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136화 (136/218)

에누리 없는 장사(3)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뭐야. 뭐야아. 이것들은 다 어디에서 나온 거야, 응?

애벌레라니. 배추흰나비 애벌레처럼 아주 선명한 초록색의, 그것도 오이만큼 큼직한 애벌레라니.

그런 것들이 얼핏 봐도 수십 마리, 바닥이며 선반이며 할 것 없이 다닥다닥 붙어서 꾸물거리고 있었다.

저기, 내가 진짜 해골 모양으로 빛나는 벌레 무리라든가 하다못해 커다란 이무기 같은 건 그래도 어떻게 참을 수 있는데 애벌레…물컹물컹…꾸물꾸물…이건 좀…

초록색으로 변한 창고 안을 쳐다보며 내가 말을 잃고 있는 동안 녀석들은 털투성이의 주름진 몸을 늘였다 줄였다 하며 열심히 이쪽으로 기어 나왔다. 도깨비들에게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어도 이미 시각은 이른 아침이다. 다들 잠든 지 얼마 안 되어 깨우면 짜증낼지도 몰랐다.

문을 닫아버리면 좋겠는데 그러면 문 사이에 끼어서 으깨질지도 몰라. 웩. 상상하지 마! 상상하지 마!

허둥거리고 있는 사이에 애벌레들은 이미 대여섯 마리나 작업장으로 나와서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야! 이것들아! 남의 작업장을 멋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지만 애벌레들은 점점 더 쏟아져 나와 작업 선반의 다리를 타고 꾸물꾸물 기어 올라가거나 냉장고 뒤로 들어가거나 벽 앞의 선반에 달라붙거나 했다. 나와서 돌아다니는 녀석들이 얼핏 사오십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이것들이 다 어디에서 나온 거야? 내 창고에 별 요상한 것이 보관되어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애벌레까지? 그것도 이런 비정상적으로 발육이 좋은 놈들이.

상상도 안 해본 사태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갑자기 뭔가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런데도 듣자마자 무언가의 울음소리라고 깨달은 그런 소리였다.

높고 날카롭게 새어나오는 비명처럼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뛰어가자 계단 위쪽이었다. 어느새 거기까지 기어 올라간 애벌레 한 마리가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소리를 내는 이유는 분명했다. 애벌레 옆에 내려앉아 부리로 녀석의 초록색 몸을 콕콕 쪼고 있는 비둘기 때문이다. 크기는 오이만 하지만 애벌레는 애벌레라 비둘기가 쪼아댈 때마다 고통스럽게 몸을 비틀 뿐 조금도 방어하지 못하고 있었다.

“네놈!”

벼락같은 소리가 쩡 울렸다. 목소리가 들린 것과 동시에 뭔가 비둘기를 홱 낚아챘다. 비둘기를 쓸어간 것의 모습을 제대로 본 나는 저도 모르게 움찔해서 몸을 긴장시켰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는 것은 커다란 애벌레 정도가 아니었다. 그런 것이 평범하게 보일 정도로 기괴한 모습을 한 요괴였다.

비둘기를 낚아채 물고 있는 것은 분명 고양이의 머리였다. 삼각형으로 뾰족한 귀며 보송보송한 털과 하얗고 긴 수염, 세로로 얄팍하게 세워진 눈동자며, 혼동할 리 없고 심지어 아직 어리게 보이는 귀여운 얼굴의 고양이였다.

그러나 그 고양이의 머리 아래로 이어진 것은 도저히 포유강 식육목 고양이과의 그 고양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떤 모습이냐 하면 한 마디로 ‘뱀’이라고 할 수 있다.

뱀 같은 게 아니고 확실히 뱀이었다. 원통형의 긴 몸, 촘촘한 비늘이 번쩍거리는 등, 점점 가늘어지는 꼬리에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까지…

말하자면 고양이의 머리에 뱀의 몸을 가진 요괴인 것이다.

그 기괴한 요괴는 물고 있던 비둘기를 휙 집어던지더니 코 위로 주름을 잡으며 으르렁거렸다.

“썩 꺼져라! 다시 여기에 나타나면 그때는 내 먹이가 될 줄 알아라!”

