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보물성(2)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저건 저택이 아니라 성인 것 같은데.”
건물을 본 내 감상은 그랬다. 단순히 크다는 뜻이 아니고 말 그대로 성. 절벽 같은 벽에 작은 창과 원기둥 같은 성탑으로 이루어진 중세시대의 성 말이다. 주변에 해자가 없을 뿐이지 어디 중세시대에서 번쩍 들어다 갖다 놓은 것 같은 모양의 건축물이었다.
아니 무슨 둥글둥글한 산자락 안에 저런 어울리지도 않는 요새를 만들어 놨담. 게다가 규모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런데 소설 써서 저런 돈을 벌 수 있는 거야?”
취향은 이상하지만 그 크기라든가 웅장한 모습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장관이라 나는 궁금해졌다.
“부모가 대단한 부자였다고 하더군요.”
“아아, 예….”
성 아래에는 열댓 명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마치 성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 같았다.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 관광객 사이에 있던 정장의 남자가 이쪽을 향해 손짓했다.
“재단 사람입니다.”
사차원이 설명했다.
재단 사람이라는 정장의 남자가 모든 관광객 아니, 초대받은 손님들을 모아놓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 저택은 초대장을 가지고 계시면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들어가는 문은 하나지만 나오는 문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열쇠를 찾아내신다면 아무 때라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쇠를 찾지 못해도 24시간 후에는 저희가 문을 열어드리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뇨. 전혀 안심이 안 되는데요.
무슨 설명을 보물이나 그런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탈출할 수 있는지부터 하는 건데. 보물을 놔두고 밖으로 나가는 길부터 찾을 리가 없잖아. 아니면 저 안은 들어가자마자 후회하면서 도망치고 싶어지는 그런 곳인가?
“보물 역시 열쇠를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열쇠의 소유자가 보물의 일차적인 권리를 갖습니다. 그러니 열쇠를 습득하시면 보물 상자의 방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열쇠의 양도 및 공유는 여러분의 선택에 맡기고 있습니다.”
보물 찾기라기보다 열쇠 찾기라고 하는 게 맞겠다. 게다가 양도하거나 공유할 수도 있다는 말이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어딘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음식은 1층 식당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바로 옆에 조리실이 있으니 원하시면 직접 조리하셔도 무방합니다. 전기는 사용할 수 없고 물은 우물을 이용하셔야 합니다. 식당 맞은편…”
“아 그런 건 들어가 보면 다 아는데 대충 하고 빨리 갑시다.”
땅딸막하고 체격이 좋은 30대 중반의 남자가 그의 말을 방해하며 불평했다. 남자는 그를 힐끗 본 다음 말을 이었다.
“…식당 맞은편 방에 구급약품이 있으니 응급상황에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24시간 동안 저택은 밖에서부터 들어갈 수 없는 상태이며 오직 안에서 나올 수만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저희는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모두 초대장을 확인해 주십시오. 각자 사용할 수 있는 방이 적혀 있습니다. 그럼 이제 입장하셔도 좋습니다.”
말하고 나자 남자는 할 일이 끝났다는 듯이 돌아섰다. 그리고 곧장 자신의 차로 걸어간다.
“야아, 완전 살벌하네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20대의 청년이 웃으며 말했다. 동감이다. 안 들어가도 되느냐고 사차원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미 성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중세식 요새답게 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도개교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실제로 올라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교했다. 성 안의 바닥에는 돌을 깔았고 회색의 돌 벽 위에 초록색 담쟁이가 카펫처럼 펼쳐져 있었다. 넓은 공간 너머로 내벽이 보였다. 그 뒤로 요새의 중심인 아성이 꼭대기 부분만 살짝 드러났다.
“꼭 외국에 온 것 같네요. 진짜 성 같아요.”
5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감탄하며 말했다.
“중세시대 배경의 영화 같은 걸 찍어도 되겠어요. 돌 벽에 이끼 낀 거 봐. 담쟁이 넝쿨이랑. 정말 멋지다.”
가까이 있던 젊은 여자가 맞장구쳤다. 둘은 일행 가운데 유일한 여자라 그런지 금세 가까워져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멋지긴 개뿔.”
멀찍이서 따라오던 30대의 남자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아까 재단의 직원에게 불평하던 사람이었다.
“이거 지으려고 돈 깨나 들였겠구만.”
“그렇죠. 이런 걸 아무나 세울 수 있을 리도 없고. 참 누군지 그 소설가 양반 돈지랄도 제대로 하셨네.”
“커어, 부럽다. 누군 세월 좋게 펑펑 쓰고 놀고…”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들 셋이 이야기하며 걷고
“참 넓기도 하다. 돌아다니기도 힘들겠는걸.”
일행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반백의 신사가 중얼거리며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가장 뒤에서는 세 사람이 뭉치거니 흩어지거니 하며 걸어왔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청년이 개중 가장 젊어 보였다. 나머지 둘은 얼굴이나 체형이 전혀 다르지만 어딘지 분위기가 비슷해서 묘했다. 30대 초반 가량의 나이대 같다. 편한 옷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것도 같고 내가 쳐다보자 날카로운 눈매로 노려보는 것도 비슷하고.
나는 슬금슬금 사차원 옆으로 붙었다. 별로 마음에는 안 들어도 아는 사람은 이 녀석뿐이니 어쩔 수 없지.
아성에 들어서자 나는 감탄했다. 시멘트나 타일 같은 것으로 말끔하게 만들어진 내부가 아니었다.
