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광충(6)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놀란 조영천과 그의 여자 친구가 달려왔다. 내게 잡힌 채로 쓰러진 노인의 몸은 마르고 연약했다. 손자를 뿌리칠 때의 힘이 어디에서 솟아났는지 모르겠다.
“할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쓰러진 노인이 눈을 뜨지 못하자 조영천이 비통한 목소리로 외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 있었다던 할아버지다.
“사장님! 어떻게 된 겁니까?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요!”
조영천이 눈을 부릅뜨고 내게 따졌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등롱 안의 요괴들이 뭔가 환상을 보여줬고 그것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 말고 내가 아는 것은 없었다. 별일 없을 거라 생각하고 그것을 방조한 장본인이 나다. 할아버지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내 잘못이었다.
“기절하신 것뿐이니 걱정 마세요.”
차분한 목소리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우리에게 들려왔다. 유하다. 어느새 계단을 내려온 그녀는 팔에 둘둘 말린 두꺼운 담요를 안고 있었다. 그것을 재빨리 바닥에 펴더니 노인을 그 위에 눕히게 했다.
“기력도 약하신데 마음에 충격을 받아서 잠시 정신을 잃으셨어요. 조금 쉬고 나면 깨어나실 거예요.”
노인의 맥을 잡아보고, 마른 팔다리를 주물러 주며 유하가 말했다.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는 조영천을 다소 진정시킨 것 같았다. 그러나 나를 보는 표정에 여전히 사나운 기색이 남아 있다.
“사장님이 가만있으라 하셔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게 뭡니까. 할아버지는 요 근래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셨습니다. 오늘처럼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날이 한 달에 며칠 되지도 않아요.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정말 큰 사단이 날 수도 있습니다.”
차마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는 하지 못하고 그가 돌려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나는 꿀꺽 삼켜버렸다.
여기에서 사과해 봐야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뿐이라 신뢰가 떨어지기나 할 뿐이다. 게다가 조영천의 심정을 공감해서 미안하게 여기고 있을 뿐, 사실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천수를 다한 노인이 죽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라고, 잠시 냉정한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아…기억이 없어서 몰랐는데 나 사실은 차갑고 비정한 성격인가.
“이 아이들은 착하고 단순합니다. 자신이 위험해지기 전에는 남을 위협하지 않아요. 직접 경험해 보았으니 아실 겁니다.”
사과하거나 위로하는 대신 나는 유하를 흉내 낸 담담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조영천이 울컥하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을 비껴서 유리 등롱 안의 요괴들에게 보냈다. 녀석들은 이 난리를 일으켜 놓고 등롱 안에서 한가롭게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너희들, 할아버지에게 일어난 적 없는 일을 보여준 거냐?”
준비한 질문목록이 쓸모없게 된 지금 나는 다시 임기응변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 질문에 녀석들이 반짝반짝 파닥거렸다.
“그럼 할아버지가 본 것은 과거에 일어난 일이야?”
불빛이 일제히 멈추어 선다. 갑자기 얼어붙은 듯한 유리 등롱 안을 보고 조영천의 얼굴이 굳었다.
“10년 안에 있었던 일이냐?”
녀석들이 다시 반짝거리며 등롱 안을 날아다녔다.
“그럼 20년 안에?”
여전히 반짝반짝.
이대로 10년씩 늘리며 물어보는 게 안전하겠지만 질문의 수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가능성 높은 시간대로 건너뛰어 볼까.
“할아버지가 20대일 때의 일이야?”
빛 무리가 우뚝 멈추었다.
“조영천씨. 할아버지가 이 요괴들을 잡았을 때가 언제인지 알아요?”
내가 요괴와 대화하는 것을 보며 긴장하고 있던 조영천이 질문을 받자 움찔 떨었다.
“젊으셨을 때…고향을 떠나고 얼마 안되어서라고 하셨으니까 20대 초반일 겁니다.”
“할아버지 연세가?”
“올해로 여든다섯이십니다.”
그렇다면 60년 전의 이야기다. 조영천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아버지도 태어나지 않았을 때일지 몰랐다. 가족들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별로 없다.
“그 무렵 할아버지에게 뭔가 중요한 일이 있었나요? 혹시 알아요?”
가능성은 낮지만 일단 물어보았다. 조영천은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돌이켜보는지 진지한 얼굴을 들고 허공으로 시선을 굴렸다.
“중요한 일이, 할아버지뿐 아니라 전국이 다 같았을 것 같은데 그 때 6.25가 터졌습니다. 고향을 떠나신 것은 그 때문이라고 합니다. 할아버지 고향이 함경남도 홍원이라고 들었습니다.”
어어, 그때가 그때였어?
