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97화 (97/218)

신데렐라(3)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근거 없는 생각이라고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기억이 없는 그 날, 내가 강박적으로 경계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녀가 나를 방해하고 있다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어야 했다. 싫은 곳에 붙잡혀 있는 거라면 여기를 떠나기 위해 뭔가 꾸미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처음에는 그녀의 무심해 보이는 태연함이나 차가운 태도가 천성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가끔은 내게도.

그런 걸까?

두려움이 속삭였다. 그런 게 아닐까? 나를 싫어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서, 수리고 뭐고 팽개치고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말도 안 되는 망상이라 치부해도, 애인 있는 여자에게 키스하다니 제정신이냐, 정말…

한숨을 쉬면서 작업장을 서성이며 꽤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왔다갔다 돌아다니는 발소리에 대금 도깨비가 뒹굴뒹굴하다 말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대금 도깨비는 말을 못하니까 상관없지만 창고의 도깨비들이 슬슬 깨어날 시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도깨비라든가 문 앞의 목신이라든가 낮 동안 작업실에서 있었던 일을 소문 낼 입 가벼운 것들이 우글거리는 집에 살고 있었지.

총체적 난국이다.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끗 보니 슬슬 저녁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에서 아무리 안절부절 해도 시간이 가는 것은 못 막는다. 식사시간에는 유하와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마, 아니 아마가 아니고 확실히…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저녁을 내놓을 터다. 그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서 쓴웃음이 났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밥을 먹고, 내가 아무 말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른 체하며 예전 그대로 행동하겠지. 그러니까 오늘 저녁 식사시간만 지나버리고 나면 아까의 바보 같은 짓은 조금씩 잊혀지고…그리고…

그리고,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시간을 돌이킨 것처럼 다시 예전으로, 라고 생각하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머뭇거리거나 그녀의 뒷모습을 훔쳐보거나 망상에 가까운 의심을 하는 일에 점점 피로를 느꼈다.

나 좀 이상해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유하에게 갔다.

문은 열려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주방에서 야채를 썰던 유하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으니 30분 후에 와요.”라고 태연히 말했다. 예상한 그대로의 평소 얼굴이었다.

“잠깐 이야기 좀 해.”

내 목소리가 긴장으로 딱딱해졌다. 유하가 나를 힐끗 보고 손을 씻었다. 그녀가 손을 닦고 앞치마를 벗어 걸어놓은 다음 내게 올 때까지도, 나는 사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생각인지 모르고 있었다.

유하가 맞은편에 와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화난 것 같지 않았다. 피하는 것 같은가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당황 분노 수치 혐오 놀람 경멸 그런, 동의 없이 키스를 당한 여자가 가질법한 감정 어느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한 얼굴은 평소보다 부드러워서 나는 조금 전 작업장에서 있었던 일이 혹시 내 망상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야기 하자는 내 말에 유하가 왔지만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할 말은커녕 뽀얗게 하얀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보들보들한 뺨을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 울컥 치올라 손이 꿈틀거렸다. 내가 미쳤거나 그녀가 길상과 같은 존재인 건지도 몰라.

“할 말이…?”

내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자 유하가 물었다. 그렇지 참. 이야기를 해야 하지.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더라.

“여기에 있는 거, 싫어?”

3월쯤 잠에서 깨어난 이후로 쭉 지금까지, 변함없이 아무 생각 없는 내 입은 그렇게 질문해 버렸다. 내 질문에 유하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러니까, 내 말은…벼, 별로 있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일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혹시 무슨 다른 이유나, 말하자면, 그러니까, 만일 네가 싫은 거라면…”

수습하려고 다시 입을 열었지만 이런 소리나 하고 있었다. 횡설수설하는 나를 보고 있던 유하가 조용히 물었다.

“내가 원한다면, 당신을 떠나도 되나요?”

나는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는 했다. 사실은 싫은 게 아닌가 라고. 두려워하면서. 하지만 그 생각을 유하의 목소리로 듣게 되었다.

원한다면 떠나도 되느냐고? 그건, 당연하잖아.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을 붙잡아놓을 권리 같은 것이 내게 있을 리가 없으니까. 원한다면…

“떠나고 싶어요.”

유하가 다시 말했다.

떠난다.

떠난다. 전혀 모르는 단어의 의미를 방금 깨달은 것처럼 나는 놀랐다. 나를 떠난다. 나로부터 멀어진다. 볼 수 없게 된다. 나와 상관이 없어진다.

이상할 것이 없다. 그녀는 원래 나와 상관이 없었다. 보수를 받고 일하는 사람일 뿐이니까.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던가. 자신에게 물었다.

아니, 한 번도.

말수 적고, 좀처럼 웃지 않고, 무심하고, 수상쩍은 이 여자가 없는 세상 같은 것은 생각해 본 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다.

“내가 원한다면, 당신을 떠나도 되나요?”

유하가 한 번 더 물었다.

떠나도 된다. 그것은 그녀의 권리다. 나는 그 자유를 막을 권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달았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 뭐든, 그녀의 권리가 있든 없든, 나는 그녀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아니….”

미움 받을 것 같은 대답을 했다. 하지만 내 대답을 들었어도 유하는 미워하지 않는다. 그녀가 내게 손을 뻗었다. 작은 손바닥이 내 볼에 닿았다. 놀랄 만큼 스스럼없는 행동이었다.

“당신은 다정해요.”

손끝으로 내 얼굴을 쓸어내리며 그녀가 말했다.

“모든 이에게 다정하면서, 내게만 잔인하군요.”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심장을 꿰뚫었다. 내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숨이 잠깐 막혔다. 바위 같은 무게로 폐가 짓눌린 기분이 들었다.

유하의 표정이 흐려졌다. 그녀가 두 손으로 내 뺨을 감쌌다. 이명이 울리는 귀에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잔인하게 사랑하는 당신을 나 또한 사랑하니, 가라고 하기 전에는 떠나지 않겠어요.”

모든 말을 들었지만 나는 겨우 마지막 말만을 이해했다. 그녀는 가지 않는다.

나를 떠나지 않는다.

그녀가 안겼는지 아니면 내가 끌어안았는지 잘 모르겠다. 작고 부드러운 몸을 품 안에 옥죄고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떠나지 않는다. 떠나지 않는다.

결국 그날 저녁은 먹을 수 없었다.

둘 다 뭔가를 먹기에는 너무 피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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