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114화 (114/218)

발광충(4)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이 진지하고 성실해 보이지만 사실은 문제가 있는 것 같은 남자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할까.

이곳은 만물수리점으로, 고장난 물건을 고치는 곳이란 말이지요. 유리 등롱의 갓이 떨어졌다든가 유리에 금이 갔다든가 프레임이 휘어졌다든가 그런 고장을 수리하라고 한다면 모르겠지만 등롱 안에 요괴가 있는데 얘들이 좀 이상해요 같은 고장은 안 받아요.

아니 사실 원래 만물수리점이라고 하면 선풍기라든가 티브이라든가 밥통이라든가 뭐 그런 거 가져와서 고쳐달라고 하는 곳 아닌가? 고색창연한 유리 등롱을 맡긴 것부터가 어딘지 미스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받은 일이니까 어쩔 수 없다 치고. 어쨌든 정신의학이나 초자연 현상과는 영 관계가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경우 가장 좋은 대처는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정도일 것 같다.

“이런 일에 사장님보다 나은 분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까다로운 은호당 사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니 저는 사장님만 믿습니다.”

예…?

그가 이어서 하는 말에 나는 잠시 좋은 대처를 보류했다.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거야? ‘이런 일’에 나보다 나은 사람은 없다? ‘은호당 사장님’이 그렇게 말할 정도라?

이런 일이라는 것이 요괴라든가 애인 닮은 여자가 나돌아 다니는 환상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다면 그런 방면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나는 도대체 뭐지? 그리고 은호당 사장이라는 사람은 누구야?

이쯤에서 일을 받은 장본인이자 내 비서라고 주장하는 여자와 한 번 더 대화를 나눌 필요성이 느껴진다.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3층으로 올라간 나는 유하에게 따져 물었다. 내가 전에도 이런 괴상한 물건을 수리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담담히 그렇다고 대답한다. 왜 이런 중요한 일을 말 안 했느냐고 따지자 “알고 계실 줄 알았어요.”라고 태연히 대꾸했다.

기억도 없는데 내가 그런 걸 알 리가 없잖아.

그러나 그렇게 말하려 생각하고 보니 방에서 깨어난 이후로 나는 분명 몇 번이나 범상치 않은 일들을 보거나 들었었다. 환각이라고 치부한 것들을 숨기고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으니까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하고 싶을 리가 없잖아.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게다가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에게.

불평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방을 나가기 위해 일어서자 그녀도 돌아서서 잠시 중단된 설거지를 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듣자 아까 배부르게 먹었던 그녀의 음식이 생각났다.

어느 것이나 입에 맞는, 마음에 드는 요리였다. 배가 부른 후에도 계속해서 먹고 싶어 젓가락을 놓지 못했었다. 단 하나도 빠짐없이 맛있는 음식이었다는 건,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만 놓여 있었다는 뜻이고 그래서 나는 그녀가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잘 알게 되는 동안 나는 그녀에 대해 전혀 몰랐을까?

…그럴 리는 없다.

같은 건물에서 매일 세 번 이상은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런 시간들이 쌓이는 동안 그녀에 대해 모를 수도 가까워지지 않을 수도 없지 않을까. 그러니까 그녀를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라는 내 생각은 틀린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아는 여자’라면 지금까지의 내 태도는 지나치게 방어적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깨어나고 얼마 안 되어서, 나무 바늘이 혼자서 움직이는 것을 봤어.”

나가려다 말고 문 앞에 서서 내가 말했다. 누군가 들었다면 무슨 헛소리냐고 물을 그런 말을 밑도 끝도 없이 한 것이다. 유하는 설거지 하던 손을 멈추었다. 잠시 말이 없다가 그녀가 대꾸했다.

“그건, 싹 난 나무바늘이에요. 옷을 고칠 때 써요.”

알고 있다. 직접 봤으니까. 하지만 그건 환상이 아니었구나. 그리고 그녀도 알고 있었구나.

“강아지가 소년으로 변하고 말도 하고…”

“달님이는 어린 해치니까요.”

거짓말 같은 내 말에 거짓말 같은 그녀의 대답이 돌아온다.

“사실대로 말하면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할 것 같아서 무서웠어.”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조그맣게 말했다. 이번에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너무 작게 말했나. 아니면 내가 일부러 말 안 한 것 때문에 기분이 상했나. 그녀를 힐끗 보았다. 뒷모습을 보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유하가 이쪽으로 몸을 돌리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어쩐지 두려웠다. 어째서 두려운 거지. 그렇게 생각할 때 그녀의 눈 아래에서 말갛게 고이는 눈물을 봤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소리가 확실히 들렸다.

