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에(8)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과연 그렇게 들린다.
좁은 틈 사이로 바람이 길게 지나는 소리. 끊어질 듯 이어지는 높고 가는 울림이었다. 잘 들어보면 고저장단이 있어 노래인 것 같기도 하고, 그냥 거센 바람이 하늘을 휘도는 소리 같기도 했다.
“설마 그러려고…”
안효정이 중얼거렸다. 짚이는 것은 있지만 믿어지지 않는다는 투다.
추기영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조금 전까지와 같은 느긋한 태도는 아니었다. 보폭이 약간 줄고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가벼운 걸음이다. 겉으로야 그렇게 보이지만 그의 몸 안에서 조용히 운행하던 기운이 맹렬하게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효정도 마찬가지였다. 입으로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으면서 추기영을 따라가는 뒷모습이 칼처럼 예리했다. 다른 사람들이 저러고 있으니까 나도 저절로 긴장이 되기는 한다만 앞에 뭐가 있는지 알아야 말이지.
걸음을 옮길수록 휘파람 소리는 점점 크고 선명해졌다. 처음에는 하나라고 생각했던 소리가, 가까워지자 여러 개의 작은 소리들이 합쳐져 들려온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휘파람 소리를 내는 것의 정체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뭔지 크다. 클 뿐 아니라 그 모습도 기괴했다. 얼핏 봐서는 나무처럼 보였다. 수백 년 묵은 거대한 고목이 나뭇잎 하나 없이 빈 가지만 펼치고 있는 것 같았다. 울퉁불퉁한 둥치는 열 명쯤 되는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려야 할 정도로 굵었고 그 둥치로부터 거미줄처럼 뻗은 가지는 갈라지고 비틀어지며 점점 얇아졌다.
그러나 가까워지자 나는 저것이 정말로 나무인가 의심스러웠다.
전체적인 모습이 나무와 같지만 그 나무를 이루는 것들은 아무리 봐도 동물들이었다. 곰이나 말, 호랑이나 소 같은 큰 짐승 수십 마리가 서로 붙고 얽혀서 커다란 둥치를 이루고, 거기에서부터 사슴, 양, 돼지 정도의 짐승들이 비틀리고 늘어진 모양으로 뻗어 나왔다.
여우, 삵쾡이, 개, 토끼와 너구리, 담비와 다람쥐, 큰 짐승으로부터 작은 짐승까지. 그것들이 서로 얽히고 꼬이고 비틀어지고 비정상적으로 늘려져서 나무의 가지를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물이라고 하기에 그것들은 이미 반쯤 나무가 되어서, 어느 짐승이나 털가죽 대신 나무껍질처럼 거친 가죽을 가지고 있으며 뒤룩뒤룩 움직이는 눈알도 광채가 없는 회갈색이었다.
나무의 일부가 된 짐승들이 괴로운 듯 입을 벌리고 눈알을 끔벅거렸다. 휘파람 소리는 그것들의 목으로부터, 마치 허파를 쥐어짜서 억지로 내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날카롭게 새어나왔다.
“뭐야, 이건…”
그 기괴한 광경에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우리가 이런 곳에 왔구만 그래.”
추기영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돌아가요.”
안효정이 속삭였다. 혼령이나 요괴들을 지나치면서도 여유 있던 모습은 이제 없었다. 안효정이 약간 질린 얼굴로 뒤를 힐끗거리며 말했다.
“저걸 상대할 무기가 지금 없어요. 원강이나 백은호씨가 있다면 모를까.”
“우리야 가야겠지만 저것이 보내주려나.”
추기영의 대꾸에 동의한다는 듯이, 나무를 이루고 있는 동물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우리 쪽으로 굴렀다.
휘유우우우우 -
길게 끄는 휘파람소리가 합창처럼 들려왔다. 그것에 응답하듯 주변의 나무들이 우르르 가지를 떨었다. 이파리가 서로 비벼대고 부딪치며 소낙비가 쏟아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지나온 길이 더욱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그런지도 모른다. 우리의 뒤에서 끽끽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무들이 휘어지고 있었다. 추기영이 그것을 보고 혀를 찼다.
“저런 것도 할 수 있었나?”
“누가 알겠어요. 저도 기록으로밖에 본 적이 없는데.”
그러니까 저게 뭔데요. 아니다. 지금 그런 걸 궁금해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휘어진 나무가 서로 엇갈려 겹치면서 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마치 나무로 바구니를 짜는 것 같았다. 옆과 위가 순식간에 막혔다. 열린 길은 저 괴상한 나무로 향하는 방향뿐이다.
“뚫을 수 있겠어요?”
안효정이 나무의 벽을 가리키며 나에게 물었다. 힘 쓰는 일은 접니까?
뭐 불평할 일은 아니지. 지금 내가 할 만한 일은 그 정도인 모양이니. 한 아름쯤 되어 보이는 나무 둥치를 향해 있는 힘껏 발차기를 날렸다. 둥치에 부딪친 발이 쩡 울리는 느낌과 함께 반대편으로 튕겨나갔다. 부딪친 곳이 욱신거렸다. 나무는 껍질이 조금 벗겨졌을 뿐이다.
