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누리 없는 장사(5)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기절한 거미 부부는 도깨비들의 도움을 받아 꽁꽁 묶었다. 철문을 망가뜨려 놓을 정도로 힘이 센 요괴니까 밧줄 정도로 의미가 없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도깨비들이 요괴들을 묶으라고 가져온 것은 새끼줄이었다. 그것도 지푸라기가 별로 안 들어간 가는 새끼줄이다.
“이걸로?”
조금만 힘 줘서 당기면 끊어져버릴 것 같은 새끼줄을 받아들며 내가 물었다.
“그것은 왼새끼요. 어지간한 요괴는 힘을 못 쓸 거요.”
부채 도깨비가 팔랑 팔랑 날아다니며 대꾸했다. 그러고 보니 새끼줄의 꼬인 방향이 반대였다. 하긴 부정한 것을 막는데 쓰는 금줄은 왼새끼로 친다고 했지.
새끼줄로 거미 부부를 꽁꽁 묶어서 1층에 갖다 놓자 그제야 선영이 꿈틀꿈틀 깨어났다. 고양이 머리를 한 뱀 요괴는 깨어나자마자 애벌레들의 숫자를 헤아린 다음 일흔여덟 마리인 것을 확인하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약해빠져서 도움이나 되겠어? 요괴면서 신통력 뭐 그런 거 없나?”
내가 놀려대자 선영은 귓바퀴가 붉어지며 고양이 머리를 푹 떨구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지닌바 미천한 재주는 치료에나 조금 도움이 될 따름이라…”
아아, 그 파란 연기로 애벌레 상처를 치료해줬던 거 말이지? 요괴는 모두 무시무시하게 힘이 세거나 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데 선영이 정말로 창피한 얼굴을 하며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자 내 쪽이 미안해졌다.
사실 거미 부부가 애벌레들을 잡아먹으려고 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던 건 선영이잖아. 나는 거미줄에 묶여서 꼼짝 못하고 있었고. 결국 애벌레들의 단체 울음으로 퇴치하기는 했지만 시간을 번 것도, 약해빠진 주제에 목숨을 걸고 달려든 것도 선영이었다.
“비란과는 잘 아는 사이였어?”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녀의 아이들을 지키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걸 보면 각별한 관계였나 싶었다.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무진산에 온 것은 작년의 일입니다. 비란이 떠나고 난 후라서 생전에 대면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이야기는 자주 들었지요.”
이 요괴는 생전에 본 적도 없고 말로만 들어서 아는 나비 요괴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나는 어린 고양이 모습을 하고 있는 그의 얼굴을 새삼 쳐다보았다.
“에코의 요괴들은 모두 그녀의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그곳에 있는 요괴들은 저를 포함하여 하나같이 약합니다.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는 금세 강한 요괴의 먹이가 될 정도입니다. 이 도시는 산군의 보호를 받고 있어 훨씬 정도가 덜하지만 여기 오기 전에 저는 산 속 깊은 곳에 굴을 파고 숨어서 거의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습니다. 우리에게 바깥은 그런 곳입니다. 비란은 그런 곳으로, 두려움을 이기고 혼자서 떠나간 것입니다.”
고양이 머리의 뱀 요괴는 가늘고 긴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부럽고 감탄스러웠습니다. 그녀는 무진산을 떠나면 어떤 일이 생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늘 말해주었으니까요. 산군께서 보호하신다고 해도 이 도시 역시 완전히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비란도 몇 번은 위험한 지경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밖으로…그리고 저렇게나 훌륭하게 후손들을 남기다니…”
선영이 계단 위를 올려다보았다. 문이 부서진 바람에 가둬 놓을 수 없어진 애벌레들이 다시 꼬물꼬물 기어 나오고 있었다. 아아…저것들은 말도 안통하고 진짜. 입구를 왼새끼로 봉해 버릴까?
