줘도 불만이야(1)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뭔가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 자꾸만 들려온다고, 나는 아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소리는 아마 아래층에서 나는 것 같은데 늦더위가 기승이라 에어컨으로 시원한 방을 떠나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게 아니라도 읽던 책도 있고.
유하에게 부탁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두 권이 아직 반도 못 읽은 채였다. 두껍고 재미없는 주제에 글자까지 깨알만 해. 거기다 한자는 뭐 그리 많은지. 아름답고 위대한 한글을 조사와 종결어미에만 쓰는 건 진짜 만행이라고 생각한다. 도가 얼마나 고생해서 만든 건데.
그나마 내용도 별로야. 지루한 것을 참으며 읽고 있지만 반납일인 내일까지 다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와중에 자꾸만 신경 쓰이는 소리가 들려온단 말이지. 책을 확 집어던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훼손시에는 배상해야 한다니 참고.
짜증을 누르며 방을 나섰다. 슬슬 10월인데도 공기가 후덥지근하니 더웠다.
작업장으로 내려가자 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뭐랄까, 멧돼지 사냥할 때 가끔 들은 적 있는 소리가 나는데.
소리의 발원지는 창고였다. 창고 문을 열자 조금 전까지는 그냥 소리였던 것이 공격적으로 귀청을 자극했다.
“그므은 지처엉 도와아 지처엉 망리사네에에 노니이실저어어~.”
뭐야, 이 괴상한 주문은! 귀를 막으며 창고 안을 둘러보자 다른 도깨비들도 머리를 구석에 처박고 있거나 아예 물건으로 돌아가 소리를 견디고 있었다.
“여서어 아드을 여서어 따니임 배르을 띠어어 청푸웅명워얼~”
미로 같은 창고 안으로 들어가 괴성의 주인을 찾아보자 주변의 도깨비들이 멀리 달아나 한적한 가운데 혼자 오뚝하니 서 있는 물레 도깨비가 보였다.
“처너얼명주우 까라 노코오 복사아 꼰니이이 뿌려어 노코오~”
자세는 그럴듯하니 반듯하게 서서 손에 든 부채를 우아하게 뿌리는데
“하느을에느은 태펴엉이요오오 땅으으로느으은 무사아일세에~”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유리창을 깰 것 같은 음파공격이다. 멀리 도망간 도깨비들을 보아하니 이 소리가 괴로운 것은 나만이 아닌 것 같다.
“…도깨비들이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거야?”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봤다. 무슨 죄를 지으면 이런 소리를 듣는 벌을 받는 건데?
내 질문에 물레 도깨비의 괴성이 뚝 끊어졌다. 물레 도깨비가 나를 흘겨보았다.
“뭐요?”
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기쁜 건 나뿐이 아닌지 등 뒤에서 안도의 한숨이 여기저기 들려왔다.
“아니, 방금 그거. 2층의 내 방까지 들리더라고.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와봤지.”
“오오, 그랬소? 그렇게 멀리까지 들렸다니 수련한 보람이 있구려.”
물레 도깨비가 얼굴에 화색을 띠며 말했다. 무슨 수련을 하는 거지? 음파를 이용한 음유시인의 광역 스킬인가.
“소리를 제대로 내려면 떨어지는 폭포수 아래에서도 들릴 정도라야 한다지 않소. 그래서 연습하고 있었다오.”
그 소리라는 게 괴성, 혹은 멧돼지 멱을 따는 소리 뭐 그런 소리가 아니고 판소리 그런 거냐? 춤은 정말 끝내주게 추는데 목소리는…소리는…
“그럼 폭포 밑에서 연습할 일이지 왜 이 좁은…그러니까 거주인에 비해 좁은 창고에서 시끄럽게 하는데.”
“이 근처에 폭포라야 김서방들이 만들어놓은 가짜 밖에 없잖소. 산으로 가자니 밤까지 기다려야 하고. 요새는 비도 얼마 안 와서 큰 폭포를 찾기도 힘들단 말이오.”
그렇다고 동족을 죽이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잘 추는 춤은 관두고 갑자기 웬 소리야? 그러고 보니 소리 잘 하는 도깨비는 본 적이 없네.”
