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강 도둑(4)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손님의 집근처까지 갔다.
버스를 탈 때는 달님이 녀석이 사람들에게 강아지로 보이는 게 아닌가 싶어 긴장했지만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기사님이 두 사람분의 요금이 제대로 들어왔는지 확인할 뿐이었다. 다만 그 덥수룩하고 염색한 듯한 머리와 삼국시대에나 입었을 것 같은 예스러운 옷차림 때문에 승객들의 시선을 꽤나 끌기는 했다.
버스에서 내린 다음에는 손님이 알려준 주소로 집을 찾아내기 위해 주택가를 헤맸지만 잠시였다.
“명, 냄새. 냄새 나.”
달님이가 얼굴을 찌푸리며 한 쪽을 가리켰다. 내게는 어느 집 정원에서 피었는지 모를 국화향이 약하게 날 뿐이다. 달님이가 가리킨 쪽으로 가보자 과연 찾고 있던 집이 보였다. 아무 냄새도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달님이는 눈썹을 찡그리며 손부채를 코앞에서 팔락거렸다.
집안에서는 사람의 생기가 느껴졌다. 세 명쯤? 다른 기척은 없는 것 같다. 요즘의 대부분 집들이 그렇듯 가택신도 없었다. 특별히 나쁜 느낌이나 요사한 기운도 없고, 주변을 둘러봐도 딱히 이상해 보이는 것 없이 평범한 곳이었다.
“잘했어, 달님아. 냄새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겠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칭찬하자 달님이는 찌푸렸던 얼굴을 확 펴고는 코를 킁킁대며 걸어갔다. 길을 가로지른 다음 맞은편 집의 벽을 타고 지나가 주택과 주택 사이의 좁은 골목을 통과하고, 골목을 나오자 나타난 오르막길을 따라 쭉 달려간다.
오르막길 끝에 갈림길이 나타났지만 녀석은 어느 길로도 가지 않고 길 사이의 언덕을 타고 올라갔다. 언덕 위에는 숲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나무가 무리를 짓고 있었다. 나무 사이로 뛰어든 녀석이 갑자기 평 소리를 내며 강아지로 돌아가 버렸다.
뭐야?
강아지가 되더니 땅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붉은 혀로 뭔지 열심히 핥았다. 잠시 지켜보았으나 나무 사이로 다니며 땅이나 나무 둥치를 할짝거릴 뿐 도무지 어디로 가려고 하지를 않는다.
뭐냐, 너. 향랑각시의 냄새를 맡으랬더니 먹을 것 냄새를 맡고 온 거냐?
녀석을 건드리며 말을 걸어봤지만 못 들은체하고 바닥을 핥기 바빴다. 캄캄해서 잘 보이지 않는데 땅 위에 무슨 과자라도 뿌려져 있나 하고 손으로 훑어봤으나 아무 것도 없었다. 생생한 풀잎만 손 밑에 쓸렸을 뿐이다.
녀석은 한참을 그러고 돌아다니더니, 이윽고 멈춰서는 나무 밑에 늘어져 누웠다.
“야, 임마. 여기서 누워버리면 어떡해? 달님아.”
녀석을 흔들어봤지만 “배불러어…”같은 소리나 듣게 되었다. 배가 불러?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 뭘 먹었는데? 정말로 풀이라도 뜯어먹었냐? 아닌 게 아니라 녀석의 배가 아까와 달리 빵빵하니 부풀어 있기는 했다.
도대체 뭘 먹은 거야?
몇 번 더 건드려봤지만 녀석은 배를 드러내놓고 누워서는 곧 도로롱 잠들어버렸다. 야….
얘를 믿고 여기까지 온 내가 바보인가.
한심하고 어이없어서 멍청하니 서있는데 문득 멀리서 쇳소리 같은 것이 은은하게 울렸다.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자 나무 사이로 호박색 불빛이 보였다. 가로등이 아니라 어느 집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빛이었다. 요새도 백열등 쓰는 집이 있나 하고 유심히 보게 된다.
어딘지 묘한 분위기의 건물이었다.
기와를 얹은 지붕이나 날아갈 듯한 선의 처마며, 황토색 벽에 기둥과 보가 드러난 한옥 양식인데 5층이나 되는 높이였다. 황토벽인데도 완자살을 댄 아치형 유리창이 층마다 나있고 기둥과 보는 나무가 아니라 대리석이었다. 집이라기보다는 모텔이나 커다란 식당 건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가 묘하다고 느낀 것은 동서양이 뒤섞인 건축양식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 근본적인,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인해 느끼는 위화감 때문이었다.
