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 난 바늘 나무를 지켜라!(1)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번데기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물론 번데기인 기간은 곤충마다 다르다. 게다가 이쪽은 곤충 모양이기는 해도 요괴였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기 전까지는 몇 번이나 탈피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녀석은 일령 애벌레에서 곧장 번데기로 변했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성체가 될 때까지도 의외로 짧은 시간이면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갖고 지켜보았으나 변화는커녕 저게 정말 살아있는 번데기인지 플라스틱 같은 걸로 만들어서 붙여놓은 건지도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실제로 의심스러운 나머지 만져보기도 했으나 딱딱한 껍질만 느껴질 뿐이었다.
물론 살아있는 것 특유의, 생기라고 해야 할까 생명력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이 없지는 않았다. 아주 약하고 동물이나 식물과는 다르게 미묘한 느낌이었지만 번데기에서는 그런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꽤나 집중한 다음에야 간신히 느낄 수 있을 뿐, 기본적으로 저건 그냥 내 옷장의 옷을 모조리 소파에 꺼내놓게 만든 귀찮은 번데기 요괴였다.
아니, 귀찮은 사람은 나뿐인지도 모른다.
유하는 하루에 한 번씩 꼬박꼬박 내 방에 들러 번데기를 보고 갔고 좀처럼 2층으로 올라오지 않던 도깨비들도 이따금 불쑥 불쑥 나타나서 시시덕거리며 구경했다. 심지어 백은호까지 찾아와서는 “도령이 제대로 하고 있을 리 없으니 확인해보겠다”는 핑계를 대고 드레스 룸 안을 들여다보았다.
“저게 뭐 대단한 거라고 다들 난리야. 산신한테 일흔일곱 마리나 돌아갔거든. 신목이 보살피고 있다니 보고 싶으면 거기 가서 실컷 보면 되잖아.”
내가 볼멘 목소리로 항의하자 백은호는 어깨를 으쓱 추어올리며 대꾸했다.
“신목의 거처에 요괴인 제가 들어갈 수 있을 리 없잖습니까. 나비 요괴는 약한 만큼 잡아먹히는 일도 많아서 쉽게 보기 어렵습니다.”
잠깐.
그러고 보니 말인데, 유하나 도깨비나 백은호나 이것들도 죄다 모두 요괴들이잖아. 그리고 나비 요괴는 이들 가운데 요괴 생태계 피라미드의 최하위 층에 위치하는 약한 녀석이고. 너희들 설마……노리는 거냐?
나는 의심에 가득 찬 눈으로 백은호를 쳐다보았다. 특히 네 녀석이 가장 위험해.
도깨비들은 나비 요괴의 아이들이 알의 상태일 때도 건드리지 않고 잘 보관해준 전례가 있다. 유하 역시 애벌레일 때 성심껏 보육해줬었다. 하지만 이 여우 요괴는 믿을 수 없고 내심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번데기일 때 잡아먹으려는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맛이 무르익은 성체일 때…
“저런 것보다는 도령 쪽이 더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있습니다만.”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서 백은호가 내게 말했다. 내가 냄새가 뭐? 게다가 내 마음이라도 읽은 거야?
“말씀드렸잖습니까. 도령은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는 타입이라고요. 일부러 키우고 있는 것을 잡아먹을 생각은 없으니 걱정 마시지요.”
시크하게 말하고서 백은호는 유하가 내놓은 차를 호로록 마셨다.
별로 일부러 키우고 있는 거 아니거든! 저 녀석이 멋대로 남아서 마음대로 번데기가 된 것 뿐이야!
“그건 그렇고, 들어오면서 보니 바늘 나무에 싹이 났더군요. 바늘이 익으면 저도 두세 개 얻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값은 치르겠습니다.”
빈 찻잔을 내려놓으며 백은호가 말했다. 나는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들었다.
“무슨 나무?”
“바늘 나무 말입니다.”
