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86화 (86/218)

당신이 잠든 사이에(7)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아침식사가 끝나자 섬의 탐사를 맡은 셋이서 저택을 나섰다. 섬에 도착한 때는 구름과 비로 시커멓게 어두워진 후라 아침이 되어 본 저택의 풍경이 낯설었다.

불그스름한 회벽과 적갈색 대리석으로 장식된 별장의 모습은 베네치아의 오래된 건물들을 떠올리게 했다. 내부도 그렇지만 외관 역시 유럽식이다. 그리고 3층.

“그런데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어디에 있었어요?”

안효정 역시 궁금했는지 별장에서 좀 멀어지자 추기영에게 물었다.

“아아 그거. 왜 1층 안쪽에 문이 세 개 있지 않던가. 제일 왼쪽이 식당으로 통하는 문이고. 계단은 가장 오른쪽 문이더라고. 계단 왼쪽에 작은 방도 두갠가 있는 것 같더구만. 그리고 가운데 문으로 들어가면 주방과 창고로 쓰는 방이 있고.”

이 아저씨는 어젯밤에 산에도 갔다더니 돌아와서는 별장의 이곳저곳을 잘도 헤집고 다닌 것 같다.

“그런데 계단에는 센서등이 있어서 갑자기 불이 켜지던걸.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깜짝 놀랐지 뭔가.”

그렇다면 계단을 자주 쓰지는 않는다는 걸까. 아니면 어두울 때 몰래 들어오는 누군가를 대비했다든가. 안효정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려다 그녀의 낯빛이 굳어있는 것을 봤다. 뭔가 심각한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말을 걸자 깜짝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아아? 어머, 제가 그렇게 심각해 보였어요? 아뇨, 별 건 아니고. 어젯밤에 추선생님이 보셨다는 3층의 광경이요. 방이 여덟 개인데 모든 방에 노리개가 걸려있다고 해서, 집주인과 추선생님이 마주칠 뻔한 사람을 빼면 방 여섯 개가 남는데 그게 실종자 숫자와 같은 게 좀 찜찜해요. 뭐 우연이겠죠. 쓸데없는 생각을 했네요.”

말하며 그녀가 쑥스럽게 웃었다. 우연이라면 기분 나쁜 우연일 수도 있겠다.

어젯밤 내가 어둠속에서 헤매듯이 지나갔던 길을 걸어 우리는 곧 마을에 닿았다. 수년 동안 버려져 있던 마을은 무성하게 자란 풀과 나무로 가득했다. 산과 가까운 집들은 나무와 칡넝쿨에 거의 가려져 있었고 해안 근처의 집들도 풀이 자랄 수 있는 곳은 모조리 웃자란 잡초에 점령되었다.

이사하면서 버리고 간 가재도구들이 아무렇게나 뒹굴고 흙먼지로 유리창과 마루가 하얗게 얼룩져서, 마을은 마치 전염병이라도 돈 것처럼 을씨년스러웠다.

우리는 길을 따라 지그재그로 마을을 가로질렀다. 어젯밤 내가 만들어놓은 발자국이나 나뒹굴며 깨뜨린 장독 같은 것이 보였다. 이 마을 입장에서 보면 귀신보다는 내가 더 위험한 것 같은데.

마을을 벗어나자 누구 하나 말이 없어도 곧장 산을 올랐다. 앞장선 추기영이 꽤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안효정은 숨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곧잘 따라왔다. 원강과 달리 어떤 방면의 실력자인지 모르겠지만 뭘 해도 기본 이상은 하는 것 같다.

마침내 정상에 닿자 우리는 긴장한 얼굴로 일제히 산 너머를 내려다보았다. 산과 산이 겹치며 오목하게 패인 부분은 고요하게 텅 비어 있었다. 날이 밝은 지금 어젯밤 같은 광경을 보게 되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지나치게 깨끗하다.

“썰물이 나간 것 같구만.”

추기영이 중얼거렸다. 그럴 듯한 비유였다. 밀물처럼 몰려들어 와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는 건가.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가면 흔적이라도 남잖아요. 이건 너무 깨끗한데요.”

안효정이 대꾸했다. 그건 그렇지. 수백 아니 수천일지도 모르는 요괴들이 그 난장판을 만들고 있던 게 불과 몇 시간 전인데 요기의 흔적조차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이렇게 사라져 버린다는 게 이상한 일이지.

어젯밤을 떠올리자 새삼 그 현란하고도 요란한 광경과 불꽃처럼 피어오르던 요기가 살갗을 간질이는 것 같았다.

“내려갈 거죠?”

안효정이 묻더니 대답을 듣지도 않고 아래로 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어제 그 모양을 안 봐서인지 몰라도 거침이 없다.

