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강 도둑(3)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개라고 하니까 말인데, 내가 기르는 개가 한 마리 있기는 하다. 하루 종일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몰라서 그렇지. 아니 사실 밥을 주는 것도 아니고 재워주는 것도 아니어서 내가 키우는 게 맞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어쨌든 그녀석이라면 말도 좀 통할 테고, 확실히 보통의 개는 아니니까 도움이 될 것도 같다. 다만 문제는…
“전에 보니까 강아지 한 마리 키우고 있던데 요새는 안 보이네요? 다른 곳에 맡겼어요?”
“아니. 나돌아 다녀서 어디 있는지 몰라.”
심지어 언제 돌아올지도 몰라.
“안 묶어 두세요?”
묶어 놓으면 사람으로 변해서 풀어버릴 걸? 아니면 울상을 하면서 “명. 명. 풀어줘어.”라고 칭얼거릴지도 모르고. 뭐지, 방금 나 굉장히 위험한 상상을 한 것 같아. 그냥 강아지에게 목줄을 걸어놓는 생각을 했을 뿐인데.
“아마 묶이는 거 싫어할 걸…”
“그래도 어두워지면 돌아오겠죠?”
장담을 못하겠다.
수호 녀석은 대답이 없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사뭇 백은호스러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난데. 너 수리점 집 강아지 찾을 수 있어? ……그럼 공부방 끝나고. …나도 좀 있다 학원 가야 하잖아. ……없어. 아침에 준 게 다야. 뭐? …또 졌냐? 알았어. 그럼 토요일에 대타 뛰어 줄게. 대신 오늘까지는 데려와라. …응.”
전화를 끊은 녀석이 어깨를 으쓱 추어올렸다.
“수영이가 오늘까지 찾아서 데려온대요.”
고양이 쫓아다니는 네 동생?
“걔가 우리집 강아지를 어떻게 알아?”
“이 동네에서 목줄도 없이 돌아다니는 개는 아저씨네 강아지뿐일걸요. 놀이터나 운동장에 자주 와서 다른 애들도 다 알아요. 주인 없는 개인 줄 알고 데려가려고 한 적도 많아요.”
몰랐네. 막상 주인인 나는 얼굴 보기도 힘든데.
“그런데 네 동생, 너랑 별로 사이도 안 좋아 보이던데 의외로 말 잘 듣는다? 토요일에 뭘 대신 해주기로 한 거야?”
내 질문에 수호 녀석이 눈썹을 모았다.
“승급전이요.”
그, 요새 안 하는 사람이 없다는 탑 부수는 게임의 승급전 말이냐? 도술 수업에 게임에 학원은 걸핏하면 땡땡이……너, 학교 공부는 잘 하고 있는 거냐?
“그럭저럭 잘 하거든요.”
묻지도 않았는데 녀석이 대답했다. 진짜 마음속이라도 읽은 건가 하고 눈을 크게 뜨는 내게 녀석이 픽 웃으며 덧붙였다.
“게임이요.”
정말일까. 어쩐지 믿음이 안 가는 의뭉스러운 얼굴이었다.
녀석이 카페에서 배달 온 카푸치노를 들고 학원으로 가고 나자 나는 도로 십이천왕의 파일로 돌아갔다. 향랑각시는 달님인지 뭔지 정체가 수상한 강아지가 필요하고, 어차피 날씨가 흐려져야 나도 나갈 수 있으니까.
A4용지에 깨알 같은 글자로 빽빽하게 적힌 내용을 읽다가 문득 나도 모르게 옆구리를 긁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손가락으로 긁힌 곳이 쓰라렸다. 옷을 들춰보니 딱지가 앉은 곳에서 피가 조금 배어나오고 있었다.
아…상처 나아가는 중이었는데 가렵다고 아무 생각 없이 긁어버렸네.
