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에(14)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끔찍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에게 뱀의 몸을 가진 요괴나 동물의 사체에서 피를 빨아 마시는 모습을 보는 일이란. 더욱이 입 주변과 앞섶을 빨갛게 물들이며 염소의 몸통을 틀어쥐고 있는 사람은 아들이었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막내아들이었다.
그때의 충격을 되살린 노인이 말하다 말고 이를 악물면서 부르르 떨었다. 나이에 비해 아직 혈색이 좋은 얼굴에 진땀이 돋아나 번들거렸다.
“그제야 깨달았소. 내가 아들을 살린답시고 말도 안 되는 것을 불러들였다고. 하지만 늦었지. 너무 늦었소.”
그리고 그때부터 묘란은 본색을 드러냈다. 섬에 요괴가 모여들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묘란은 밤이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낮이 되면 별장으로 돌아왔다. 노인은 몇 번이나 아들과 이야기 해보려고 했다. 그런 흉악한 꼴을 보고서도 그는 아들이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었다고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들은 낮이면 창백한 얼굴로 잠들어서 좀처럼 깨어나지 않았고 밤에는 눈빛조차 바뀌어 요괴와 붙어 있었다. 더 끔찍한 것은 아들의 전신에서 자라나는 묘한 털이었다. 얼굴을 제외한 모든 곳에 거뭇거뭇한 털이, 마치 수염이나 머리카락인 것처럼 자랐다. 몇 달 후에는 온 몸이 긴 털로 뒤덮였다.
“살아있는 흑흉이라니…”
안효정이 중얼거리고 이야기를 듣던 다른 사람들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 모습이 되면서 성격도 완전히 바뀌어 버렸소. 짐승 같은 그런 것이 아니오. 말 그대로 괴물이 되어버린 거요. 사람을 보면 달려들어서 물어뜯고 피를 빨아먹으려고 했소. 믿을 수 없을 만큼 힘이 세서 아무도 막을 수 없었지. 요괴 말고는. 죽을 뻔한 사람도 있었소. 별장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무서워서 모두 떠나버렸소. 집사인 박씨와, 갈 곳이 없는 김씨만 남았소. 새로 사람을 들여도 한 달을 못 버텼소. 그런 모습으로 3년을 살았소.”
말하는 노인의 옆에서 정호섭이 배신감 섞인 충격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는 일한지 얼마 안 되어 여기까지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기는 우리가 구하지 않았다면 그 역시 다른 피해자들처럼 미라가 되었을 터였다.
정호섭은 그렇다지만 노인과 함께 김씨와 집사인 박씨는 이런 상황에서도 3년 넘게 이 섬을 떠나지 않았다. 떠나지 않은 건지 못한 건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노인이 지불했겠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리 많은 돈을 받더라도 죽을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며 괴물이 날뛰는 곳에 갇혀 살지 않는다.
“감옥 아닌 감옥생활이었지. 섬에서 나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소. 처음 섬에 왔을 때부터 하루에 한 번씩 여기 들러 주문한 것을 가져다주던 사람만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바깥세상의 전부였소. 자식들은 몇 달에 한 번 비서를 보내 인사를 전하는 것이 고작이었고. 다행인지도 모르지. 나를 보러 왔다가 무슨 꼴을 당하게 될지 어떻게 알겠소.”
그러다 처음으로 사람이 실종되었다. 잡일을 시키려고 고용한 이순영이었다. 자기 이야기가 나오자 밥그릇 바닥에 남은 밥풀을 싹싹 긁고 있던 이순영이 노인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깨어난 후로 그녀는 어리둥절한 채 자신이 한 달 반 동안이나 잠들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잠깐 자다 일어났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도 며칠 굶은 것처럼 배가고파 견딜 수 없는 상황이니까 혼란한 게 당연하겠지.
이순영 다음에는 묘란을 도와 주방일을 하던 조명혜였다. 이순영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는 매일 오는 배를 타고 도망간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조명혜까지 보이지 않자 노인도 눈치를 챘다.
묘란에게 따지자 그녀는 부정하지도 않고 외려 사람을 더 요구했다. 원박수를 부른 것은 박씨의 생각이었다. 일할 사람을 데려오겠다며 묘란의 허락을 받아 나간 그녀는 원주까지 가서 기다리는 손님들을 제치고 들어가 원박수에게 사정을 했다. 간절한 애원과 함께 내놓은 돈도 한 몫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원박수는 조건 하나를 걸고 승낙했다.