유하가 계단 옆이나 수리점 앞에 꽃이 피는 화분을 몇 개 돌보고 있기는 했다. 지금도 출입문 앞에는 보라색 사계국화가 꽃을 피웠고 작업장에서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제라늄과 마가렛 화분이 놓여 있다.
하지만 바늘 나무는 뭐였지? 그런 이름의 나무도 있었나?
나는 눈을 깜박이며 기억을 더듬었다. 백은호는 별로 기다려주지도 않고 말했다.
“계단 옆 창문 아래에 있는 화분입니다.”
거기에 화분이 있었어?
하지만 생각해 보니 있기는 했다. 다만 그 화분에는 아무 꽃도 피지 않고, 심지어 나무라기에는 불쌍할 정도로 메마른 어떤 것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꽃나무가 말라죽은 화분을 버리려고 내놓은 줄 알았던 것이다.
거기에 싹이 났다니 다행이기는 하네. 그런데 뭐가 익는다고 했었지? 바늘? 그 나무의 열매 이름이 바늘인 모양이다.
“그 열매는 뭐에 쓰려는 건데?”
고작 한두 개로 뭘 할 수나 있나. 씨앗으로 쓰려는 걸까? 그런 걸 굳이 값을 치르고 가져가겠다니 의외로 귀한 나무인지도 모르겠다. 하기는 나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옷을 고칠 때 씁니다.”
백은호가 태연히 대답했다. 과연 이름값 하는 나무 열매네. 바늘이니까 옷을 고칠 때…어, 이거. 어쩐지 귀에 익은 이야기인데.
열매로 어떻게 옷을 고치는가는 일단 접어두고, 어디선가 들어본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늘…옷을 고치는 바늘…
“싹 난 나무 바늘.”
그리고 갑자기 떠올랐다. 그 바늘이다. 내 방에서 알몸으로 정신을 차렸을 때 거기에 유일하게 놓여있던 잘린 옷과 나무 바늘 하나. 그리고 나는 거기에서 바늘이 잘려진 옷을 감쪽같이 고치는 장면을 봤던 것이다.
나중에 유하는 그것을 싹 난 나무 바늘이라고 가르쳐주었다. 옷을 고칠 때 쓴다고.
그게 나무에서 열리는 거였어? 열매처럼? 아니 뭐, 애초에 바늘이 저절로 움직여 옷을 고치는 것부터가 망상 같은 일이니까 그게 나무에서 열린다고 해도 뭐라 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나무 바늘이 열매라니 웃기잖아.
“바늘 하나에 오십만 원이면 괜찮겠습니까?”
안 웃긴다.
“콜.”
생각보다 먼저 입이 움직였다. 바늘 하나에 오십만 원이라니. 두세 개가 필요하다고 했으니까 적어도 백만 원 이상을 간단하게 벌 수 있다는 말이잖아.
백은호는 내 대답을 듣자 만족한 얼굴로 떠나갔다. 무슨 옷을 고치는데 쓰려는지 몰라도 수리비보다 바늘 값이 더 나올 것 같은데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백은호가 떠난 다음 나는 재빨리 계단으로 갔다. 말라 죽은 꽃나무라고 생각했던 바늘 나무에는 정말로 연두색 싹이 드문드문 돋아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분토에 섞인 달걀껍질이나 물을 준 흔적이, 버리려고 둔 화분은 확실히 아니다. 유하가 세심하게 보살펴 왔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6월 초순인 지금 싹이 났다면 여기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것은 언제쯤일까. 열매가 열린다면 얼마나 열리는 걸까. 백은호 말고 다른 요괴나 사람에게도 팔 수 있는 걸까. 열매 하나에 오십만 원이라 생각하니 회백색의 말라붙은 것 같은 나뭇가지마저도 고급스럽게 보인다.
유하에게 슬쩍 물어보자 초가을에나 바늘이 맺힐 거란다. 아직 너덧 달은 기다려야 하는 셈이었다. 그때까지 탈 없이 잘 자라기를 바라야겠지.
그렇게 내 관심사는 드레스 룸의 번데기에서 계단 창가의 바늘 나무로 옮겨갔다.