처음 봤을 때는 흉할 정도로 깊이 파인 상처라 병원에 가야 할까 생각했지만 날씨 때문에 나갈 수 없고, 갈 수 있다고 해도 멀쩡히 글자 모양을 하고 있는 이 꼴을 의사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제 몸에 상처로 글자를 써놓다니 치료한 다음 정신과 상담을 받으라고 권하면 뭐라고 할 거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날 일은 물론 기억도 안 나고.
어쩐지 유하에게도 말하지 않고 약도 바르지 않은 채 내버려 두었지만 사흘이 지났을 뿐인데 얕은 상처는 거의 나아서 딱지가 떨어지고 깊은 상처도 살이 차올라 간질간질하니 회복되고 있었다.
유령. 무슨 생각으로 이런 글을 써놨담.
보통 사람이 날붙이를 가지고 있는 힘껏 쳐도 붉은 자국이나 좀 나는 내 피부다. 요괴 정도의 힘이 아니면 상처를 낼 수 없었다. 그런 내 몸에 이렇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면 나 역시 꽤나 힘을 들여야 했을 터였다.
상상만 해도 오싹하다. 쇠붙이를 들고, 있는 힘을 다해 제 몸을 긁고 있을 내 모습이라니. 무슨 미친짓을 이렇게 공들여 하냐.
상처에 대해 생각하다, 파일을 읽다, 또 잠깐 딴생각을 하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다 밤이 되었다.
슬슬 수호 녀석도 학원이 끝날 시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몇 번 들어본 거침없는 발소리가 출입문 밖에서 들려왔다. 언제 봐도 씩씩한 수영이 녀석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품안에는 우리 집 삽살개를 꽉 안고 있었다.
별로 주인 취급도 안 하는 주제에 삽살개가 나를 보며 “명. 명.”하고 짖어댔다. 저런 이상한 소리로 짖어도 수영이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문 좀 닫아줄래?”
발소리를 듣자마자 작업장 구석으로 숨은 건 잘 한 일이었어.
수영이 녀석이 삽살개를 안은 채로 열려있는 문을 발로 툭 찼다. 문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우리집 문은 저절로 닫히는데.”
녀석이 변명과 불평을 섞어 말했다. 니네 집은 아파트이니까요.
삽살개는 녀석의 팔에서 풀려나자 나를 향해 도로로 달려와서는 주변을 정신 사납게 뛰어다니며 “명. 명.”하는 소리를 냈다. 얘가 정말 해님이랑 가족인 거 맞나? 그 우아하고 점잖고 선녀로 변하는 금색의 개와 비교해 보니까 아무래도 얘는 데려온 자식인 것 같다.
“아저씨네 강아지 맞죠? 얘 잡으려고 6단지까지 갔었어요. 확실히 데려왔다고 오빠한테 말해줘야 해요?”
그래. 승급전이 걸린 중요한 거래니까 말이야.
녀석은 몇 번이나 다짐한 다음 집으로 뛰어갔다. 삽살개가 녀석이 간 쪽을 보며 “수용. 수용.”하는 묘한 소리로 짖었다. 뭐야, 그 괴상한 울음소리는. 식육목 개과 짐승의 정체성은 변신했을 때나 버리라고. 개일 때는 개답게 멍멍 짖을 수 없겠냐.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는데 녀석이 이번에는 “소오. 소오.”하며 뛰어다녔다. 저 소리는 언제 들어본 적 있는데. 생각하는 것과 함께 문이 열리며 수호 녀석이 들어섰다. 맞다. 저 녀석을 처음 본 날이었어.
떠올랐다. 모처럼 작업장 안에서 놀고 있다가 소오소오 거리면서 문 앞을 뛰어다녔었지. 그때 수호 녀석이 엉망진창인 꼴로 뛰어들었고. 어어……가만. 설마 그런 거야?
‘소오 소오’라는 건, 수호 수호를 잘못 발음한 거냐? 그럼 아까의 ‘수용 수용’이라는 건 수영이겠네. 뭐야, 이 녀석. 내 이름도 실은 제대로 발음할 수 없어서 명이라고 부르는 건가.
