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143화 (143/218)

이매탈(1)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1>

슬슬 여름 날씨가 시작되는가 싶은 6월 말쯤, 수리점은 오랜만에 손님다운 손님을 맞았다.

깨어난 뒤 3개월 동안 이것저것 한 일은 많은 것 같은데 제대로 돈이 들어온 수리는 생각해 보면 발광충 무리가 들어있던 유리 등롱 때뿐이었다. 그 외에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못 받는 일의 연속….

이런데도 가계가 유지되는 건가? 어디 나 모르게 유하가 숨겨놓은 재산이라도 있나 싶다.

그러나 이번에는 확실한 손님이었다. 일단 요괴도 아니고 신령도 아닌 인간 손님이다. 겉보기에는 20대 중반에서 후반까지로 짐작되는 남자였다. 동그란 얼굴이나 안경알 너머 눈지방이 도톰한 가는 눈매가 귀엽게 보였는데, 이야기를 나누자 생각보다 나이와 연륜이 있는 것을 느꼈다.

그가 내놓은 명함에는 이름 밑에 상호와 함께 ‘손 인형, 무대소품 대여 전문’이란 글자가 자그맣게 박혀 있었다. 무대소품 전문가가 가져온 수리 물품은 다름 아닌 나무 탈이었다.

그런데 이 나무 탈, 어디선가 많이 본 모양이다. 눈 쳐지고 얼굴이 좀 불균형하고 볼 아래쪽의 턱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이거. 흔히 하회탈이라고 뭉뚱그려 부르지만 그 중에서도 이매탈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런데 상태가 상당히 안 좋았다.

분명 나무 위에 종이를 붙이고 그 위에 옻과 안료를 칠해서 반질반질하게 만들었을 텐데 이 탈은 반질반질이 아니라 무슨 말라붙은 식빵처럼 허옇게 들뜨고 푸석푸석해 보였다. 손으로 만져보니 닿는 느낌도 그랬다.

설마 빵으로 만들어서 말린 건 아니죠? 거의 그렇게 물어볼 뻔했다. 그러나 그 전에 손님이 설명했다.

“조심하십시오, 힘을 주면 부서집니다. 볼 아래쪽에 좀 떨어져 나간 거 보이시죠? 그런데 이게 닷새 전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거든요. 정말 멀쩡하고 단단한 나무였단 말입니다. 그런데 실수로 뜨거운 물을 한 번 엎질렀더니 하루 만에 이렇게 변해버린 겁니다.”

뜨거운 물을 엎질렀다고 나무가 이렇게까지 변하나? 그것도 하루 만에.

조심하라는 남자의 충고를 들었지만 충고는 어디까지나 충고이고. 나는 손끝으로 살짝 힘을 줘서 가면의 안쪽을 눌러보았다. 과연 약간만 힘을 줬는데도 손톱 끝이 표면을 살짝 파고들어 가는 선과 같은 흔적을 남겼다. 나무라고는 믿을 수 없다. 코르크라면 모를까.

“이것을 살 때 불이나 뜨거운 것을 조심하고 너무 건조하거나 너무 추운 곳에 두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야 나무니까 불 가까이 두지는 않았지만 뜨거운 물 정도에 이렇게 될 줄은….”

손님은 난감한 얼굴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런데 사실 맞는 말이잖아. 뜨거운 물 좀 부었다고 멀쩡한 나무가 코르크로 변하는 게 말이 돼?

“물 때문에 이렇게 된 게 확실합니까? 그것 말고 다른 일은 없었어요?”

아무래도 믿을 수 없어서 내가 물었다. 손님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이 가면은…그러니까, 평범한 가면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도깨비가 만든 물건입니다.”

남자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말하고 나서 내가 비웃거나 정신병자 취급을 하는 게 아닌지 두려운 듯 눈동자만 움직여 나를 힐끗 보았다.

물론 나는 웃을 생각도 없고 손님을 환자 취급할 마음도 없다. 도깨비야 이 자리에서 스물다섯 걸음만 걸어가면 가지각색으로 우글거리는 걸 실컷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도깨비가 만든 물건을 이 남자는 어떻게 손에 넣은 걸까.

