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아빠 찾기(1)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수리점에 몰려온 것은 밤 10시를 막 넘은 때였다. 오늘도 무사히…라기보다 오늘도 일 없이 파리만 날리다 자게 되는구나 싶던 내게 손님이 떼로 몰려온 셈이지만 좋아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일단 함께 온 사람들은 일가족이다. 그럼 어차피 한 손님이나 마찬가지잖아. 아들 둘에 딸 하나인 여섯 가족이었다.
…아들 둘에 딸이 하나인데 왜 여섯 가족이지? 잘못 봤나 하고 손가락을 헤아리며 다시 세었더니 확실히 여섯 명.
엄마, 아빠, 아들, 아들, 딸, 아빠. 이렇게 여섯이다. 아? 아…아빠를 두 번 세어버렸구나. 역시 다섯 명. 아닌데? 여섯 명인데? 눈에 힘을 주고 다시 세어 봐도 여섯 명이다. 엄마, 아빠, 아들, 아들, 딸, 아빠…아빠가 두 명이었다.
그것도 아주 쌍둥이처럼 똑같은 두 명이다. 입은 옷만 좀 다를 뿐이었다. 한쪽은 막 퇴근한 것처럼 정장 차림이고 다른 한 쪽은 정강이에 닿는 길이의 바지에 편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아이들은 두 아빠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모여 있었고 엄마라고 생각되는 여자가 나를 보자 달려와서 하소연을 했다.
“아이구, 도령님. 우리 남편 좀 찾아주세요. 세상에 저걸 좀 봐요. 어디서 남편하고 똑같이 생긴 것이 들어와서 애들 아빠 행세를 한다니까요. 저렇게 똑같아서 우리도 누가 누군지 몰라 쫓아내지도 못하고…”
내가 보기에도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아니 원래 누군지 모르지.
어쨌든 갑자기 아빠가 한 명 더 생겼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 옛날부터 하나 있지 않았던가? 굉장히 유명한 건데. 손톱 깎은 것을 아무데나 버렸더니 쥐가 주워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지. 그렇다면 저 둘 중 하나는 쥐가 변신했다는 말이겠네. 즉 요괴.
요괴라면 간단하잖아. 둘 중 누가 요괴인지 정도는 나라도 알아볼 수 있으니까. 이런 저런 요괴들을 겪어봐서 그런지 사람과 요괴를 구분하는 것은 이제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니 두 아빠 중 요괴인 쪽이…가짜라고 생각했는데 곤란한 일이 생겼다. 둘 다 요기가 느껴졌다.
어…이건 아닌데.
눈을 깜박이며 두 사람을 열심히 번갈아 보았으나 어느 쪽도 인간 같지는 않았다. 서로를 노려보는 시선에는 적의가 가득했다. 두 아빠는 여기 오기 전에 이미 한바탕 싸웠는지 둘 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매무세가 엉망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부터 해보세요.”
손님들에게 자리를 권한 다음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고등학생에서 중학생 사이로 보이는 아이들은 계단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고 부인이 작업 선반 앞에서 나와 마주앉았다. 두 아빠는 서로를 쏘아보며 작업선반 반대편에 한 명씩 가서 섰다.
부인이 우는 소리를 섞어 설명해준 바에 따르면, 그녀는 오늘도 평소와 같은 시각에 남편이 퇴근해서 저녁 준비를 하던 참이었다. 아이들이 학원에서 돌아오려면 아직 두세 시간이 남아서 부부가 먼저 식사를 해왔던 것이다.
저녁을 차리는데 벨이 울려서 밖을 보니 남편이 있었다. 그 사이 나갔나? 왜 직접 열고 들어오지 않고 벨을 누르나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문을 열어줬다. 남편은 들어오더니 곧장 안방으로 갔고 잠시 후 두 남자가 큰 소리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려가 보자 남편이 둘이 되어서 서로 누구냐는 둥 나가라는 둥 멱살을 잡고 싸우는 중이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귀신이 곡할 일이 어디 있어요? 좀 보세요. 어디 하나 다른 데가 있는지. 얼굴의 점, 주름 하나까지 똑같아요.”
그녀의 말대로다. 두 사람은 거울을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똑같았다.
