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보물성(5)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식당의 의자가 세 개 비어있는 걸 보니 아직도 포기 안 하고 찾는 중인 사람은 두 명.
내가 들어서자 사람들이 시선이 쏠렸다. 자리에 없는 사람은…팔 다친 남자와 할아버지 같다. 할아버지는 쉬러 가셨는데 아직 주무시나?
“이제 열 명이네요.”
까불대는 금발의 남자, 조영석이 말했다.
“얼추 모였으니 슬슬 카드 뒤집어 보는 게 어떨까요? 다들 구경은 웬만큼 하셨을 테고 돌아다니느라 피곤하기도 할 테고요. 빨리 확인하고 한 숨 쉬어야죠.”
난 이미 자다 와서 쉬는 건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열쇠조각을 확인할 수 있다니 귀가 번쩍 뜨였다.
“그럴까요? 혹시라도 조각이 맞는 분들 있으면 너무 재지 말고 빨리 협상하기로 해요. 아아, 난 막 두근거리네.”
중년의 부인이 설레는 얼굴로 말하자 맞은편에 앉은 40대 남자가 피식 웃었다. 산이라도 온 것처럼 위아래로 등산복을 맞춰 입은 사람이었다.
“그거야 나와 봐야 하는 거고. 어쨌든 꺼내 봅시다. 다들 못해도 한 장 이상은 찾으셨겠지.”
“이상이고 뭐고, 나는 들어올 때 받은 초대장 말고는 없수. 형씨는 뭐 좀 찾으셨나 보네?”
또 다른 40대 남자가 대꾸했다. 살집 좋은 몸에 와이셔츠와 정장 바지를 입었는데 돌아다니다 더웠는지 팔을 걷어 부치고 넥타이도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에이~그러다 나중에 슬쩍 뒷거래 하지 마시고요. 찾은 거 있으면 보여줘요.”
조영석이 싱글거리며 떠봤지만 남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정말이라니까. 밑천 내놓으라 하지 말고 한 바퀴 더 돌고 나서 보자고.”
“뭐 어때요. 어차피 나갈 때는 다 보게 될 텐데. 전 이거 하나 찾았어요.”
중년의 여성이 초대장과 비슷한 크기의 종이 한 장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황금색 화려한 관을 쓴 남자의 상체가 그려져 있었다. 이 그림은 윗부분만 있고 아래가 없다. 나나 백은호의 것과 반대였다. 그러나 그림의 남자가 의자에 앉아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머리에 쓴 관의 모양도 그렇고 입은 옷이라든가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는 어쩐지…
“교황이네.”
정장의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렇지? 나도 그 생각 했었다. 어쩐지 중세시대의 영화 같은데서 천장이 높은 화려한 건물 안을 돌아다니는 사제들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렇죠? 이 그림 아래쪽 가지신 분 있어요?”
여자가 물었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에이. 다들 없으신가.”
여자가 멋쩍게 종이를 도로 집어넣었다. 교황 그림이 사라진 자리에 두 장의 초대장이 툭 떨어졌다. 백은호다. 어차피 아까 보여준 그림이니 아쉬울 것 없다는 투였다. 대리인들을 제외한 사람들의 눈이 카드에 모였다.
‘어라…?’
초대장을 보던 나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말에 탄 기사와 사람들이 그려져 있던 카드의 문구가 바뀌어 있었다. 아까는 분명 모든 이에게 공평하다든가 그런 내용이었는데 지금 보니 ‘정의와 함께 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맞는 짝을 누군가 가지고 계실 것 같군요.”
사람들을 보며 백은호가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
하지만 그의 말에 권호가 소매 안에서 카드 한 장을 꺼냈다. 그가 내놓은 그림은 약간 으스스한 것이었다. 갑옷을 입고 깃발을 든 기사의 상반신이었는데 투구 아래의 얼굴은 해골이며 깃발을 든 손도 뼈마디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이나 구도로 봐서 백은호의 열쇠 조각과 한 쌍이었다. 그림 아래에는 흐릿하게 ‘흰 털의 여우’라고 적혀 있었다. 흰 털의 여우? 뭐야? 그게.
“배당은 관례를 따르도록 하지요.”
