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운(10)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무너진 건물의 흙먼지는 가라앉았다. 목심이 변한 먼지는 거기에 섞여 바닥에 깔렸다. 그의 혼은 몸과 함께, 환생할 기회조차 사라진 채로 먼지가 되었다. 그것이 천왕의 규칙을 거스르며 벗어나서는 안 될 길을 벗어난 자의 최후였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점점 커졌다. 윤문 안의 모든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든 것 같았다. 아마도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로, 혹은 그 일을 한 내 힘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난 것일 터다. 결계 안에서 희미하게 읽을 수 있는 기운들이 눈 쌓이듯 내 주변에 쌓였다.
쌓이는 눈을 넘어 훨씬 차갑고 단단한, 얼음 같은 기운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 서늘한 예기가 나를 향하고 있으니 마냥 무시할 수가 없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일시에 입을 다물었다. 벽처럼 가로막고 있던 이들이 양쪽으로 비켜나 문을 만드는 것이 보였다. 그 문을 넘어 세 사람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중 한 명은 아는 얼굴이었다. 수호 녀석의 일로 내 수리점까지 왔던 도사 중 하나다. 사람처럼 움직이는 인형을 데리고 다니던 여도사였다.
그녀의 옆에서는 어리다고 해도 좋을 앳된 얼굴의 청년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얼굴만으로는 스물도 안 되었을 것 같다. 그러나 어린 것은 겉모습뿐이다. 유유히 다가오는 그의 태도에서는 젊은이에게 있을 리 없는 노련함이 반짝였다. 나를 똑바로 쏘아보는 여도사와 달리 그의 시선은 내 주변을 한 눈에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둘보다도 주의를 끄는 인물은 역시 가장 앞에 있는 중년의 남자다. 묘한 사람이었다.
옥빛을 띈 한복을 구김 하나 없이 입고, 발에도 버선에다 사극에서나 볼 태사혜를 신었는데 머리는 꽤나 세련된 펌을 하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희끗해진 머리와 같은 색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길러서 양복 정장을 입었으면 이국적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구름 위를 거니는 것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왔지만, 나는 약간 긴장했다.
기억에 없는 그를 내 몸이 경계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나로부터 10미터쯤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중년의 남자가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인사를 하는 건지 나를 알아봤다는 뜻인지 그도 저도 아닌 다른 뜻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의 표정은 웃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으며 친근한 기색을 띠는 것 같으면서 경계를 늦추지 못하게 하는 날카로운 데가 있었다.
그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혼자였다. 뒤에 남겨진 여도사는 내내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고 젊은이는 흥미 있는 얼굴로 나와 중년의 남자를 번갈아보았다.
남자는 느긋이 다가오더니 나를 지나쳐 폐허가 되다시피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목심이 변한 먼지가 그의 발에 밟혀 신발자국을 만들어냈다. 남자의 시선은 무너진 건물을 한 바퀴 돌아본 다음 아직 닫히지 않은 비밀문 너머의 어두운 공간으로 향했다.
저 안에서는 갇힌 아이들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약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내가 좀 무심했구먼.”
폐허를 둘러보고 나서 남자가 한 말이었다.
“그러나 잘못이 있으면 넌지시 알려주기만 했어도 될 일을 굳이 힘들게 걸음하셨소.”
나무라는 건지 미안하다는 건지 모를 말이었다. 잘못했다는 말인지 불평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목심이 한 일에 대해 몰랐다고 말하는 것만은 알아들었다. 아아, 그러셨어?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의 말에 나는 마음속으로 비꼬듯 물었다. 기억이 없으면서도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어쨌든 윤문의 가주로서, 여기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내 탓, 이 윤병완의 소관이니 이 또한 내가 질 짐이겠지. 이 일은 이제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도록 두시고, 도령은 왔던 대로 담을 넘어 도로 나가시오.”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동시에 무단침입에 대한 비난이기도 했다.
나는 남자, 윤병완을 쏘아보았으나 그를 상대하기에는 지쳐 있었다. 이미 나는 목심을 혼조차 먼지로 만들어버렸다. 내가 한 일은 아니되 내가 한 일이었다. 이 참혹한 곳에서 다시 한 번 화를 내거나 슬퍼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나갈 수는 없다. 무엇보다 안효정의 안위가 궁금했고, 그에 못지않게 지하실에 있는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도 걱정되었다.
“저 애들은 어쩔 셈이지?”
비밀문 쪽을 가리키며 묻자 윤병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싫은 일을 시키는 사람을 보는 눈이다.
“그 또한 내 일이오.”
그가 말했다. 관여하지 말라는 뜻이다.
감정의 피로가 몸과 머리를 둔하게 만들고 있었지만 그의 말을 듣자 깨달았다. 아직은 쉴 때가 아니구나. 끝나지 않았다.
“물론 네 일이다. 너도 목심이 하는 일을 알고 있었으니까.”
지하실을 가리키며 아이들에 대해 말했을 때 그는 놀라지도 의아해 하지도 않았다. 모르는 체하는 정도의 성의도 보이지 않으면서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할 셈인가.
이 남자는 목심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목심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미친 남자였지만 이 자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잘못을 알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가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 그만 내 땅에서 나가시구려.”
그가 요구했다. 그리고 말한 순간, 내가 발 딛고 있는 땅 전체가 그의 말에 호응하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사방에서 적의가 밀려들었다. 사람들이 아니었다. 땅, 나무, 공기, 내가 있는 이곳 자체였다. 이 공간이 나에게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피부에 닿는 공기가 서늘해지고 숨이 답답해졌다. 에워싸는 듯하던 결계가 이제는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공간이 나를 거부하고 있다. 혐오하며 밀어내고 있었다. 윤병완의 말 한마디에 그렇게 되었다.
