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운(6)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기완의 몸은 완전히 나은 것 같았다. 보기에도 그랬다. 멍든 자국이나 부은 곳이 말끔히 사라진 모습을 보니 내가 해놓고도 신기하다.
기완은 스스로 제 몸을 점검해 보고 나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 얼굴을 보니 약간 우쭐해지려고 하는데.
더 이상 부축이 필요 없는 그를 두고 나는 천천히 가던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완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 뒤를 따라왔다. 우리는 건물이 네모나게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자리를 잡았다. 커다란 소나무 둥치와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관목이 우리를 숨겨주었다.
그런데 나는 원강의 부적이 있으니 괜찮아도 기완의 기운이 읽히면 어쩌지?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서 슬쩍 물어보자 기완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봐, 실례다.
뭔가 난해한 수학문제를 바라보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보던 기완이 이윽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종잡을 수가 없는 남자로군. 모르는 건가, 모르는 체하는 건가. 아니…하긴. 이렇게까지 된 마당에 속일 이유도 없고 속인다고 해서 불평할 처지도 아니군.”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그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래도 아까처럼 한심하게 보고 있지는 않으니 치료해준 보람이 있는 것 같다.
“백은호에게 수련을 받았다면 기운을 감추는 법 정도는 배웠으리라 생각했다만, 네 스승도 너를 성장시키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아아…기운을 감추는 법을 배운 거구나. 그런 것도 있었다니 백은호는 왜 안 가르쳐 준 거야? 생각해보니 맨손으로 싸우는 법 말고는 배운 게 없다. 그것도 상당히 과격한 방식이었다고.
그런데 기완의 말에는 발가락 사이에 낀 모래알처럼 신경 쓰이게 까칠까칠한 의미가 숨어있었다. 백은호가 별로 친절한 스승이 아니라는 의견에는 절대 동의한다만.
“네 스승도, 라니 그쪽의 스승도 별로라는 거네.”
나는 질문에 가까운 대꾸를 했다. 별로라고 표현했지만 기완의 목소리에 묻어나던 감정은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혐오, 괴로움, 분노, 두려움. 저 용맹한 남자와 별로 가까울 것 같지 않은 심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기완은 안광이 번득이는 눈으로 산 아래의 건물을 쏘아보았다. 시선에 물리력이 있다면 벽을 뚫고 건물을 관통하는 구멍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저 녀석, 기운을 감추고 있는 게 맞아? 피부가 간질거릴 정도로 끓어오르는 기운에 바로 옆에 있는 나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기완이 무릎에 걸쳐두고 있던 손을 꽉 쥐었다. 들끓던 기운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여기 오기 전에, 나는 망나니였다. 말 그대로다. 사람 같은 구석이라곤 없는 막되먹은 놈이었지.”
기완이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뭔지 기운을 들끓게 만드는 생각에서 눈을 돌리고 싶은 것 같았다. 끓어오르는 기운을 꼭꼭 씹어서 삼키는 것처럼 그가 말했다.
“내 아버지는 평범한 인간이었는데, 내가 열 살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수백 년을 산 호녀이면서도 아버지를 구하지 못했다. 아니, 그럴 마음도 없던 것 같았다. 평범한 인간조차도 천수를 누리기 위해 별짓을 다 하는데 남편이자 아들의 아버지인 그를 위해서 아무 것도 안 했다. 하늘이 부르시면 가야한다느니 그런 말이나 하고…”
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지만…
“나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머니도 반쪽만 인간인 나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거기에서 생긴 틈이 자랄수록 점점 벌어져 버렸지. 열다섯이 되었을 때는 어머니도 나를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집을 나가서 멋대로 살았다. 내가 아는 못된 짓은 다 그때 배운 것 같다.”
가출소년이었구나. 하긴 집을 떠나도 무서울 게 없었겠지.
