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누리 없는 장사(4)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셋은 일흔여덟 마리 애벌레의 유모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애벌레들은 마치 갓난아이처럼 배고프면 울고 먹으면 자고 깨면 싸고 나서 또 배고프다고 울었다. 이런 녀석들을 돌보는 일은 그야말로 시시포스의 형벌이었다. 끝없이 구르는 쳇바퀴 위에 올라가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먹이고 치우는 것만이 일이 아니었다.
갉아먹은 배추가 소화가 잘 안 된다거나, 옆에 누운 놈이 배를 꽉 누르고 있어서 불편하다거나, 기어 다니다 가구 사이에 몸이 끼었다든가, 그냥 기분이 안 좋다든가 애벌레들에게는 항상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그 문제를 말로 하지 못하니 예의 높고 날카롭고 신경 거슬리는 소리로 빽빽 울어재끼는 수밖에.
녀석들이 울면 우리는 달려가서 뭐가 불편한지 확인하고 제대로 고쳐준다. 하지만 하나가 울고 나면 다른 녀석이 울고 그 녀석을 봐주면 또 다른 녀석이 울고…일흔여덟 마리가 돌아가면서 울고 보채는 것을 돌보자니 밤에도 누군가는 깨어 있어야 했다.
하루 이틀 지날수록 녀석들의 덩치도 점점 커져서 작고 날씬한 오이 같던 녀석들이 이제는 참외만큼 통통해졌다. 그만큼 먹기도 더 먹어 식량은 아예 도매시장에서 트럭으로 실어다 날라야 할 정도였다.
밥값 들어가는 게 장난 아닌데. 돈은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건가. 가사도우미이자 비서이자 경리 담당인 유하가 아무 말 없는 걸 보니 자금 사정에 문제는 없는 것 같지만 산신에게 돈 받을 궁리를 하자 그것도 고민이다.
사정이 이런데 산신의 전령이라며 이것들을 데려온 요괴 녀석은 막상 일이 터지니 별로 도움 되는 구석이 없었다.
애벌레들이 보채면 잽싸게 달려가기는 하지만 뭐가 문제인지 깨닫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렸고 요괴 치고는 힘도 없어서 애벌레 한두 마리만 들어도 무거워서 헐떡거렸다. 청소를 맡기면 고무장갑과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무장하고 들어가서 지저분한 것을 보지 않으려고 용을 쓰며 빗자루질을 했다. 이러니 제대로 치울 수 있을 리가 없다.
주제에 새들에게는 엄청나게 인기가 많아서 며칠 동안 내내 수리점 주변에는 새들이 하루살이처럼 모여 있었는데 이것도 문제였다. 새들의 울음소리를 애벌레들이 무서워했던 것이다.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나잖아?]
[쉿. 그런 말 하면 선영님이 화내셔.]
새들의 이런 대화를 듣고 있으면 나도 기분이 안 좋았다.
결국 새들을 모조리 쫓아냈지만 녀석들이 옥상에 갈겨놓은 새똥 때문에 유하는 한나절 동안 청소를 해야 했다.
이런 정신없는 나날이 슬슬 열흘쯤 지나고 보자 뭐든 할수록 는다고, 나는 제법 애벌레 유모 노릇을 하게 되었고 선영은……뭐 거치적거리지는 않게 되었다. 매일 밥을 갖다 주니 애벌레들도 내 냄새를 기억했는지 방에 들어가면 일제히 몰려들어 다리를 잡고 몸을 타고 올랐다.
처음 보았을 때 물컹물컹해서 질색이었던 애벌레들의 피부는 이제 제법 단단해져서 꼬물거리며 기어 다닐 때 만져보면 탄력과 힘이 생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쓰다듬으면 기분 좋은 듯이 굼실거린다든가 배를 쿡쿡 찌르면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작은 발들로 손을 휘감아 잡는다든가 하는 게 슬슬 귀여워지는 것도 같고. 자꾸 보니 이제 울기도 전에 어디가 불편한지 미리 알아차릴 수 있게 되기도 했다.
“나 결혼하면 애 보는 건 확실하게 잘할 것 같은데.”