아니 그보다, 도깨비가 만들었다면 분명 보통 물건이 아닐 텐데 어쩌다 이렇게 망가져 버린 거지.

뭐 생각해 보면 옛날이야기 속의 도깨비감투 같은 것도 담뱃재 정도의 열기에 구멍이 나기는 했다. 도깨비가 만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튼튼하지는 않은 것 같다.

“도깨비가 만들었다니 특별한 능력이라도 있었던가요?”

지금 봐서는 뭐에 썼는지도 모르게 생겼지만. 도깨비감투처럼 안 보이게 만든다든지 아니면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다든지 그런 능력이라도 있는 걸까?

“이것을 판 사람의 말에 따르면, 이 탈에는 슬픔을 잊고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경험한 바로도 그렇습니다. 이것을 쓰고 있으면 온갖 걱정과 두려움이 모두 사라지고 즐거워지지요. 마치 잔치에 초대받은 것처럼 흥겹고 기운이 납니다. 이 탈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즐겁고 흥겹게 만드는 탈이라. 잔치에 초대받은 것 같다는 그의 표현은 어쩐지 한밤의 도깨비 연회를 떠오르게 했다. 이 탈은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걸까.

요사하고 낯설지만 동시에 신비롭고 흥겨운 요괴들의 놀이터. 환상으로나마 그것을 즐기게 해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물건을 파는 사람이 있다니 뜻밖이었다. 도깨비가 만들었다고 하면 일단 뭐가 되었든 보통 물건은 아닌 거잖아. 도깨비가 만든 감투는 사람을 투명하게 만들어주고, 도깨비가 하룻밤 만에 놓은 다리는 몇 백 년이 지나도 멀쩡하고, 도깨비가 쌓은 성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고…그런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이것도 그랬다. 쓰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탈이라니 인간이 만들 수 있는 물건은 확실히 아니다. 이런 것은 도대체 얼마를 받고 파는 거야?

호기심에 슬쩍 물어보니 손님도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탈을 산 사람은 그가 아니라 그의 부모라고 했다. 부모님은 이것을 사기 위해 노후를 위해 모은 돈을 거의 썼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이 탈을 사야 했던 이유를 짤막하게 들려줬다.

“결혼하고 석 달 만에 아내가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 후로 몇 달 동안 저는 아예 넋을 놓고,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술만 마시며 살았지요. 이러다 아들이 폐인이 되겠구나 싶어 부모님이 구해온 것이 이겁니다. 그리고 이 탈 덕분에 저는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겁니다.”

제정신을 찾은 그는 아내를 잃은 고통을 잊기 위해 일에 매달렸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몇 년 만에 그럴듯한 사업체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했습니다. 일하는 동안에는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었어요. 조금씩 사업이 성장하는 것도 좋았고요. 하지만 어떻게 해도 혼자가 되는 순간이 옵니다. 그때는 미뤄뒀던 슬픔이나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들지요.”

그는 그때마다 고통을 잊기 위해 탈을 썼다고 했다.

“너무 오래 탈을 쓰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판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루에 한 시간을 넘기지 말고, 열흘에 한 번은 탈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요. 하지만 그게 어디 생각같이 됩니까. 탈을 쓰고 있는 시간이 너무 즐겁고 좋아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다가 두 시간, 세 시간이 되는 일도 많았지요.”

처음에는 하루에 한 시간과 열흘마다 쉬는 것을 잘 지켰다고 한다. 도깨비가 만든 요사한 물건이라는 두려움과 낯설음이 규칙을 지키게 해준 면도 있었다. 하지만 점점 익숙해지자 규칙을 지키려는 생각도 느슨해졌다.

“나중에는 아예 회사까지 탈을 가지고 갔다가 시간이 날 때마다 써보고는 했습니다. 그래도 별 탈은 없더라고요. 어쩌면 제가 너무 탈에 의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그런 말을 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뜨거운 물을 엎질렀다고 탈이 이렇게 된 것을 보니, 어쩌면 이 탈에는 사용한도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많이 써서 힘을 다 낭비해 버렸다는 걸까?

