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광충(5)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말하고 나서 스스로 조금 놀랐으나 노인은 태연히 맞은편 방석을 가리킨다. 거기에 앉아 그를 마주보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 앞에 있는 이 노인은 사람이 아니다.
물론 도깨비 나온다는 컴컴한 창고 안 깊숙한 곳에 제 방처럼 들어앉아 장죽을 물고 있는 걸 보면 확률상 도깨비일 가능성이 높지만, 내가 그를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확률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 수 있는 이유를 물으면 다르게 보인다든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정도의 설명밖에 할 수 없다. 뭐가 다른지 물으면 그때는 할 말이 없었다. 겉보기에 이 노인은 사람과 다른 점이 단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알았는지를 설명할 길은 없지만, 그 설명할 수 없는 일이 가능한 감각과 경험이 내게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기억 따위는 하나도 없지만 내가 수리점 간판 뒤에서 요괴와 관련된 괴상한 일을 자주 해보았구나 하고 깨달았달까. 그리고 그것을 깨닫게 되자 마음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
우리는 가져온 메밀전병을 안주로 삼아 함께 몇 잔을 마셨다. 누군가 옆에서 보고 있었다면 나는 꽤 예의 없는 모습이었을 터였다. 대충 편하게 앉아서 한 손으로 병을 기울여 노인의 술잔을 채워주고,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의 주름진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으니까. 아…내가 봐도 못 배워먹은 놈 같은 걸.
하지만 옆에서 보고 있는 누군가라고 해봐야 근처에서 혼자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비단공이나 화로 속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도로 들어갔다 하는 불덩어리 같은 것뿐이다. 선반 위에서 꼼지락거리며 이쪽을 기웃거리는 물건들이 보였지만 다가오거나 말을 걸거나 하지는 않았다. 담배연기로 자욱한 이 노인의 공간에 범접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귀여운 아이들이라오.”
유리 등롱 안에 있는 빛을 내는 벌레들에 관해 물어보자 노인은 머리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나무와 물이 있는 곳에 모여드는데 약간의 밤기운을 먹는 것 외에는 바라는 게 없다오. 조용한 것을 좋아해서 보통은 인적 없는 곳에 살지만 이따금 우리가 노는 곳으로 몰려오기도 하오. 드물지만 흥겨운 노래를 부를 때면 반딧불이 모양 날아다니거나 춤을 추기도 하지.”
춤을 춰요? 벌레가 춤을 춘다면 벌이 의사소통 할 때 같은 그런 걸 말하나…?
하지만 상상해 보니 꽤 멋진 광경일 것도 같다. 어두운 숲 속에 사방은 나무그림자, 하늘은 새카맣게 푸르고 모래알처럼 뿌려진 별이 하얗게 빛나고…그 어둠 속에서 푸르스름한 빛의 무리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꿈처럼 몽롱하게 떠오른다.
웃음소리, 말소리, 노랫소리. 붉고 푸른 등롱이 둥실 둥실 떠다니고 파란 도깨비불이 휙 휙 하늘을 가로지르고, 왁자지껄한 속에서 술잔이 오가고 음식 냄새가 풍기고…내가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있던가? 희롱하며 웃으며 노래하는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던가?
반딧불이 같이 작은 빛이 민들레 씨앗처럼 날아오르는 광경이 보였다. 흩어졌다 모이고 춤추듯 일렁이고…그 춤에 어울리는 피리 소리가 한적하니 들려온다.
그대로 꿈속에 빠져버릴 것 같아, 나는 머리를 흔들어 그 광경을 쫓아냈다.
“그런 단순한 요괴라면 목적을 갖고 뭔가 하려 하지는 않겠네. 뭐 바라는 거라든가 특별히 좋아하는 거라든가 그런 것도 없는 거야?”
“조용한 곳에서 한가롭게 사는 아이들이니 누가 귀찮게만 하지 않으면 아무 일 없겠소. 얼추 백에서 백오십 정도는 헤아리는 수지만 모두 한 배에서 난 아이들이라 생각도 같고 바라는 것도 비슷할 게요.”