6.25라고 하자,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었을 그때를 기억이라도 하는 것처럼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전쟁이 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방되어 일본인들 떠나고 이제 좋은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홍원에서도 십리는 걸어서 들어가야 나오는 산골 마을이었는데 전쟁이 터진 후에도 한동안은 전투기 날아다니는 소리나 가끔 들었을 뿐이고 총소리 한 번 울린 적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계속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군인들은 계속 죽어갔고 부족한 머리수를 채우기 위해 징병이 시작되자 전쟁이 시작되고도 화약 냄새 한 번 맡아볼 일 없던 산골까지 군인들이 찾아왔다.
“할아버지 형제가 다섯이었는데 그 중 삼형제가 끌려갔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넷째였지요. 나중에는 할아버지까지 데려가려고 해서 막내 할아버지와 함께 몇 달 동안 산속에 숨어계셨다고 합니다. 결국 전화(戰火)가 고향마을까지 번져서 온가족이 다 피난을 갔고요. 그 와중에 뿔뿔이 흩어져서 지금 할아버지는 일가친척 하나 없는 처지시지요. 그래서 자식을 많이 낳으셨다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세상에 믿을 사람은 가족밖에 없다면서요.”
안타까운 미소를 띠며 조영천이 말했다.
“요괴를 잡았을 때의 일은 잘 이야기하지 않으시는데, 지금까지 들은 말들을 종합해서 나름대로 생각해 보면 산속에 숨어 계셨을 때나 피난하던 때의 일이 아닌가 싶어요. 전쟁 끝나고는 그야말로 먹고 잘 시간을 줄여 일만 하셨다고 하니까요. 덕분에 우리 가족은 부족함 없이 살았는데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병적이라고 할 만큼 일에 열중하셨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조영천은 말하다 말고 입을 우물거렸다. 입 밖에 내기 불편한 말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힐끗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제가 보기에 할아버지는 일을 좋아하신 것이 아니라, 잠드는 것을 두려워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잠들지 않으려고 일하는 것처럼 보였을 정도니까요.”
그때 노인이 몸을 꿈틀거려서 조영천은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그는 신음소리를 내며 깨어났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노인은 보이지 않는 눈을 꿈적거리며 잠시 천장을 향하고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담요 위에 상체만 일으켜 앉은 노인이 힘든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할아버지, 우선 병원에 가서…”
“됐다.”
노인이 손자의 권유를 거절했다. 꺼져가는 목소리였다.
“안색이 너무 안 좋으세요. 혹시 모르니까 간단하게라도 검사를 받아보셔요.”
조영천의 여자 친구도 걱정스레 권했지만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보이지 않는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 주인장, 사장인지 무당인지는 어디 있소.”
사장인지 무당인지라뇨, 할아버지.
항의하고 싶었지만 사장인 건 사실이고 무당인 건…무당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뭔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어쩔 수 없이 “저요?”하고 대꾸했더니 할아버지의 고개가 내 쪽으로 돌아왔다.
“저것, 저 요망한 것. 없애버릴 수 있소?”
노인이 내게 물었다. 노기에 찬 목소리였다.
없애요? 저 요괴들이요?
나도 모르게 유리 등롱을 쳐다보자 등롱 안의 요괴들은 그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유유히 허공을 부유하며 파르스름한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저, 저 요괴들이 혹시 할아버지를 괴롭히거나 나쁜 일이라도 했나요?”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방금 사장님도 보셨잖아요.”
내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조영천이다. 아직 유감이 풀리지 않은 얼굴이었다. 물론 손자 입장에서 할아버지를 쓰러지게 만든 요괴니까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하지만 나는 납득할 수 없는 데가 있었다.
“어르신, 아까 쓰러지기 전에 보신 것 말입니다. 그것 때문에 요괴들을 없애려고 하는 건가요? 또다시 같은 장면을 보는 것이 싫은 겁니까?”
만일 그렇다면 등롱을 여기 두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싶어 한 질문이었다. 사실 내 눈에는 위험하지도 않고 귀엽기만 한 녀석들이라 가능하면 좋게 가자 싶은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내 말에 볼을 푸르르 떨면서 주름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저것들, 저것들은…저것들 때문에 내 동생이, 그리고 정순이가, 저것들 때문에 두 사람이 죽었단 말이오!”
울컥 토해내는 듯한 목소리였다. 말이 아니라 핏덩이가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작업장 안이 일시에 고요해졌다. 조영천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할아버지를 쳐다보았고 그의 여자 친구도 입을 벌리고 멍하니 있었다. 나도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저 요괴들 때문에 누군가 죽었다니? 단순하고 순한 요괴 아니었어? 창고 안의 영감 같은 도깨비도 그렇고 은호당의 사장인가 하는 사람도 비슷한 말을 했다는 것 같은데. 게다가 내 느낌도 그 평가와 다르지 않다.
악의라든가 삿된 느낌이 전혀 없이 평화롭고 단순한 요괴들의 무리였다.
하지만 노인의 말에도 거짓은 없다.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내가 말했다. 먼저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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