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낼 수 없는(5)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이빨이 박힌 곳에서부터 감전된 것 같은 고통이 찌르르 퍼졌다. 저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백은호는 내 팔에 이빨을 박아놓은 채로 아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코앞에서 흔들리는 아이의 목덜미를 따라 그의 시선이 흔들렸다.
정말로 이상하다. 이 아이의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드는 거지? 대체 백은호는 뭘 보고 있는 거야? 그의 시선을 따라간 내 눈에 아이의 목덜미에서 반짝이는 비늘이 보였다.
손톱만한 크기의 작은 조각. 오색으로 반짝거리는 매끄러운 표면이, 들여다보고 있자 어쩐지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거기에 반사된 백은호의 모습이 분명히 보였다.
‘아니, 반사된 게 아니야.’
반사된 모습이 아니다. 비늘의 표면에 보이는 백은호는 여우가 아니라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앞에 누가…
눈앞에서 아이의 몸이 휙 움직였다. 백은호가 꼬리를 틀어 아이를 멀찍이 옮긴 것이다. 꼬리에 휘감긴 작은 몸이 대롱대롱 흔들리자 오색의 비늘이 햇빛 아래서 요요히 반짝였다. 저런 걸,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이 놈! 이 괴물놈!”
아차.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다 잠시 잊고 있었다. 남자가 쇳소리로 악을 쓰며 발버둥쳤다.
“용원이를 내놔라! 이놈!”
남자는 백은호의 발밑에 깔린 채로 소리를 지르다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물속에서 커다란 돌멩이를 하나 집어서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엎드린 상태로 휘두르는 팔은 백은호의 근처에도 못 가고 허공만 휘저었다.
백은호가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목안에서 토해내는 더움 숨결이 물린 팔에 닿았다. 쩌릿한 고통과 함께 그의 이빨이 팔에서 빠졌다. 내 팔은 놔줬지만 남자와 아이는 아직 그대로였다. 발밑에서 버둥거리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백은호는 망설이고 있었다.
남자는 아이를 마치 자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키려 한다. 한 번도 본 적 없을 비현실적인 야수를 상대로 죽는 것도 두려워않고 덤벼들었다. 필사적이었다.
용원이라는 이름은 누가 붙인 걸까. 아이인가 남자인가.
모르겠지만, 내게는 남자가 목숨을 걸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유가 되었다.
“그 사람을 놔줘, 백은호.”
“당신은 사람이 다치는 것을 싫어합니다.”
남자를 내려다보며 백은호가 말했다. 누르고 있는 발은 여전히 치우지 않은 채였다.
“그러니 이 사람을 살려 보내고 저 이무기를 죽인들 상관없지 않습니까.”
“상관있어.”
“무슨 상관입니까.”
묻는 그의 입가 흰 털이 내 피로 붉게 얼룩진 것이 보였다. 송곳니가 번득이는 뾰족한 주둥이. 그 입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언제나 낯설었다. 인간과 짐승 사이의 절대로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상관있다고.”
“인간이 요괴에게…상관할 리가…”
대꾸하던 그의 목소리가 조금씩 약해졌다. 인간이 요괴에게 상관할 리가 없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아니라는 것을 그는 분명 알고 있다. 고작 몇 개월의 기억만이 쌓인 나도 몇 번이나 본 적이 있으니 수백 년을 살아온 그가 모를 리 없었다.
물레 도깨비와 순례 할머니, 목신과 박선생, 인어 아가씨와 서넙도 총각. 그리고 아마, 나와 백은호.
으르렁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그가 발을 치웠다. 남자는 일어나자마자 백은호의 꼬리에 감겨있는 아이에게로 달려갔다. 그가 아이를 끌어안자 백은호의 꼬리가 스르르 풀렸다.
남자는 어쩔 줄 모르며 아이를 물가로 데려갔다. 갈라진 상처에서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남자는 윗옷을 벗어 상처 위를 둘둘 감쌌다. 그리고는 아이를 들쳐 업었다.
“어쩌려고요?”
내 물음에 남자는 이를 악물었다.
“병원에…”
“연못을 벗어나면 죽는다.”
백은호의 차가운 목소리가 그를 가로막았다. 죽는다는 말에 남자가 움칫 떨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
내가 묻자 백은호는 이쪽을 외면한 채로 대답했다.
“명색이 용아(龍兒)이니 물속에 던져두면 저절로 나을 일입니다.”
용아? 용의 아이라는 말인가? 나뿐 아니라 남자 쪽에서도 모르고 있는지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눈을 껌벅거렸다. 백은호는 더 가르쳐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천천히 연못을 가로질러 물가로 가버렸다.