“탈을 판 사람을 찾아보고 싶지만 그러려면 부모님께 여쭤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탈을 너무 써서 망가뜨린 것을 알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아버지 친구분께 이곳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탈처럼 특별한 물건을 고쳐준다고 하더군요.”

내가 좀 특별한 걸 다루기는 하지.

“고칠 수 있겠습니까?”

남자가 간절한 얼굴로 나를 보며 물었다.

쓰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도깨비의 탈.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어떻게든 고치고 싶겠지.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네요.”

나는 대답을 미루었다. 어차피 당장은 고치는 방법도 모른다. 하지만 도깨비의 물건이라니 도깨비들에게 물어보면 뭔가 길이 나오지 않을까.

“얼마나 걸릴까요.”

손님이 안타까워하며 물었다. 그건 나도 모르죠. 아예 못 고칠 수도 있는 거고. 하지만 그렇게 대답해서 내 직업적 신뢰도를 떨어뜨릴 필요는 없겠지.

“도깨비의 물건은 먼저 도깨비들과 만나봐야 하니 당장은 말씀드리기 어렵군요. 확실해지면 연락하죠.”

손님은 도깨비를 만난다는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금방 고쳐질 게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아쉬운 얼굴로 탈을 내려다보았다.

손님은 몇 번이나 도로 가져가고 싶은 눈으로 탈을 보다가 결국 수리점을 떠났다. 무거운 걸음이었다.

그럼 손님도 갔고, 나는 이제 수리를 해볼까.

순서는 정해져 있다. 술 한 병과 안주를 챙긴 다음 푸석푸석한 이매탈을 가지고서 창고로 갔다. 창고 안 깊숙한 곳에 들어가자 잠들어 있는 다른 도깨비들과 달리 곰방대를 물고 뻐끔뻐끔 연기를 토해내고 있는 영감 도깨비가 보였다.

영감 도깨비는 눈짓으로 내게 인사를 건네더니 곰방대 대가리를 화로에 탕탕 쳐서 재를 빼냈다. 화로 안에서 불 도깨비가 후다닥 일어났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도로 누워서 잠들었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서 영감 도깨비에게 탈을 보여주었다. 이상하게 변해버린 이 탈을 어떻게 고치면 좋겠는지 묻자 영감 도깨비는 몸을 조금 숙이고 한동안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느릿느릿한 행동은 이미 몇 번 봐서 익숙했다. 입을 열 때까지 안주를 집어먹고 있는데 비로소 허리를 편 영감 도깨비가 곰방대 대가리에 재를 쓸어 담더니 다시 뻐끔 뻐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이것은 도깨비 조화가 아니라오.”

흰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뿜어놓은 후에야 영감 도깨비가 한 말이었다.

무슨 소리야? 도깨비 조화가 아니라니.

영감 도깨비의 수염 사이로 뻐끔, 흰 연기가 나오더니 흩어지지 않고 허공에 둥그스름하니 맺혔다. 그것은 뭉클뭉클 움직여서 우산 같은 모양으로 변했다.

“가면역이라 하는 거요. 버섯처럼 번식하는 요괴인데 인간으로부터 양분을 얻지. 양분을 얻는 대신 행복한 꿈을 꾸게 해준다오.”

아아, 우산이 아니라 버섯이었구나. 그러니까 이 탈이 원래는 버섯이었다는 건가? 아니면 탈처럼 생겼는데 포자를 퍼뜨려 번식한다는 건가. 그것도 그렇지만 양분을 얻는 대신 좋은 꿈을 꾸게 해준다니 내 생기를 뽑아먹으면서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나비 요괴보다는 백번 낫잖아?

“조심하오.”

영감 도깨비가 곰방대의 물부리에서 잠시 입을 떼더니 문득 말했다.

“꿈이란 붙잡을 수 없게 만들어진 것이오. 그렇게 만들어진 이유가 있지 않겠소.”

말하더니 장침에 비스듬히 기대어서 눈을 감고 다시 곰방대를 빨았다. 말을 듣지는 않았지만 이만 그의 영역에서 나가야 할 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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