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에(1)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당신이 잃은 것은 머리맡에 있다.
노앵설의, 아이답게 또박또박 적어놓은 글자를 내려다보던 나는 편지에서 침대 머리맡의 탁자로 시선을 옮겼다. 도화지 넓이의 탁자에는 보통 거기에 놓을 법한 탁상시계나 취침등 같은 것 하나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잘 시간이 될 때쯤이면 거기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리 장식품이 묘한 모양으로 놓여서 나를 기다렸다. 그 모양이란 언제나 달랐다. 그렇다고 딱히 특정한 형체를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손재주 없는 사람이나 어린아이가 주물럭주물럭 뭉쳐놓은 것처럼 대충 둥근 모양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아침이 되면 거의 콩알만한 크기로 산산조각이 나서 침대 밑에 흩어졌다. 유리조각이라고 해도 날카롭게 깨진 뾰족한 파편은 아니었다. 마치 자동차 측면유리를 깨놓은 것처럼 모나지 않은 조각들이었다. 얼핏 보면 우박이 흩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귀찮아서 내버려 두지만 어느 틈엔가 유하가 쓸어 모아서 탁자 아래에 모아놓고는 했다. 그러면 유리 조각들은 낮 동안 무더기인 채로 놓여 있다가 밤이 되면 어느 순간 도로 붙어서 한 덩어리가 되어 탁자 위에 올라갔다.
노앵설의 편지를 받고 머리맡을 확인했을 때, 나는 잠깐 이 유리 조각들을 염두에 두기는 했었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유리 장식은 지금처럼 탁자 아래에 조각이 무더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 핑계를 대면서 눈을 돌렸던 것 같다.
이것 말고도 머리맡의 유리라면 우측 벽면의 요철에 설치된 장식용 유리창이나 침대 위 천장의 조명등 같은 것을 포함해야 했다. 하지만 장식용 유리창이나 조명등이 매일 아침 깨지는 소리로 나를 깨우는 기묘한 유리 장식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 이제 더는 댈 핑계가 없었다.
노앵설의 편지를 읽은 시점에서 이미 했어야 할 일을, 스스로 남긴 메시지를 읽고 나서야 하는 셈이었다.
유리 조각의 양은 대접에 담으면 가득 찰 정도였다. 그것들을 침대 위에 옮겨 놓고 나는 작은 알갱이 하나하나를 집어서 들여다보았다. 투명한 유리 알갱이일 뿐이다. 특별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고 뭔가 이상한 것이 보이지도 않았다.
어느 것이나 비슷한 크기에 불규칙한 모양.
그것들을 뒤적뒤적 헤치다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균보다 큰 크기의 덩어리가 어쩐지 늘어났다. 처음 침대 위에 쏟아놓을 때는 거의 대부분이 콩알 크기의 작은 조각들이었는데 지금은 어쩐지 콩알 두 개가 붙은 정도의 크기가 여러 개다.
그것들을 골라서 옆으로 꺼내놓고 개수를 헤아려보았다. 평균보다 큰 덩어리가 여섯 개. 처음에는 분명 이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착각일지도 모르지. 다시 작은 조각들을 살펴보는데 손안에 쥐고 있던 알갱이들 사이에서 큰 덩어리가 하나 더 나왔다.
침대에서 손으로 그러모았을 때는 분명 없었는데. 마치 손 안에서 붙어버린 것처럼…
거기까지 생각한 다음 나는 평균보다 큰 덩어리들을 다시 확인했다. 과연 그랬다. 모두 유리조각 두 개가 붙어 있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붙은 면이 감쪽같아 본래 하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것이나 같았다.
붙는다는 말이네. 그렇다면 어떤 조각들이 서로 붙을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유리 조각들을 하나하나 가져다 맞춰 보았다.
지루한 작업이었다. 하나의 조각에도 맞춰보아야 할 곳이 여러 면이었고 그런 조각들이 수백 개나 쌓여 있었다. 그리고 거의 20 분 동안의 시도 끝에 가장자리가 정확히 들어맞는 조각이 나타났다.