내가 무슨 실수를 했지? 방금 한 말 중에 그녀를 울릴만한 말이 뭐였지?

“미안해!”

뭘 잘못했는지 모르면서 일단 사과해 버렸다. 당황해서 사과하는 내 얼굴을 유하는 조금 더 쳐다보더니 “하.”하고 웃었다. 재채기처럼 짧게 튀어나온 웃음이었다. 그 바람에 고여 있던 눈물이 떨어졌지만 젖어서 반짝이는 눈이 호를 그리며 휘어져 있었다. 울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조금 안심이 된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으로 그녀가 말했다.

“그런 말은 처음 들었어요.”

“그랬어…?”

그런 말이 뭔지 모르는 채로 내가 대답했다. 사과를 처음 들었다는 말인가? 나 좀 갑질 하는 고용주였나?

“손님이 기다리겠어요.”

유하는 다시 돌아섰다. 설거지를 계속하려는 것처럼 허리를 숙였다가 뒷모습을 보인 채로 내게 말했다.

“잘 모르는 건 창고의 도깨비들에게 물어보세요. 냉장고 안에 술과 메밀 요리가 있으니까 그걸 가져가면 좋아할 거예요.”

창고의 도깨비들? 동화 같은 이야기를 하고나서 그녀는 달그락 달그락 다시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녀의 방에서 나온 나는 조영천에게 등롱이나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물었다. 아직 어떤 식으로 일을 해결해야 할지 몰랐지만 요괴니 도깨비니 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는 거의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신기할 정도로 거부감이 사라졌다.

조영천은 대화의 주제가 할아버지로 옮겨가자 성실한 얼굴에 따뜻한 빛을 띠었다.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저를 무척 귀여워하셨습니다. 아버지 남매가 팔남매라서 손자 손녀가 열아홉 명이나 되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저를 귀여워하셨지요. 아버지 말씀으로는 제가 할아버지와 많이 닮았다고 합니다. 결혼식 사진이 딱 한 장 있는데 흑백사진이고 워낙 작게 찍혀서 저는 모르겠지만요.”

말하는 조영천의 얼굴에서 사랑받는 사람 특유의 미워할 수 없는 과시가 반짝였다.

“할아버지가 이 유리 등롱을 보여준 사람도 가족 중에서 저뿐입니다. 저 말고는 은호당 사장님과 옛날 친구 몇 분뿐인 걸로 압니다.”

그건 이상하네. 가족보다도 남에게 보여준 적이 더 많다는 거잖아.

“할아버지가 이걸 어떻게 구하셨는지 알아요?”

“직접 잡으신 거라고 들었습니다. 젊으셨을 때요. 반딧불이인 줄 알고 잡아왔는데 아니더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보관하다 한 번 두통이 생긴 후로 은호당 사장님에게 물어봤는데 이 요괴는 단순해서 가둬두어도 별로 상관하지 않고 아무데서나 잘 산다고 합니다. 다만 빛을 싫어하고 밤이 되면 잠시 바깥바람을 쐬게 해줘야 하죠.”

이렇게 사방이 막혀 있는데 바깥바람 같은 게 들어오나? 그런데 그 정도로 만족하면서 잘 살고 있다니 참 소박한 요괴들이다.

나는 유리 등롱 안에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빛무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녀석들은 한동안 등롱 안에서 뭉쳤다 흩어졌다 하더니 지금은 도로 넓게 퍼져서 유유히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꼭 작은 우주를 보는 것 같지요?”

조영천이 성실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것도 같고. 마치 수많은 별들이 모여 만든 은하 같기도 하다. 그럼 저 작은 벌레 하나하나는 별인가? 태양이 나오면 사라지고 밤에만 빛나니까 그것도 그럴듯하네.

“그런데 지켜보고 있으면 어쩐지 저 요괴들도 저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듭니다. 매일 밤 보게 되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몰라도, 가끔은 저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무래도 요괴니까 너무 가까이 하면 위험하겠지요. 그런 일도 있고 해서 가급적이면 쳐다보는 것은 삼가고 있습니다.”