“안 가고 배기겠나.”

추기영이 웃으며 뒤따랐다. 계곡의 오목한 밑바닥까지 완전히 내려간 그들은 뭔가를 열심히 찾는 기색이었다. 이봐요. 뭘 찾는 건데?

“역시 흩어져야 하겠죠?”

안효정이 먼저 제의했다.

“그 편이 효율적이겠지.”

추기영이 동의한다.

저기요. 흩어져서 뭘 찾는 건데요?

“응? 해명도령, 혹시…뭘 찾는지 모르고 있어요?”

묻고 싶은 내 표정을 알아보았는지 안효정이 물었다. 몰라요. 모른다고.

“어제 식당에서 본 그거요.”

식당에서 본…털? 그거? 모릅니다만. 백은호 그 녀석이 어젯밤에는 잔다고 상대도 안 해주고 오늘 아침에는 내가 묻는 걸 잊어버렸다. 아마도 멍청하게 보였을 얼굴로 내가 고개를 홱홱 젓자 안효정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를 수도 있지 뭘 그러나. 나도 본 적이 없었다면 짐작밖에 못 했을 걸세.”

추기영이 나를 두둔해 줬지만, 그 말은 본 적이 없더라도 짐작만은 할 수 있다는 뜻이라서 짐작조차 못하고 있는 나는 더 비참해졌다.

“그거 흑흉(黑凶)의 털이라네.”

추기영은 말하고 나서, 여전히 멍청한 얼굴인 나를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예. 생각하신대로 전 흑흉이 뭔지도 몰라요.

추기영은 잠깐 ‘어째서 이런 녀석이 여기에 불려온 거냐’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체념과 자비가 섞인 얼굴로 친절하게 설명했다.

“가끔 기운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고이는 땅이 있는데 거기에 잘못해서 묘를 쓰면 말이야, 시체는 썩지 않고 오히려 대지의 정기를 흡수해서 유시(游尸)가 된다네. 3개월쯤 지나면 시체에서는 온 몸에 털이 돋지. 하얀 털은 백흉(白凶), 검은 털은 흑흉(黑凶)이라고 하며 이것이 무덤에서 나와 사람들을 해치게 되는 걸세.”

그게 뭐지. 처음 들어보는데요.

“뭐 잘 모를 수도 있지. 우리나라야 워낙 묘자리에 신경 쓰는데다, 그런 땅을 발견하면 도사든 풍수사든 누군가 처리를 하게 마련이거든. 그러니 전쟁이나 나면 모를까 유시가 만들어지는 일은 거의 없지. 그런데 땅이 넓은 나라가 되고 보면 그것도 힘들거든. 나도 중국에서나 한 번 본 적이 있을 뿐이라네. 아, 자네 혹시 강시 아나?”

그거 영화로 유명하잖아요.

“바로 그거야, 강시. 비슷한 거지.”

“그…원피스 같은 거 입고 이마에 부적 붙이고 콩콩 뛰어다니는 거요?”

내 말에 안효정이 풉 하고 웃어버렸다. 뒤늦게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비웃는 거 티 났거든!

“그건 도시(跳屍)라고 하는 거지. 강시의 일종이지만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도사가 도시송시술(跳屍送尸術)이란 술법으로 시체를 움직이게 만든 거야. 전쟁이 흔한 시절에 시체를 편리하게 이동시키려고 만든 술법이라는구만. 어쨌든 성질은 거의 비슷하지. 그 몸은 무기로 상할 수 없고 괴력은 인간을 몇 배나 능가하는 괴물인 걸세.”

어…어쩐지 저랑 비슷하네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강시 취급 받겠지.

“그럼 어떻게 상대해요?”

“보통은 술법이나 불로 태워서 없애지. 낮에는 관 속에 누워 있다가 밤이 되면 돌아다니니 관에 조치를 취해 돌아가지 못하게 해놓고 낮이 될 때를 노려 불태우면 딱히 술법을 몰라도 해치울 수 있어.”

“관에서 잔다니까 뱀파이어와 비슷한 것 같죠? 사실 강시도 사람의 피를 먹어요. 물론 뱀파이어처럼 깔끔하게 목에 구멍만 내는 게 아니라 아예 목을 잘라서 피를 빨아먹는 거지만요.”

안효정이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은 얼굴로 설명을 보태었다. 뭐야, 그렇게 해맑게 웃는 얼굴로 무서운 이야기 하지 마.

“그럼 무덤을 찾아야 하는 겁니까?”

“글쎄. 보통의 경우라면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깊은 동굴 같은 곳으로 관을 옮겨놓고 낮에는 거기에서 지내겠지만 여기에 그런 곳이 있을지. 어쨌든 무덤이고 관이고 동굴이고 간에 일단 찾아봐야지.”