“아이들을 데려가겠다.”
그와 공간의 혐오를 참아내며 내가 말했다. 정말로 데려갈 수 있을지를 계산해보지는 않았다. 여기는 윤문의 한복판이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수도 수십 명이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고사하고, 윤병완 한 명만도 감당할 수 있을지조차 실은 자신이 없었다. 한 마디 말로 사방을 제 편으로 만들어 압박하는 능력. 윤문의 가주라는 그의 힘이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짐작도 못하겠다.
하지만 계산이고 뭐고…
“목심이 없으니, 어차피 너희에게도 쓸모없을 거야.”
말하며 비밀문을 향해 돌아선 순간 등 뒤에서부터 공기가 차가워졌다. 그야말로 차가운 기운에 대기가 얼어붙어 쩍 벌어질 것 같았다. 몰려와 있던 사람들이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서는 것이 보였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10미터 거리의 두 명 뿐이다.
“이제 그만 나가시구려, 도령.”
윤병완이 말했다. 아까와 같은 말을, 꾹꾹 눌러서 천천히 뱉어냈다.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음칼날처럼 등에 날아와 꽂혔다. 뒤통수에서부터 목덜미를 타고 내려온 오싹한 기운이 등줄기를 달렸다.
뻐근한 목을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윤병완은 이제 표정이 분명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화가 난 얼굴이었다. 누가 제 방에 들어와 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본 아이 같았다.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며 화내고 있었다. 그 분노가 피부에 느껴질 정도로 농도 짙은 기운이 되어 나를 둘러쌌다.
하지만 여기가 네 방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은 장난감이 아니잖아.
그것을 모르는 체하는 윤병완에게 짜증이 일었다. 저런 아이와는 놀기 싫어. 놀이터에서 만난 멋대로인 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땅바닥에 막대로 선을 쭉쭉 그려놓고 여기는 내 땅,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녀석. 그 안에 남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뺏어서 모아놓고 못 가져가게 하는 아이.
너 같은 아이는 싫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나를 저 아이도 싫어하겠지. 나는 그 미움을 인정하기로 했다. 땅에 그려놓은 선을 넘어 들어가서 빼앗아 간 장난감들을 되찾아 오겠다. 네가 화를 낸다면 나도 화를 내겠다.
그래서 나는 선을 넘었다.
우르르르 -
비밀문이 있는 벽 아래에서 땅이 흔들렸다. 아직 형태가 남아있던 벽이 뒤로 와르르 무너졌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무너진 벽이 다시 양쪽으로 벌어졌다. 정확히는 땅이, 건물 뒤편의 산이 갈라지고 있었다. 숲이 양쪽으로 나뉘며 산 한가운데에 깊은 상처가 생겨났다. 그 상처는 산으로부터 비밀문을 지나 내 발밑까지 똑바로 이어져 있었다.
등 뒤에서 윤병완이 신음 같은 숨을 내쉬었다. 그의 차가운 기운이 나를 에워싸고 칼부림하듯 휘몰아쳤다. 잠깐 숨을 쉬기 힘들었다. 숨과 함께 몸 안이 바짝 얼어버릴 것 같았다. 나는 숨을 참으며 갈라진 땅 밑에서 지하실을 끄집어 올렸다. 땅거죽의 상처를 더욱 크게 벌리면서 콘크리트 벽이 불쑥불쑥 드러났다.
숨겨져 있던 지하실이 땅 위로 드러난 것이다. 갇힌 방 안에서 아이들이 텅 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훨씬 크게 들려왔다. 멀리 있는 사람들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큰형은 저 아이들도 먼지로 만들까?
나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목심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목천왕은 저 아이들에게도 같은 대가를 치르게 할까?
선단을 훔친 죄, 그리고 천왕의 눈을 속이고 삿된 존재를 만들어 낸 죄. 그것의 대가를 물어 이목천왕은 둘째형과 나와 유하에게 각기 선고했다.
둘째형은 자신의 하늘을 떠나 여덟째 하늘 신장천에 갇혔다. 거기는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이었으며 신들의 유형지였다. 그는 천왕의 지위를 빼앗겼고 죄인의 몸이 되었다.
나는 인간의 몸에 갇혔다. 내가 바라던 영원한 연인을 가졌으나 이제 나는 영원하지 않다. 그로부터 나는 나이를 먹기 시작했으며 정해진 수명을 다하면 죽었다가 환생하는 보통 사람들의 윤회에 속하였다.
그리고 유하에게는 삿된 존재로서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 어둠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벌을 내렸다. 그 벌을 대신하겠다는 내 소망은 둘째형의 마지막 기만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이목천왕에게 대적하는 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끝까지 해냈다. 유하에게 지워졌을 벌은 내게로 왔다.
아마도 둘째형은 유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한 일이었다. 유하의 벌을 대신 받은 나는 이제 삿된 몸으로, 이목천왕의 눈앞에 나서는 순간 먼지가 될 터였다. 하지만 나를 가두고 있는 인간의 몸이 먼지가 되면 천왕인 나는 그 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이 둘째형이 진정으로 바라는 바였다.
영리한 둘째형은 그러나 처음에도 나중에도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나는 다시 영원한 소년인 예전의 나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목천왕은, 둘째형의 기만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유하에게 더 이상 손대지 않았다. 한 번 내려진 선고는 바뀌지 않으며 대가가 치러지고 나면 끝이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떨까. 이목천왕은 그들을 삿된 존재로 여기고 목심처럼 먼지로 만들까? 만일 그렇다면 나는 둘째형이 했던 것처럼 그들에게 내려질 선고를 피하게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면 나는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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