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118화 (118/218)

소설가와 보물성(1)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은호당의 사장이라는 남자가 수리점에 찾아온 것은 내가 잠에서 깨어난 지 열흘쯤 지난 뒤였다. 아침을 먹자마자 손님이 왔다는 말에 나갔더니 모르는 남자가 작업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그는 결혼식장을 방금 나온 것처럼 말끔한 하객 복장을 하고는 나보다 약간 높은 눈높이에서 이쪽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까닥여 인사했다. 잡지에서 튀어나왔다고 해도 믿을 것 같은 단정한 외모와 세련된 차림에도 불구하고 아니…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아무튼 나는 그가 마음에 안 들었다.

유하에게 들은 바로는 그로부터 물건을 부탁 받기도 하고 이쪽에서도 그에게 조사를 시키기도 하는 그런 거래관계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가 일거리를 가져온 경우인 것 같다. 그런데 가져온 일거리가 좀 이상한 거였다.

“보물…찾기?”

“예. 기한은 24시간, 정해진 장소를 뒤져서 보물을 찾아내는 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야? 그게.

나는 멀쩡히 잘 생긴 것에 비해 어딘지 개념이 사차원인 것 같은 그를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게 왜 일인데?”

일이라는 건 원래 뭔가를 해주고 대가를 받는 거잖아. 그런데 보물을 찾아서 주고 대가로 돈을 받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 그냥 보물을 가지는 게 낫잖아. 그 보물이 뭔지는 몰라도 돈 주고 찾으려고 하는 정도면 값비싼 거겠지.

그것도 그렇고, 원래 수리점에서 보물찾기 같은 것도 해주는 거야? 이 직업은 뭐 이래?

내 의문에 그가 설명한 내용은 이랬다.

옛날에 어떤 돈 많고 할 일 없는 소설가가 하나 있었단다. 내 생각에 소설가는 하루 종일 글쓰기도 바쁠 것 같은데 왜 할 일이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심심하고 무료한 삶에 양념을 치고 싶어서 집을 한 채 지었다. 그리고 그 집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재미있는 놀이를 하려고 한 것이다.

그 놀이가 보물찾기라는 거였다. 그런데 소설가는 너무 심심하고 무료한 나머지 정신이 살짝 이상해진 것 같았다. 그는 이 소소한 놀이를 위해 재단을 세우고 그곳에서 놀이를 위한 모든 것들을 관리하게 했다.

재단 사람들은 집을 지키고 청소하고 손님이 머물 수 있도록 일했다. 손님들은 반년에 한 번 열두 명만이 초대받았는데 그들은 하루 동안 소설가의 집에 머물면서 그가 숨겨놓은 보물을 찾는다고 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면 보물을 찾았든 못 찾았든 그들은 집에서 쫓겨났다.

소설가가 숨겨놓은 보물이 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돈이나 금궤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희귀한 고서나 골동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비싼 그림이나 보석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심지어는 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 쓴 걸작이 숨겨져 있다고도 했다.

어쨌든 재단 운영비만 생각해 봐도 소설가의 재산은 어마어마했고 재단에서는 보물이 반드시 있으며 그 가치는 헤아릴 수 없다고 약속하고 있었다. 실제로 집안에서 보물을 찾아낸 사람도 있었다. 오래 된 도자기라든가 금과 은으로 만든 장신구라든가 그런 것들이 조금씩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소설가의 진짜 보물이라기보다 보물 가장자리에 묻은 티끌 같은 것이었다. 재단의 표현에 의하면 그랬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 수상하고 비밀스러운 소설가의 저택에 열광하며 그곳에 초대받기 위해 애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를 왜 초대하는가는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재단에서도 그것은 소설가 본인의 권한이라는 말 외에 다른 설명을 거부했다.

“그러니까 그 할 일 없는 부자 소설가한테서 초대를 받은 사람이 우리더러 대신 보물을 찾아 달라 했다고?”

“그렇지요.”

