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에(13)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이 사람이 정말로 조금 전의 그인가. 뼈 위에 가죽만 달라붙어 있는 것 같던, 퀭하니 들어간 눈두덩에서 눈알모양 툭 튀어나온 살이 파르르 떨던, 고목처럼 말라붙은 입 안에서 썩은 내를 풍기던.
바로 그인가 싶을 정도로 달라진 남자가 눈앞에 있었다.
색이 어둡고 윤기가 흐르는 피부에 각진 턱과 굵은 목이 강인하게 느껴지는 남자였다. 눈썹이 짙고 입술은 두툼했다. 정신이 들면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보겠지만 아직 깨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몸 안에 흐르는 기운은 안정되고 운행이 활발했다. 그냥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여자아이가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칭찬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소녀는 내 손을 잡고 당겼다. 이번에는 방을 나선다. 소녀가 걸을 때마다 잘그락 잘그락 소리가 났다. 잘그락 잘그락. 여자아이가 옆방으로 나를 데려가자 추기영이 이불과 매트를 내던지고 판자까지 뜯어놓은 침대 옆에 서 있다가 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시선이 내 옆의 소녀에게 닿았으나 뭐라 말하기도 전에 우리는 그를 휙 지나쳤다.
이쪽 방의 침대 안에도 미라처럼 말라붙은 사람이 있었다. 머리카락이 길어서 여자라고 생각하지만 뼈 위에 가죽만 덮여있는 얼굴은 조금 전 그 남자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여자아이가 다시 내 손을 그녀 위에 얹었다.
가여운 것을 내려다보는 소녀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나도 함께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숨은 약하게나마 붙어있으나 혼은 저승과 이승의 경계에서 헤맸다. 이리 와라, 얘야. 여기로 오너라.
나는 속삭였다. 머리를 쓰다듬고 볼을 어루만졌다. 쭈글쭈글하던 이마가 펴지고 볼이 통통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았다. 손바닥에 닿은 살에서 온기가 돌아오는 것을 느끼고 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커지는 것을 들었다. 여자아이가 나를 보고 또 한 번 웃었다.
그 웃는 얼굴을 사랑했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이름이 뭐였더라. 그러나 생각해낼 수 없어서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우리는 다시 다른 방으로 가서 미라처럼 변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혼을 불러 돌이켜 놓고, 그 몸과 기운을 되살렸다.
원강이 멍하니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나 백은호가 두려운 낯으로 뒷걸음치는 것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산보하듯이 복도를 걷고 숨바꼭질 하듯이 침대 안의 사람들을 찾아보고 놀이 동무를 부르듯 그들을 데려왔다.
마침내 마지막 사람을 돌이켜 놓자, 여자아이가 마지막으로 나를 향해 웃었다. 잘그락거리는 웃음소리가 났다. 잘그락 잘그락. 웃으며 소녀는 그 자리에 유리조각이 되어 쌓였다.
나는 유리조각 무더기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짧은 꿈에 취했다가 반만 깨어난 것 같았다. 내 손에 잡혔던 소녀의 작은 손을 떠올리며 유리조각을 한 움큼 쥐어보았으나 그것은 차갑고 매끄러운 유리조각일 뿐이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내가 그 아이를 뭐라고 불렀더라. 입속에서 이름이 간질간질 혀에 붙어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다른 이들은 깨어난 사람들을 모아 1층으로 내려갔다.
우리가 오기 전에 실종되었다던 여섯 명이 모두 별장 안에 있었다. 소름끼치게도 손님방에 우리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 다들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멍했다가 잠시 후에는 맹렬한 허기를 느꼈다. 요괴의 주술에 묶여 누워있는 동안에 아무 것도 먹지 못했을 테니 그럴 만했다.
그리고 식사라면 우리도 시간이 되기는 했다. 어느새 날이 저문 것이다.
괴사의 배후인 요괴는 놓치고, 이제 밤이라 요괴가 날뛰기 좋은 때가 되었는데 한가하게 밥이나 먹고 있어도 되나 싶지만 별장의 모든 사람들이 식당에 모였다. 총 열여섯 명. 굴러다녀도 좋을 정도로 크고 넓은 식탁이 부족할 정도의 숫자였다. 식당이 사람들로 꽉 찼다.
별장에서 일하는 두 사람은 요리사가 없어 죄송하다며 점심때 남은 음식으로 식사를 준비했다. 어제 오늘 식탁을 가득 채운 음식을 만들었던 요리사는 뱀요괴가 되어 달아나버린 것이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밥과 간소한 반찬만 차려진 식탁 앞에서 허겁지겁 먹었다.