5층이나 되는 높이에 십 수개의 창마다 노란 불빛이 환히 비치고 있는데 건물 안에서는 사람의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방마다 불을 켜놓고 모두 어디로 가버렸다는 터무니없는 상황은 아닐 테고.
게다가 그 묘한 느낌 때문에 건물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 어둠속에서 그 모습이 어딘지 흐릿해졌다. 마치 건물 자신이,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선을 거부하는 듯했다.
요사한 곳일세.
나는 건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숲을 벗어나자 바위와 꽃으로 가꿔진 뜰이 나오고 그 너머가 바로 5층 건물이었다. 바위 사이로 절묘하게 배치된 꽃나무들을 보자 크고 작은 다양한 꽃들이 하나같이 탐스럽고 아름다웠다. 조화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흠 하나 없이 완벽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늦은 밤인데 환한 대낮인 것처럼 어느 것이나 꽃잎을 활짝 벌리고,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꽃도 몇 가지나 눈에 띄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우 소굴에라도 들어온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뜰을 향해 가자 건물 쪽에서부터 은은한 불빛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조족등을 든 작은 여자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홉 살이나 되었을까. 머리를 땋아서 하늘색 댕기를 물리고 하얀 원피스의 레이스 허리띠 아래로 노리개를 매달고 있다. 이 묘한 건물과 마찬가지로 한식과 양식을 섞어놓은 듯한 복장이었다.
“어서 오세요, 도련님. 주인아씨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소녀가 내게 말했다. 하…. 이건 정말 에메랄드 하우스가 생각나는데.
소녀를 잘 살펴보자 인형처럼 귀여운 얼굴이었지만 배 앞으로 얌전히 모으고 있는 손은 묘하게 어두운색으로 매끈한 광택이 흐르고, 무릎에 닿는 치마의 프릴장식 아래서 가시 같이 가늘고 긴 것들이 삐죽삐죽 나왔다 사라졌다. 뭐가 변신한 건지 몰라도 별로 본체를 보고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달님이 녀석이 먹을 것 냄새만 맡고 여기로 온 건 확실히 아닌 모양이다. 게다가 향랑각시 쪽에서는 내가 오는 걸 알고 마중까지 보내주고.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에 안심한 한편 긴장이 간질간질 피부를 타고 올랐다.
“그럼, 부탁할까.”
내 말에 소녀는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등을 잡은 소녀를 따라 나는 어두운 뜰을 가로질렀다. 소녀는 사각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앞서서 건물의 입구로 보이는 커다란 문 앞에 섰다. 마치 기다린 것처럼 문이 양쪽으로 열리고 초롱이 가지런히 걸린 건물 내부가 드러났다.
밖에서 본 것과 다르지 않게 내부도 한식과 양식이 뒤섞인 구조였다. 대저택의 그랜드 홀을 연상시키는 넓은 곳을 대청마루처럼 나무판으로 만들고 이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에는 카펫 대신 공단 천이 깔려 있었다.
천장에 수없이 걸린 초롱들이 천의 색에 때라 붉고 푸르고 누렇게 빛났다. 소녀는 문 옆의 사방탁자에 조족등을 올려놓고 계단을 가리켰다.
“주인아씨는 위에 계십니다. 그 짐은 제가 들까요?”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을 가리키며 묻는다. 안에 있는 거라야 지갑과 핸드폰, 수호 녀석이 준 비닐봉지 정도지만 정체도 모르는 변신소녀에게 맡길 수야 없지. 고개를 젓자 소녀는 “저를 따라오시어요.”라고 말하고 앞장서서 계단을 올랐다.
향랑각시인지 요강도둑인지 어차피 소굴 안으로 뛰어들었으니 뒷걸음칠 이유는 없었다. 이미 두 번 여우 소굴에 다녀온 적이 있어서인지 약간의 긴장이 느껴질 뿐 두려움도 없다. 여우나 도사들과 힘을 겨루었던 경험 덕분에 배짱이 늘어난 건지도 모르겠다.
향랑각시라야 벌레가 변한 요괴. 여우나 호랑이 같은 맹수와는 비할 바가 아니겠지. 그런 생각도 있었다.