“처음에는 쌍둥이가 아닌가 했지만 쌍둥이라도 그렇지 이렇게 똑같이 자랄 수는 없는 거잖아요? 게다가 서로 자기가 내 남편이라고 주장하는데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제가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아이들이 돌아오니까 서로 애들에게 가서는 자기가 진짜 아빠라는 통에 아이들도 기절할 뻔했어요.”
그러다 둘째인 딸이 옛날이야기를 떠올리고 둘 중 하나가 쥐일지도 모른다며 두 사람을 고양이게게 데려가 보기로 했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가족들은 함께 근처의 팻 샵으로 몰려갔단다. 그런데 고양이 앞으로 가도 쥐 요괴는 본색을 드러낼 기색이 없었고 가족은 다시 난감해지고 말았다.
“질문은 해봤어요? 진짜 아빠만 알 수 있을 것 같은 일이나 그런 거 있잖아요.”
내가 묻자 부인은 가슴을 두드리며 답답해했다.
“했어요. 당연히 했죠. 그런데…”
그런데 결과가 좀 아리송했다.
아빠에게 가족에 대해서 물으면 둘 다 제대로 대답하는 것이 없었다. 이쪽 아빠가 아는 것을 다른 아빠는 몰랐고, 다른 아빠가 아는 것을 이쪽 아빠가 모르는 식이었다. 대답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둘 다 알아서 대답한다기보다 대충 찍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연애할 때 이야기라든가 오래 전의 과거를 꺼내면 또 둘 다 썩 대답을 잘 해내곤 했다.
두 아빠가 모두 이 모양이니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결국 경찰서로 가느니 마느니 하고 있다가 막내아들이 내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도령님이 그렇게 용하시다면서요. 여기에 오면 귀신 붙은 물건도 고쳐주고, 요괴들도 쫓아내주고 그런다고요. 저 둘 중 누가 제 남편인지 좀 구별해 주세요.”
부인이 애원하듯이 말했다. 그야 내가 물론 용하기는 한데, 문제는 두 남편이 다 요괴란 말입니다.
그렇다고 그걸 사실대로 말해줄 수는 없고. 저 두 요괴가 모두 남편이 아니거나 진짜 남편이 본래 요괴였다면 문제가 복잡해지는 거잖아. 나도 난감했다.
옛날이야기 속의 쥐라면 경우가 좀 달랐던 것 같은데. 질문을 하니 쥐는 집안일을 잘 알고 있어서 대답을 잘했지만 진짜 남편은 그렇게 못했다든가. 그래서 가짜로 오해받아 쫓겨났다고 했지. 그런데 이 경우는 둘 다 제대로 아는 것이 없으니 모두 가짜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가짜 하나에 가족에게 관심 없는 아빠 하나라고 해야 하나.
가만. 그렇다면 반대로 질문을 해보면 되지 않을까.
나는 두 아빠를 멀찍이 앉혀놓고 두 사람에게 종이와 연필을 하나씩 내줬다. 그리고 거기에 이번에는 가족들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것을 적게 했다.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든가 가장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이라든가 가족들이나 알 수 있을 것 같은 사소한 질문들이었다. 두 아빠는 이마에 주름을 지으며 고민스럽게 답안지를 작성했다.
잠시 후 그들이 종이를 가져왔다. 음, 일단 필체는 둘 다 똑같네. 그러나 내용이 다르다. 오케이. 이걸로 구분할 수 있겠어.
나는 득의만만해서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정답을 확인했다. 1번,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몰라요.”
“치킨인가?”
“탕수육?”
이건 자식들의 대답이고
“내가 만든 건 뭐든 잘 먹어요.”
이건 부인의 대답. 그리고 답안지에는 각각 생선회, 감자탕이라고 적혀 있다. 1번은 아무래도 질문이 잘못된 것 같다. 그럼 2번.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은?
“아빠는 안방에서 티비 보는데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라는 게 자식들의 대답.
“티비는 무슨. 들어올 때마다 취해서 자기 바쁜데.”
라는 것이 부인의 대답이었다. 답안지에는 각각 야구와 당구 프로그램이 적혀 있었다. 이번에도 질문이 잘못된 건가? 당황하지 말자. 3번. 아빠는 작년 생일에 가족들에게 무슨 선물을 받았을까?
“미역국은 끓여 줬고…”
부인은 말끝을 흐리며 생각하는 체했지만 끝내 생각이 나지 않았는지 말이 없고, 자식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뭐 드렸었어?”하고 속삭여 물었다.