웃으면서 이런 말을 할 정도의 여유도 생겼다. 내 말을 들은 유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뭐? 왜? 나도 언젠가 결혼이라는 걸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구나. 일단 애초에 바깥에 나갈 수도 없으니 사람을 만나기도 힘든데다 기억도 그렇고 요괴 애벌레를 돌보는 직업이란 건 좀…
어쩐지 우울해지는데 애벌레들까지 뭔가 불편한 기색으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왜들 이래?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모두 다 비슷하다. 영문을 모르고 있는데 손님이 왔다는 유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은 한 쌍의 부부였다. 풍채가 좋은 중년 남성과 인자한 얼굴의 부인이었는데 나를 보자 반가워하며 맡길 물건을 꺼냈다. 뭔가 묵직하게 들어있는 비단 주머니였다. 부인이 주머니를 풀어헤치더니 입구를 벌리고 내 얼굴 앞으로 가져왔다.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밀가루 같은 것이 풀썩 피어올랐다.
“이게 무슨…”
아니 잠깐…밀가루가 아닌 것 같은데. 가루가 닿은 얼굴에서부터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피부가 저릿거리다가 둔하게 변하고 얼굴근육도 입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마비가 얼굴에서 목으로, 다음에는 팔과 몸으로 점점 퍼졌다.
당황해서 뒷걸음치는 내게 풍채 좋은 남자가 펄쩍 뛰어 달려들었다. 나는 그에게 깔린 채 바닥에 쓰러졌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남자의 얼굴이 어딘가 변하고 있었다. 눈이 점점 크고 동그랗게 변하면서 까맣게 물든다. 코가 사라지고 짧은 털이 부스스 돋아나고 입술이 얇아지다 사라지고 나자 그 안에서 삐죽하니 두 개의 이빨이 길게 밀려나왔다.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짐승의 얼굴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내 팔을 붙잡은 손 뒤에서 또 다른 손이 한 쌍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다리도 두 쌍 같다. 풍채 좋다고 생각했던 몸은 점점 더 부풀어 올랐다. 불어나는 몸을 견디지 못하고 셔츠의 단추가 툭툭 뜯겨져 나갔다. 상의가 벌어지며 공처럼 동그란 몸체가 드러났다.
두 쌍의 손에 두 쌍의 다리, 목이 없이 동그란 몸, 저 눈. 나는 남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것은 거미다. 이 부부는 거미 요괴였다.
“위층이에요. 위층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요.”
부인이 입을 벌리며 계단 위를 올려다보았다. 아직 사람의 모습을 한 그녀의 입가에 침이 고여서 반짝거렸다.
“내가 먼저 가 볼 테니 그자를 처리하고 와요.”
부인이 말하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막아야 했지만 움직이기는커녕 말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거미 남자가 돌아서더니 이쪽에 꽁무니를 대고 실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몸 위로 하얀 거미줄이 덮였다. 그것이 나를 옴쭉달싹 못하게 바닥에 붙여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마비된 몸은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선영, 이 자식은 어디서 뭐하고 있는 거야! 유하는 나갔나? 방에 있을까? 밖으로 나오면 안 되는데.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고 용을 썼지만 빠져나가기는 고사하고 목소리도 안 나오니 도깨비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2층에서 욕설과 함께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어쩐지 요괴가 문을 못 열고 있는 것 같다. 잠겨있지는 않을 텐데. 아니, 혹시 선영이 요괴가 온 것을 알아차리고 문을 잠근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때에 문을 잠그고 숨어 있으면 어쩌라는 거야. 요괴면서 싸울 줄도 모르나? 비둘기에게 큰소리 칠 때는 꽤 대단해 보이던데.
하지만 선영에게 탓할 일이 아니었다. 요괴인줄도 모르고 방심하고 있다가 당해서 거미줄에 묶인 나도 할 말이 없다. 남자는 내 위로 거미줄을 두껍게 쳐놓더니 이내 펄쩍펄쩍 뛰어서 2층으로 떠났다. 그리고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더욱 요란해졌다.
그래도 출입문이라 철판이니까 쉽게 부서지지는 않겠지만 상대는 요괴다. 백은호처럼 벽을 부숴버릴지도 몰랐다. 아니면 아예 밖으로 나가서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다. 사람들 눈에 띄어서 그렇지 제일 손쉬운 방법이었다.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마비가 풀리고 있는지 손가락이 꼼질꼼질 움직였다. 몸을 꿈틀거렸지만 움직일수록 거미줄이 죄어드는 것 같다.
