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 난 바늘 나무를 지켜라!(2)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일단 뭘 입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크기는 무릎에도 안 닿을 정도로 작았지만 엄연히 성인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벗고 있어도 귀여운 나이가 아니다. 물론 말하는 걸 보면 정신연령은 외모에 비해 훨씬 어린 것 같지만.
그런데 뭘 입히려고 해도 크기가 너무 작았다. 내 옷은 퀸 사이즈 이불 정도로 취급될 것 같고 여름옷도 두꺼울지 모르겠다. 손수건이나 머플러가 필요할 것 같다. 아니면 인형 옷이라든가…
눈대중으로 크기를 어림해 보는데 불평하던 녀석이 움찔거렸다. 몸을 꼿꼿이 세우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던 태도가 갑자기 궁색하니 움츠러들었다.
“너…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녀석이 슬금슬금 뒷걸음하며 내게 물었다. 그런 무슨 눈? 내 눈이 뭘 어쨌다고?
조그만 나비 남자는 아직 벽에 붙어있는 반쪽뿐인 번데기 껍질 뒤에 몸을 숨기고 나를 노려보았다.
“방금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었잖아. 부위별로 해부하는 것 같은 위험하고 잔인한 눈초리로. 설마 나를 잡아먹을 생각이야? 나, 나는 방금 나비가 되었는데.”
이게 뭐라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대답도 못하고 있으려니 나비 남자는 금세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말을 이었다.
“불과 한 달 전에 어미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가, 이런 삭막하고 숨 막히는 인간의 집안에 갇혀 지내며 농약 묻은 채소만 먹고 거미에게 잡아먹힐 뻔한 고생과 위험을 이겨낸 후에 산고의 고통을 겪으며 겨우 나비가 되어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건 인정머리 없고 요괴 같지도 않은 요괴라니 나는 정말 지지리 복도 없지. 우어엉…어머니이…!”
얘가 아주 개그를 하고 있다. 어이없는 한편 짜증이 났다. 그러나 녀석이 고생한 것은 사실이라 화를 낼 수도 없고.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꾸욱 누르며 일단 설명하기로 했다.
“먼저 나는 요괴가 아니라 사람이고, 내 식성은 곡물 위주의 화식이어서 요괴나 나비는 안 먹으니까 생쇼 그만해라?”
이만하면 친절한 설명인 것 같은데
“거짓말! 아까 분명히 나를 일등급 한우 보듯이 꼼꼼히 뜯어봤으면서!”
녀석은 안 믿는다.
아까 내가 꼼꼼히 뜯어본 것은 너한테 맞는 옷이 어느 정도 크기일까 짐작해보느라 그랬지!
설명하려고 했으나 그보다 먼저 나비 남자의 표정이 돌변했다. 울먹이던 얼굴에 경멸이 어렸다.
“그런데 인간이라고? 인간인데 나를 왜 노리는 거지? 가만, 혹시 너는…”
야. 뭔지 몰라도 짐작하지 마.
“혹시 너는…벼, 벼, 변…안 돼! 내 입이 더러워질 것 같아. 도저히 말 못해!”
뭐 임마.
아니 도대체 이 요괴 왜이래? 불과 한 달 전에 알이었다가 방금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어 나온 주제에 하나도 요괴 같지가 않아. 그냥 인터넷 유해 사이트에서 일 년쯤 구른 중딩 같아.
그때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이어 유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도 되나요? 굉장히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던데 괜찮아요?”
“안…”
“살려주세요!”
안 된다고 말하려는 내 옆을 휙 지나서 드레스 룸을 빠져나가며 나비 남자가 외쳤다. 뭐? 뭘 살려? 나는 후다닥 달리는 녀석의 날개를 잡아서 낚아챘다.
“우아악! 아파! 아파! 잡아먹지 말아요! 살려주세요!”
야, 야. 지금 내가 너를 잡아먹겠다는 게 아니고!
“해명?”
유하의 목소리가 좀 더 문에 가까워졌다.
“잠깐 기다려 봐! 좀 있다…”
이 자식 좀 뭐로 가리고 나서!
“으아악! 아파! 날개를 뽑지 말아요! 잘못했어요! 제발 잡아먹지 말아요! 으허헝…”
이게 진짜, 내가 언제 날개를 뽑으려고 했다고? 그리고 안 잡아먹는다니까!
녀석의 말 때문은 아니지만 날개가 정말로 얇고 연약해 보였기 때문에 혹시 다칠지도 몰라 나는 날개 대신 녀석의 허리를 꽉 잡았다. 작아서 한 손에 쏙 들어왔다. 그런데 허리를 잡았더니 이번에는 팔다리로 발버둥치고 날개를 파닥거리며 울부짖었다.
“숨 막혀! 숨 막혀! 왜 이렇게 날 괴롭히는 거예요! 어흑흑! 차라리 그냥 한 입에 삼켜버려요!”
그러니까 안 먹는다고!
녀석이 버둥거리다 말고 이번에는 내 손가락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아프지는 않은데 대신 이상한 일이 생겼다. 녀석이 물어뜯은 자리에서 뭔지 파란 것이 쑥 돋아난 것이다.
뭐야, 이건…생긴 건 꼭…나뭇잎? 어어…내 손가락에서 나뭇잎이 나고 있어!
놀란 내가 그것을 들여다보느라 힘을 늦춘 사이 나비 남자가 재빨리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임마!”
내가 도망치는 녀석을 덮쳤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
더는 기다릴 수 없었는지 유하가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나비 녀석은 내 손에 눌린 채 지구상에서 가장 불쌍한 얼굴로 울먹이고 있었다.