요괴가 득시글거리는 섬에서 중국식 뱀파이어를 찾아 헤매게 생겼다.

“그런데 자네 혼자 괜찮겠나?”

추기영이 문득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저씨. 왜 걱정하는 대상이 나죠? 괴물이 나타나면 첫 번째로 희생자가 될 것 같은 젊고 몸매 좋은 아가씨를 놔두고. 아저씨 산에서만 살아서 공포영화 안 보셨죠. 아니, 생각해 보니까 공포영화에서 마지막 생존자는 보통 여자였구나.

“저래 뵈도 해명도령은 기완 사형과 싸워서 이긴 적이 있어요. 무력에서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을 거예요.”

안효정이 말했다. 그런데 강시에게는 무력이 안 통한다며. 그리고 어째서 무력에서‘라면’인가요. 연결어미가 아니라 보조사를 써야 하지 않습니까? 무력에서‘도’라고 정정해주세요!

그건 그렇고 기완이라면 호랑이가 섞인 태령 윤문의 그 남자다. 그와 사형제지간이라면 안효정 역시 기완과 비슷한 수련을 받은 걸까. 하긴 산을 오르내릴 때의 가벼운 몸놀림이나 규칙적인 운동으로 다져진 듯한 몸을 보면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생각하니 여기 모인 세 사람은 모두 몸으로 때우는 타입인 것 같다.

그렇게 몸으로 때우는 세 사람은 각자 세 방향으로 흩어져 산을 수색했다.

파헤쳐진 흔적이 있는 무덤, 관, 눈에 잘 띄지 않는 동굴. 그런 것을 찾아 눈을 부릅뜨고 돌아다녔지만 강시는커녕 요괴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담당한 곳을 모두 뒤져도 헛수고로 끝나고 약속한 장소에 갔더니 두 사람 역시 돌아와서는 고개를 흔든다.

아무 것도 찾지 못한 것이다.

“범위를 넓혀야 하나.”

추기영이 중얼거렸다.

“그것도 그렇지만 왜 다른 요괴들과 달리 흑흉만 이곳을 벗어나 별장으로 간 걸까요. 차라리 별장에서부터 흔적을 쫓아 거슬러 가는 편이 빠르지 않을까요?”

안효정의 물음에 추기영은 거뭇한 수염으로 지저분한 턱을 만지작거렸다.

“가능성이 높아서 흑흉을 찾고 있지만 실종사건이 반드시 강시의 소행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어. 오히려 시체조차 발견되지 않은 걸 보면 다른 방면에서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고. 섬이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굳이 여기에 저택을 지은 이유는 뭔지, 이 지경이 되도록 떠나지 않는 까닭은 뭔지, 궁금한 것은 산더미 같지만 이것들을 모두 알아내기 전에 단정 짓지는 말도록 하세. 그런 것은 별장에 남은 사람들이 알아봐 주겠지. 우리는 여기에서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고.”

저 둘은 강시의 흔적을 찾으면서 저런 것도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아무 생각 없이 강시만 찾고 있던 내가 단순하다고 느껴지네.

“그럼 이번에는 산을 넘어서 북동쪽으로 가볼까. 역시 귀문(鬼門)을 먼저 확인하는 편이 좋겠지.”

추기영의 말에 따라 우리는 그곳을 벗어났다. 산비탈을 올라 북동쪽 정상을 넘자 이 말이 지금 어울리는지 모르겠는데 ‘산 넘어 산’이었다. 섬의 북동쪽은 전체적으로 지대가 높고 산으로만 이루어진 것 같다. 해안 쪽에는 집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안효정이 추기영을 힐끗 돌아보았다. 눈을 맞추는 걸 보니 둘 다 뭔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뭐가 있다는 거지? 내 눈에는 나무가 울창한 산만 보일 뿐인데. 그러니까 아주, 굉장히, 대단히 울창한…한 곳이 있었다.

유독 나무가 웃자라고 그 위로 칡넝쿨이 지붕처럼 뒤덮고 있는 곳이 보였다. 나무들이 어찌나 큰지 그 부분만 산자락이 평평하게 보였다. 거기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뒤덮고 있는 칡넝쿨 때문에 나무 아래는 시커멓게 어두웠다.

추기영을 선두로 우리는 그곳을 향해 갔다. 가까이 가자 확실히 공기가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의 나무는 훨씬 생기가 강했다. 햇빛이 가려져 컴컴하기도 하고 기온도 어쩐지 뚝 떨어진 것 같다.

한 줄로 나무 아래를 천천히 걷고 있으려니 갈수록 빛이 옅어졌다. 이런 곳이라면 있을 것도 같은데. 강시인지 흑흉인지.