박씨와 노인이 그에게 크게 기대한 것은 사실이었다. 눈앞에서 요괴와 괴물을 보고 있는 그들이었다. 박수라는, 미지의 존재와 교류하는 사람이라면 뭔가 해결책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빈 밥그릇을 앞에 놓고 양손을 식탁에 모으고 있던 남자가 조용히 웃었다. 눈치로 봐서 원주에서 온 원박수가 그인 것 같았다.
그러나 원박수가 일다운 일도 해보지 않고 실종되자 그들은 기운을 잃어버렸다. 심지어 묘란은 비웃으며 그런 작자를 얼마든지 불러오라고 도발했다. 오히려 그런 자들이 더욱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세 번째 실종자 역시 박씨가 어디에선가 소개를 받고 데려온 남자였다. 겉으로는 경호원의 일을 하지만 인간 이외의 존재를 다루는 뒷일이 있다는 소문이었다. 겉으로도 듬직한 몸에 과묵한 성격이었다. 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듣고도 거리낌 없이 일을 맡았다. 그 모습에 한 번 더 기대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여기 오고 사흘째에 실종되었소. 소리도 없이 말이오.”
우리가 처음으로 찾아냈던 미라, 그리고 처음으로 회복했던 짙은 피부의 남자가 그 말에 겸연쩍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한진과 연사범을 부를 때에도 반신반의 하고 있었으나 섬에 온지 사흘 만에 한진이 사라지고 연사범이 중태에 빠지자 그들은 완전히 절망해버렸다. 다음날 연사범이 사라졌어도 더는 놀랄 기운조차 없었다.
연사범이 실종되고 며칠 후부터 아들은 다시 한 번 변했다. 온몸에 돋아났던 털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털이 빠진 후의 그는 쭈글쭈글 늙고 미라처럼 메마른 노인의 모습이었다. 여기 온 첫날 우리가 식당에서 본 바로 그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28일째가 되었지. 원박수가 사라진지 28일이었다는 말이오. 그가 조건 하나를 걸고 이 일을 승낙했다고 하지 않았소. 원박수가 말하기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고 28일이 되어도 해결할 수 없게 되면 전주에 사는 청단애기라는 사람을 불러달라고 했었소. 그 날짜가 되어서 묘란에게는 사람을 구하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박씨가 청단애기님께 갔더니 길게 이야기 하지도 않고 우리를 따라 오셨다오.”
노인이 말하고는 잿빛의 머리를 한 노부인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원박수하고는 몇 번 만나보기도 했고 가끔 연락도 하는 사이라 내가 거절할 수가 있나. 처음 만났을 때 저 사람이 나를 묏자리로 데려갈 사람이구나 싶더라니.”
청단애기가 말하고는 작은 소리로 웃었다. 원박수가 허물없이 웃는 것을 보니 무속인들끼리의 농담인가 싶었다. 이 와중에 편안한 얼굴을 한 사람은 이 둘 뿐이었다. 도망간 묘란이나 산 너머에서 우글거리던 요괴들을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한데 저 둘은 뭘 믿고 저렇게 담담한지 모르겠다.
“그리고 청단애기님의 말씀에 따라 여러분들을 여기에 부른 거요.”
노인이 말하며 우리들을 돌아보았다. 한 배로 섬에 온 마지막 다섯 명인 우리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를 여기로 부른 사람은 노인이나 묘란이 아니라 청단애기라는 거다.
“아무리 묘란이라지만 우리가 오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잘도 다섯 명을.”
안효정이 물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여기가 몇 년 동안 그녀의 마음대로 꾸며진 곳이라도 요괴를 상대할 줄 아는 도사와 심지어 백은호 같은 요괴까지 들어오게 하다니.
“욕심에 눈이 어두워졌는지도 모르지. 사람을 제물로 쓰기 시작하면서 흑흉이었던 몸이 인간으로 바뀌었다는 말이야. 게다가 오늘 자네들이 본 그 청년의 모습은 어떻던가. 묘란이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몰라도 우리를 제물로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위험을 무시하게 되었는지도 몰라. 그리고 사실, 이런 곳이고 보니 그 욕심이 터무니없지도 않다는 생각이 드네.”
원강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부르신 분이 뭐라 말씀 좀 해보십시오.”
추기영이 청단애기를 향해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반백의 머리에 댕기를 물리고, 마치 소녀처럼 색동저고리를 입은 그녀는 자신에게 시선이 쏟아지자 빙글빙글 웃었다.
“내가 뭘 알겠소. 부르니 왔을 뿐이고 기왕 왔으니 살 길이 보이는 사람들을 불렀을 뿐이라오. 저 양반이 나를 부른 것처럼 말이오.”