조각의 면이 들어맞는 순간 마치 본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세 번째 유리조각은 덩어리에 녹아들듯 붙었다. 이제 손 안의 유리는 아몬드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이거구나. 들어맞는 부분을 맞추면 되는 거였어.
그리고 다시 지루한 시도가 계속되었다. 수백 개의 유리 파편을 하나씩 하나씩 일일이 맞춰보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두어 시간이 지나자 집중하느라 숙이고 있던 허리와 목이 아파왔다.
그러나 보람은 있어서 유리 덩어리는 거의 호두 크기로 커졌고 다른 조각들도 조금씩 짝을 찾아 커지고 있었다. 이대로면 내일 아침까지 모두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순간, 침대 위의 유리 조각들이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어어?”
마치 끌어당기는 것처럼 굴러서 한 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모이더니 저희들끼리 아무렇게나 뭉치기 시작했다. 자석에 붙는 쇳조각 같았다. 덩어리가 커졌던 유리조각도 내 손을 떠나 거기에 붙어버렸다. 잠깐 사이에 유리 조각들은 하나의 커다랗고 제멋대로인 덩어리를 이루었다. 잘 시각이 된 것이다.
젠장. 애써 고생한 게 헛수고가 되었잖아.
탈력하여 침대에 푹 쓰러졌다. 실망과 안타까움이 들끓었지만 동시에 희망도 생겨났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유리 장식의 본래 모습을 찾아낼 방법이 어쨌든 생긴 셈이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유리 깨지는 소리를 듣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까지 유하가 치우도록 내버려 뒀던 유리 파편들을 직접 쓸어 모았다. 놓친 알갱이가 없는지 침대와 탁자 밑과 아래층까지 일일이 확인하고, 모아놓은 유리 조각들을 침대 위에 펼쳐놓고 맞추기 시작했다.
유리 파편을 모으는 동안 우연히 맞아떨어져 붙은 몇 개의 조각들로부터 시작해 그것들을 점점 크게 키우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유하가 찾아와 알려줄 때까지 식사시간도 잊어버린 채로 열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열중한 만큼 효과는 있어서 점심 무렵에는 호두만한 덩어리 두어 개와 땅콩 크기의 덩어리 여러 개가 만들어졌다. 이 정도라면 저녁이 되기 전에 모두 붙일 수 있었다. 처음이 어렵지 덩어리가 여러 개 생기고 유리 조각의 개수가 줄어들수록 점점 속도는 빨라질 테니까.
그렇게 방에 틀어박혀 유리조각을 맞추고 있는데 백은호가 찾아왔다. 일거리를 가지고 온 것이다.
“지금 바쁘거든.”
그를 문밖에 세워둔 채로 유리 조각에 열중하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의외군요.”
백은호가 대꾸했다. 그의 차분한 목소리는 유리 맞추기에 열이 올라있는 내 체온을 약간 식히는 효과가 있었다. 뭐가 의외인데?
“흐린 날에 가져온 의뢰는 보통 응하셨으니까요.”
그거야 흐린 날에는 출장 수리잖아. 일 때문에 백은호가 동행해 주니까 멀리 갈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 사나흘 정도는 내내 흐리거나 비였다. 추수를 앞두고 쓸데없이 태풍이 지나가는 바람에 농민들이 걱정한다는 뉴스를 본 것 같다.
하지만 출장 수리고 먼 곳으로의 외출이고 뭐고. 지금은 그것보다 유리 조각을 맞추는 것이 더 급했다.
“내일 가면 안 될까? 오늘은 정말 바빠서.”
“수리하는데 얼마나 걸릴지 몰라 가능하면 빨리 출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저녁 먹고 나서는? 저녁까지는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은데.”
“그 때 출발하면 배를 탈 수 없습니다.”
뭘 타?
“마지막 배편이 오후 5시 50분이라, 늦어도 두 시간 안에는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길도에서 한 번 더 배를 갈아타고 20분쯤 가야 합니다.”
가야 하는 곳이 섬이야? 그것도 배를 두 번이나 타고 가야 하는 바다 한 가운데의?
유리 조각을 열심히 맞추던 손이 잠시 멈칫거렸다. 바다다.
