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에(2)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집이라고? 뭐…몬스터 하우스 같은 거냐?
“요괴가 집의 모양을 하고 있는 거야? 아니면 이상한 게 집에 붙어있는 거야.”
아무래도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집이 사람을 으적으적 씹어 먹는다든가 하는 상상은 아무래도 좀…
“글쎄요. 잡아먹는다는 말을 들었을 뿐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섬으로 가야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나는 백은호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너 계속 뭐라고 들었다거나 그렇게 말하는데, 손님을 직접 만나본 적 없어?”
“예. 대리인과 전화로 통화했을 뿐입니다.”
백은호가 태연히 대답했다. 이번에는 내 쪽이 어이가 없어졌다.
“뭐야, 그런 말을 듣는 것만으로 나까지 데리고 가는 거라고?”
“헛걸음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나름대로 조사는 해 봤으니까요. 상대는 이 나라에서도 손꼽히는 자산가 중 한 명입니다. 과거에는 땅을 그 후에는 건물을, 지금은 주로 현금을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것도 5년쯤 전부터는 대부분 자녀들에게 맡기고 뒤로 물러앉은 상태입니다. 물러앉았다고 해도 상왕이나 다름없겠습니다만.”
“그렇게 돈 많은 사람이면 사람 잡아먹는 집 따위 태워버리고 새로 지으면 되지 않을까.”
“글쎄요.”
묘하게 서늘한 웃음이 백은호의 눈가에 번졌다. 백미러로 보이는 것은 눈뿐이지만 상상컨대 그의 얼굴은 하찮으면서도 볼품없는 존재를 내려다보는 여우 요괴의 표정을 짓고 있다. 그 표정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알아두실 것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생기는 모든 일은 비밀입니다. 밖으로 알려지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으니, 가능하면 지켜주십시오.”
뭐가 가능하면이냐. 나도 딱히 입 가벼운 남자는 아니라고.
“그리고 한 가지 더, 섬에 불려가는 사람은 우리뿐이 아닙니다.”
“뭐?”
그것은 뜻밖의 말이었다.
“우리뿐이 아니라면 누가 더 온다는 거야?”
“누가 오는지 몇 명이 오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를 부른 만큼, 그에 필적할만한 실력을 가졌다고 평가되는 사람이겠지요.”
그런 말을 얕보는 투로 하고 있었다. 필적할만한 실력을 가졌다고 평가되는지 몰라도 실제로 그 정도는 아닐 것이라는 자신감이 가득한 것 같다.
“너 태령 윤문의 도사한테는 꼼짝도 못하더니?”
직접 싸우려고도 하지 않고, 산신을 불러들여 상대했던 그 때를 떠올리고 묻자 백은호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쪽은 도사들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사냥꾼과 도사는 저와 상성이 안 좋습니다.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물론 직접 상대하려고 하면 못할 것도 없으나, 공연히 태령 윤문을 건드려봐야 결과적으로는 제 손해입니다. 그쪽에서 마음먹고 끝까지 괴롭히려고 들면 저 역시 태령 윤문을 아예 멸문시키겠다는 각오로 싸워야 합니다.”
뭐냐, 그 말은 혼자서 태령 윤문을 멸문시킬 수도 있다는 거야? 허세지, 지금?
“싸움이 반드시 힘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내 마음을 읽었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여우 요괴가 말했다. 그래, 너 잘났다.
“그런데 실력 있는 사람들을 불렀다고 하면, 섬으로 태령 윤문의 도사가 올 수도 있다는 거네.”
어쩐지 불안한 기분으로 내가 말하자 백은호의 눈이 서늘해졌다.
“올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옵니다.”
그리고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해남의 땅끝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확인할 수 있었다.
대리인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던 선착장에 대리인 외에도 두 사람이 더 있었다. 남녀 한 쌍이었는데 여자 쪽은 모르겠지만 남자의 얼굴은 눈에 익었다. 태령 윤문이 수호 녀석을 뒤쫓아 왔던 그 때, 인형을 다루던 여도사와 함께 왔던 남자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후줄근한 양복 차림에 낡은 서류가방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겉모습만 봐서는 명퇴 당하고 공원을 헤매는 불쌍한 중년 아저씨로 보이기 딱 좋을 테지만 그 몸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기운을 지금의 나는 확실히 구분할 수가 있었다.
함께 있는 사람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몸매 좋은 여자였다. 넉넉한 마직 셔츠에 폭이 넓은 검은 바지를 입고 있어도 운동으로 다져진 것 같은 신체의 선을 가릴 수가 없었다. 도사로 보이지는 않지만 함께 있는 양복 도사에 지지 않을 정도의 생기가 몸 안에 흐르고 있었다.
두 사람 덕분에 멀리 바다가 보이는 풍경으로 두근거리던 심장은 곧 차갑게 식어버렸다. 태령 윤문의 사람을 앞에 두고 바다를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
대리인이라는 남자가 우리를 보자 금세 달려와서 싹싹하게 인사를 건넸다.