말하며 원박수를 가리킨다. 아니 처녀보살 할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사람들을 이 요괴 도가니에 데려와 놓고 무책임하게.
그러나 내 생각과 달리 원강은 그 정도 대답으로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그는 생각에 잠겼다.
그 사이 청단애기와 원박수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추기영도 연사범과 눈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한진이라는, 우리 생각이 맞다면 원강과는 사형제간일 그 남자는 원강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외면하고 있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원강에 비해 한진은 30대 중반쯤의 젊은 남자다.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운 사이라고 치면 원강이 한진의 선배쯤 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원강은 어제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그에 관해 모르는 체했고 오늘 백은호와의 대화를 생각해 보면 이름까지 바꾼 것 같다.
“살아있는 사람을 흑흉으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사람으로 만들다니 전대미문이 아닌가.”
생각에 잠겨있던 원강이 중얼거렸다. 말없이 식탁을 내려다보며 그는 묘란이 변화시켜 놓은 남자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그 남자는 어떤 존재가 되는 건가요? 흑흉인가요? 아니면 사람인가요.”
원강의 말을 듣고 안효정이 문득 물었다.
어쩐지 묘한 생각이 들었다. 노인의 아들은 죽지 않은 몸이면서 흑흉이 되었다. 요괴가 된 셈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쨌든 사람으로 돌아왔다. 그가 묘란과 함께 있을 때, 분명히 나는 요괴 하나와 요기에 물든 사람 하나를 보았던 것이다. 기운을 잘못 읽은 것이 아니었을까. 요괴가 사람이 되는 것이…아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
사람이 된 여우요괴 환이 있었다.
하지만 왜 묘란은 그런 일을 한 걸까.
“묘란은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겁니다.”
내 마음 속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 사람은 백은호였다.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여우요괴의 말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백은호는 아까부터 식당의 가장 구석진 곳에 서서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방에 있는 누군가를 꺼리는 눈치였다.
“약속이라니, 병을 고쳐주겠다는 약속 말인가?”
추기영이 대표로 물었다.
“직접 보셨다니 알고 계실 텐데요. 묘란과 함께 있던 그의 상태가 어떻던가요.”
백은호의 대꾸에 추기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겉보기에는 건강했지. 요기는 강했으나 그 친구의 기운도 나쁘지는 않았고…하지만 무슨 소린가. 약속한대로 병을 고쳤으니 묘란은 죄가 없다고 하려는 건가?”
백은호는 대답 대신 싸늘한 웃음만 띄웠다. 물론 그는 묘란에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이란 뻔하다.
그녀는 약속을 했고 약속을 지켰다. 노인도 아들을 고치기 위해 그녀가 원한 것을 내놓았다. 거기에서 생긴 피해는 부차적인 것이다. 애초에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면 안 된다든가 그런 약속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런 말을 대놓고 해봐야 역시 요괴는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나 보게 될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을 터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는 미안하지만 나 역시 같았다. 미라처럼 변한 사람들은 분명 쓰임이 다하면 죽을 운명이었다. 묘란은 그들을 죽게 만들 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분명 우리도.
백은호는 그 사실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녀의 죄 때문에 여기에 온 것은 아닐 겁니다. 일 이야기를 했으면 합니다만.”
백은호가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추기영은 기분이 상한 것 같았지만 원강이 다시 말을 시작하자 입을 꾹 다물었다.
“그것은 사실이지. 일 때문에 모였으니 일 이야기를 하세.”
그는 식탁 한쪽에 밥공기와 반찬접시를 끌어당겼다. 네 개의 그릇으로 사각형이 되도록 배치를 해놓고 그 중 하나를 가리켰다. 빈 밥그릇이었다.
“북동쪽의 귀목은 추선생과 효정이가.”
그의 말에 추기영이 원강과 안효정을 번갈아 보았다. 원강의 손가락이 아래로 내려갔다. 고기볶음 접시를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남동쪽은 해명도령과 내가.”
손이 왼쪽의 김치 접시로 옮겨갔다.
“남서쪽은 연사범과 한진.”
한진이 외면하고 있던 고개를 돌려 처음으로 원강을 쳐다보았다. 연사범은 아직 밖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우리를 향했다. 원강의 손이 위로 올라갔다. 반쯤 먹다 남은 생선이 담긴 접시를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북서쪽은 백은호. 혼자서도 괜찮겠지.”
묻는 것이 아니다. 단정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말해놓고 원강은 우리를 둘러보았다. 피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긴 밤이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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