몇 아름이나 되는 나무 기둥은 손때가 묻어 반질거렸고 흠이나 갈라진 곳 때문에 더욱 고색창연했다. 석고 벽은 시간의 때로 얼룩졌고 벽난로는 시커먼 그을음이 옷처럼 입혀져 있었다.
마치 조금 전까지 누군가 살고 있던 곳처럼 보였다. 오랜 시간에 걸쳐 수없이 이용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안에 들어서자마자 각자 흩어져서 사방을 쏘다녔다. 구조가 궁금하기도 하겠지만 역시 보물찾기는 선제필승. 먼저 찾는 사람이 임자라는 거지.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니며 물건들을 뒤집어 보고 좁은 틈 사이를 들여다보았다. 위층으로 달려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와중에 가장 느긋한 사람은 역시 사차원이었다. 그는 내부를 한 번 휙 둘러보더니 뚜벅뚜벅 걸어서 어디론가 갔다. 나도 사람들처럼 보물을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사차원과 함께 있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그는 금세 기둥과 탁자로 반쯤 가려진 작은 문을 발견하더니 문을 열고 어두컴컴한 그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이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지하실? 뒤따라 계단을 내려갔으나 캄캄해서 도무지 뭐가 뭔지 안 보이는 곳이었다. 핸드폰을 꺼내 액정의 빛으로 비춰보자 어쩐지 수리점의 창고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다만 여기에 가득한 것은 모조리 병이었다. 술병처럼 보였다.
사차원은 그 사이로 돌아다니더니 병 두 개를 꺼내서 만족한 얼굴로 도로 나갔다. 그리고는 곧장 식당으로 갔다. 나는 뒤따라가서 그가 유리잔에 붉은 액체를 따라 흔드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거 술이야?”
그는 술잔을 들어 감상하듯 바라보았다.
“와인입니다. 꽤 괜찮은 것을 갖고 있군요. 맛보시겠습니까?”
야. 보물은 안 찾고 술 찾고 있었어?
“쉽게 나오면 보물이 아닌 거겠지요.”
붉은 와인을 입에 머금으며 그가 말했다. 음…. 뭐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잖아. 혹시 운 좋게 눈에 띌지도 모르고.
그가 건네 준 와인을 홀짝거리며 나는 식당 안을 쏘다녔다. 길다란 식탁에 열 두 개의 의자, 접시가 나란히 꽂힌 장식장 하나 말고는 특별한 가구가 없었다. 벽난로 안에는 타다 남은 나무와 하얀 재가 남아있었다.
혹시 이런 곳에 숨겨졌나 하고 쇠로 만들어진 부지깽이로 재 속을 열심히 헤집어 봤지만 먼지처럼 부스러진 재만 풀풀 올라왔다. 장식장 안에는 사기 접시와 흐려진 은식기가 놓여 있었다. 이거 은인데 가져가도 되나? 사차원에게 묻자 어쩐지 한심한 것을 보는 얼굴을 해서 기분이 상했다.
“열쇠로 얻는 보물만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런데 그 열쇠가 대체 어디에 있는데?
식당을 포기하고 그 옆의 조리실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신선한 과일과 야채, 밀가루와 우유, 달걀 같은 요리 재료만 찾아냈을 뿐이다.
방 두 개를 뒤졌는데 아무 것도 나오지 않자 나는 보물찾기에 질려버렸다. 이쪽은 재능이 없는 것 같아. 아무 것도 못 찾으면 돈은 못 받는 건가? 아…관광 왔다고 생각하지 뭐.
포기하고 식당으로 돌아가자 사차원 말고도 세 명이 더 있었다. 아까 가장 뒤에서 걷고 있던 젊은 남자들이었다.
“뭐 좀 찾으셨어요?”
금발의 남자가 나를 보고 웃으며 물었다. 붙임성 있는 미소에 나도 어깨를 으쓱 모으며 대꾸했다.
“식재료랑 그릇만 실컷 구경했네요.”
“시간은 많으니까요. 금방 찾을 수 있는 거라면 지금까지 아무도 못 찾았을 리도 없고.”
하긴 그렇지. 그러고 보니 우리가 찾는 보물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몇 번이나 찾으려고 시도했던 거지.
그런데 보물을 찾으러 온 사람들 치고 이들은 꽤 빨리 포기한 것 같다. 뭐 나도 그렇기는 하다만. 어딘지 다른 참가자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세 사람을 힐끗거리자 내 시선을 느꼈는지 금발 남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여자라면 귀엽게 봐줬을 것 같은 미소가 그의 볼에 어렸다.
“우리 다들 비슷한 처지인 것 같은데 통성명이나 할까요?”
그가 갑자기 말했다. 동시에 어쩐지 서늘한 기운이 식당 안에 퍼졌다. 뭐야…? 이 분위기.
“백은호.”
서늘한 공기를 깨고 입을 연 사람은 사차원 아니, 백은호였다. 금발머리가 눈을 깜박거리며 놀랐다.
“오오…은호당의? 성함 많이 들었습니다. 조영석입니다. 까마득한 후배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는 사뭇 과장스럽게 꾸벅 절을 한다. 야아, 사차원. 너 유명하구나?
“저는 김해명이라고 합니다.”
내가 재빨리 소개했다. 조영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시군요.”
야, 반응이 다르잖아. 반응이.
“양철수입니다.”
“권호요.”
세 사람이 이름을 밝히자 다른 둘도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나 방금 깨달았지만…
“어, 혹시 다들 대리인이에요?”
금발머리가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다들 비슷한 처지라고 아까 말했잖아요. 이 눈치 없는 양반아. 라고 말하지는 않았는데 어쩐지 들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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