선영이 재빨리 계단을 기어 올라가서 애벌레들이 내려오는 것을 막았다. 그가 하나씩 애벌레를 안고 방안에 들여놓는 동안 묶어 두었던 거미 부부가 꼼지락거리며 깨어나기 시작했다.
요괴 부부는 자신들의 몸이 꽁꽁 묶인 것을 알자 잠시 발버둥 쳤다가 이윽고 나를 보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이보시오, 도령. 아까 내가 잠시 거미줄로 묶어둔 것은 미안하오만 달리 해를 입히지도 않았고 지금은 이렇게 우리 처지가 뒤바뀌어 있지 않소. 그러니 자비를 베풀어 놓아주신다면 이 은혜를 결코 잊지 않으리다. 우리 같은 하찮은 요괴를 죽여서 무엇 하겠소. 바닥만 더러워질 따름이라오.”
그런데 아까 너희들, 나랑 묘두사를 끌고 가자고 하지 않았었냐? 끌고 가서 어쩔 생각이었어? 거미줄로 칭칭 묶어서 매달아 놨다가 내일 점심이나 저녁으로 먹을 생각이었다고 본다만.
내가 그렇게 묻자 거미 부부는 열심히 머리를 저으며 변명했다.
“아니오. 아니오. 그럴 리가 있소이까. 저렇게 맛있는 먹이가 수십 마리나 생겼는데 맛도 없는 인간을 잡아먹으려고 할 리가…”
뭐야?
“아니, 그러니까 물론 도령은 특별히 맛있는 고기인 것 같기는 하지만…”
뭐어?
“아니 이 양반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도령, 남편 말은 신경 쓰지 말아요. 요새 먹을 게 없어서 인간만 잡아먹었더니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되는데…”
……이 부부는 머리가 많이 나쁜 것 같다. 이렇게 머리가 나쁜데 여기에 애벌레들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아차린 거야? 둘에게 캐물었더니 남편 거미가 부인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며칠 전부터 이곳에 새들이 많이 모여 있다고 하기에, 여기 묘두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소. 새들은 묘두사를 왕처럼 떠받들고 있으니 말이오. 그런데 묘두사는 산군의 전령이고, 최근에 나비 요괴의 알을 산군에게 가져갔다는 소문을 들어서 어쩌면 이곳에 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소. 그래서…”
그러니까 저 고양이머리 뱀 요괴 때문에 들켰다는 거잖아. 역시 도움이 안 되는 거 맞아.
그런데 이 머리 나쁜 거미 부부가 거기까지 생각하는 동안 다른 요괴들은 왜 눈치를 못 챘을까. 설마 이미 이곳을 알아차리고 염탐하고 있거나 기회를 노리는 건…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묶여 있던 거미요괴들이 움찔 떨었다. 구슬이 박힌 것처럼 동그란 네 개의 눈이 불안하게 떨기 시작했다.
왜 이래? 나까지 긴장되잖아.
거미 부부는 새끼줄 안에서 가늘고 긴 팔다리를 바들바들 떨다가 곤충의 얼굴인데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우는 소리를 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저희를 놔주세요. 다시는 여기 오지 않겠습니다. 나비의 새끼들도 노리지 않겠습니다. 제발 살려만주세요.”
얘들 갑자기 왜 이래?
하지만 나 역시 곧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 온다.
발소리나 인기척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이곳을 향해 곧장 오고 있다. 요괴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존재를 조금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다가오는 이로부터 서리서리 뻗어 나온 기운이 피부에 저릿저릿 닿았다.
소설가의 저택에서 만난 이무기나 구미호로 변한 백은호를 봤을 때도 그 존재로부터 느껴지는 강한 기운에 압도된 적이 있지만 이것은… 다르다. 요괴들 때와 달리 신경이 곤두서거나 긴장하게 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오히려 두근거리며 출입문을 지켜보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기운의 주인이 들어섰다. 젊은 남자였다.