안효정의 뒤에서 걷던 나는 문득 등 뒤가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고 돌아보았다. 나무 사이에서 희끗한 것이 보였다. 집중해서 보자 흰 소복을 입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젊은 여자가 이쪽을 원망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싶어 마주보자 갑자기 휙 사라진다.

“뭘 손말명 같은 것에 놀라고 그래요?”

안효정이 나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 놀랐다기보다는 저런 고전적인 처녀귀신은 처음 봐서 구경한 거지. 그러나 이미 안효정에게 나는 ‘힘만 센 사이비 무당’정도의 이미지가 생긴 것 같다. 쳇.

처녀귀신이 있어서 그런가. 안효정의 앞으로 뭔가가 후다닥 지나가는데 얼핏 봤지만 젊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 손말명이 있으면 몽달귀신도 있어야겠지.

그리고 다음으로 나타난 것은 작은 털복숭이였다. 크기는 생쥐 정도인데 네 발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는 주제에 두 발로 조르르 달리고 앞발은 팔처럼 흔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영장류의 모습은 아니다. 개인지 쥐인지 모를 머리에 짙은 회색의 털로 뒤덮인 통통한 몸을 갖고 있었다.

녀석은 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서 점점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러다 마침내는 펄쩍 뛰어서 추기영의 발목에 매달렸다. 그러더니 사뭇 사나운 태도로 그의 신발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조그만 게 성격이 안 좋은 요괴다.

추기영이 신경 쓰지 않고 휙휙 걷자 재미없는지 떨어져 나가 이번에는 안효정의 신발로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발목에 이빨을 세웠다. 물어뜯기 직전에 내가 발길질로 녀석을 떨어뜨렸다.

“때리지 말아요!”

내가 움직인 것과 함께 안효정이 외쳤지만 늦었다. 발길질에 날아간 털복숭이가 나무에 부딪쳤다가 몸을 흔들면서 발딱 일어났다. 멀쩡하게 일어난 것뿐 아니라 몸이 좀 더 부풀어 오른 것 같았다. 생쥐 크기였던 게 집쥐 크기로?

“조마구예요. 때리면 커지는 거 몰라요?”

몰라요. 이래서야 힘만 센 사이비 무당 취급을 받아도 어쩔 수 없겠구나.

조마구는 나를 향해 달려들더니 바지에 달라붙어서 내 발목을 꽉 깨물었다. 물론 녀석의 이빨은 옷만 뚫고 들어왔을 뿐이다. 귀찮지만 때리면 안 된다니 매달고 걷는 수밖에 없었다.

“원귀에 조마구라. 다음번엔 뭐가 나오려나.”

추기영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쩐지 기대하는 것 같은데, 과연 그의 앞에서 뭔가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의 형체였다. 가까워지자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젊은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느작거리는 얇은 옷을 입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리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황홀한 선이 드러났다 사라지고는 했다.

그녀는 가는 허리를 흔들며 다가와서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붉은 입술을 당겨 웃는 순간

“보지 말아요.”

안효정이 내 눈을 가리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겹쳐 뭔가 무거운 것이 물과 함께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봐요, 안효정씨. 가리려면 제대로 가려줘. 손가락 사이로 다 보이잖아! 뒤늦게 눈을 질끈 감았지만 이미 늦었다. 고개를 돌려 바닥을 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내가 물었다.

“저건 도대체 뭡니까?”

안효정이 키득거렸다.

“신기원요(伸妓寃妖)라고 하는 거예요. 별로 해를 끼치는 건 아니고 혼자서 몸이 여섯 조각으로 잘리는 것뿐이죠. 내버려 두면 다시 붙어요. 이건 정말 보기 드문데 우리가 운이 좋네요.”

운은 개뿔! 내가 아침마다 부서지는 유리 장식도 보고 창고에는 깨졌다 도로 붙는 화병도 갖고 있지만 그게 사람이 여섯 조각으로 썰리는 광경이랑은 다른 거잖아!

“옛날에는 이걸 만나면 미치거나 놀라서 죽는 사람이 많았다고 해요. 뭐 요즘에는 워낙 영화라든가 익숙해져서 심장마비로 죽는 사람이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PTSD 정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무서운 거거든?

“쉿.”

가장 앞에서 걷던 추기영이 한 손을 들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웃으며 잡담하던 안효정이 입을 다물며 안색을 바꾸는 걸 보니 그녀 역시 나처럼 뭔가를 들은 것 같다.

날카롭고 가늘고 길게 이어지는 소리가 저 안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뭐지?

눈을 감고 집중하며 귀를 기울이고 있던 안효정이 이마에 주름을 지었다.

“휘파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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