총 10문제가 대충 이런 식이었다. 답안지에 적힌 답은 서로 달랐고 정작 정답은 아무도 몰랐다.
뭐야, 아빠가 아니라 가족들이 가짜인가?
결국 이런 식으로는 진짜 아빠를 찾아낼 수 없다는 결론만 얻었다.
“어쩔 수 없네요. 일단 가족분들은 돌아가시고, 두 분은 여기에 남으세요. 진짜 아빠를 찾으면 돌려보낼게요.”
내 말에 가족들은 안심한 기색으로 수리점을 나갔다. 두 아빠는 떠나는 가족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그들이 가고 나자 이내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들이 다시 네놈은 누구냐느니 어디서 내 행세를 하며 남의 자리를 차지하려 드느냐느니 싸우기 시작하는 통에 수리점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나는 멱살을 잡고 주먹다짐을 하는 두 사람을 멀찍이 떼어놓았다.
일단 두고 가라고 말은 했는데, 가족도 구분 못하는 진짜를 내가 무슨 수로 구분한단 말이야. 게다가 양쪽이 모두 요기를 풍기고 있고. 정말 둘 다 가짜인가?
나는 한사람씩 내 방으로 데려가 취조해보기로 했다.
뭣 하던 요괴인지 모르겠지만 남의 집에 들어가서 함부로 사람들을 괴롭히면 혼난다든가 조금 겁을 주는 말을 해봤으나 둘 다 반응은 똑같았다. 펄쩍 뛰며 자신은 요괴가 아니라고 우기는 것이다. 정말인 것처럼 보이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둘 다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요기가 느껴진다.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뭐지? 도대체 누가 진짜야?
이렇게 되면 도깨비들에게 부탁해 볼까. 한밤중이라 깨어서 놀고 있는 창고의 도깨비들을 작업장으로 불러들였다.
“도령이 이리 오지, 왜?”
“도령, 피리 불어줄 거요?”
도깨비들이 한마디씩 하며 작업장으로 나왔다. 그들에게 두 아빠를 보여줬더니 “그래서 뭘 어쩌라고?”하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둘 중 누가 사람이냐고 물으니 도깨비들은 여기에 사람은 도령뿐이잖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도깨비들까지 요괴 취급하는 두 아빠는 달그락달그락 움직이는 물건 모양의 도깨비나 휙휙 날아다니는 푸른 도깨비불을 보자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주저앉고 말았다. 도깨비를 처음 보는 요괴이거나 연기력이 주연급인가.
어쨌든 둘 다 요괴인 것은 분명했다. 본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러면 진짜 아빠는 이들 가운데 있을까? 하지만 진짜 아빠가 본래 요괴였다면 가족이 없는 이 자리에서 굳이 감출 필요가 있을까? 아아 복잡하다.
이건 요괴인가 아닌가 라든지 무슨 요괴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진짜 아빠가 누구인가 라는 문제였다. 인간이든 요괴이든 중요한 건 가족들의 진짜 아빠.
그런데 무슨 수로 그걸 알아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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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아빠 찾기(2)fin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일단 눈만 마주치면 싸우려고 드는 두 아빠를 따로 떼어놓아야 했다. 그들을 창고 양쪽 끝에 자리 잡게 하고 도깨비들에게 감시를 부탁해 놓았다.
두 아빠들에게는 또 싸움을 벌이면 도깨비들에게 잡아먹힐 거라고 거짓말을 했더니 정말로 믿는 기색이었다. 이분들이 전래 동화나 우리나라 전설에는 통 관심이 없구나. 도깨비가 왜 사람을 잡아먹어요. 그걸 믿어요?
어쨌든 겁을 집어먹고 얌전히 제자리를 지키니 안심하고 자러 갈 수 있었다.
웬 요괴가 내 행세를 하니 빨리 구분해달라는 건 아빠들 사정이고, 오밤중에 들이닥쳐서 몇 시간 동안 골머리 썩게 만든 그들 때문에 이미 시각은 새벽이었다. 낮이 되면 도깨비들의 도움을 받지도 못하니까 나는 잘 수 있을 때 자야했다.
하룻밤 새 뭐 별일 있겠어. 도깨비들도 지켜보고 있을 테고. 안일한 마음으로 잠들었다가 다음 날 창고로 갔더니 별일이 있었다. 밤새 두 아빠의 태도가 바뀌어 버린 것이다.