아홉 방향으로 넘실거리던 꼬리가 시드는 것처럼 줄어들어 하나가 되었다. 거의 말의 크기만 했던 몸도 꼬리와 함께 줄어들었다. 결국 보통 크기의 하나뿐인 꼬리를 가진 흰 여우가 되더니 나무 사이로 들어가 수풀 속에 도사려 앉았다.
어째서 용아를 공격했는지, 아이의 목덜미에서 반짝이던 비늘은 뭐였는지 궁금했지만 몸을 둥글게 말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꼬리 안에 일부러 푹 파묻어 버린 것도 같다. 아무래도 대화할 마음이 없었다.
별 수 없이, 아직 용아를 업고 엉거주춤 서있는 남자에게로 갔다. 그의 등에 업혀 축 처진 용아는 푸르스름하니 창백한 얼굴로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아까 백은호의 요기와 어우러져 파문을 일으켰던 용아의 기운은 지금 작은 몸 안을 천천히 돌았다. 힘이 없어 보여도 위험하지는 않다.
남자의 도움을 받아 용아를 물로 내려놓자 비늘에 덮인 작은 몸이 한층 단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로 돌아간 물고기 같았다. 파닥거리듯 몸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기운이 어딘지 익숙했다.
물비린내, 서늘하고 생기 있고 어딘지 고고한 느낌. 아, 맞다. 집 앞의 개울에 사는 용신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용아의 몸이 물속에서 길어지기 시작했다.
허리가 엿가락처럼 늘어나고 손발이 점점 줄어들더니 아예 모습을 감추었다. 사람을 닮은 둥근 머리는 뾰족하니 마름모 모양으로 변했다. 나무처럼 굵은 몸통, 10m는 될법한 긴 몸을 둥글게 말고서, 용아는 이무기가 되었다.
처음 보는 커다란 뱀의 모습에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문득 남자를 돌아보았다. 놀랐으리라고 생각한 것과 달리 남자는 태연한데다 오히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무기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남자는 전에도 용아가 이무기로 변한 것을 본 적이 있구나. 보통 사람으로서는 존재를 감당하기도 어려운 이 요괴를 그는 정말로 아끼고 있다. 조금의 두려움도 거리낌도 없었다. 한편으로 수풀 속의 백은호를 경계하면서 이무기를 감싸듯이 둘의 사이에 있었다. 여우 요괴와 이무기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약한 자신의 처지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태도였다.
“상처는 괜찮아 보여요.”
내가 건넨 말에 그는 못미더운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안심하라고 한 말이 아니었다. 상처는 안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용아의 기운이 다친 곳 주변에서 짙게 뭉클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 속도라면 금세 낫는다. 물에 반쯤 잠긴 이무기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리자 비늘 아래에서 서늘한 몸이 꿈틀거렸다.
“아까 박선생이랑 이야기할 때 여기에 있어야 한다던 말, 이 아이 때문인가요?”
내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요? 이무기가 떠나지 못하게 해요?”
“아니오!”
당치 않다는 듯이 남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얼마나 착한 아이인데! 이 아이 덕분에 내가 목숨을 구했수. 산에 눌러 산 후로도 이 아이가 아니면 못 버텼을 거요. 세상천지에 나 같은 놈을 생각해주는 건 이 아이뿐이란 말이오. 이 착하고 순한 애를…무슨 죄가 있다고…”
남자는 눈에 원망을 담아 백은호를 노려보았다.
이제 백은호는 위험하지 않다고 설명하고, 이무기도 곧 나을 거라며 다독여 남자를 안심시켰다. 상한 마음이 금세 바뀌지는 않겠지만 남자는 열심히 설득하는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더니 문득 말했다.
“댁하고 친한 요괴요?”
그렇게 묻는 남자의 마음을 어쩐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무기를 아끼는 자신처럼, 나 역시 그러리라 짐작하며 여우 요괴를 위해 해명하는 내게 동병상련을 느끼는 것이다. 그 마음을 아는 것은 나 역시 남자와 같아서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내 얼굴에 웃음이 확 퍼졌다.
“예.”
풀숲에서 털 뭉치처럼 웅크리고 있던 백은호가 움찔하는 기색이 전해졌다. 남자는 백은호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 사이 이무기의 상처는 점점 아물어 이제는 피도 나지 않고 갈라진 자리에 분홍색 살이 차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이무기 옆에 붙어 서늘한 몸을 쓰다듬었다. 아픈 아이를 앞에 두고도 달리 해줄 것이 없어 가슴 아픈 부모처럼, 그는 다만 손길에 기원을 담아 이무기의 긴 몸을 구석구석 매만지고 쓸며 다독였다.