아마도 예전에 한 번쯤은 가본 적이 있겠지만 지금 기억하는 바다라는 건 모니터나 사진에서 본 것뿐이다. 지독히 더웠던 지난여름 내내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날씨나 일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그곳.
망상 속에서 유하의 수영복 차림을 잠깐 상상해 보기도 했던…
아아, 유하를 생각하자 잠시 날아갔던 정신이 현실로 되돌아왔다. 뭘 상상하고 있는 거야, 지금. 어차피 임자 있는 여자인데다, 지금으로서는 내 기억을 방해하는 ‘누군가’의 첫 번째 용의자라고. 물증이 없을 뿐이지 거의 확신하고는 있지만.
“도령은 바다에 거의 가본 적이 없어서 이 일이 마음에 드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잠시 딴 생각에 빠진 나를 망설이는 거라고 봤는지 백은호가 슬쩍 말을 던졌다. 백은호답지 않게 어르는 말이 나오는 걸 보니 돈이 꽤 벌리는 일인 모양이었다.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바다라는 말만 듣고도 이미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 끝없고 푸른 물이나 황금빛의 모래사장 같은 것을 상상만 해도 설레는 것이, 바다에 거의 가본 적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가고 싶다는 생각과 유리 조각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다투었다.
‘뭐, 이것도 가져가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이동할 때는 할 일도 없을 테고.’
아무래도 바다 쪽이 더 강했는지 결국 그렇게 생각하며 승낙하고 말았다.
며칠이 걸릴 수도 있는 출장수리를 떠난다고 하자, 유하는 나와 백은호를 한 번씩 힐끗 볼 뿐 말없이 여행준비를 도왔다.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 같은 것들을 챙긴 가방을 건네받으며 잠시 눈이 마주쳤지만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기억에 없는 그 하루 동안 내가 알게 된 것이 뭔지 모르지만 강박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그녀를 경계한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을 하는지 모를 묘하고 비밀스러운 여자…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그녀가 흑막의 뒤편에 도사린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따금 나를 괴롭혔다.
내색하지 않도록 조심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도 알아차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그녀는 누굴까. 아니 무엇일까…
문득 생각했다가 고개를 저어버렸다. 유리 조각들을 맞춰보고 나서. 뭔가를 더 알고 판단할 근거가 생기기 전에 섣부른 생각은 하기 싫었다.
백은호는 내가 조수석이 아닌 뒷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눈썹을 조금 모았을 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의 옆에서 유리 조각들을 만지고 싶지는 않았다. 뭐냐고 물어보면 해줄 말도 없고, 또 유하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나를 방해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백은호의 뒷자리에 앉아 가방에 넣어 온 유리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보는 동안 차는 도심을 빠져나가 해남으로 가는 국도로 들어섰다.
“그런데 고쳐야 할 물건은 뭐야?”
차 안에서 집중하고 있자니 두 배로 피곤해서, 뻐근해진 목을 뒤로 젖히며 몸을 풀던 김에 묻자 백은호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코웃음 쳤다.
“이제야 궁금하십니까. 별장입니다.”
그의 대답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집을 고쳐야 하는 거야?”
내가 별 걸 다 고쳐보기는 했지만 이제는 집인가요. 물론 목수나 미장이가 필요한 일은 아니겠지.
“보길도 남쪽의 작은 섬에 지어진 별장입니다. 예전에는 마을이 있었다고 합니다만 사람들이 모두 떠난 것을 한 자산가가 사들여 지금은 개인 소유의 섬입니다. 큰돈을 들여 사놓고 어쩐지 섬 가장자리에 별장만 한 채 지은 다음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행희가 살던 마을이 생각나네. 행희의 마을은 다행히 무사했지만 우리가 찾아가야 할 섬은 그렇지 못했나보다.
“그런데 그 별장이 뭐가 어떻게 고장 났는데?”
내 질문에 백은호의 눈이 가늘어지는 것이 보였다. 백미러로 보니까 어쩐지 더 기분 나빠.
어딘지 서늘한 목소리로 그가 대답했다.
“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라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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