20대 후반쯤일까. 훤칠한 키에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다. 그러나 온화한 얼굴로 이쪽을 보는 그는 어쩐지 실망스러울 정도로 범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부엉이 그림이 프린트 된 흰 티셔츠에 샌드 워싱이 된 청바지 차림이었다. 거의 허리까지 늘어진 말총머리 말고는 특색 없이 평범했다.
길 가다 마주쳐도 눈길을 주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조금 전까지 느꼈던 강하고 위압적인 기운은 출입문이 열리면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마치 스위치를 내려서 전등을 꺼버린 것 같았다.
“도령.”
남자가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잘 아는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정다운 얼굴이다. 그의 시선이 곧이어 거미 부부에게 옮겨갔다. 안 그래도 달달 떨고 있던 거미 요괴들은 그가 들어오자 아예 얼어붙었다.
“이 녀석들을 놓쳐서 걱정하던 차였는데, 도령께서 잡아두셨군요. 폐를 끼쳤습니다.”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이 남자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직접 보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요괴도 아니다. 그것을 본능처럼 깨달았다.
“산군!”
등 뒤에서 선영의 목소리가 울렸다. 어느새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간 선영이 계단을 뛰어내려와 남자의 앞에 엎드렸다.
아아, 그래. 이 남자가 바로 무진의 산군이다. 지금은 이 도시를 내려다보는 영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요괴와 신령에게는 여전히 무진이라던.
산신이면서 인간과 섞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신의 권속이면서 세계의 규칙을 따르지 않고 요괴들을 보호하는 특이한 자.
“비란의 아이들은 모두 무사한가?”
그가 선영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무사할 뿐 아니라 지금 첫 번째 탈피를 하고 있습니다.”
산신을 올려다보며 아뢰는 선영의 아름다운 얼굴이 자랑스러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탈피라니 애벌레들이 허물을 벗고 있다는 건가?
선영의 말에 무진의 산군은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냈다.
“잘됐군. 탈피를 했으니 이제 데려가도 되겠네.”
“데려가? 어디로?”
나도 모르게 산신에게 물었다. 젊은이의 모습을 한 산신이 나를 향해 말했다.
“다행히 신목(神木)이 저 아이들을 맡아주겠다고 합니다. 네 번째 탈피를 할 때까지만이라는 조건부입니다만.”
신목? 그게 뭔지 몰라도 비란의 아이들을 맡아줄 보호자가 생겼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 녀석들을 찾을 겸, 아이들도 데려가려고 겸사겸사 온 터라 도령과 오래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겠군요. 서운하지만 한담은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달래듯 부드럽게 말하고 그가 선영에게 눈짓을 보냈다. 사람일 때는 미남이지만 본래의 모습은 고양이머리 뱀 요괴인 그가 재빨리 2층으로 올라갔다.
“갑자기 이런 큰일을 맡겨 도령께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을 수 있는 분이 도령뿐이라.”
선영이 애벌레들을 몰아서 아래로 내려오는 동안 전혀 산신처럼 보이지 않는 젊은 산신이 사과조로 내게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약간 망설이고 있었다. 이 남자는 산신이자 나와도 안면이 있는 사이다. 적어도 신령한 존재이니 거짓말을 하거나 일부러 해가 되는 일을 하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그야말로 유하에게도 물을 수 없었던 질문을 하기에 적절한 상대가 아닐까.
“죄송할 거 없지. 나야 일이니까.”
태연한 체하며 내가 대꾸했다. 하지만 가슴 속에서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상대는 신령한 존재다. 대답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대답한다면 반드시 진실이다. 그리고 내가 하려는 질문은…
“그렇군요.”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눈으로 나를 마주보며 그가 대답했다. 여전히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조금 그늘이 진 것 같았다. 기분 탓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무시하고 나는 말했다.
“애벌레 일흔여덟 마리의 숙박비와 양육비 대신 물어볼 게 있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