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보물성(7)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네가 말한 재미있는 구경이란 게 그런 거야? 무슨…”
‘재미있는 것을 많이 보게 될 테니 잠시도 지루하지 않을’ 거라고 백은호는 말했었다. 그 재미있는 것이 사람들의 이런 모습이라면 이 자는 도대체 무엇…인 걸까. 사람의 욕망과 감정을 구경거리로 삼는다니 도저히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것은 사람의 놀이라기보다 마치…
“요괴처럼, 말입니까?”
단정한 얼굴에 조소를 띠며 그가 물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건 아닌데도 마음을 읽힌 기분이 들었다. 백은호가 힐끗 위를 올려다보았다. 위층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뭔가 딱딱한 것이 부딪치는 듯한 소리.
“이번에는 꽤 시끌벅적하게 판을 벌이고 있군요.”
백은호가 말하더니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같이 가보시겠습니까? 싸움은 인간들도 좋아하는 구경거리가 아닙니까.”
말하더니 내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싸움구경과 불구경이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지만…아니! 그게 아니고!
“싸움이 났으면 말려야지, 무슨 소리야!”
백은호의 뒤통수에다 소리친 다음에 나는 달려서 계단을 뛰어올랐다. 저 녀석 페이스에 말려들면 안 돼. 아무튼 마음에도 안 들고 마음을 놓아서도 안 될 녀석이라는 것이 백은호에 대한 결론이다. 어쩐지 이 성안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위험하게 보였다.
소리는 2층으로 올라가자 더 커졌고 3층으로 가자 벽 너머로 옮겨갔다. 성벽로 쪽이었다. 3층은 복도 양쪽에 성벽로로 이어지는 입구가 있는 것이다. 바로 그곳에 두 사람이 있었다. 권호와 양철수다.
그들 사이의 바닥은 포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부서지거나 패인 자국이 선명했다. 돌로 쌓은 벽을 부수다니 둘이서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다.
권호는 성벽의 타구(垜口) 위에 쭈그리듯 앉아 있었고 양철수는 그로부터 스무 걸음쯤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서 있다고 해도 무릎을 조금 굽히고 한 발이 앞으로 나간, 언제라도 뛰어나갈 수 있는 자세다.
타구 위의 권호 역시 한쪽 무릎을 세우고 한 손을 등 뒤로 감추었는데, 숨겨진 손이 뭘 하는지 몰라도 그의 둘레에서는 수많은 나비가 팔랑팔랑 날아다니고 있었다. 진짜 나비가 아니다. 하얗기만 한 나비가 호랑나비만큼이나 큰 것도 그렇고 성벽이나 바닥 가까이 날아다니는데도 그림자가 생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람 가까이에 우글거리고 있는 것부터가 정상적이지는 않다만.
그런데 나비보다도 나를 놀라게 만드는 일이 일어났다. 권호의 주변을 팔랑거리던 나비가 일제히 양철수를 향해 날아가는데 그 모습이 갈수록 변하고 있었다. 하얀 나비에서 하얀 옷을 입은 여자들로.
크기는 기껏해야 무릎에나 닿을까 싶은 정도였으나 성인 여성의 신체비율을 하고 있다. 여자들은 하얗고 넓은 소맷자락을 날개인 것처럼 펄럭이면서 날아와 양철수에게 달라붙었다. 그의 건장한 몸은 순식간에 하얗게 뒤덮였다.
“망할 도사 나부랭이!”
양철수가 외치며 몸을 털어내는 순간에 달라붙어 있던 여자들이 낙엽처럼 날려갔다. 팔랑거리며 날려간 그녀들은 도로 나비의 모습이 되어서 권호의 옆으로 날아갔다.
“그런 잡술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나? 다른 것도 보여주시지.”
여자들을 날려버린 양철수가 비웃듯이 말했다. 팔락이는 나비들 속에서 권호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흰옷의 여자 하나가 그의 등 뒤로부터 살며시 나왔다. 그녀를 본 양철수의 눈이 커졌다. 정확히는 여자의 손을 본 것이겠지만.
그녀의 손에는 알록달록한 그림이 그려진 카드 한 장이 들려 있었다. 흰옷의 여자들이 양철수를 둘러싼 것은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카드를 몰래 빼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안 돼!”
그가 외치면서 달려 나갔으나 권호가 더 빨랐다. 여자의 손에 들려있던 카드를 낚아챈 그가 그것을 소매 안으로 밀어 넣었다. 넣었다가 도로 빼냈을 때는 온전한 그림이 그려진 완성된 카드로 바뀌어 있었다. 태양과 해바라기와 어린아이가 그려진 것이 내가 있는 곳에서도 선명히 보였다.
태양 카드다.
완성한 카드를 쥐고 권호가 씩 웃으며 뒤로 누웠다. 성벽의 타구 위에 앉아있던 그에게 등 뒤는 허공이었다. 떨어지려는 그를 양철수가 잡았지만 손에 붙잡힌 것은 권호의 겉옷뿐이었다.
다이빙이라도 하듯 뛰어내린 권호는 옷만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뒤였다. 양철수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짐승 같은 목소리로 포효했다.
“무슨 일이래요?”
“모르겠군요. 저 사람들하고는 이야기도 해본 적이 없는데. 아무래도 싸운 것 같죠?”
“그러게요. 아이, 참견하지 말고 들어가요. 괜히 엮이면 어떡해요.”
어느새 밖으로 나온 중년의 부인과 양복의 남자가 계단참에서 소곤거리다가 도로 위로 올라갔다.