그런데 왜 그런 애들이 조영천의 할아버지에게 관심을 갖고 뭔가 전하려고 애쓰는 걸까.
“허나 도령은 어째서 그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고 내게 와서 묻는 게요?”
노인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야 녀석들이 대화를 안 하려고 하니까…”
내 대답에 노인이 장죽을 화로에 탕탕 두드려 재를 빼냈다. 그러고 나서 텅 빈 대가리로 화로 안의 재를 쓸어 담더니 물부리를 물고 숨을 빨아들인다. 연초가 아니라 재를 담았는데도, 후 하고 숨을 내쉬는 노인의 입에서 하얀 담배연기가 뭉클 뿜어졌다.
재로 무한 리필이 가능한 신기한 장죽에 감탄한 새도 없이 노인이 말했다.
“착한 아이들이라 대답은 곧잘 해줄 거요만, 스무 번 넘게 물으면 싫증을 내고 만다오. 그러면 다음날 다시 물으면 되오.”
뭐? 그런 거였어? 내가 아까 질문을 스무 번 넘게 했었나? 생각해 보니 이런 저런 쓸데없는 질문까지 합해서 대충 스무 번은 되었던 것 같다. 그럼 내일 밤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잖아.
실망했지만 그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내일은 실수하지 않게 되었으니 만족해야겠지. 스무 번만 물어볼 수 있다면 이건 정말로 스무고개인가.
‘스무 고개를 하는 요괴라니 웃기잖아.’
어쨌든 횟수가 정해져 있다면 질문을 더욱 조심히 할 필요가 있었다. 노인 도깨비와 헤어진 다음, 나는 내일 유리 등롱의 요괴들에게 물어볼 질문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들을 수 있는 답은 오직 예와 아니오 뿐이다. 신중하게 물어야 했다.
다음 날 어쩐지 시험을 앞둔 기분으로 내내 긴장하고 있었다. 밤이 다가오자 예상 질문을 뽑아놓고 기다리는데 예상에 없는 연락이 왔다. 조영천이었다.
“며칠 있다 생신이라 집에 오셨다가, 등롱이 맡겨졌다는 걸 아시고 당장 확인해야겠다고…곧 출발할 테니까 두 시간이면 거기에 도착할 겁니다.”
조영천은 약간 조급한 목소리로 나에게 알리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통화중에도 그를 재촉하는 듯한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있었다.
병원에 있던 조영천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집에 돌아온 모양이었다. 돌아다니지도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다고 하더니 퇴원해도 되는 건가. 어쨌든 아끼는 등롱이 다른 곳에 맡겨져 있다는 말을 듣고 당장 확인하러 오는 모양이었다.
조영천의 말대로 그들은 두 시간쯤 후에 도착했다. 조영천과 할아버지 외에도 젊은 여성이 한 명 있었다. 남자들과 닮은 구석이 없는 걸로 봐서 저 여자가 조영천의 여자친구일까?
“내 등은? 어디 있어? 응?”
수리점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할아버지가 재촉했다. 일부러 잘 보이시라고 조명도 낮춰놓고 작업 선반에 등롱을 올려뒀건만. 파르스름한 빛을 발하는 등롱이 몇 걸음 앞에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못 본 체하며 연신 묻는다.
“이쪽이에요, 할아버지.”
조영천이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어…못 본 체한 게 아니었네.
할아버지는 아예 눈이 보이지 않는 거였다. 눈을 꿈적거릴 때마다 눈꺼풀 안에서 허옇게 변한 안구가 드러났다. 할아버지는 손자의 손에 이끌려 불안한 걸음을 옮긴 끝에 작업 선반 앞에 도착했다. 조영천이 등롱을 당겨서 가까이 놓고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 거기로 가져다 놓았다. 정맥이 울룩불룩 도드라진 마른 손이 등롱의 몸체를 더듬었다.
유리 안에서 빛 무리가 날뛰는 것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잠든 것처럼 움직임이 없던 녀석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데 뭉쳐서 휙휙 원을 그리는가 하면 할아버지의 더듬는 손을 따라 몰려다닌다.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활발한 반응이었다.