“백은호씨? 같이 오신 분이 김해명씨군요. 반갑습니다. 전화로 이야기 나누었던 정호섭입니다.”
어쩐지 자산가의 대리인이라고 하니 나이가 좀 있고 깐깐한 변호사 같은 타입이거나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집사 같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는 30대 중반에 성격 좋아 뵈는 남자였다. 모난 데 없이 둥근 윤곽의 얼굴에 약간 배가 나온 친밀한 몸매를 하고 있었다. 이마가 넓은 것이 머지않아 발모제를 살까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저쪽의 두 분은 태령 윤문에서 오신 도사님들이십니다. 여기에서부터 같이 배를 타고 갈 겁니다. 그리고 보길도에서 한 분이 더 합류하실 거고요. 그분과 함께 별장이 있는 염목도로 가게 됩니다.”
“그럼 불려온 사람은 모두 다섯 명인가요?”
내 질문에 정호섭이 고개를 저었다.
“어제부터 별장에 한 분이 와 계시고, 아직 연락이 없는 한 분이 더 계신데 오실지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럼 사람을 일곱 명씩이나 불렀다는 말이야? 도대체 그 별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태령 윤문의 사람들은 우리가 온 것을 보고도 모르는 체하고 있다가 가까이 가자 그제야 인사를 건넸다. 인사라고 해도 양복의 도사는 고개만 까닥였을 뿐이고 붙임성 있게 말을 걸어온 쪽은 여자였다.
그녀는 경계와 호감이 반쯤 섞인 얼굴로 백은호에게 인사하고 자신과 동료를 소개했다. 안효정이 그녀의 이름이었고 남자 쪽은 원강이라고 불렀다. 본명인지 도사로서 사용하는 이름인지는 모르겠다.
잠시 후 배에 오른 후에도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동료와 달리 우리를 따라다니며 호기심을 숨기지 않았다.
“원강의 말로는 당신이 해명도령이라던데 정말인가요? 해명도령과 금산할멈의 전설이나 조선시대 궁중야화 같은 건 들어봤지만 그 이야기에서는 모두 어린 소년이었거든요.”
그녀가 자신과 동료를 소개할 때 백은호는 소개말을 받아먹기만 하고 이쪽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나나 백은호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한 전설이니 야화니 하는 건 나도 수호 녀석이 가져다 준 파일에서만 읽었을 뿐이라고.
말하기 싫다기보다 할 말이 없어서 실없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가 별로 대꾸해주지 않자 그녀의 호기심은 백은호에게 옮겨갔다.
여우 요괴는 귀찮은 기색도 없이 그녀를 상대하며 함께 갑판으로 걸어갔다. 저 녀석은 어째서 여자에게만 대우가 다른 건데. 그리고 너, 좋아하는 여자 있지 않았냐? 응? 노앵설에게 찾아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 지조 없는 요괴 같으니라고!
하지만 어쨌거나 귀찮게 하는 여자가 떨어져서 나는 보길도로 가는 동안 선실 구석에 앉아 유리조각 맞추기를 할 수 있었다.
하늘이 흐렸지만 근처 어딘가로 태풍이 지나간다던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바다는 잔잔했다. 배는 40분을 달린 끝에 산양진항에 도착했다. 산양진항은 노화도였고 여기에서 다시 다리를 건너야 보길도다.
다른 한 명을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는 보길도의 유명하다는 공룡알 해변 근처였다. 사람 좋게 생긴 것과 달리 정호섭은 잠깐 해변을 구경하고 싶다는 내 부탁을 깨끗이 거절했다.
“저희가 별장에 도착하면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 출발해도 거의 7시가 되니…”
별장의 사람들이 굶으며 기다리게 된다는 말이다. 게다가 해변 구경을 하고 싶다는 내 말에 정호섭을 제외한 전원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은 걸 보면 지금이 관광할 상황은 아닌가 보다. 쳇.
약속장소에서는 배 한 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타실 앞에 크게 적힌 광고문구로 봐서는 낚싯배 같았다. 뭐야, 손꼽히는 자산가라더니. 돛이 달린 하얀 요트 같은 거 없나?
잔교에 쭈그리고 앉아 밧줄을 정리하던 사람이 정호섭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선주인 모양이다.
“저분은 언제 오셨어요?”
배의 선미갑판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 정호섭이 선주에게 물었다. 우리가 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남자도 바다에서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30대 후반쯤? 면도를 제대로 안 해 듬성듬성 난 턱수염에 개량한복인지 승복인지 모를 허름한 회색 옷을 입은 모습이 마치 노숙자나 떠돌이 승려처럼 보였다.
“10분 정도 됐을 겁니다. 이름을 말해서 태워줬는데 정말 같이 가는 분 맞습니까?”