어제는 틈만 나면 멱살잡이를 하려고 들던 두 사람인데 오늘 아침에 가봤더니 아침이라 꾸벅꾸벅 졸고 있는 도깨비들 사이에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한창 서로에게 푸념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었다.
“…라고 하는 거야. 아 진짜 내가 그 소리를 듣고 속에서 욕이 올라오는데, 이걸 확 때려치워? 말아? 그냥 이부장 면상에다 대고 파일을 팍 집어던지고 욕이나 한 사발 퍼붓고 그대로 나가버릴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게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내가 꿀꺽 삼키고…”
“잘했어. 잘했어. 거기서 성질부리면 뭐해. 저만 손해지. 크으, 쓰다. 아이고, 안주가 떨어졌네?”
“그래가지고 내가…”
둘 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주변에 호리병이 몇 개나 굴러다니고 엎어진 빈 술독이 시커멓게 어두운 속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도 모를 정도로 취한 것 같았다. 한 명은 꾸벅꾸벅 졸다가 무슨 소리가 들릴 때마다 눈을 번쩍 뜨고 “그렇지. 그럼…”하고 대꾸한 다음 다시 졸았고 다른 한 명은 상대방이 듣는지 마는지 신경 쓰는 기색도 없이 이부장의 뒷담화를 하고 또 하고 또 했다.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지켜보고 있으려니 꾸벅꾸벅 졸던 아빠는 결국 옆으로 고꾸라져서 코를 골며 잠들었다. 다른 한 명은 술상대가 잠든 것도 모르고 중얼중얼 이부장 욕을 늘어놓았다.
뭐야, 이건. 도깨비들더러 둘이 안 싸우게 잘 지키라고 했더니. 안 싸우는 정도가 아니라 술친구를 만들어 놨네. 그래도 싸우지 않으니 일단 잘 된 일이고. 서로 이야기도 하며 제법 친해졌을 테니 이제 잘 구슬리면 가짜가 스스로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으나…
오후가 되어 둘 다 술에서 깨어나자 상황은 또 달라졌다. 먼저 잠에서 깬 사람은 정장 차림의 아빠였다. 편한 옷차림의 아빠가 쓰러져 잠든 다음에도 20분쯤은 혼자서 중얼중얼 뒷담화를 하다 결국 졸음을 못 이기고 누웠는데 나중에 잠들었으면서도 먼저 일어난 쪽은 정장이었다.
잠든 도깨비들 옆에 아무렇게나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부스스한 꼴로 일어난 그는 잠시 멍청한 얼굴로 눈을 꿈벅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주머니를 뒤져서 핸드폰을 찾아낸 그가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더니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아이고, 시간이! 큰일 났네. 전화가 여섯 통이나 와 있잖아. 아아, 미치겠네. 이부장이 두 번이나 했어. 회사 가면 아주 씹어서 먹으려고 하겠네. 왜 안 깨웠어? 아니, 전화 소리가 들리면 받아야 할 것 아니야? 싫으면 나를 깨우든가. 이게 여섯 번이나 울리도록 내버려 두면 어쩌란 말이야? 응?”
혼자서 외치던 그는 뒤늦게 부스럭거리며 일어나는 편한 옷의 아빠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자다 일어나서 갑자기 봉변을 당한 편한 옷의 아빠가 인상을 쓰며 대꾸했고 거기에 다시 정장의 아빠가 쏘아붙이면서 둘의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멱살을 잡고 주먹다짐을 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발을 구르고 삿대질을 하며 고성이 오가자 잠들었던 도깨비들이 하나둘 깨어나서 불평을 해댔다.
나는 처음부터 쭉 지켜보면서 나서지 않았다. 두 아빠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해볼 생각이기도 했고 어젯밤부터 싸움 말리는 일에 지쳐서 한 번 제대로 붙으면 어떻게 되나 내버려 둘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싸우다 보면 본성이 드러나지 않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뭔가 결정적인 실수를 하게 될지 모른다. 어느 한 쪽이 위험해질 것 같으면 그때 나서도 늦지 않을 테고. 그런 생각으로 지켜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창고 안에 한바탕 바람이 휘몰아쳤다. 바람은 두 사람을 허공으로 번쩍 띄웠다가 선반 사이로 나뒹굴게 만들었다.
“시끄럽기가 예전 살던 집보다도 더 하네. 나가서 싸우시게들.”
