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미인(3)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여자의 모습을 한 자그마한 사람이 호박 안에 들어있다. 웅크리고 있으니까 가능한 거겠지만 똑바로 서도 10센티나 될까 싶은 크기였다.
그런데 또 사람인가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지 위화감이 있다. 눈이 보통 사람보다 커서 그런가. 귀도 약간 크고 뾰족하게 보이고. 일단 생긴 것만을 보면 얼짱 각도로 찍어서 성형 프로그램으로 손본 것 같은 외모였다.
그런데 그런 조그만 사람이 눈을 깜박이거나 고개를 기울이며 이쪽을 빤히 보고 있다. 살아있는 것이다.
아직 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어린 얼굴에 교복을 입고 있었다. 물론 인간일 리는 없고 요괴가 분명하겠지만, 약하나마 나 역시 요기를 느끼고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 이거 뭔가 위험하잖아. 교복 입은 미소녀가 보석 안에 있어요.
저절로 이 물건의 주인인 남성에게로 시선이 돌아갔다. 설명을 요구하는 내 시선에 남자가 한 말은 오히려 질문이었다.
“보입니까?”
뭐가 보이냐는 거야. 나는 할 수 없이 되물었다.
“뭐가요? 이 여자?”
호박 속의 소녀를 가리키며 말하자 남자가 눈을 크게 뜨고 숨을 들이쉬었다가 한숨을 뱉었다.
“그렇죠? 역시 보이는군요. 전 또 제가 미쳤거나 정신이 이상해진 줄 알았습니다.”
미친 거나 정신이 이상한 거나 같은 말이에요. 그나저나 이 남자는 물건에 무슨 이상이 있어서라기보다 요괴를 본 것만으로 놀라서 여기에 왔나 보다.
“그, 그런데 사장님 눈에도 그…그 여자가…아니 그러니까, 사장님 눈에는 그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보입니까?”
남자는 약간 더듬거리면서 다시 물었다. 보이는대로 알려주자 남자는 안심과 두려움이 섞인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그렇군요. 역시. 차라리 제가 좀 이상해진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달라고 하자 남자는 잠시 할 말을 정리하는지 눈썹을 모으며 작업 선반을 쏘아보았다.
“그 거울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는 것이 좋겠군요. 그것은 제 할머니가 가지고 계시던 물건입니다. 시집올 때 할머니의 아버지, 그러니까 제게는 외증조부 되시는 분께 받은 물건이지요. 그 분에 대해서는 이야기밖에 못 들었지만 생전에 희귀한 물건이나 보석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것을 수집하셨다고 합니다.”
의외로 오래 된 물건이었다. 보존 상태가 꽤 좋은 셈이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저는 할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거울을 받은 것은 제가 열다섯 살이 되었던 해인데 할머니는 이것을 주시면서 ‘늘 지니고 다니면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준다’고 하셨습니다.”
말하며 그가 조금 웃었다.
“그 말씀을 믿은 것은 아닙니다. 하긴 거울을 가지고 다니면 그게 깨질까 무서워서라도 행동을 조심히 하고 위험한 일에는 가까이 가지 않았을 테니 그런 의미에서 위험으로부터 보호되는 걸지도 모르지요.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부적이라고 해도 이런 여자애나 들고 다닐 거울을 가지고 다닐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한동안 책상 안에 보관해두고 있었습니다.”
거울을 다시 꺼내본 것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라고 했다. 할머니 생전에도 단 두 사람뿐이었던 집에, 상을 치르고 나서는 혼자 남게 되자 문득 외로움과 함께 두려움이 덮쳐 와서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거울을 꺼내보았다.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의외로 이게 참 위안이 되더라고요. 느낌만 그런 건지 몰라도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도 안정되고 차분해지고요. 그래서 그 후로는 늘 가지고 다녔습니다.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가 한창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던 때였는데 거울 덕분인지 몰라도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고, 몇 달 전에 운 좋게 집에서 가까운 중학교로 발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출근한지 두 달째 무렵부터 학교에서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이 기절한 채로 발견된 겁니다.”