자만이 아니라, 방금의 발차기라면 20센티 콘크리트벽에 균열을 낼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나무라면 콘크리트에 비해 탄력이 좋겠지만 이만큼의 힘을 버틸 수는 없었다. 나무라면.
“이거 요괴인가?”
“그럼 평범한 나무가 혼자서 움직이겠어요? 귀목의 영향을 받고 있어요.”
안효정이 쏘아붙이듯 말했다. 아무리 요괴 버프가 있다고 방어력이 이렇게 사기적으로 높아지나. 그럼 부러뜨릴 수 없다니 밀어내 볼까.
바닥을 차고 단번에 도약해 나뭇가지 위로 올라간 나는 한 번 더 뛰어올라 그물처럼 하늘을 가리고 있는 칡덩굴에 매달렸다. 거기에 발을 걸어 몸을 버티며 나뭇가지와 칡덩굴이 씨줄과 날줄처럼 서로 엇갈린 것을 양손으로 억지로 벌렸다. 틈이 생기면서 나뭇잎 사이로 바깥의 빛이 조금 들어왔다. 바깥도 어차피 흐린 날씨였지만 안이 어두웠던 터라 순간 눈이 부실 정도다.
좋았어. 라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 발목으로 뭔가 스륵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빼내려고 했지만 늦었다. 단단한 밧줄과 같은 것이 발을 옭매고 끌어당겼다.
“조심해요!”
안효정이 아래에서 외쳤다. 그런 말을 안 들어도 조심해야 한다는 건 이미 알았다고. 마치 뱀의 대가리처럼, 꼿꼿이 서서 나를 노리고 있는 칡덩굴이 보였다. 발이 이미 붙잡혀 거꾸로 매달린 상태였다.
달려드는 순간 힘껏 상체를 끌어올렸으나 칡덩굴은 눈이 달린 것처럼 나를 뒤쫓았다. 막으려고 내민 손에 덩굴이 휘감겼다. 조이는 힘도 당기는 힘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단숨에 찢어버릴 것 같았다. 그것을 버티며 두 사람에게 외쳤다.
“위에 틈을 만들면 나갈 수 있겠어요? 덩굴이 공격하는 걸 피해서.”
추기영과 안효정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최대한 가까운 곳에 대기해요. 틈은 3초 정도라고 생각하고.”
내 말에 추기영이 근처의 나무를 타고 오르고, 안효정은 위치를 가늠하듯 두리번거리다 내 비스듬히 아래쪽에 자리를 잡았다.
발과 손을 휘감은 칡덩굴들이 꿈틀거렸다. 좀처럼 마음대로 묶을 수 없어서 화가 났는지 나뭇가지 사이에서 파닥거리고 있었다. 이 요괴도 성격이 안 좋네. 하지만 있는 힘껏 당기면 다시 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까는 발목이 감기는 바람에 놀라서 힘을 빼버렸지만.
나를 좌우로 찢어버리고 싶은 듯이 양쪽으로 당기는 덩굴에 대항해 팔을 모으고 상체를 끌어올렸다. 덩굴과 나뭇가지 사이로 손을 밀어 넣은 다음 숨을 들이쉬었다. 집중해서 팔에 힘을 주는 순간 안효정이 움직였다. 그녀의 가벼운 발소리가 바닥에서 세 번, 바닥에서 꽤 높은 둥치에서 한 번 울렸다.
힘을 다해 덩굴과 나뭇가지를 확 벌리며 그대로 허리를 폈다. 뒤집어진 시야에 둥치를 차고 허공에 떠오른 안효정의 모습이 보였다. 비스듬히 뛰어오른 몸이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았다. 마치 무게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체공술로 몸을 틀더니 틈 사이를 날렵하게 빠져나간다.
그녀가 막 틈 사이에 끼어든 순간 나뭇가지에서 뛰어오른 추기영이 다시 겹쳐지려는 가지 사이로 몸을 날렸다. 서커스처럼 간발의 차로 뒤따라 나간 그가 내 발을 잡으려고 팔을 뻗었다. 그러나 이미 덩굴과 나뭇가지들이 다시 촘촘하게 그물을 짠 뒤였다.
다시 한 번 힘을 써야하나 생각하는데 날카로운 기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파도 같은 기운의 파문이 전신을 덮쳤다. 이미 나무의 벽에 부딪쳐 한 번 흐트러지고 난 후인데도 진동이 내장을 쓸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몸을 감고 있던 덩굴이 풀어지고 하늘을 가리던 나뭇가지가 크게 출렁이며 틈을 보였다. 그 틈사이로 들어온 손들이 나를 끌어당겼다.
끼이아아아아 - !
등골이 섬뜩해지는 소리가 괴목으로부터 울려 퍼졌다. 귀가 아니라 온몸을 쏘는 듯한 소리였다. 나를 당기던 손 하나가 움찔 굳는 것을 느꼈다. 다른 손과 스스로의 힘으로 이미 빠져나왔지만 굳은 손이 내 어깨를 꽉 잡은 채 꿈쩍도 안 했다. 추기영이었다. 그가 초점을 잃은 눈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추선생님!”