일단 존재를 확인한 이후라도 요괴에 대한 사람의 일반적인 반응은 저런 거겠지. 그에 비해 나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송사리떼 같아서 귀여운데.’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요괴 같은 것에 익숙하다는 증거인지 그냥 위험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건지 모르겠다.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게 되어 조영천이 떠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슬슬 바깥은 어두워지고 있겠지. 그러나 문이 열렸을 때 반사적으로 작업장 구석에 숨어버려 내 눈으로 확인할 길은 없다. 문이 열리고 작업장이 별로 밝아지지 않은 걸로 봐서 해는 산 너머로 졌을 것 같은데. 그런데 어째서 여전히 바깥을 보는 것이 두려울까.

내가 햇빛을 싫어하는 이유를 물었지만 유하는 모른다고 대답했었다. 그러나 대답할 때의 미묘한 표정이 기억난다. 거짓말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어쩐지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 기억을 돌이켜 보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자 마음은 알 수가 없다니까. 안 그러냐?”

그녀에 대해 생각하다가 나는 유리 등롱의 요괴들에게 물었다. 별로 동의를 구하려는 질문은 아니었다. 푸념에 가까웠는데 뜻밖에 녀석들이 반응을 보였다. 유유히 떠돌아다니던 빛들이 일제히 제자리에 멈춘 것이다. 갑자기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어…내가 무슨 말을 잘못한 거야?

“…너희들 여자였냐?”

내 두 번째 질문에 녀석들이 파닥파닥 반짝거렸다. 뭐야. 그렇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저기, 말은 못하는 거냐?”

내 질문에 녀석들이 한 번 더 갑자기 정지했다. 으음? 아무래도 확인용 질문이 필요하겠는데.

“내 말은 알아듣는 거야?”

내 질문에 녀석들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사진처럼 고요하니 움직임 없는 등롱을 보며 내가 다시 물었다.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거야?”

이 질문에 등롱 안의 빛들이 일제히 깜박거리며 움직였다. 오오라, 그러니까 멈추는 쪽이 긍정, 반짝거리는 쪽이 부정인가. 이 정도까지만 대화가 가능하다고 해도 일은 상당히 쉬워지잖아.

“너희들 요즘 유난히 활발하다고 아까 그 친구가 걱정하던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

질문에 녀석들이 반짝거리며 돌아다녔다. 문제없다는 말이잖아?

“그럼 별 이유 없이 한 거냐?”

이어지는 질문에도 녀석들은 여전히 반짝거렸다. 이유 없이 한 건 아니라네. 그럼 무슨 생각인데. 하지만 그렇게 물으면 부정과 긍정밖에 못하는 얘들이 대답해줄 리 없고.

“너희들에게는 문제가 없는데 다른 사람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

이번에도 녀석들은 반짝반짝.

“그럼 누구한테나 아무 문제없다는 거냐?”

계속해서 반짝반짝.

혹시 얘들은 그냥 아무 생각 없는 거 아닐까. 아까의 움직임은 단순한 우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호당 사장이라는 사람도 단순한 요괴라고 했다던데.

“너희들 생각이 있기는 있는 거야?”

묻는 순간, 빛 무리의 움직임이 뚝 멈추었다. 어…어쩐지 나를 좀 노려보고 있는 것 같다. 기분 나쁜 질문이었나.

“미안.”

슬쩍 사과하자 녀석들이 가만있던 것을 그만두고 아까처럼 유유히 허공을 떠다녔다.

말이 통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다. 다만 대화하는 방식에 좀 애로사항이 있다. 예와 아니오 밖에 모르는 사람과는 어떻게 대화해야 하지?

‘음…이건 꼭 스무고개 같잖아.’

그렇다면 단어선택을 좀 더 신중하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튼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기는 해.

“너희들 누구에게 하고 싶…아니, 조영천에게 할 말이 있는 거야?”

반짝반짝. 아니라는 거다.

“그럼 나한테?”

여전히 반짝반짝.

“조영천과 관련 있는 사람?”

움직임을 멈춘다.

“가족?”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조영천의 가족 중 누구일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라면…

“조영천의 할아버지야?”

빛 무리는 고요했다.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조영천의 할아버지에게 용건이 있다는 거네. 여기까지는 쉬웠지만 문제는 다음부터다. 할아버지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어떻게 알아내느냔 말이야.

“혹시 너희들을 내보내달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꽤 오래 갇혀있었으니까 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을까 하고 물었으나 빛무리는 등롱 안에서 반짝반짝 흔들렸다. 얘들 정말 좁아터진 유리 등롱이 마음에 드나보다. 그럼 뭐지?

“필요한 거라든가 갖고 싶은 것이 있어?”