“4년쯤 뒷골목에서 구르며 별의 별 인간들을 만나고 그것들과 함께 더러운 짓도 꽤 해봤다. 그러다 둘째 스승님을 만났지. 선비처럼 점잖고 해맑은 얼굴을 해가지고, 닭 모가지도 비틀지 못할 것 같이 비리비리한 주제에 손짓만으로 나를 내동댕이쳤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두려웠다. 멋모르던 시절이었지만 스승님이 가지고 있는 힘만은 확실히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까.”
말하며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뭘 기억한 걸까. 하지만 그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따라오라는 말에 반항할 생각도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 둘째 스승님은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은 다음에는 신경도 안 쓰고 내버려 두셨지. 하지만 나는 여기가 마음에 들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나를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았다. 내게 호녀의 피가 섞인 것을 알고도 이상하게 바라보는 일은 없었다. 나 외에도 요괴와 피가 섞인 사람들이 더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지.”
아마도 안효정, 그리고 또 누가 있었던 걸까.
“나를 포함해 대여섯 명 정도였다. 대부분 나보다 어리거나 비슷한 또래라 마음이 잘 통했다. 함께 다섯 분의 스승님 밑에서 수련을 받았다. 형제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 하지만 몇 년 정도였다. 한 해에 한 명 정도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빈자리를 채우듯 새로운 아이가 들어왔지.”
어둠 속에서 기완의 눈이 다시 시퍼렇게 번득였다. 나도 모르게 건물 쪽을 힐끗 보았지만 아무런 기척도 없다.
“그래서 결국 처음 만났던 아이들 중에 지금까지 남은 사람은 효정이 뿐이다. 나와 효정이, 두 사람만 10년 넘게 여기에 남은 거지. 최근까지 나는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윤문을 집으로 생각하려고 했다. 어머니는…나 같은 반쪼가리 아들에게 관심도 없을 테고.”
기완은 피식 웃었다. 쓴웃음이었다.
“다 핑계고, 여기 사람들이나 사는 방식이 내 적성에 맞는 거겠지. 뒷골목에서 구르던 때보다 점잖은 체할 뿐이고 하는 짓은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한 것 같으니까.”
수호 녀석을 쫓아왔던 때를 생각해 보면 미안하지만 맞는 말인 것 같은데. 그건 그렇고, 마침 술술 불고 있으니 이 기회에 물어봐야 할 것 같다.
“모란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된 거야? 윤호정은 그럴 아이가 아니라고 하던데. 네 부상도 모란이 했을 리 없다고.”
내 질문에 기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워낙 조개처럼 꾹 다물고 있어서 아무래도 대답은 포기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내가 한 거다.”
짧은 대답이었다. 뭘 했다는 거야. 눈을 깜박이며 기완의 옆모습을 쳐다보자 그가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조금 더 망설이는 것처럼 입을 다물고 있더니 이윽고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저 안에 들어가면 너도 보게 될 테니 알아두는 게 좋겠지. 그 상처는 내가 스스로 낸 거다. 모란을 보내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스스로 상처를 냈다고? 모란을 보내주기 위해서?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기완은 꿰뚫어버릴 것 같은 시선으로 건물을 노려보며 말했다.
“저 건물은 둘째 스승님이 머무는 곳이다. 절반은 평범한 주택과 같은 구조이고 다른 절반은 둘째 스승님이 일하는 공간이지. 그분은 부상자의 치료를 맡고 계셨다. 윤문에서 맡는 일은 대개 험한 것이라 다치는 사람은 늘 생겼지만 병원에 가기 어려운 경우가 이따금 있었다. 요괴의 독에 중독되거나 주술에 당했다거나.”
말하자면 도사 의사? 의사 도사?