백은호의 말에 권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 몰라도 둘은 아주 쉽게 타협한 것 같다. 이 성이 열린지 십몇 년쯤 되었다더니 이런 경우에 배당을 정하는 관례 같은 것도 있는 모양이지. 그나저나 권호라는 저 사람은 슬슬 돌아다니는 것 같던에 그 사이 열쇠 조각도 찾아냈구나. 나도 놀지만 말고 찾아볼 걸 하는 후회가 든다.
“와아…벌써 열쇠가 완성된 거예요? 붙여 봐요. 보물 상자 지금 열어볼 거예요?”
중년 여성이 들뜬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두 사람이 각자 따로 갖고 있는데 그럴 수 있나. 나가면서 재단 사람들에게 맡기겠지. 안 그렇소?”
등산복의 남자가 말하자 백은호는 무시하듯 아무 말 않고 권호가 조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그림들을 맞춰서 나온 열쇠가 의외로 보물 상자 말고 문을 여는 걸 수도 있잖아? 내가 슬쩍 묻자 백은호는 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대리인이 문을 여는 열쇠를 찾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왜?
“우리는 시간이 되기 전에 밖으로 나가지 않으니까요.”
백은호가 나직이 대답했지만 더 이상한 말이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사람만 문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잖아. 그렇다는 건, 열쇠를 찾는 일이 찾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기도 하고.
백은호 뒤로 다른 사람들도 자신이 찾은 것을 보였다.
간호사라는 젊은 여자는 훌륭한 갑옷을 입은 젊은 남자의 상반신이 그려진 그림을 내놓았다. 양철수는 등불을 든 노인의 상반신이 그려진 것을, 등산복을 입은 남자는 천사가 그려진 그림을 보여줬다.
안경을 쓰고 내내 별로 말이 없던 한 남자는 찾은 조각이 없다면서 초대장을 꺼내보였다. 거기에는 웬 염소 머리를 하고 박쥐 날개를 단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아니 이걸 사람이라고 해도 되나?
그림 아래에는 ‘전차를 타고 달린다.’라고 적혀 있다. 카드를 본 조영석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거 어쩐지 열쇠를 찾아도 무슨 보물이 나올지 걱정되는 그림이네요.”
안경의 남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초대장을 집어넣었다.
자리에 없는 사람 둘과 양복을 입은 40대의 남자 외에는 모두 한 장씩 열쇠 조각을 보여준 셈이다.
나온 그림 중 짝이 맞는 것은 더 없었다.
사람들은 그림을 모두 확인하고 나자 표정을 알기 어려운 복잡한 얼굴을 하고서 각자의 방으로 떠났다. 하긴 몇 시간이나 성 안을 헤매고 다녔으니까 쉴 때가 되기는 했다. 가지 않고 식당에 남은 사람은 대리인 네 명 뿐이다.
방으로 들어갈 수도 없을 거면서 조영석 역시 식당에서 나간 것이다. 그나마도 잠시 후에는 양철수가 “놀면 뭐하나.”라고 중얼거리며 나가고 그 뒤를 따르듯 권호도 조용히 일어났다.
그래서 결국 식당에는 나와 백은호만 남게 되었다.
“너는 열쇠조각인지 뭔지 안 찾을 거야?”
여기 온 후로 체감상 열 시간 가까이 식당에만 틀어박혀 놀고 있는 백은호에게 내가 물었다.
“저야 이미 카드를 완성해서 열쇠를 찾았으니까요. 제 일은 이미 끝난 셈입니다.”
그건 그러네. 왠지 짜증난다. 어…그런데 방금 백은호가 카드라고 했어?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초대장도 그렇고 사람들이 찾아낸 열쇠의 조각도 그렇고 그 크기가 딱 카드였다. 놀이용 트럼프 카드가 아니라 점술용의 타로 카드 말이다. 미묘한 차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림도 그랬다. 짝이 맞추어진 백은호의 초대장은 해골 기사의 그림이었다. 그가 탄 말 아래로 사람들이 무릎을 꿇거나 쓰러져 있다. 그 가운데에는 관을 쓴 왕도 있었고 사제도, 수수한 옷차림의 여자도 있었다. 애초에 그 그림에 있던 문구는 ‘모든 이에게 공평하다.’였으니 그림은 분명히 죽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중년 부인이 내놓은 교황이라든가, 아까 염소 머리와 박쥐 날개를 달고 있던 건 역시 사탄이라고도 하는 악마의 전형적인 묘사였고, 등불을 든 노인은 은둔자. 그렇게 생각하니 카드라고 말한 백은호는…
“알고 있었어? 열쇠의 그림들이 타로 카드라는 거?”