이 질문에도 여전히 반짝반짝. 필요한 것도 없다네.

“용건은 너희와 관계없는 거야?”

이번의 질문에는 빛 무리의 반응이 좀 달랐다. 대부분 가만히 멈춰 있었지만 일부는 반짝이며 돌아다녔던 것이다. 조금은 관련이 있다는 뜻인가? 그보다 누구와 관련이 있는 거지?

“조영천의 할아버지와 관련 있는 거냐?”

모든 빛 무리가 일제히 멈췄다.

“나쁜 일이야?”

이번에도 빛 무리는 갈팡질팡 했다. 반은 멈춰 있었는데 반은 반짝거리며 움직인 것이다.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다는 뜻인지,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섞여 있는 건가?”

질문했지만 빛 무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로 확 흩어졌다. 그리고 햇빛 속의 먼지처럼 유유히 등롱 안을 부유한다.

“이봐, 그건 무슨 뜻인데? 조영천의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맞지?”

다시 물었으나 녀석들의 움직임에는 변화가 없었다. 내 말 따위는 못 알아듣는다는 듯이. 이리 물어보고 저리 물어보고 좀 기다렸다 물어보고 해봤지만 더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대화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자뿐만 아니라 요괴의 마음도 알 수가 없어!

대화가 막히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팔짱을 끼고 녀석들을 노려보아도 지금은 하늘하늘 날아다니며 빛을 내는 작은 벌레일 뿐이다.

가만, 그러고 보니 유하가 창고의 도깨비들 이야기를 했었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술과 음식을 가지고 가서 물어보라고. 냉장고라면 아까 계단 아래에 있는 것을 봤다. 열어보자 술이며 음식이 든 그릇 따위가 차곡하니 쌓여 있었다.

나는 메밀전병이 든 그릇과 술 한 병을 가지고 창고로 들어갔다. 여기 도깨비가 있다는 말이지?

조금 망설이다 벽을 더듬어 불을 켜자 동그란 전구에 호박색 불이 들어와 창고 안을 밝혔다.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보였다. 작업장보다 훨씬 큰지도 모르겠다. 그 안에 몇 개인지 모를 철제선반이 놓였고 선반마다 잡다한 물건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수리점 창고에 전자제품이나 공구 같은 건 없고 왜 항아리나 인형이나 책 같은 것이 놓여있는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 창고 같다. 게다가 도무지 쓸모도 없는 것 같은 평범한 돌이나 나무토막이나 깨진 병조각 같은 것도 진열되어 있었다. 도대체 뭘 기준으로 보관하는 거지.

왠지 담배 냄새가 나는 선반 사이의 좁은 통로를 천천히 걷고 있으려니 건드리지도 않은 항아리가 혼자서 흔들거린다든가 인형의 눈이 도로록 굴러서 나를 쳐다보는 정도의 이벤트가 이따금 생겼다. 멀쩡한 화병이 갑자기 바닥에 떨어져서 깨졌을 때만 소리 때문에 좀 놀랐을 뿐 도깨비가 사는 창고치고는 얌전했다.

창고 안쪽으로 들어가자 본격적으로 도깨비 같은 물건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몽당 빗자루라든가 부지깽이라든가 이 빠진 그릇 같은 것들이 달그락거리며 나를 돌아보았다. 이따금 선반 사이로 사람처럼 보이는 그림자가 지나가고 푸르스름한 불덩이 같은 것이 휙 날아가는 것도 보였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담배 연기의 냄새가 점점 진해졌다.

창고의 거의 끝에 닿았을 때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선반과 선반 사이 조금 넓게 만들어진 공간 안에 냄새에 그치지 않고 눈에 보일 정도로 자욱한 연기가 어려 있었다. 연기 너머로 벽처럼 서 있는 열두 폭 병풍과 바닥에 깔린 멍석이 보였다.

자욱한 연기를 만들어 낸 장본인은 그 멍석에 앉아서 화로에 장죽의 대가리를 넣고 물부리를 빨고 있었다. 후 하는 소리와 함께 희끗한 수염에 가려진 입에서 하얀 연기가 퍼졌다.

“좋은 냄새가 나는구려.”

주름진 볼에 미소를 띠며 그가 말했다. 머리에는 감투, 호박 단추가 달린 비단마고자에 옥색 한복 바지를 입고 점잖게 양반다리를 하고 있었다.

“그럼 같이 한 잔 할까?”

어디로 보나 나이 지긋한 영감님 같은 그에게, 나는 버릇없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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