생각해 보니 그랬다. 날마다 술과 노래와 춤으로 놀고 있지만 도깨비들의 노래가 감탄스러울 수준이었던 적은 없었다. 춤이라면 물레 도깨비가 환상적으로 추고, 다른 도깨비들도 제법 신명나게 놀 줄 안다만.
내 말에 물레 도깨비는 물론 다른 도깨비들도 삐친 표정을 지었다.
“그야 소리는 김서방들이 잘 하니까. 그래서 연습하는 거잖소.”
그러고는 들으란 듯이 다시 아까의 음파공격을 시작했다. 도깨비들이 다시 귀를 막고 구석으로 기어들어가고 바로 앞에 서 있던 나는 골이 띵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영감, 얘 좀 말려 봐.
그나마 물레 도깨비가 말을 들을 것 같은 영감 도깨비를 돌아보았더니, 귀청이 펄럭거릴 소리를 들으며 느긋이 상체를 흔들흔들. 즐기고 있어? 영감. 귀를 혹사시키는 피학성 취미가 있었어?
괴로워하는 도깨비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내 청각을 보호하기 위해 물레 도깨비를 말릴 필요를 느꼈다.
“그 노래 좋은데. 제목이 뭐야?”
아무거나 말을 걸었다. 물레 도깨비는 칭찬이라고 생각했는지 눈을 반짝거리며 대답했다.
“그렇소? 오래 된 곡이라 음이 단조롭고 기교는 없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오. 그걸 알아보다니 과연 김서방이구려.”
묘하게 듣고 있으니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매력이라고 할 수 있냐?
한 적 없는 칭찬에 맞장구를 치고 나서야 내 질문이 생각났는지 물레 도깨비는 고개를 기울이며 생각했다.
“제목은 못 들은 것 같소. 옛날 노래인데다 아는 이도 몇 없고, 거의 잊혀졌다고 하오.”
“누가 가르쳐 줬는데?”
내 질문에 물레 도깨비는 소리라도 할 것처럼 뱃속에 숨을 집어넣더니 말했다.
“계수나무에게 배운 달두꺼비에게 배운 개구리에게 배운 버드나무에게 배운 벚나무에게 배운 참새에게 배운 고양이한테서 배웠소.”
…누구요?
“계수나무에게 배운 달두꺼비에게 배운 개구리에게 배우…”
“잠깐. 잠깐.”
내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고 다시 한 번 말하는 물레 도깨비를 저지했다. 뭐냐 정말. 뭐 하나를 시키기만 하면 물레 감듯이 계속 감고 있으니.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고양이에게 배웠다는 말이지?”
“그렇소. 점심 나절에 심심해서 참새 한 마리를 사냥했는데 그 참새가 살려달라며 대신 이 노래를 가르쳐 줬다고 하오.”
뭔지 슬픈 이야기네.
“그럼 너는 고양이에게 노래를 배우는 대신 뭘 해줬는데?”
“배가 고프다기에 근처에서 참새 서너 마리를 잡아다 줬다오.”
…서너 배로 슬프네.
그나저나 제목도 모르는 오래된 곡을 고양이가 참새에게 배우고 참새는 나무에게 배우고 나무는 개구리에게 배우고…그 앞은 또 뭐였지? 무슨 두꺼비였는데.
“개구리에게 가르친 이 말이오? 달두꺼비라잖소.”
달두꺼비? 그리고 그 달두꺼비는 계수나무한테서 노래를 배우고? 이건 진짜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그 두꺼비 설마 달에서 살아?”
“달두꺼비니 당연하지 않소.”
별 쓸데없는 질문을 다 한다는 얼굴로 물레 도깨비가 대답했다. 아아, 그렇구나. 그렇다면 달두꺼비가 노래를 배웠다는 계수나무는 달나라에 있다는 그 계수나무겠네.
“…정말 달에 계수나무가 있었어?”
“토끼도 있느냐고 물어볼 테요?”
별 쓸데없는 질문을 두 번이나 한다는 얼굴로 물레 도깨비가 대꾸했다. 사실 토끼도 있는지 월궁도 있는지 월궁항아가 정말로 그렇게 예쁜지도 물어보고 싶지만 질문을 더 하면 모자란 놈 취급을 받을 것 같다.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그런데 좀 이상하잖아. 달에 두꺼비는 살아도 개구리는 안 살 텐데 달두꺼비가 어떻게 개구리에게 노래를 가르쳐 줘? 달에서 노래 부르면 여기까지 들리나?”