대화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식당에서 얼굴을 익힌 사이였던 나는 점잖게 보인 권호가 양철수의 카드를 뺏은 것에 놀랐다. 저렇게 가져가 버려도 괜찮은 건가? 열쇠의 양도 및 공유는 우리의 선택에 맡기겠다던 재단 직원의 말이 생각났다. 그 말은 서로 타협을 해서 열쇠의 주인을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남의 카드를 뺏어가도 상관없다면 찾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카드를 어떻게 지키느냐였다.
열쇠는 누가 찾는가보다 누구에게 어떤 그림이 있는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백은호의 그 말이 어째서 옳은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양철수는 어깨를 들썩이며 씩씩거리더니 성벽로를 따라 어디론가 가버렸다. 권호를 찾아볼 셈인지 아니면 카드를 찾으려는 건지 모르겠다.
건물 3층 높이에서 뛰어내린 권호가 어디로 사라진 건지는 도통 모르겠다.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10미터쯤 아래의 차가운 돌바닥만 보였다. 이런 곳에서 뛰어내려도 무사한 건가?
혹시나 있을지 모를 권호의 모습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나는 내벽 안쪽에 만들어진 작은 집에서 누군가 나오는 것을 봤다.
‘간호사 아가씨잖아.’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누가 있는지 확인하더니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간호사로서의 실력은 좋은 것 같지만 눈썰미는 별로인 것 같다. 나는 물론이고 아성으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 한 사람이 있는 것도 발견 못한 것이다.
입구 쪽에 서있던 사람은 안경을 쓴 40대 남자였다. 악마 카드를 가지고 있던 그 사람이다. 그는 여자를 보고 문 뒤에 바짝 붙어 숨어있더니 여자가 멀리 가고 나자 재빨리 그녀가 나온 집으로 들어갔다.
그가 그 집에서 다시 나온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나도 참 할 일 없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체감상 한 시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남자는 집에서 나오자 여자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걸어서 곧 보이지 않게 되었다.
뭔지 몰라도 집 안에서 그는 한 시간을 들여 원하는 것을 찾아낸 모양이다.
성벽로를 떠나 1층으로 내려왔더니 홀이 꽤 시끄러웠다. 계단과 식당 문 앞에서 사람들이 두셋씩 모여 구경하는 가운데, 중년 여성이 양복의 남자에게 매달려 울고 있었다.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열쇠 조각이 하나씩 있으면 보물을 같이 나누면 되는 거지. 아무리 보물이 중요해도 사람이 어떻게 이래요?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가 있어요?”
중년의 부인이 울면서 매달리자 양복의 남자는 귀찮다는 듯이 그녀를 뿌리쳤다.
“아, 내가 뭘 어쨌다고 이래? 카드라는 건 주운 사람이 임자 아니야? 그게 당신 방에 있다고 당신 건가? 내가 주우면 내 거지.”
“줍긴 뭘 주웠다는 거예요. 구경 한 번 하자면서 가져가더니 들고 도망갔으면서!”
“그 여자 참 멍청하게 구네. 그러게 누가 카드를 아무한테나 막 주래? 몸 주는 거나 카드 주는 거나 막 굴리기는 매한가지니 제 탓을 해야지 누구 탓을 해?”
남자의 말에 부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남자는 바닥에 가래침을 퉷 뱉더니 성큼성큼 걸어서 계단으로 올라가버렸다.
중년의 부인이 엎드려서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혀를 차고는 하나 둘 그곳을 떠났다. 나중에야 달려온 간호사 아가씨가 그녀를 달래서 방으로 데려갔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다시 적막이 돌아온 홀에는, 나와 이 기괴한 성을 즐기는 단 한 명의 남자만이 남았다.
“벌써 구경에 질린 겁니까? 지친 표정이군요.”
식당의 문기둥에 기대어 서서 백은호가 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좀 질린 것 같기는 하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했다. 7시 16분. 성에 들어온 지 이제 겨우 두 시간 16분이 지났다는 말이다.
기분으로는 24시간쯤 지난 것 같은데…. 그런데 아직도 20시간 넘게, 그것도 체감상으로는 며칠이 될지 모르는 시간을 여기에서 보내야 한다는 거다. 생각하자 정말로 질려버릴 것 같았다.
“좀 쉬어두시죠. 시간은 충분하니까요. 게다가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들도 슬슬 따로 움직이기 시작할 겁니다. 서로 부딪칠 일이 별로 없을 테니 당분간 구경거리도 줄어들겠군요.”
백은호가 말했다.
“따로 움직인다고?”
내가 힘없이 물었다.
“그렇지요. 이곳에서의 협력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이 약한 결속력을 갖고 있는지 다들 알게 되었을 테니까요. 여기에 오기 전에도 머리로는 알았겠지만 이제는 몸으로 익혔을 겁니다. 동시에 지금부터는 대리인들에게 힘든 시간입니다.”
“그건 또 왜?”
“사람의 습관이라는 것이 무서운 거라서요. 이곳에서 고작 두 시간 정도가 지났을 뿐이지만 우리는 훨씬 많은 시간이 지났다고 인식하고 있지요. 오랫동안 깨어 있었으니 잠을 자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안전이 보장된 방이 없으니까요. 마음 놓고 쉴 수가 없지요.”
사실 나도 지쳐서 한 숨 자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는 했다.
“대리인들은 모두 지금부터 잠과 싸우며 버텨야 하지요. 동시에 대리인이 방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로부터도 자신을 보호해야 할 테고요.”
아아…그런 건가.
백은호 녀석이 굳이 나를 데려온 것은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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