“뭘 믿고 우리한테 그런 일을 시켜? 설령 보물을 찾아도 우리가 들고 튀어버릴 수 있지 않아?”

“우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제 신용은 완벽하며…”

잘생긴 사차원이 잘난 체하는 얼굴로 말했다.

“보물을 찾아도 집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재단 사람들의 동의를 거쳐야 합니다. 대리인을 쓸 경우에는 특히 철저하게 검사를 하지요.”

뭐야. 초대받은 사람만 갈 수 있다면서 대리인도 가능한 거였어? 난 또 신분을 속이고 위장 잠입해야 한다든가 그런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대리인이 보물을 찾을 경우에는 재단과 보물을 분배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좋다면 대리인을 보내는 거지요.”

“배당이 얼마나 되는데?”

“3대 7입니다. 재단이 7이지요.”

그 무슨 강도 같은 비율이냐.

“그런데도 대리인을 보낸단 말이야?”

직접 찾으러 가는 게 당연하지 않아? 내 표정을 보고 사차원이 덧붙였다.

“목숨을 거는 것보다는 30%에 만족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지요.”

뭐…?

“들어가기 전에 동영상 촬영이 있을 겁니다. 그때 재단이 내거는 조건에 동의하셔야만 저택 안으로 입장이 가능합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재단은 관련이 없으며 거기에서 겪는 어떠한 손해나 위험도,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이라는 조건을 말입니다.”

어째 보물찾기가 갑자기 스펙타클 해진다?

“죽은 사람도 있어?”

내 질문에 그가 묘하게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확인된 바는 없지만, 죽은 사람도 있다는 소문이지요.”

안 가.

그리고 생각해 보니 나는 어차피 밖에 나갈 수도 없잖아. 괜히 진지하게 고민했네.

내 거절에 그는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어쩐지 요사하게 느껴지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습니까? 모처럼 날이 흐려서 찾아왔던 겁니다만 도령이 외출을 거절하다니 뜻밖이군요.”

날이 흐려서 뭐?

사실 첫날에는 햇빛 때문에 밖으로 못 나가는 거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밤이 되자 문을 슬쩍 열고 나가려고 시도했으나, 나는 밖이 밝건 어둡건 똑같이 두려워한다는 것만 확인했다. 그러니까 나의 외출공포는 명암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강박신경증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뭐 요괴와 스무고개로 대화하는 직업이고 창고에서는 도깨비가 담배 피고 있고 그러니 이런 요상한 병쯤 있어도 뭐 그리 대수랴.

그러나 사차원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잘생긴 얼굴을 약간 찌푸리며 말했다.

“아직 못 들으셨군요. 뭐 그럴 것 같았습니다만. 도령은 하늘이 가려진 흐린 날에 외출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밖으로 나가는 문제는 걱정 없는 것이지요.”

뭐? 정말? 잠깐, 오늘 날씨가 어땠지? 모르겠다.

매일 건물 안에 틀어박혀 있는데다 창밖을 보는 일도 없으니 바깥의 날씨가 맑은지 흐린지 알 게 뭐야. 티브이를 볼까? 아니 아니, 인터넷으로 확인해야겠다. 내가 허둥대고 있자 사차원은 귀찮은 듯 말했다.

“오늘은 내내 흐리고 내일은 비가 올 겁니다.”

그리고 그가 덧붙였다.

“소설가의 저택은 오늘 오후 5시까지 도착해야 합니다. 차로 세 시간 걸리는 곳입니다만.”

아직 오전 9시도 안 된 시각이라 얼마든지 여유가 있었지만, 그의 재촉하는 듯한 말에 나는 오래 생각하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하는 보물찾기를 하러 간다는 내 말에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간단히 챙겨서 내밀었다. 별 말은 없었지만 표정 없는 그녀의 얼굴이 사차원을 힐끗 보았을 때는 어쩐지 날카롭게 변한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준 가방을 메고 밖으로, 정말이지 우스울 정도로 수월하게 문 밖으로 나갔다. 나가서도 잠시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내가 이런 곳에 살고 있었구나.