그때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거운 것이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였다. 동시에 “캬웅”하는 새끼고양이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고양이 소리라면 선영인가? 귀를 쫑긋 세우는데 뭔가 철퍼덕 나가떨어지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이것은 묘두사가 아닌가. 부인, 오늘 우리가 횡재를 하였소. 복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네, 그려. 저놈도 아래층의 인간과 함께 꽁꽁 묶어 가져갑시다.”
웃음소리와 함께 거미 남자의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영이 당한 것 같았다.
“안 돼! 그 아이들에게 손대지 마라! 무진의 산군께서 돌보시는 아이들이라는 걸 모르느냐? 너희가 산군의 노를 감당할 터이냐!”
당했어도 입은 멀쩡한지 선영이 고래고래 악쓰는 소리가 울렸다.
“여기가 어디인줄 알고! 감히 천왕의 거처에서 이런 무도한 짓을 저지르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그러나 선영의 목소리는 한 차례 요란하게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뚝 끊어졌다. 거미 부부의 음산한 웃음소리가 계단을 타고 흘러내렸다.
“요 먹음직스러운 것들. 어느 놈부터 맛을 볼까. 응?”
메뉴를 고르는 것 같은 거미 부부의 목소리 뒤로 낑낑거리는 애벌레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무서워하고 있었다. 숨도 크게 쉬지 못할 만큼 얼어붙어서 꿈틀꿈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좀 끊어져라…’
있는 힘껏 몸을 움직여보았지만 거미줄은 내 몸에 딱 붙은 채로 탄력 좋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애벌레들의 낑낑거리는 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누군가 거미요괴에게 붙잡혔는지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였다. 그 말랑말랑하고 연약한 몸에 거미의 발이 닿아있다고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시간이 없었다. 끊어져. 좀 끊어져.
이를 악물고 발버둥 쳤지만 등 밑에서 대리석 타일이 부서지는 소리가 날 뿐 거미줄은 멀쩡했다. 울음소리가 거의 비명에 가깝게 변했다. 가슴이 섬뜩하게 울리는 소리였다.
제기랄! 제기랄!
애벌레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거미에 대한 분노가,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묶여 있는 나에 대한 분노가, 뱃속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고여 있던 뭔가가 터뜨려진 것 같았다. 가둬지지 않은 뜨거운 것이 피를 타고 내달렸다.
“읏!”
거미줄이 붙어있던 수십 개의 대리석 타일을 단번에 뒤집어 버리며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것과 동시에 무시무시한 소리가 온몸을 쳤다.
“으윽!”
나도 모르게 머리를 감싸고 몸을 웅크릴 정도로 굉장한 소리였다. 귀를 울리는 소리가 아니다. 몸을 헤집는 것 같았다. 인간의 청력을 넘어선 음역에서 몇 번이나 폭발을 일으키며 쾅쾅 터지는 소리의 폭탄이었다.
그 소리가 끝난 후에도 잠시 어지러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
비틀거리며 계단을 올라간 나는 처참하게 뜯겨진 내 방의 출입문 안에서 널브러진 거미요괴 부부를 발견했다. 그들은 기절한 것처럼 보였다. 거미 남자는 도망가려다 기절했는지 출입문 옆에 엎드려서 쓰러졌고 아마도 부인으로 보이는, 더 커다란 거미 요괴가 애벌레 하나를 양손으로 꽉 쥔 채 벌렁 누워 있었다.
요괴에게 붙잡힌 애벌레는 아직도 높은 소리로 울고 있었다. 크기는 현저하게 작았지만 분명 아까 내가 아래층에서 들은 것과 같은 소리였다. 한 마리가 울 때는 가련한 울음소리였으나, 일흔여덟 마리가 동시에 울자 무서운 힘이 된 것이다.
내가 방으로 들어가자 애벌레들이 낑낑거리며 모여들었다. 붙잡혔던 애벌레를 무리로 돌려보내니 녀석들은 기분 좋게 굼실거리며 돌아온 형제를 맞았다.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
나는 후손을 많이 두고 싶어 했던 비란의 마음을 조금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약한 몸으로 쫓기며 사는 삶을 물려주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약하지만, 그러니까 함께 모여서 서로를 지키고 함께 행복한 삶을 바란 건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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