“그리고 나나 효정이 같은 아이들이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있었다. 무엇을 검사하는지는 몰랐다. 건강한지 체크하는 거라고 생각했지. 요괴의 피가 섞인 아이들이니까. 피를 뽑아 가거나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가끔 알 수 없는 주술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난히도 몸이 안 좋아서 자주 둘째 스승님께 가야하는 아이가 늘 하나둘씩 있었지. 그리고 그 아이들은 얼마 안 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기완의 목소리가 어두워졌다. 아까의 복잡한 감정들이 다시 검댕처럼 묻어났다.
“모란이 그런 아이였다.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싶으면 둘째 스승님의 치료실에 가 있곤 했다. 성격도 행동도 조용하고 어두워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가끔 아는 체를 하는 건 효정이 정도였다. 그 녀석은 붙임성이 좋아서 누구하고나 친하니까.”
호기심이었던 게 아닐까 나는 생각하지만.
“효정이는 모란을 가리켜 온순하고 착한 아이라고 평했지. 몇 번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나도 그렇게 보았다. 그런데 그 순한 녀석이, 미친 듯이 날뛰며 저 건물에서 뛰어나오는 것을 봤다. 그런데 단순히 화가 났거나 요괴의 피로 날뛰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과 다른,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묘한 기운이 있었다.”
그가 노려보는 건물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지켜보는 그곳, 둘째 스승의 거처다. 그때의 기억을 돌이키는 기완의 얼굴에 혐오에 가까운 감정이 번졌다. 쓴 맛을 참는 것 같은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요괴도, 인간도, 뭣도 아닌 그런 느낌이었다. 굳이 설명하라면, 미안하지만 너와 비슷한 기운이라고밖에 못 하겠군.”
내 표정이 변한 것을 기완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말하면서도 계속 건물을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둘째 스승님이 곧 모란을 잡아서 재웠고 내가 느꼈던 그 묘한 기운도 이내 사라졌다. 하지만 깨어난 뒤 모란은 한 번 더 소동을 일으켰다. 말없이 태령을 벗어났다가 도로 잡혀온 것이다. 윤문의 보호를 받는 아이들은 허락 없이 산문을 벗어나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서 둘째 스승님의 명령을 받고 우리가 녀석을 찾으러 갔었다. 어렵지 않게 모란을 잡았지만 그 녀석은…”
기완이 눈을 찡그렸다.
“묘한 말을 했지. 다음 차례는 효정이라고 했다. 자신의 다음은 효정이가 될 거라고. 그러면서도 무슨 뜻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두려운 나머지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지. 내 다리를 붙잡고 떠나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가고 싶다면 스승님께 말씀드리고 떠나면 되지 않은가. 내가 그렇게 묻자 모란이 말했다. 나를…”
- 나를 지하로 데려갈 거예요. 다시 거기 가기는 싫어요. 죽어버리는 게 나아요.
그렇게 말하고 모란은 정말로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는 단호한 행동이었다고 기완은 말했다.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지만 모란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녀석을 다시 스승님께 데려가고 나서 나는 내가 들은 말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지하라는 것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몰랐지만 모란이 이상해지기 전에 가장 최근까지 있었던 곳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새벽에 치료소 안으로 들어갔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문을 발견했지. 전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문을 찾아낸 것은 모란의 냄새 때문이었다. 녀석의 냄새를 따라가서 치료소 지하에 숨겨진 둘째 스승님의 비밀을 보게 된 것이다.”
기완의 얼굴이 어둠속에서도 창백하게 보였다.
“스승님들은 우리에게 도술을 가르치지 않으셨다. 요괴의 피가 섞인 우리의 몸을 다스리는 것만도 평생이 걸린다고 하셨지. 그래서 우리에게 도술에 관한 지식은 거의 없다. 단순하게라도 알고 있는 사람은 호기심이 많은 효정이 정도일까. 그러니 그 때 내가 지하실에서 본 것들이 무엇을 위한 의식이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기에는 지금까지 집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한 그 아이들이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있었다.”
으득 소리를 내며 기완의 이가 갈렸다.
“인간도, 요괴도 아닌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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