부채 도깨비가 허공에서 팔락팔락 바람을 일으키며 말했다. 두 아빠는 한바탕 내동댕이쳐지자 정신이 좀 들었는지 아니면 겁이 났는지 슬금슬금 창고에서 나갔다.
작업장으로 간 후에도 그들은 낮은 목소리로 이제 이 노릇을 어쩔 테냐, 회사에다 뭐라고 말하느냐, 지금이라도 전화를 해야 할 텐데 누가 할 것이며 뭐라고 변명을 할 것인가 하는 일로 다투었다.
이거 참. 어디 다른 데가 있어야 구분이라도 하지. 생긴 것도 똑같고 하는 짓도 똑같으니 더 난감했다.
두 아빠가 다투고 있는데 마침 그들의 부인이 전화를 걸어와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부인은 오래 묻지 않고 퇴근하면서 들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녀가 한 말을 두 아빠에게 전해주었다.
“애들은 학교 잘 갔고요, 회사에는 며칠 입원한다고 연락했대요. 그리고 부인이 좀 있다 퇴근하고 들르겠대요.”
서로를 탓하며 말싸움 하던 두 아빠가 내 말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그 후로 그들은 더 싸울 마음이 사라졌는지 서로 멀찍이 떨어졌다. 싸우지 않아서 조용하니까 좋기는 한데, 두 남자가 작업장 양쪽 끝에서 실내온도를 뚝뚝 떨어뜨리는 표정을 하고 있으니 그것은 또 그것대로 곤란하다.
수리점 내부를 리모델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방 같은 걸 두세 개쯤 만들어서 이런 경우가 생기면 하나씩 집어넣어 버릴까. 이 건물 주인은 나인데 왜 내가 내 작업장에서 저 사람들 눈치를 보고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런 고민을 하는데 저녁쯤에 드디어 부인이 찾아와서 분위기는 조금 누그러졌다.
출근하던 복장 그대로 수리점에 온 그녀는 양손에 포장된 음식 봉투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한 쪽은 생선회, 다른 쪽은 감자탕이었다. 그것을 부인은 작업 선반 위에 차려놓고 두 사람을 불렀다.
“식사는 제대로 했어요?”
부인이 그들을 향해 물었다.
실은 제대로 못했다. 술에 취해서 내내 잠들어 있다가 오후에야 깨어났는데 깨자마자 서로 싸우기 바쁘고, 그 후로는 냉전 상태가 되어서 말 걸기도 어려운 얼굴로 있으니 밥 먹으라는 소리가 나오겠어?
“오는 길에 보이는 식당에서 산 거라 맛이 있는지 어떤지도 모르겠네요.”
누가 진짜 남편인지 모르는 그녀는 두 사람 모두에게 나무젓가락을 쪼개서 놔주고 먹기 편하도록 음식 접시를 모아놓았다. 두 아빠는 어색한 얼굴로 보고 있다가, 그래도 배가 고프기는 꽤 고팠는지 젓가락질을 한두 번 하기 하더니 이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부인은 맞은편에서 그들이 먹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어젯밤에는 당황한 채로 수리점에 찾아와서 어쩔 줄을 몰랐던 그녀였지만 오늘은 한결 담담하면서도 표정은 훨씬 복잡했다.
두 사람이 먹는 것을 보고 있던 그녀가 문득 고개를 떨어뜨렸다.
말없이 먹던 두 아빠가 부인을 쳐다보고 젓가락질을 멈췄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면서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신은 내가 해주는 대로 잘 먹고 반찬 투정도 안 해서, 그냥 뭐든 잘 먹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같이 나가도 외식하면 애들 좋아하는 걸로 시키고…. 감자탕을 좋아하는 사람이 내 남편이면 나는 집에서 남편 좋아하는 요리를 한 번도 해준 적이 없네요. 생선회를 좋아하는 사람이 내 남편이면, 나는 밖에서 남편 좋아하는 요리를 한 번도 시켜준 적이 없네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가 부인의 모은 손 위로 똑똑 떨어졌다.
“해줬잖아, 한 번. 신혼 때.”
젓가락으로 뼈 안의 살을 헤집어 내며 편한 옷차림의 남편이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집들이 하느라고 식구들 불렀을 때 감자탕 끓였었잖아. 어머니가 그거 드시고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내가 못난 아들이라 부모님께 칭찬 받아본 적이 별로 없는데, 우리 둘째가 며느리는 참 잘 골랐다면서. 음식 솜씨 좋은 걸 보니 잘 살겠다고, 두 분이 시골로 가신 뒤에도 마을 회관에서 며칠이고 자랑하셨대서, 그래서 감자탕이 좋은 거지.”