“자기 말로는 수백 년을 살았다는데, 이렇게 순진하고 착한 아이가 없어요.”
남자는 그렇게 입을 떼더니 한탄하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이 산에 왔을 때 말이요, 사실 죽으러 온 거였수. 빚은 갚을 가망도 없고,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나 죽어서 보험금이라도 좀 나오면 그거라도 어떻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사람 많은 날 등산하러 온 것처럼 구색 갖춰가지고 그냥 두 눈 딱 감고 뛰어내려 버렸수.”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몸은 이무기의 굵은 몸통에 휘휘 감긴 채로 허공에 떠 있었다고 했다. 이무기는 그를 산 중턱에 내려놓더니 “일흔두 명이다. 일흔두 명이다.”라며 어디론가 쏜살같이 가더라는 것이다.
남자는 멍청하니 그 모양을 보고 있다가 절벽에서 뛰어내린 자신을 이무기가 낚아채 살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꿈을 꾸는지 정신이 나간 건지 모르겠더란 말이요. 그러다 이왕 죽으려고 온 몸이 무서울 게 뭐 있나 싶어 이무기가 간 길을 따라 갔더니 여기에 오게 되었수. 그런데 와 보니까 이무기는 없고 작은 애가 하나 물속에서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다가 나를 보고 숨는 거요. 내가 아들 생각도 나고, 죽다 살아나서 그런가 겁도 안 나고 해서 얘야 하고 불렀지.”
그랬더니 신기하게 아이가 다가오더란 것이다. 그 후로 친해져서, 아이에게 용원이란 이름도 붙여주고 아예 산에 눌러 살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내 아들 이름이 주원이거든. 둘째 같은 기분이 들어서 용원이라고 했수. 용 용(龍)자를 써서. 이무기나 용이나.”
그 후로 이무기는 사람 모양을 하고 연못에서 놀다가 남자가 놀러 오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해산물을 한 아름씩 안겨주곤 했다. 남자가 다친 것을 보면 뱀 혀 같은 긴 혓바닥으로 날름거리며 핥아 감쪽같이 고쳐준 적도 많았다고 한다.
“친해지고 나서 내가 물었지. 나를 구해놓고 일흔두 명이다 하고 말한 건 무슨 뜻이냐고 말이우. 그랬더니 하는 말이, 옛날에 자기가 용이 되려고 동굴 속에서 백 년을 살았는데 너무 배가 고파 밖으로 나왔더니 잡아먹을 짐승은 없고 마침 가까운 곳에 마을이 있더란 말이우. 그래서 처음에는 가축을 잡아먹다가 나중에는 사람도 잡아먹었다는 거요. 그렇게 오랫동안 사람을 잡아먹으며 살았다지. 그러다 어느 날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형제 네 명을 잡아먹으려다가 웬 신통한 도령에게 혼이 났다는 거요.”
어라…. 그 이야기…
“도령이 이무기를 혼내 놓고 여의주를 빼앗은 다음 말하기를, 네가 잡아먹은 사람이 일흔세 명이니 이후로 죽게 될 일흔세 명을 살린 후에야 여의주를 돌려받으리라 했다는 거였소. 그 후로 이 연못에 살면서 산에 온 사람들이나 마을 사는 사람들을 살피면서 혹 죽게 되면 구해주고는 했다는 거요.”
그렇게 된 거였구나. 그때 이무기를 살려줬다더니 그런 약속을 한 거였어.
남자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 둘 구하다 보니까 어쩐지 뱀이었던 몸이 사람모양으로 바뀌고 전에 없던 신기한 능력이 생기고 했다는구먼. 그리고 사람이며 동물이며 마구 잡아먹었던 옛날의 제 한 일들이 후회되더라는 게요. 그래서 지금은 이 연못에 살면서 가끔 풀잎에 맺힌 이슬이나 핥아 먹고 산다 하는구먼.”
이무기가 변했다는 말이다. 과연 집 앞의 용신과 같은 종류의 기운을 느꼈던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수 십년동안 사람들을 구하면서, 어쩌면 이무기는 용신과 비슷한 것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박선생과 형제들을 잡아먹을 뻔한 그 이무기가 말이지. 이 이야기를 박선생에게 들려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이제 곧 만날 참이었수.”
남자가 약간 울컥한 목소리로 말했다.
“며칠 전에 일흔세 번째 사람을 구했단 말이오. 그래서 이제는 여의주를 돌려받을 수 있겠다고 좋아하고 있었소. 약속한대로 도령이 여의주를 돌려줄 거라고 말이오.”
어…잠깐. 그건 그러니까, 내가 여의주를 돌려줘야 한다는 말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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