선주가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맞을 겁니다.”
정호섭이 대답했지만 그의 표정에도 확신은 없어 보였다. 그와 달리 태령 윤문의 사람들이나 백은호는 흥미로운 눈으로 남자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남자에게 특별한 힘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몸 안에 흐르는 기운이 놀라울 정도로 맑았다. 갓 태어난 아이 같다고 해야 할까. 지저분한 겉모습과 정 반대였다.
남자는 우리가 배로 다가가자 친한 사람에게 하듯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처진 눈꼬리 옆으로 잔주름을 지으며 웃는 얼굴이 서글서글했다.
“추기영씨입니다. 음…선도를 하시는 분입니다.”
정호섭이 우리에게 남자를 소개했다. 그렇게 말하지만 선도가 뭔지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요새도 제대로 하는 분이 있네요. 묏사람이 속세에는 어쩐 일로 나오셨어요?”
안효정이 인사 겸 말을 건네자 추기영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나도 이유를 몰랐는데 아가씨를 보니 이제야 알겠구만. 여기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려고 산이 나를 내보냈나 보네.”
도 닦는 분이 웬 작업입니까.
안효정은 어깨를 으쓱하며 그의 말을 웃어넘겼다. 선주까지 여섯 명이 모두 승선하자 배는 잔교를 떠나 바다를 달렸다.
“그런데, 어제부터 별장에 있었다는 사람은 누구죠?”
추기영에게서 금세 호기심을 거둬버린 안효정이 정호섭에게 물었다. 나도 궁금하던 참이었다.
“아, 그분은 청단애기님이라고, 처녀보살로 유명한 분입니다.”
정말로 유명한지 태령 윤문의 사람들은 물론 백은호도 “호오.”하는 감탄사를 냈다. 산에서만 살았을 추기영까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그 처녀보살을 모르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다.
내내 고요하던 바다는 10분쯤 지났을 때부터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는 바람에 섞여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졌다. 백은호는 옷이 젖기 싫은지 재빨리 조타실로 들어가 버렸다. 뒤따라 정호섭이 안으로 들어갔지만 다른 사람들은 꼼짝하지 않았다.
비는 갈수록 더했다. 하늘은 시커먼 구름으로 덮였고 사방이 어두워졌다. 해질 무렵이기도 하지만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주위가 캄캄해지는 광경은 신기하기보다 꺼림칙했다.
비와 함께 바람도 강해졌다. 파도가 조금씩 높아지는 것이 보였다.
“굉장하네요.”
난간에 손을 짚고 바다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안효정이 중얼거렸다. 파도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생각했지만 아니라는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기운이 선수 쪽 방향에서 밀려오고 있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차갑고 어두운…아니다. 강한 음기가 맞기는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더 차갑고, 더 어둡고, 그리고 악의에 가까운 요사한 기운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 소용돌이의 가장자리에 우리가 닿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섬이 보여요!”
안효정이 목소리를 높였다. 과연 하늘과 잘 구분할 수 없는 수평선에 흠집이 난 것처럼 작은 모양의 섬이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섬으로 향했다. 시커먼 하늘과 시커먼 바다를 위아래로 두고, 빗속에서 겨우 보이는 작은 섬이 묘하게 일렁였다. 시야가 흔들리는 것은 파도 때문에 배가 흔들려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저기가 염목도군요.”
안효정이 약간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악의에 찬 기운이, 다가갈수록 농도가 더욱 짙어진다. 양복의 도사 원강은 아까부터 손에 부적 하나를 쥐고 입속으로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고 추기영도 내색은 않지만 등을 꼿꼿이 세우고 호흡을 다스리는 것 같았다.
뭔가 할 줄 모르는 나도 본능적으로 벌레를 쫓듯 손을 털어 앞을 헤치고 있었다. 안효정은 그런 방편이 없는지 난간을 꽉 쥐고 굳은 얼굴로 섬을 노려볼 뿐이다.
섬 뒤편에서 번쩍, 하얀 빛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빛 속에서 섬의 새카만 실루엣이 잠시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3초쯤 후에
우르르르 -
바위가 구르는 듯한 천둥소리가 울렸다. 작은 배에 의지해 파도를 뚫고 가는 우리에게는, 하늘에 닿을 만큼 거대한 짐승이 내려다보며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들렸다.
“환영식이 각별하구만.”
추기영이 웃으며 말했다. 그가 이미 젖어버린 옷을 새삼 툭툭 털었다. 그런다고 뭐가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의외로 그의 태평한 목소리와 행동은 사람들을 한결 편안하게 만든 것 같았다. 안효정이 난간이 우그러들지 않을까 싶게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었고 원강은 중얼거리던 것을 멈추었다.
안효정이 추기영에게 목례를 보냈다. 감사인사였다.
이제는 아예 퍼붓듯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배는 어두운 섬 염목도로 천천히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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