뜻밖의 사실을 깨닫고 어이없어 하는데 수호 녀석이 가방 안에서 뭔가를 꺼내 내게 던졌다. 뭔가 들어있는 일회용 비닐 봉투였다. 받자 의외로 묵직하다. 뭔지 작고 단단한 자갈 같은 것이 꽉 차 있었다.
“혹시 모르니까 가져가세요.”
“이게 뭔데?”
“향랑각시가 무서워하는 거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녀석은 용건이 끝났다는 듯이 쿨하게 돌아섰다. 저거 갈수록 백은호를 닮아간단 말이야.
“밖의 날씨는 어때?”
나가는 녀석에게 묻자 하늘을 힐끗 보고 “캄캄해요.”라고 대답했다. 밤이니까 당연히 캄캄하지.
“구름 끼어서 하늘이 안 보이네요. 내일 비 올 거래요. 그래서 그런가 바람도 좀 불고.”
그래?
“구름이 끼었단 말이지?”
비오기 전 흐린 때. 지금이다. 비가 오면 냄새도 씻겨 버릴 테니까 향랑각시를 뒤쫓자면 지금 뿐이었다.
“달님아.”
삽살개를 향해 부르자 수호가 간 쪽으로 팔짝팔짝 뛰어가던 녀석이 귀를 쫑긋 세우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뽀르르 달려온다.
“명. 명.”
“그래. 그래. 너한테 부탁이 있는데 말이야.”
녀석 앞에 쭈그리고 앉아 말하자 털이 부스스한 머리를 갸웃거리며 내 말을 들었다.
“나랑 같이 가서 할 일이 있어. 냄새를 맡는 거야. 향랑각시라고, 냄새가 아주 고약한 벌레 아가씨거든. 그 벌레가 움직인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걸 네가 해줬으면 좋겠어. 할 수 있겠어?”
물으면서도 사실 좀 자신이 없었다. 사람으로 변하기도 하고 말도 곧잘 하는 것 같지만 지능은 강아지보다 나은 건지 어떤 건지…. 평소 하는 짓으로 봐서는 아무 생각 없는 잡종개 같기도 하고.
“명. 명.”
달님이가 소리를 내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건지 짖는 건지 분간이 안 된다.
“그래. 내 이름이 해명인 건 나도 알고 너도 아는 거니까 됐고. 내가 아까 한 말은 이해한 거냐?”
“명. 명.”
이해 못했군. 얘는 그냥 개인 것 같은데. 사람 이름을 엉성한 발음으로 부를 줄 아는 개.
이러면 곤란하잖아. 그래도 뭔가 도움이 되어줄 줄 알았건만. 말조차 제대로 안 통하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아무래도 백은호에게 부탁해야 할까보다. 녀석도 여우니까 사람보다는 후각이 예민할 테고.
하지만 그 여우가 공짜로 일해 줄 리 없으니 유하의 백화주를 축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기운 빠진 채로 생각에 잠겨 있는데 내 주변을 돌아다니던 발소리가 바뀌었다. 작고 가벼운 네 개의 발에서 작고 가벼운 두 개의 발로.
“명, 슬퍼?”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아이가 있다. 갈색과 황색이 섞인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산발한 열 살 어림의 사내 아이.
“아파? 배고파? 외로워?”
말간 눈을 깜박거리며 올려다보는 해맑은 얼굴은 강아지일 때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어디로 보나 사람과 같았고,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어쩐지 해님이가 변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인계를 벗어난 신령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고개를 젓자 녀석이 환하게 웃었다. 녀석이 다시 삽살개로 돌아가 버리기 전에 말했다.
“그런데 걱정거리가 하나 있기는 하다.”
“명. 걱정해?”
녀석이 눈꼬리를 떨어뜨렸다.
“아, 찾는 게 하나 있거든. 도와줄래? 네가 냄새를 잘 맡으니까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응. 응. 나 냄새 잘 맡아.”
금세 웃으며 녀석이 말했다.
좋아.
“그럼.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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