비둘기는 요괴의 말에 푸드덕거리며 날아서 재빨리 위층으로 가버렸다. 요괴는 비둘기 따위에 더는 아랑곳 않고 재빨리 애벌레의 옆으로 기어갔다. 긴 몸이 구불거리며 다가가더니 고양이 머리를 내밀어 애벌레의 냄새를 맡았다. 비둘기에게 쪼인 애벌레는 상처를 입고 말간 체액을 흘리며 늘어져 있었다.

그때 묘한 일이 일어났다. 고양이의 입이 조금 벌어지는가 싶더니 거기에서 파란 연기가 뿜어져 나온 것이다. 그 연기가 애벌레의 주변에 뭉클거리며 흩어졌다. 푸른 연기가 천천히 사라지고 나자 애벌레는 언제 늘어져 있었냐는 듯이 기운차게 꿈틀거리며 다시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아니, 그렇게 혼이 나고도 어디를 가려는 게야.”

혀를 차며 사람의 손 한 쌍이 애벌레를 번쩍 들었다. 고양이 머리에 뱀의 몸을 한 요괴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선영이 있었다. 그는 애벌레를 조심히 품에 안고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 아래쪽은 물론 작업장 바닥이 온통 애벌레 투성이인 것을 보더니 아름다운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모두 건강하니 보기 좋군요. 비란이 봤다면 얼마나 기뻐했을지…”

얘들이 다 비란의 자식이라는 거야? 그 비란이라는 요괴는 도대체 뭐가 변한 요괴인 거냐. 거대 배추흰나비?

그나저나 건강하다니 다행이기는 한데, 얘들을 다 어쩔 거야. 응? 난 그냥 어제처럼 보석같이 상자 안에 담겨 있을 때가 더 좋았던 것 같은데.

게다가 녀석들은 건강해도 지나치게 건강해서 잠시만 한눈을 팔면 계단을 올라 위층으로 가거나 문 옆으로 기어 다녔다. 그러다 누군가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기라도 하면 큰일이라 선영과 나는 일단 애벌레들을 한 곳에 모아놓기로 했다.

창고는 너무 복잡해서 위험하고, 그렇다고 작업장에 둘 수도 없고. 옥상에 데려다 놓으면 거기 잔뜩 모여 있는 새들이 잔칫상 받았다고 좋아할 테고. 결국 남은 곳은 하나뿐이었다. 수십 마리의 애벌레들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고 물건이 별로 없어서 위험하지도 않고 문을 닫아 놓으면 나올 수 없는 안전한 공간.

내 방이다.

그렇게 나는 일흔 여덟 마리의 애벌레에게 내 방을 뺏겼다. 초록색 애벌레들이 소파와 침대를 차지하고 컴퓨터 책상 위로 기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녀석들이 떠나고 나서도 한동안 초록색 악몽에 시달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방을 뺏긴 나는 하릴없이 작업장을 지켜야 했다. 달리 갈 곳도 없고. 애벌레들을 노린다는 요괴가 언제 올지도 모르고.

하지만 요괴는 밖이 아니라 정작 이 수리점 안에 잔뜩 있잖아. 초록색 요괴 일흔 여덟 마리에 고양이머리 뱀 요괴 한 마리. 키메라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그 묘한 모습은 도저히 인간으로 변한 선영과 매치가 안 된다.

백은호도 여우로 변하기는 했었지만 그 요사하면서도 우아한 짐승의 모습은 인간일 때의 그와 어쩐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고양이와 뱀이 섞인 요괴라니 도대체 뭘까. 그것도 그거고, 나는 저 수십 마리의 애벌레들과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 살아야 하는 걸까. 이런 고민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하루가 지나갔다.

걱정한 보람이 조금도 없을 정도로 평온한 하루였다. 유일했던 위험은 비둘기에게 애벌레가 공격당한 정도일까.

나는 작업 선반 위에 이불을 깔아놓고 거기에서 웅크리고 자야 했다. 솔직히, 유하가 빈말로라도 “내 방 소파에서라도 잘래요?”라고 물어봐줄 줄 알았는데. 그럼 난 남자답게 거절할 생각이었는데.

……거절 안 했을지도 모르고.

어쨌든 그렇게 ‘비란의 아이들’과 보낸 이틀째 날이 지나갔다. 사흘째 아침, 나는 기억이 시작된 후 두 번째로 유리 깨지는 소리를 듣기 전에 눈을 떴다.