“그런 건 누구라도 보면 알 수 있는 게 아닙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한다. 누구나 아는 거 아니거든요. 타로 카드가 화투 같이 흔해빠진 건 줄 아냐.
“그럼 원래 이 성의 열쇠는 타로 카드였던 거야?”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왕들의 초상화일 때도 있고, 별자리 그림일 때도 있고, 타로라고 해도 메이저가 아니라 마이너 카드인 경우도 있지요. 몇 가지 그림이 돌아가며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메이저의 타로카드라는 거네.
“그래서 열쇠는 누가 찾는가보다 누구에게 어떤 그림이 있는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한 겁니다.”
백은호가 무심하게 덧붙였다.
그러니까 왜 그런 건데?
“생각해 보세요. 아까 안경 쓴 남자가 갖고 있던 카드는 악마 카드였습니다. 타로에서 그 카드는 불행을 의미합니다. 조영석이 한 말은 농담이 아닌 겁니다. 그것을 열쇠로 만들어도 상자 안에서 보물이 나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상자에서 보물이 아닌 것도 나온단 말이야?”
그건 사기지. 차라리 꽝이 낫지 않냐?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은 열두 명입니다. 열쇠 조각을 한 사람당 하나만 찾아낸다고 해도 총 스물네 조각, 확률상 열쇠가 전혀 안 나올 수는 없지요. 하지만 여기 오기 전에 말씀 드렸잖습니까. 지금까지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있다 해도 대단치 않은 것 뿐.”
“그럼 상자에서는 도대체 뭐가 나오는 거야?”
내 질문에 백은호가 씩 웃었다.
“그거야 열어보면 알겠지요. 어쨌든 이상한 것을 받아버릴 수도 있으니까 안 좋은 카드를 모은 사람은 아예 권리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아까 그 남자처럼 악마 카드가 역순일 때는 큰 불행을 의미하는 거니까요.”
재미있다는 듯이 말한다. 쟤 좀 이상해. 어쩐지 기분 나빠.
“어쨌든 이걸로, 현재까지 최소한 21장의 조각이 모인 것 같군요.”
백은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응? 왜 그런 계산이 나오는데? 초대장 12개에 방금 식당에서 본 그림 중 초대장이 아닌 건 여섯 장뿐이었잖아. 18장이 맞는 것 같은데.
내 의문에 백은호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 제가 말씀 안 드렸던가요? 카드의 아래에 적힌 문구는 짝이 되는 카드가 어디에 있는지를 나타냅니다. 그러니 21장인 겁니다.”
그런 말은 그러니까 처음부터 해달라고! 처음에 좀! 그리고 그게 어째서 3장을 더 찾은 이유가 되는 건데?
“카드의 문구를 자세히 보지 않으셨군요. 악마 카드에는 ‘전차를 타고 달린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죽음 카드는 ‘정의와 함께 한다.’라는 문구로 바뀌었지요. 그리고 심판 카드의 아래에는 ‘거꾸로 매달린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전차를 타고 달린다. 정의와 함께 한다. 거꾸로 매달린다.
이거 모두 타로 카드의 그림이네. 전차, 정의, 매달린 남자 카드다. 그건 즉…
“즉, 악마 카드의 다른 조각을 가진 사람은 전차 카드의 조각도 가지고 있고, 죽음 카드의 다른 조각을 가진 사람은 정의 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심판 카드의 나머지 조각은 매달린 남자 카드를 가진 사람에게 있다는 거고요. 설명을 더 해드려야 합니까?”
잘난 체 하는 얼굴로 실컷 설명한 다음 백은호가 묻는다.
됐거든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전차 카드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에게 악마 카드의 나머지 조각이 있고, 죽음 카드의 나머지 조각을 가지고 있던 권호에게 정의 카드의 조각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매달린 남자의 카드를 가진 사람에게 심판 카드가 있다는 거지. 누군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갖고 있는 카드의 짝이 발견되면 그걸 확인할 수 있는 거겠네. 그림 아래의 문구가, 누구에게 카드가 갔는지 알려줄 테니까.”
“굳이 머리 쓰실 필요 없습니다. 그런 것은 도령의 몫이 아닙니다.”
어딘지 얕보는 듯한 백은호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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