“괜찮죠? 걱정이 되어서 여기 맡긴 거예요. 무슨 일인지만 알게 되면 다시 집으로 가져다 놓을게요.”
조영천이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안에 있는 것들은, 아직도 그대로냐?”
눈이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물었다.
“예. 말씀드린 대로, 좀 요란하게 움직이기는 하는데 그것 말고 별 일 없어요.”
“왜 이제 와서…?”
할아버지가 나직이 말했다. 나는 그 말이 한탄인지 물음인지 몰랐지만, 등롱 안의 빛 무리는 질문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몰려다니던 빛 무리가 갑자기 완벽한 한 덩어리로 뭉쳤다. 지금까지처럼 빛 무리라고 표현할 그런 상태가 아니었다. 틈 하나 없이 오밀조밀 달라붙은 것이다.
그렇게 뭉친 빛의 덩어리는 과연 조영천의 말 그대로였다. 둥근 머리통에 두 개의 구멍이 뚫린, 마치 두개골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예전의 기억이 났는지 조영천이 깜짝 놀라며 할아버지를 끌어당겼다. 등롱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한 일이었지만 할아버지는 끌어당기는 대로 휙 쓰러졌다.
“할아버지!”
당황한 손자가 할아버지를 일으켜 안았다.
“할아버지!”
품에 안긴 할아버지를 내려다보며 조영천은 어쩔 줄 모르며 다시 외쳤다. 할아버지는 앞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뜨고 있는 그의 눈 안에는 허옇게 빛바랜 눈동자가 있었다. 이미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눈을 크게 뜨고서, 할아버지는 입을 벌리고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여 자신의 앞을 노려보고 있었다.
뭔가 보일 리가 없는데.
그렇게 생각했지만 할아버지의 시선은 저 앞으로부터 이쪽으로 조금씩 이동한다. 그리고는 멈췄다가, 다음에는 위아래로 천천히 훑어보듯 움직였다.
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뭔가가 보이고 있었다. 그것을 조영천도 깨달았는지 창백해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손짓으로 기다리라는 시늉을 하고 노인의 얼굴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주름으로 뒤덮인 그의 얼굴은 표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볼을 움찔거리거나 마른 입술을 달싹거리는 정도였다. 보고 있는 것이 뭔지 몰라도 그를 두렵게 하거나 놀라게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조금 더 기다려 보자. 예전에 조영천이 환상을 봤을 때도, 그것은 요괴들이 자신의 위험을 알리려는 것뿐이었으니까.
조영천이 속이 타들어가는 표정으로 나와 할아버지를 번갈아 보았다. 자신이 겪은 일도 있고 하니 할아버지를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그러나 시간이 점점 지나자 나도 조금은 초조해졌다.
뭔가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멍하니 앞을 보고 있었다. 이따금 미미한 표정의 변화가 생길 뿐이다. 그런 상태로 20분이 넘어가니 마냥 기다려도 좋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오래 끌잖아.”
나도 모르게 등롱 안의 요괴들에게 불평해 버렸다. 내 말을 들은 건지, 등롱 안의 해골을 닮은 빛 덩어리가 조금 방향을 바꾸어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갸웃 하듯 고개를 기울인다.
해골 모양만 아니면 귀엽게 보이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할아버지의 표정 변화가 조금 더 빨라졌다. 눈살을 찌푸렸다가 어쩔 줄 모르며 손을 움찔거리다가 시선을 위아래로 옮기다가, 그러더니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켰다.
“할아버지!”
갑작스러운 노인의 행동에 조영천이 놀라서 그를 붙잡았다. 할아버지는 일어났을 뿐 아니라 곧장 앞으로 달려가려고 했던 것이다. 손자가 붙잡았으나 그는 몸부림쳐서 조영천을 밀쳐버렸다. 그리고 무서운 속도로 맞은편 벽을 향해 달린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힘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조영천의 외침과 함께 벽으로 달려들던 노인의 몸에 내 팔이 감겼다. 부딪치기 직전이었다. 손을 내밀며 그가 이름 하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갑자기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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