시끄러웠다. 그런데 그건 새소리나 대화 소리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귀청을 자극하는 소리였다.

높고 날카롭고 칼끝으로 신경을 긁어대는 듯한 거슬리는 소리. 그런 소리들이 하나 둘도 아니고 수십 개였다. 나는 귀를 틀어막으며 2층으로 달려갔다. 내 방 앞에 이미 유하와 선영도 도착해 있었다.

문을 열자 들려온 소리는 그야말로 괴로울 정도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고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얘들아. 얘들아.”

유하가 방안으로 들어가자 애벌레들이 꾸물꾸물 기어서 그녀에게 모여 들었다. 울음소리는 한층 줄었지만 여전히 시끄러웠다.

“왜 우는 거니?”

유하가 애벌레들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렇다고 애벌레들이 뭐라고 말을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유하는 초록색 애벌레에게 둘러싸여 있다가 나와 선영을 돌아보았다.

“이 아이들, 배가 고픈 것 같아요.”

어…그렇지 참. 얘내들 어제 알에서 깨어난 후로 지금까지 아무 것도 못 먹었나? …신생아를 하루 동안 굶겨버렸다.

“뭘 먹여야 하는 거지?”

엄마 젖이라든가. 분유라든가. 아니, 그럴 리는 없고. 애벌레는 뭘 먹지? 아니 그보다 이 애벌레는 요괴의 새끼잖아. 요괴도 보통 벌레들이랑 같은 걸 먹나? 유하도 모르는 것 같다. 나야 당연히 아는 것이 없으니 요괴인 선영을 쳐다보았다. 우리들의 시선을 받은 선영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글쎄요. 나비 요괴의 새끼가 뭘 먹는지는 저도 잘…”

이 요괴 별로 쓸데가 없어.

그 와중에 애벌레들의 울음은 다시 서서히 높아지고 있었다. 귀가 아프다. 일단 물이라도 마시게 해야 할까? 아니면 이슬을? 아니, 그래도 벌레니까 풀 같은 걸 줘야 하나? 아니면 꿀?

나와 선영이 허둥거리는 동안 유하가 재빨리 방에서 나가더니 물이 담긴 그릇과 상추 한 묶음을 들고 왔다. 그녀가 그것을 내려놓자 애벌레들이 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상추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상추 잎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요괴도 상추를 먹는구나…. 나는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배웠다.

그런데 나뿐 아니라 선영도 그런 것 같다. 고양이머리 뱀 요괴인 선영이 입을 조금 벌리고서 아름다운 얼굴이 멍청하게 변해 애벌레들의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유하는 야채를 사와야겠다며 선영에게 도움을 부탁했다. 이 많은 아이들을 먹이려면 정말 어지간한 양으로는 안 될 것 같긴 하다.

잠시 후 둘은 산더미 같은 양의 야채를 들고 지고 와서 내방 바닥에 잔뜩 뿌려놓았다. 수십 마리의 애벌레들이 일제히 식사를 하자 마치 비오는 것 같은 소리로 방안이 가득 찼다. 야채 이파리 갉아먹는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릴 줄이야. 작은 소리라도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동시에 내면 큰 소리가 되는구나.

애벌레들은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깔아놓은 야채를 모조리 먹어치우더니 통통해진 몸을 뒹굴거리며 잠들었다.

“얘들 하루에 몇 끼나 먹는 거지?”

조금 질려서 중얼거리자 유하도 선영도 모르는지 서로만 바라보았다. 모르면 최대한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유하와 선영은 부지런히 야채를 사다 날랐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나는 안에서 할 일이 있었다. 들어간 것이 있으면 나오는 것도 있는 법. 산처럼 쌓아놓은 야채를 먹었으니 산만한 변을 보는 게 당연한 이치였다. 나는 종일 걸레와 쓰레기통을 들고 애벌레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녀석들이 아무데나 싸놓은 것을 치워야 했다.

먹고 자고 싸고 먹고 자고 싸고. 애벌레들의 생활은 이랬다. 사다 나르고 치우고 사다 나르고 치우고. 우리들의 생활은 이랬고.

이런 식으로 며칠 하다 보니 산신이 이것들을 우리에게 보낸 것이 정말 쫓아오는 요괴 때문인지 키우기 귀찮아서인지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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