에는 남자의 신상이야기까지 끌어냈다.
“돈, 그거 참 원 없이 벌어봤지요. 한창 적에, 내가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수다. 손대는 것마다 연줄 풀리듯 술술 풀렸지. 마누라 살림 잘 하고 아들 하나 있는 거 속 안 썩이고 내가 부러울 게 없었어요. 그런데 무서운 게 사람이더라고.”
믿었던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고 빚더미에 앉고 부인과는 이혼하고 채무자를 피해 산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그의 내력이었다.
“내가 한창 일할 때도 산에는 한 달에 두 번씩 꼬박꼬박 왔거든요. 아들 데리고. 여기가,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사방이 내 밭이고 논이야. 눈만 크게 뜨고 발품만 팔면 먹을 것 입을 것 다 준단 말이오. 필요한 거 있으면 약초 캐다 팔아서 사고. 요즘 세상에 호랑이가 있나 늑대가 있나. 무섭기로 말하면 사람만한 게 없는데 여기는 사람도 없고. 마음이 편하지. 술 한 잔 걸치고 달 뜨는 거 보고 있으면 이태백이 부럽지 않아요.”
달착지근한 술 냄새를 풍기며 그가 말했다.
“그래도 위험하지 않나요? 산이란 게 워낙 험하기도 하지만 혼자 다니시다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요. 여기는 등산객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내가 묻자 그는 코웃음을 쳤다.
“다치긴 뭘,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안방 같이 편한 곳인데. 등산하면서 넋 놓고 헛생각 하는 사람이나 다치는 거요. 보쇼. 내가 어디 긁힌 자국이라도 하나 있나.”
말하며 팔다리를 걷어붙여 보였다. 과연 그의 말대로다. 말끔했다. 그것이 더 수상하다. 긴 옷에 각반, 장갑까지 끼고 돌아다닌다고 하지만 길도 아닌 산속을 헤매고 다니는데 긁힌 자국 하나 없을 수가 있을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 경계하면서 기운을 읽었지만 특별한 데라고는 전혀 없었다. 분명 사람이고 뭔가 붙어 있거나 씐 것 같지도 않다. 태령 윤문의 도사들을 마주했을 때 느낀 기세 같은 것도 없다. 부적이나 신물의 느낌도 없고 심지어 산속에 흔해빠진 음령한 기운도 이 근방에서는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히 수상했다. 상처 없는 몸. 움막 뒤편의 해산물 흔적. 그리고 백은호가 발견한 것. 그것은 뭐였을까.
박선생이 내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더 머물러 있을 구실도 없는데 어쩌면 좋으냐는 얼굴이었다. 할 수 없지 뭐. 돌아가는 척하면서 백은호를 찾아봐야지. 내 눈짓에 박선생이 일어났다.
“이거 덕분에 잘 먹고 잘 쉬다 갑니다. 다음에 또 한잔 합시다. 다음에는 내가 안주를 챙겨오지요.”
우리가 떠나려고 하자 남자도 따라 일어났다.
“어느 길로 가쇼?”
“옥녀봉 쪽으로 가다가 중간에 내려가는 길이 있어요. 그리로 하산하려고요.”
박선생의 말에 남자가 배낭을 챙겼다.
“잘됐네. 나도 그쪽으로 갈 일이 있는데. 같이 갑시다.”
아까는 못 쫓아내서 안달이더니 이제는 헤어지기 싫은 눈치였다. 백은호나 찾아볼까 했는데 이러면 너무 멀리 가게 된다.
“그럽시다. 가는 길에 심심치도 않고.”
나와 달리 박선생은 정말로 기쁜 얼굴이었다. 사람 좋아하는 할아버지 같으니라고. 적당히 핑계를 대고 따로 갈까 생각했지만 아직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는 남자 옆에 박선생 혼자 놔둘 수도 없었다.
“그런데 옥녀봉 쪽은 무슨 일로?”
박선생이 남자에게 슬쩍 물었다. 남자가 씩 웃었다.
“거기 보물창고가 있어요.”
보물창고?
뜻밖의 말에 우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모양이 재미있는지 그의 웃음이 더 짙어졌다.
“옥녀봉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등산객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장소가 있는데 거기가 아주 보물창고요. 요즘 사람들 참 멀쩡한 걸 잘도 버리거든요. 옷도 버리고 신발도 버리고 가방도 버리고 언제는 내가 거기에서 돈도 주웠수. 비닐봉투 안에 멀쩡한 빵이랑 잔돈을 쓰레기랑 같이 버려놨더라고. 내 집에 있는 거 다 거기서 주워 온 거요. 한 번 같이 가 보실라우?”
남자의 말에 박선생이 대뜸 “그럴까요?” 하고 받는다. 박선생!
말리고 싶은데 두 남자가 쿵짝이 맞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앞서 간다. 그러면서 어느새 옥녀봉을 지나 남자가 말한 쓰레기장까지 도착해버렸다. 그는 능숙하게 쓰레기 사이를 헤집더니 그 사이에서 종이 가방 하나를 찾아냈다.
“이것 봐요, 이거. 어이구, 김밥이 멀쩡한데 반도 안 먹었어. 과일도 그대로고. 야아, 이 양말은 새 거나 마찬가지네.”
종이 가방 안에서 정말로 보물이 쏟아졌다. 남자를 거들어 박선생도 쓰레기장을 뒤지더니 생수병과 플라스틱 숟가락을 찾아내곤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내밀었다. 박선생…
“이런 것을 보물이라고 부르게 될 줄은 내가 몰랐지….”
쓰레기장에서 찾아낸 것들을 배낭에 넣은 그가 문득 중얼거렸다. 이태백이 부럽지 않다고 큰소리치던 호기로움은 어느새 없었다. 회한과 외로움이 진득한 눈이었다.
“가족에게 돌아가는 건 어떻습니까. 가족만한 보물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딱한 얼굴로 바라보던 박선생이 문득 권했다.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빚쟁이들에게 시달리게 만든 것도 미안한데 이 꼴로 어딜…. 그리고 나 같은 가장을 반가워하겠소? 그냥 혼자 살다 때 되면 알아서 세상 떠야지.”
“가족 마음은 그렇지 않을 거요.”
박선생이 말했지만 그는 고개를 휘저었다.
“면목도 없고, 또…여기에도 내가 없으면…”
그는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당황하면서 휘적휘적 걸어가는 그를 박선생이 뒤따라갔다. 왔던 길을 되돌아 박선생의 집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별다른 대화 없이 걸었다.
남자는 무거운 얼굴로 인사하고 제 움막을 향해 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박선생도 나도 생각에 잠겼다.
그는 뭐라고 말하려고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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