부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편한 옷의 아빠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젖은 눈을 깜박이며 빤히 바라보자 남편은 머쓱한 얼굴로 음식 그릇을 가리켰다.
“당신이 그때 만든 것만 못하네.”
부인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표정을 하고 있다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내가 만들었다고 거짓말 하고 식당에서 사온 거였는데…”
“컥! 쿨럭!”
감자탕 국물을 삼키던 남편이 허리를 숙이며 기침을 했다. 사레들려서 괴로워하는 그를 보고 부인이 벌떡 일어났다.
“어머, 어떡해. 여보, 괜찮아요? 아이 참. 여기 화장지.”
남편은 부인이 내민 화장지로 손과 입을 닦으면서도 몇 번이나 잔기침을 했다. 그러면서 그의 얼굴은 어이없다는 표정과 웃으려는 표정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갔다.
“허 참.”
결국 그가 탄식하더니 부인을 보고 껄껄 웃었다. 부인도 따라서 웃고 말았다.
두 사람이 마주보며 웃는 동안 또 한 명의 아빠, 정장 차림의 남편은 포기한 얼굴로 어깨를 늘어뜨렸다. 나는 저 녀석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리고 두 아빠가 모두 요기를 풍기고 있는 이유도.
“들킨 것 같으니까, 정체가 뭔지나 보여 줘봐.”
사람들을 꽤 괴롭힌 셈이지만 아무래도 악의는 느껴지지 않는 요괴를 향해 내가 말했다. 남편을 똑같이 닮은 요괴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갑자기 푹 꺼지듯이 작아졌다. 부인이 놀라서 “어맛!”하고 외치며 남편 옆에 바짝 붙었다. 요괴가 섰던 자리에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어어…어? 이 녀석?”
남편이 고양이를 알아보았는지 눈을 크게 떴다.
“아는 고양이에요?”
“응, 퇴근길에 보면 꼭 집 앞 골목에서 어슬렁거리고 하거든. 그래서 내가 소시지나 참치 캔 같은 걸 가끔 사다 주고 그랬지. 왜 그랬냐? 이 녀석아. 내가 너한테 뭐 잘못이라도 했냐? 응? 왜 나로 변해서 이런 일을 만들어?”
남편의 질문에 고양이가 노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홱 돌렸다.
[내가 부럽다고 하지 않았소? 거치적거리는 거 하나 없이 세상 편하게 나처럼 살면 좋겠다고. 그런데 내가 없으면 가족들 먹고살 길이 없으니 누가 나 대신 내 노릇 좀 해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소.]
약간 삐친 얼굴로 고양이가 대꾸했다.
“내가 그랬어…?”
얼빠진 얼굴로 남편이 되물었다.
[여러 번 말했소. 술 냄새를 풍기면서 몇 번이나 말했소.]
고양이의 대답에 남편이 볼을 붉히며 손을 저었다.
“아니, 그건. 취해서 하는 말이지. 진심이 아니라. 취하면 말이지, 아무 생각 없이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남편이 변명했지만 고양이는 삐친 얼굴로 폴짝 뛰어서 남편의 어깨 위를 넘어갔다. 바닥에 소리 없이 착지하는 고양이의 눈이 요기로 반짝거렸다.
[어쨌거나 나는 은혜를 갚았으니 이제 가겠소.]
어? 남편에게서 느껴지던 요기가 사라졌다. 내가 신기해하는 동안, 고양이는 사뿐사뿐 걸어서 수리점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한바탕 벌어졌던 가짜아빠 소동은 끝이 났다. 부부는 손을 잡으며 나란히 떠났고 나는 수리비를 챙겼다. 음, 이 경우에는 수리비가 아니라 요괴 퇴치비인가?
고양이가 요물이라는 말은 있지만 정말로 요괴일 줄이야.
나중에 백은호에게 들었는데 인간과 가까워진 고양이는 요물이 되어 저도 모르게 둔갑을 배우거나 요괴로 변하기도 한단다. 그런데 고양이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은 그 요물이 은혜를 갚기 전까지 고양이의 요기를 함께 띠기도 한다나. 그것은 고양이에게 있어 일종의 영역표시 같은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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