하루에 몇 번씩 아니 몇 십 번씩 화분을 들여다보고 물은 줬는지, 진딧물 같은 게 생기지는 않았는지, 잎의 색이나 모양은 온전한지 확인했다. 하도 자주 봐서 그런지 바늘 나무는 좀처럼 자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며칠이 더 지나자 내 관심은 슬슬 열기가 식어버렸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문젯거리가 생겼다.
문제가 시작된 것은 한밤중이었다. 잠들어 있던 내가 눈을 뜨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해서 울렸던 것이다. 쿵쿵거리며 벽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벽을 타고 침대 밑에서 둥둥 울리는 바람에 진동으로 피부가 간지러울 정도였다.
졸음이 채 떨어지지 않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비틀비틀 아래로 내려간 나는 소리가 드레스 룸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안에 있는 거라고는 딱딱한 번데기 하나뿐인데. 거실의 불을 켜고 문을 열자 어슴푸레한 속에서 그 딱딱한 번데기가 연습중인 펀칭볼처럼 정신없이 흔들리며 벽을 치는 것이 보였다.
저 번데기 요괴가 갑자기 웬 운동이람. 딱딱한 껍질 안에서 며칠을 보내려니까 지루하고 지친 나머지 드디어 폭발해 버린 건가.
그런데 운동이 좀 심한 것 같았다. 흔들리던 껍질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풀잎처럼 새파랗던 번데기 껍질은 이제 연갈색으로 빛이 바래 있었다. 그래서 말라붙은 낙엽처럼 보이는 표면이 벽에 부딪칠 때마다 쩍쩍 갈라진다. 갈라지는 것과 함께 안에 있던 것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나오려는 거야? 변태가 끝난 거야?
나는 눈을 떼지 못하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번데기가 되기 전에는 길고 통통하고 주름진 애벌레였다. 어미가 나비 요괴라고 했으니 이 안에서 나오는 것은 물론 나비겠지. 그런데 어떤 모양일까. 정말 거대 배추흰나비 같은 건가. 아니면 서양의 요정처럼 사람 모양에 투명한 날개가 달렸다든가…그것도 아니면…
상상이 날개를 펴고 좁은 드레스 룸 안을 날아다녔다. 그사이 번데기는 더욱 격렬하게 흔들리다 드디어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중간 부분이 뜯겨져 나갔다.
갑자기 움직임이 멈췄다. 동시에 시끄럽던 세상이 고요해졌다. 나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번데기의 뜯겨진 곳 사이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하얗고 긴 팔이다. 그것이 틈새로 빠져나오더니 껍질의 윗부분을 잡고 힘들게 틈을 벌리기 시작했다.
애쓰는 것에 비해 껍질이 벌어지는 속도가 느렸다. 도와줄까 생각했지만 관두기로 했다. 알에서 나올 때의 병아리도 함부로 도와주면 안 된다고 하잖아. 스스로 하게 두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길고 흰 손은 애써서 껍질을 밀고 당기고 비틀고 하더니 이윽고 뚝 하는 소리를 내며 모자를 벗듯 위쪽의 껍질을 벗겨냈다. 번데기 위쪽이 벗겨지며 안에 있던 것이 완전히 드러났다.
거기에는 어떻게 봐도 사람 같다고 생각되는 존재가, 투명하고 노란 날개를 단 채로 헐떡이고 있었다. 그것은 나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아직 제대로 펴지지 않은 날개를 부스럭거리며 번데기에서 기어 나왔다. 나오더니 허리에 손을 척 얹고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거기 있으면서 도와주지도 않고. 아…진짜 이런 인성이었구나. 이렇게 야박한 줄 알았으면 그냥 형들 누이들 따라 가는 거였는데. 왜? 뭘 인상을 쓰는데? 잘못은 자기가 해놓고서.”
그럼 너 같으면 안 그러겠냐. 무릎에도 안 닿는 크기의 날개 달린 사람이 발가벗고 나와서 보자마자 불평을 해대는데. 그것도 남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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