나비를 보고 조금 커진 유하의 눈이 내게 향했다. 시선의 온도를 재는 기계가 있다면 지금 나를 보는 유하의 시선을 더도 덜도 말고 딱 0도로 표시하고 있을 것이다.
“해명씨?”
시선만큼 서늘한 목소리로 유하가 나를 불렀다. 이름을 불렀을 뿐이지만 그것은 호명이라기 보다 나무람이나 힐책에 가까웠다.
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라도 무조건 틀린 겁니다. 오해입니다. 난 억울해. 이 망할 요괴가…
“놔주세요.”
유하가 말했다. 놔주면 도망갈 텐데?
손을 떼자, 녀석은 과연 벌떡 일어나 포르르 달려서 도망갔다. 유하에게. 그리고는 그녀의 치마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저거, 저거…저 요괴 자식!
“해명씨.”
내 표정이 험상궂게 변하자 유하가 다시 나무라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아니 그러니까 저 놈이! 저게! 저 요괴가!
그러나 유하가 내려다 볼 때면 나비 녀석은 새끼고양이 같은 얼굴을 하고서 울먹울먹 그녀를 마주보았다. 저 요사스러운 놈! 저놈은 요괴다. 분명히 요괴야.
유하는 몸을 숙이고 나비 남자의 등이나 날개를 확인했다.
“날개는 괜찮니? 움직일 수 있어?”
그녀가 다정하게 물었다. 당연히 괜찮지! 난 그냥 살짝 잡은 것 뿐이라고! 나비 요괴는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보란 듯이 날개를 파닥였다.
“건강하게 나와서 다행이다. 밤에는 공기가 차가울 테니까 옷을 만들어줄게. 내일까지는 돌아다니지 말고 이불 속에 있는 게 좋겠다.”
유하가 말하자 나비는 파닥파닥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그 녀석을 네 방으로 데려가려고?”
유하의 치맛자락에 대롱대롱 매달린 나비를 가리키며 묻자 유하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고민할 게 뭐가 있어! 저런 요사하고 앙큼한 요괴와 한 방에 있겠다는 거야? 저 얼굴에 속지 마! 저건 요괴라고!
유하는 잠시 고민하더니 나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역시 오늘 밤에는 여기에 있는 게 좋겠다. 내일 밤이 되기 전까지 네가 지낼 수 있는 곳을 마련할게.”
그녀의 말에 나비가 가련한 목소리로 외쳤다.
“안 돼! 저 남자가 나를 잡아먹을 거야! 아까 무서운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어. 날개도 막 잡아 뜯으려고 하고, 나를 꽉 잡아서 숨이 막혀 죽을 뻔했어.”
“야! 내가 언제…”
“해명. 큰 소리 내지 말아요.”
나비 요괴의 거짓말에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유하가 다시 나를 조용히 불러 나무랐다. 우아아, 진짜. 아니라니까. 저 자식이 거짓말 하는 거라니까.
항변하고 싶었지만 유하는 나를 무시하고 나비에게 말했다.
“해명은 너를 해치지 않을 거야. 저렇게 보여도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니까. 너도 기억할 거야. 너와 형제들이 여기 있는 동안 해명이 어떻게 했는지. 그렇지?”
나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쓸 이불을 가져올게. 오늘은 번데기가 있던 방에서 자렴.”
그녀의 말에 나비도 어쩔 수 없었는지 그녀의 치마에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후다닥 달려서 드레스 룸 안으로 도망가 버렸다. 어휴, 저거…
“당신답지 않네요. 저 아이는 이제 막 성체가 된 어린 요괴예요. 게다가 혼자이고요. 가련하게 여겨줘요.”
유하가 나직이 말했다. 나비 요괴의 앙큼한 모습을 못 봤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지. 하지만 그녀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어서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유하는 나갔다가 금세 돌아와서 얇고 가벼운 이불 한 채를 내밀었다.
“싸우면 안돼요.”
이불을 내주며 유하가 다짐하듯 말했다. 내가 애냐? 그리고 싸우긴 뭘, 파리채로 한 대만 때려도 납작해질 것 같은 요괴인데!
그녀는 웃음을 참는 것 같은 묘한 표정을 하며 돌아섰다. 그녀가 가고 나자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불을 들고 드레스 룸으로 가자 후다닥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나비가 번데기 껍질 뒤로 숨었다.
“괴, 괴롭히면 유하에게 말할 거야!”
내가 드레스 룸에 발을 디디기도 전에 녀석이 외쳤다. 이게 누구 보고 맘대로 유하래. 태어난 지 한 달 밖에 안 된 요괴 주제에.
그런데 여기서 훈계라도 하면 나중에 유하에게는 내가 협박했다느니 밤새 괴롭혔다느니 할지도 모른다. 짜증을 참으며 이불을 툭 던져줬다.
“시끄럽게 하지 말고 잠이나 자라.”
말하고 드레스 룸의 문을 닫았다. 내가 잡아먹을까 무서운 녀석이니 문을 닫아주는 편이 안심되겠지 뭐.
녀석은 정말로 안심했는지 아니면 이제 앙큼한 짓을 할 필요가 없어서인지 그 후로 조용했다. 나는 억울함과 짜증으로 침대에서 뒤척이고 있었지만.
설마 녀석이 하는 말을 유하가 완전히 믿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하긴, 나비 요괴가 거짓말을 했을 때도 유하는 그렇게 말했었다.
- 해명은 너를 해치지 않을 거야. 저렇게 보여도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니까.
그렇게 말할 줄은 몰라서 오히려 내가 놀랐지만.
‘다정하고 좋은 사람…’
나도 모르게 그녀의 말을 되씹었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아니, 그냥 나비 요괴를 안심시키려고 한 말인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볼 사람도 없는데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는 자꾸만 웃었다.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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