별장에서 일하던 세 사람과 이 섬으로 불려왔다 실종되었던 세 사람 모두 잠들어 있던 동안의 기억이 없을 뿐이다. 다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가장 오래 된 사람은 거의 50일 가까운 시간을 누워있던 셈이었다. 굶어죽지 않은 것은 요괴의 힘이라고 해도 나는 어떻게 저 사람들을 감쪽같이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수가 있었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만 나를 보며 웃던 여자아이가 누구인지 내가 어째서 그런 힘을 가질 수 있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고민하며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모르는 사람이 한 명 섞여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은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모른다고 하기에는 또 어딘지 낯이 익은 얼굴의 노인이었다. 식탁 한 쪽에 앉아 불안한 얼굴로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60대 후반쯤. 반백의 머리에 인중이 길고 턱이 네모난 저 얼굴을 어디서 본 걸까. 최근인 것 같은데.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자 최근에 본 사람들 중 지금 이 자리에는 없는 한 명이 떠올랐다. 그 남자다.
3층에서 묘란과 함께 있던 남자. 물론 그 남자는 20대 초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젊은이였지만 이목구비가 확실히 닮아있었다. 이 노인이 젊었을 때면 그런 얼굴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나 말고도 섬에 불려온 사람들 모두 노인을 주시하고 있었다. 안효정과 추기영이 눈짓을 나누는 걸 보니 나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게 아닌 모양이다.
입구 옆에 서있던 원강이 사람들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식당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가 첫날 노인이 앉아있던 상석으로 가서 우리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오랫동안 허기진 여섯 명 외에는 의자에 앉거나 벽에 기대어 선채로 원강을 주시했다.
“우리 모두 물을 것도 많고 들을 것도 많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질문은 묘란이 최종적으로 원하는 것이 뭔가 하는 거겠지. 섬은 아직 묘란의 결계에 갇혀 있고 그 요괴가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우리는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지조차 불확실한 지경이니 말이야. 그것에 관해 아마 우리에게 할 말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원강의 뒷말은 노인을 향한 것이었다. 제정신을 찾은 정호섭과 일하는 사람 두 명에게 둘러싸여 있던 노인이 그 말에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가 일어서자 정호섭이 재빨리 팔을 잡고 부축했다.
노인은 어두운 안색으로 우리를 한차례 돌아보았다. 하나하나 시선이 맞부딪칠 때마다 사람들의 눈에 담긴 질문이 노인에게 쏟아졌다. 당신은 누구인가. 요괴가 원하는 것은? 집주인인 노인은 어디로 갔는가. 그는 무슨 생각으로 우리를 여기로 불렀는가.
“내 이름은 윤갑수요. 내가 이 섬, 이 집의 주인이올시다.”
노인의 말에 식당은 기묘한 정적에 휩싸였다. 이 사람이 어제 우리가 만난 그 왜소한 노인이라는 뜻인가? 아니면…
우리의 생각을 아는 듯이 노인이 말을 이었다.
“여기 온 사람들은 모두 내 행세를 하는 놈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봤을 거요. 요괴인지 사람인지 모를 지경이 되어서 나를 가두고, 요괴와 한 편이 되어 이 섬을 지옥도로 만들어놓은 그 놈이 내 아들놈이오.”
노인은 울컥 뱉어내듯 말했다.
아들이라고? 이 자리에 있는 노인보다도 20년은 늙어 보이던데.
“그놈은…”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을 멈추었다. 고개를 숙인 노인의 입술이 볼과 함께 실룩거렸다. 어디가 아프거나 불편한가 생각했다가 뒤늦게 그가 울음을 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주름진 손으로 무릎을 꽉 움켜쥐면서 노인은 입술을 깨물어 울음을 참았다.
“그놈은 죽어가고 있었소. 췌장암 따위에 걸려서, 발견했을 때는 너무 늦어 손을 쓸 수가 없었소. 별 짓을 다해도 소용이 없었단 말이오. 내가 돈으로 산을 쌓으라면 산을 쌓고, 강을 메우라면 강을 메웠을 테지만 그 많은 돈으로도 죽어가는 아들을 살릴 수가 없었소. 내가 그래서…”
그래서 결국, 그는 다른 길을 찾아냈다. 넘봐서는 안 될 경계 너머에서 그릇된 힘을 다스리는 자를 만났다. 그것이 묘란이었다. 아들을 살리는 대가로 그녀가 원한 것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외진 땅이었다. 그는 기꺼이 만들어주었다.
바다 한 가운데에 외따로 떨어진 섬을 찾아내 몇 남은 사람들에게 큰돈을 주고 내보냈다. 섬을 산 다음에는 아들을 위한 궁전 같은 별장을 지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아들을 위해 그가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했다. 스무 살을 훨씬 넘은 아들이었지만 그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아들이며 어린 왕자였다.
사업이며 바깥일들은 다른 자녀들에게 모두 넘겨버리고, 그는 막내와 함께 섬으로 들어왔다. 가족들에게는 휴양이라고 말하고 방해가 되니 아무도 못 오게 했다. 그것도 묘란의 요구였다.