소녀는 말없이 걸었고 나는 서너 계단 뒤에서 따라갔다. 금세 위층이 나올 것 같던 나선형의 계단은 끝이 없는 것처럼 이어졌다. 계단을 오르고 있는 건지 같은 층에서 맴을 돌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따라가는 것을 그만두고 앞장서고 있는 소녀인지 어떤 벌레의 변신인지를 족쳐봐야 하나 생각하는데 갑자기 계단이 끝나고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1층과 같은 홀이었다. 벽과 기둥의 단청이 수십 개의 초롱에서 배어나오는 빛에 물들어 흐릿하니 보였다.
기둥 사이를 걸어가니 벽처럼 보였던 곳에서 세살무늬가 들어간 장지문이 나타났다. 소녀가 문 앞에 서자 손도 대지 않았는데 가운데의 문 두 짝이 좌우로 스르륵 밀려났다.
문 너머는 노란 장판지가 깔린 넓은 방이었다. 벽에 걸린 사군자와 귀퉁이에 놓인 사방탁자가 장식의 전부인 깔끔한 방으로, 문 맞은편에 다시 똑같은 장지문이 벽 대신 있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자 좌우로 갈린 복도가 나오고 복도 맞은편에 이번에는 보름달처럼 둥근 모양의 미닫이문이 보였다.
지금까지 지나온 문이 몇 개지. 그야말로 구중심처다.
소녀가 둥근 문 앞에 서서 “아씨, 도련님을 모셔왔습니다.”라고 아뢰었다. 한지를 덧대어 바른 문 너머에서 한숨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뭐라 대답을 한 것도 아닌데 소녀는 내게 허리를 꾸벅 숙여 절을 한 다음 총총 걸어서 그곳을 떠났다. 소녀가 간 방향에서 장지문이 드르륵 닫히고 나자 혼자 남은 나는 어쨌든 내손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문 한 쪽을 옆으로 밀자 반달 같은 공간이 생긴다. 둥근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지나온 것과 비슷한 크기의 방이었다. 그러나 안을 채운 가구며 꾸밈이 전혀 다르다.
한 쌍의 문갑에 사방탁자, 애기장 3층장에 의걸이가 한 쪽 벽을 차지하고 맞은편에는 화조도를 그린 다락문 아래 보료와 방석이 깔려 있었다. 문갑 위에는 경대와 반짇고리, 보료 앞에는 놋화로, 그리고 놋화로에 장죽의 대통을 대고 연기를 빨아들이는 흰 옷의 여인이 있었다.
묘한 여자였다.
크림색 한복 치마에 하얀 레이스 볼레로라는 옷차림이야 이제 이상할 것도 없다지만 가채를 얹어 구름 같은 머리를 기울이며 이쪽을 보는 얼굴은 어딘지 빈 구석이 있다. 경계도 호기심도 없는 눈길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흐릿하니 몽롱한 시선이었다.
장죽을 빨던 입술이 물부리에서 떨어졌다. 뭔가 말이라도 하나 싶었지만 붉은 입술에서 흘러나온 것은 하얀 연기뿐이다. 뿌연 연기가 그녀의 얼굴을 잠시 가렸다가 천천히 흩어졌다. 영감 도깨비가 곰방대 피는 모습은 늘 보고 있지만 같은 담배연기인데 이쪽은 왠지 요사하다.
아니지. 지금 요괴의 겉모습에 속고 있는 거라고! 이 여자는 지네라든가 그리마라든가 노래기 같은 배각류 벌레가 변한 거라니까. 물론 변한 모습은 묘하게 도도하면서 어딘지 백치미가 느껴지는 요염한 미인이지만…아니. 정신 차려, 김해명. 상대는 향랑각시다. 요괴라고.
“그래, 요강! 이봐, 할머니 혼령이 붙은 놋요강은 네가 가져간 거지? 집에 흔적이 남아있었어. 네 냄새를 따라 여기까지 왔으니 거짓말 할 생각은 말라고.”
정신을 차리고 향랑각시를 향해 단호하게 물었으나 그녀는 대답 대신 뺨을 홀쪽하게 당기며 담뱃대를 빨았다. 이봐, 맞다든가 아니라든가 대꾸 정도는 해주시지.
나를 무시하고 있는 향랑각시에게 더 강하게 나가야 할까 고민하는데 입술을 모으고 연기를 뿜어낸 그녀가 긴 속눈썹을 밀어 올렸다.
“요강…말이지?”
그리고 느릿하니 입을 떼었다. 영감 도깨비도 그렇고 이 여자도 그렇고 담뱃대 좋아하는 요괴들은 원래 다 이렇게 느려터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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