내 말에 물레 도깨비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아, 이제는 도깨비에게까지 한심한 녀석 취급을 받아버렸어. 어쩐지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달두꺼비는 인간 세계로 와서 이곳의 두꺼비랑 개구리들과 놀다 간다오. 달토끼는 짝이 있어 서로 외롭지 않은데 달두꺼비는 혼자잖소. 게다가 선단을 만드느라 바쁜 달토끼에 비해 할 일도 없고. 그러니 펄쩍 뛰어 내려와서는 밤새 놀다가 날이 새기 전에 다시 펄쩍 뛰어 달로 올라간다고 하오.”
아 그렇구나. 녀석, 솔로라 외로웠군. 그것도 바로 옆에서 알콩달콩 방아 찧는 토끼 커플을 보며 살아야 하는 솔로…. 어쩐지 측은지심과 함께 동병상련……스톱. 거기까지.
여러 가지로 나락에 떨어지려는 것을 간신히 막고, 내 질문이 끊어지자 다시 괴성을 내려는 물레 도깨비를 저지할 겸 세 번째로 쓸데없는 질문을 했다.
“그 달두꺼비, 어디로 내려와서 노는지 알아?”
알 것 같아서 물어본 것은 아니다. 명색이 달두꺼비인데 선녀가 내려와서 목욕하는 곳 만큼이나 비밀스럽지 않을까? 아, 그냥 그걸 물어볼 걸 그랬나.
“나는 모르겠지만, 참새들에게 물어보면 알지 않겠소?”
과연 모르고 있으나 대신 방법을 내놓는다.
“참새가 왜?”
“참새 중 하나가 벚나무에게 노래를 배웠다 하니 그 벚나무에게 노래를 가르친 버드나무를 찾으면 버드나무에게 노래를 가르친 개구리를 찾을 수 있을 테고 그 개구리에게 물어보면 두꺼비 만난 곳을 알지 않겠소.”
너 굉장히 쉬운 일인 것처럼 말한다?
“내 한 번 알아봐 주리까?”
물레 도깨비가 슬쩍 물었다. 정말? 웬일로 시키지도 않는 일을?
“어차피 나도 가사 뒷부분을 잊어서 물어봐야 할 참이었소. 아란 어미가 죽는 대목이 영 기억이 안 나니…”
쿵 하고, 몸속에서 커다란 북이 울리는 것 같았다. 얼굴의 핏기가 확 가셨다가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뭘 들은 거지. 방금. 물레 도깨비가 한 말이 기억이 안 났다.
“방금 무슨…”
“왜 그러오? 김서방. 표정이 안 좋소.”
물레 도깨비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표정이 안 좋다고…”
“그 전에. 뭐라고 말했지?”
“그 전에 말이오? 노래가 기억이 안 난다고 했소. 왜 그러시오, 김서방?”
“아니야. 다른 말을 했었어. 정확하게 말해 봐. 뭐라고 했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작은 북처럼 몸속에서 두드려대고 있었다. 놓쳐서는 안 되는 말을 들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예의 따질 겨를이 없었다. 물레 도깨비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가사 뒷부분을 잊어버려서 기억이 안 난다고 했고…아란 어미가 죽는 대목이 말이오. 거기가 영 기억이…”
한 번 더 큰 북이 울렸다.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방금 뭐라고 했었지? 젠장. 물레 도깨비가 뭐라고 한 것 같은데. 가사가 어쩌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김서방, 괜찮으시오? 안색이 안 좋구려.”
“미안해. 한 번만 더 말해 줘. 아까 한 말.”
같은 말을 세 번이나 시키는 셈이었지만 물레 도깨비는 내 얼굴을 걱정스레 들여다보더니 한 번 더 말했다.
“가사 뒷부분을 잊어버려서 기억이 안 난다고 했소. 아란 어미가 죽는 대목이오.”
큰 북 대신 작은 북이 울림막을 찢어버릴 것처럼 빠르고 강하게 울렸다. 쿵쿵쿵쿵쿵쿵. 머리가 아찔할 정도의 속도로 피가 돌았다. 아란 어미. 아란 어미. 어미. 어머니.
이번에는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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