“처음에는 정말로 상태가 좋아지는 것 같았소. 항암치료 때문에 여윈 몸에 살도 붙고, 혈색도 좋아지고, 꼼짝 못하고 누워만 지내던 놈이 걷기도 했소. 그리고 잘 먹었지. 대식가처럼 먹었소. 자식놈 입안으로 음식이 들어가는 게 얼마나 보기 좋은지, 내가 그 모습에 눈이 멀어서 그 여자가 달라는 건 뭐든 줬소.”
처음 몇 달 동안은 별로 대단한 것을 원하지 않았다. 묘란은 요리사로 위장해 별장에 들어와서 온갖 음식을 만들어냈다. 그녀가 바란 것은 요리에 쓸 좋은 식재료 정도였다. 아들의 몸이 점점 나아간다 싶자 다음으로 그녀는 묘한 것을 주문했다. 2층과 3층의 개조가 그것이었다.
무슨 속셈인지 영문을 몰랐지만 아들이 깨끗이 나아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에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시키는 대로 했다. 방을 개조한 다음에 요구한 것은 살아있는 동물이었다.
쥐나 토끼 같은 작은 동물로 시작해서 고양이, 개, 염소로 점점 커지다가 나중에는 소나 말을 필요로 했다. 열흘에 한 마리 꼴로 동물을 가져다가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모르게 사라졌으나 노인은 묻지 않았다. 동물을 갖다 주면서 아들이 놀랄 정도로 건강해졌기 때문이다.
항암치료로 빠졌던 머리가 새까맣게 돋아나고 몸에 근육과 살이 단단히 올랐다. 걸을 때면 어기적거리고 뻣뻣하게 움직였어도 힘은 오히려 전보다 세지고 무엇보다 잘 먹었다. 아무리 먹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피부가 예전보다 창백해지고 좀처럼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 말고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
“돼지고 소고 그런 거야 하루에 열 마리를 갖다 줘도 좋으니 회복할 수만 있다면 바랄 것이 없었소. 그런데 어느 날, 내가 그것을 봤소. 내 눈으로 봐 버렸소…”
노인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었다.
깊은 밤이었다. 노인은 그날따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침대에서 뒤척이다 일어나 창문을 열고 멍하니 어두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위층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노인의 방은 일층에 있었다. 섬에 온 후로 다리가 불편해져서 고용인들이 쓰려고 만든 일층의 작은 방에서 지냈던 것이다. 아들의 방은 3층이었는데 묘란은 그의 옆방을 쓰고 있었다. 별장의 모든 사람들은 치료에 방해가 되니 밤에는 3층으로 올라오지 말라는 주의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노인도 밤이 되면 3층으로 간 적이 없었다.
하지만 뭔가 소리가 들려오자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호기심이 노인을 들쑤셨다. 그녀는 아들을 어떻게 치료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었다. 결과를 눈으로 보고 있어 불만은 없지만 그렇다고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 여자는 놀라울 정도의 미인이었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아들의 옆방에 있으면서 밤중에는 아무도 올라오지 못하게 했다. 누구라도 묘한 상상을 하게 된다. 사실 노인으로서는 그녀와 아들이 어떤 관계가 되든 상관없었다. 아들이 나을 수만 있으면 만족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신기한 능력을 가진 여자가 아들과 친밀해진다면 더욱 좋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잠들지 못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노인은 호기심에 떠밀려 방을 나섰다. 그리고 맨발로 조용히 계단을 올랐다. 무릎이 아픈 것을 참고 한발 한발 올라서 3층의 아들 방 앞까지 갔다. 문 앞에서 귀를 기울였다. 방에서 들었던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츠읍, 츠르릅 하고 입술을 모아 뭔가를 빨아들여 마시는 소리였다. 이따금 작은 웃음소리가 들리거나 질퍽거리는 것이 바닥을 치는 소리가 났다.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기에 노인은 방에 아들과 묘란이 함께 있다고 생각했다.
한밤중에 젊은 남녀가 함께 있다면 떠오르는 상상이라고는 뻔하지 않은가. 그는 걸음을 돌이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1층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아무 것도 몰랐다. 하지만 불이 켜진 복도로 왔을 때 자신의 발이 바닥에 붉은 자국을 남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발을 내려다 본 그는 깜짝 놀랐다. 발바닥과 발가락은 물론 바지의 끝단까지 붉게 더럽혀져 있었다. 어디에서 이런 것이 묻었을까. 뒤를 돌아보니 걸어온 길에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보폭만큼의 길이로 찍혀 있었다. 그것을 따라 다시 3층으로 올라간 그는 아들의 방 문틈으로 새어나와 복도에 흥건히 고인 붉은 웅덩이를 발견했다.
무슨 정신으로 방문을 열었는지 모른다.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간 그는 침대 위에 아들이, 아니 아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뱀과 같은 긴 몸통에 휘감긴 채로 목이 없는 염소의 시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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