안효정이 그를 잡고 흔들었다. 그 사이 공격에서 회복되기 시작한 칡덩굴들이 다시 꿈틀거렸다.
“내려가요! 여기에서 벗어나야 해요!”
안효정이 외치면서 덩굴을 피해 몸을 굴렸다. 급하니 어쩔 수 없었다. 추기영을 끌어안은 채로 나도 몸을 굴렸다. 잔가지 위에 덩굴이 덮인 상태라 걷는 것은 무리였다. 천막 위를 구르는 기분이었다. 몇 차례나 구른 끝에 몸이 아래로 뚝 떨어졌다. 간신히 내 쪽이 아래로 떨어지게 할 수 있었다.
그럭저럭 벗어난 셈인지, 덩굴은 더 이상 우리를 쫓아오지 않았다. 겹쳐진 채로 쓰러져 있는 우리를 향해 안효정이 다가왔다. 농담이라도 던질 줄 알았지만 정색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한 손에 뭔가 들려있는 것이 보였다.
작고, 뾰족한 모양의……칼?
거무죽죽한 색에, 분명히 칼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날의 길이는 고작해야 15센티 정도밖에 안 되겠지만 그 길이로도 충분한 무기였다. 아까 무기 없다고 하지 않았어?
다가온 안효정이 칼끝을 추기영에게 겨누었다. 목이었다. 그녀는 추기영의 목덜미, 경동맥이 지나는 바로 그곳에 칼날을 지그시 눌렀다가 야무지게 옆으로 휙 그었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추기영의 몸이 부르르 떨었다.
“후으읍…”
힘껏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추기영의 몸 안에서 다시 기운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괜찮으세요?”
칼을 거둔 안효정이 그제야 웃는 얼굴을 하며 물었다. 추기영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아, 덕분에. 그런 걸 가지고 있었나?”
“예. 귀목에게는 소용없겠지만 귀목에게 당한 사람에게는 확실히 효과가 있죠.”
그녀가 손 안의 칼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무슨 영문인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 전에…
“제 위에서 좀 비켜주셨으면 하는데요.”
추기영에게 깔린 채로 눌려있는 내 말에 그가 작은 소리로 웃었다.
“미안한데 아직 몸을 제대로 못 움직이겠네.”
이 아저씨가 살려놓으니까 나를 침대 취급 하시네. 나는 추기영을 옆으로 밀어버리고-나도 도움을 받은 걸 고려해서 살짝 밀었다. 한 바퀴만 굴러갈 정도로.- 일어났다.
“그 칼은…?”
가까이서 제대로 보니 나무로 만든 칼이었다.
“복숭아나무로 만들었어요.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 가지는 귀신을 쫓는 효험이 있어요. 귀목 때문에 정신을 잃은 사람을 깨울 수도 있고요. 귀목은 자신을 해치려고 하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요. 거기에 당했을 때 이걸로 목을 베는 시늉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정신을 차리죠.”
그녀가 추기영의 목에 칼을 겨눴을 때 악의가 없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버려 두기는 했지만 참 별 걸 다 아는 여자다. 게다가 저 칼은 어디에서 나온 거지. 몸에 붙지 않는 헐렁한 옷은 어쩌면 저런 걸 숨기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까 그 나무가 귀목인가요?”
추기영이 움직이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고, 내내 궁금했던 거라 내가 물었다.
“그렇게 부르지만 별명에 가깝고. 이름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이름을 붙여야 할 만큼 자주 나타나는 게 아니라서요.”
안효정이 칼을 소매 안으로 넣으며 대답했다. 이제 뭐 내가 모르는 건 당연해서 한심해 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설명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용재총화 같은 책에 잠깐 등장하는 정도예요. 장화훤요(張火喧鬧)라고 해요. 불을 밝히고 시끄럽게 떠든다는 뜻인데 밤중에 보면 빛을 내기도 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흐린 날에는 휘파람을 불기도 한 대요. 모습은 봤겠지만 동물들이 뒤엉킨 것 같은 모양이고. 저도 아는 건 그게 전부라 휘파람 소리를 듣고 설마 했지만 정말 보게 될 줄은.”
“그렇지? 거의 5백년 만에 처음으로 나타난 건지도 몰라. 야아, 이거 우리들, 역사서에 실릴 경험을 한 건지도 모르겠는걸.”
추기영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꼼짝 못하고 누워있으면서 여유만만이셔. 그리고 누가 역사책에 이런 요괴 이야기를 써요.
“어쨌든 천하장사인 도령 덕분에 살았네. 아니었으면 싸울 방법도 없이 갇혀서 누가 구해주러 오기만 기다려야 할 판이었잖나.”
추기영이 칭찬하더니
“그런데 힘도 세니 나 정도 업고 가는 건 일도 아니겠지?”
라는 말로 칭찬값을 청구했다. 어휴….
결국 그를 업은 채로 별장에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정말 몸을 못 움직이는 거 맞나요? 어째 등뒤에서 매우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