건물 앞 도로는 좁았다. 도로 건너편은 폭이 넓은 개천이 길을 따라 이어졌고 그 개천 너머 멀리에 아파트 단지와 상가를 비롯한 수많은 건물들이 보였다.

사차원이 입은 옷만큼이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차 옆에서 빨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내가 타자 그는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켰다.

차 안에서는 감초 냄새가 감돌았다. 골동품점을 운영한다던데 그래서 그런지 생긴 것과 달리 취향이 구식인 것 같다.

차를 타고 한동안은 바깥을 구경하느라 정신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시내에서는 건물구경 사람구경으로 눈이 바빴다가 차가 교외로 나가자 산이나 하늘이나 대충 비슷한 풍경의 연속일 뿐이라 곧 지쳐버렸다.

그러고 나자 적막한 가운데, 잘 모르고 마음에도 안 드는 남자와 좁은 공간에 나란히 앉아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곤란한 상황에 처해 버렸다.

아아, 괜히 가겠다고 했어. 그냥 건물 밖이나 돌아다니면서 구경할 걸. 게다가 유서라도 작성하는 것 같은 동영상을 찍고 무슨 위험한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괴상한 곳에 내 발로 걸어 들어가다니. 무슨 생각으로 덥석 따라와 버렸지. 나 홀린 건가?

옆자리의 사차원을 힐끗 보자 어쩐지 정말로 사람을 홀릴 것 같이 요사하게 잘 생긴 얼굴이었다. 아냐 설마 남자한테 홀렸을 리는 없어. 잠시 성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다음 나는 복잡한 머리를 홰홰 저었다.

이미 출발했는데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다. 몰라. 별 일 있으려고. 위험하다 싶으면 그냥 다 팽개치고 도망쳐 버리지 뭐. 어디까지나 안전제일이잖아.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나는 이내 흔들리는 차 속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잠이 깬 것은 차가 멈추고 있다고 느꼈을 때였다.

차가 선 곳은 한적한 길가에 만들어진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었다.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였고 길은 좁고 구불구불하게 이어졌으며 길 한쪽에는 밭이, 다른 쪽에는 철쭉이 한창인 야산이었다. 그런 곳에 도심 한가운데에나 있을 것 같은 건물이 어디서 번쩍 나타난 것처럼 서 있었다.

별로 크지는 않은 3층 건물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입구에 있던 정장 차림의 40대 남자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말도 없었다.

사차원이 재킷 안에서 하얀 봉투를 하나 꺼내서 그에게 건넸다. 엽서에 가까운 모양의 봉투 가장자리에는 금색 당초무늬가 새겨졌고 입구에는 반으로 쪼개진 붉은 밀랍이 붙어 있었다. 봉투를 받은 사내가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더니 손짓했다.

타이트한 정장을 입은 젊은 여성이 다가와서 우리를 안내했다. 다음은 사차원이 말한 그대로였다. 여성은 우리를 카메라 앞에 앉혀놓더니 종이 두 장을 내놓고 읽어보라고 했다. 요약하면 죽어도 네 탓은 안 하겠다 모든 것은 내탓이다 라는 내용을 길고 복잡하게 적어놓은 종이였다.

거기에 사인을 하고 여자의 몇 가지 질문에 답한 다음에야 우리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입구에서 본 남자가 우리를 배웅했다.

“길을 따라 쭉 가시면 저택이 나옵니다. 거기에서 안내인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말하는 그의 얼굴에 어딘가 비웃음이 묻어있다고 생각한 것은 내 착각인지도 모른다. 그런 기분이 들 정도로 말을 마친 순간에 그는 감쪽같이 무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차를 타고 하나뿐인 길을 따라 달리자 5분쯤 후에 갑자기 넓어진 공간이 드러났다. 소설가의 저택은 바로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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