거울을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처음에는 학교에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 나이의 아이들은 어디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거니까요. 기절했다고 해도 잠시 후면 정신을 차렸고 후유증도 없었고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냥 빈혈 증상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며칠 간격으로 몇 번씩이나 계속되니까 우연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게 된 겁니다. 게다가…기절하는 아이가 늘어날수록 깨어나는데 걸리는 시간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아이가 사흘 전에 운동장에서 발견되었는데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남자는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불안한 듯 깜박이는 눈 밑으로 어둡게 그늘이 진 것이나 피부도 윤기가 없는 걸 보면 요새 제대로 못 자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무릎 위에 올려놓은 가방 모서리를 만지작거렸다.
“거기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정도로만 생각했을 겁니다. 물론 아이들 사이에서는 별 소문이 다 돌고 있습니다. 학교 안에 귀신이 있다든가 선생들 중에 사이코패스가 있어서 약물로 학생들을 기절시킨다든가 별 해괴한 이야기가 나돌지요. 물론 약물 운운하는 이야기는 병원에서 아니라고 확인된 문제입니다만 선생님들 중에서도 그런 의심을 하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니까요.”
학교의 괴담이라…귀신이니 움직이는 동상이니 하는 이야기라면 많이 들어본 것 같다.
“저는 첫 직장에서 이런 일이 생겨 운이 없다는 정도로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만, 혈기랄까 알고 보면 별 거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으로 어느 날 늦은 시각에 아이들이 발견된 장소들을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늘 가지고 다니는 거울에 의지하는 마음이 있어서 덜 두려웠던 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후에, 거울 안에서 이렇게…”
그는 두려움과 후회가 섞인 눈으로 거울 뒷면, 호박 속에 있는 소녀를 힐끔 보았다.
“처음에는 제가 귀신에 홀린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옷이 우리 학교 교복이고 나이도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로 보여서 혹시나 하고 학교 홈페이지를 뒤져보았더니 학급별 홈페이지의 사진에서 같은 얼굴의 학생이 발견된 겁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만나보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마지막으로 발견된 기절한 학생…그러니까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그 학생이더라고요.”
얘가 사람이라고?
나는 거울 뒷면에 얼굴을 바짝 대고 호박 속의 소녀를 다시 꼼꼼히 살펴보았다. 아까까지 신기한 듯 나를 보고 있던 소녀는 이제 구경이 질렸는지 옆으로 누워서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혹시 몰라서 말을 걸어보았지만 제 목소리가 안 들리는 건지 저쪽에서 말하는 소리가 제게 안 들리는 건지 대화는 할 수 없었습니다. 아, 이것이 그 아이의 사진입니다.”
남자가 핸드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더니 내게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찍은 셀카였다. 그런데 정말로 얼굴이 호박 속의 소녀와 똑같다.
“처음부터 보석 안에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거울 앞면에 잠깐씩 보였다 사라지고는 했어요. 그래서 자세히 보려고 하니까 그 후로는 나타나지 않더니 바로 어제부터 그렇게 호박 속에 들어있는 겁니다. 그걸 보고 기절할 뻔했습니다.”
남자는 만지작거리던 가방 모서리를 꽉 쥐었다.
“이건 기절한 학생의 혼령일까요? 혹시 이 안에 혼이 갇혀서 아직 못 깨어나고 있는 걸까요? 저는 그 거울이 저를 지켜주는 좋은 부적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잖습니까. 제게 뭔가 좋은 일이 주어졌다면 분명 반대급부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치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예?”
남자는 간절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런데 그렇게 물어도…나도 모른다고. 내가 알 수 있는 거라고는 호박 속에 있는 이 소녀가 분명 사람이나 사람의 혼은 아니라는 정도일까. 사람과 요괴를 구별할 수 있는 만큼 혼인지 아닌지 정도도 웬만큼은 알겠는데 이 거울에서 느껴지는 것은 요기와 약간의 신령한 기운 정도일까.
서로 궁합이 별로 안 좋은 두 기운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그뿐이다. 또 요기에 있어서도 딱히 사악한 기운이나 악의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일단은 손님을 안심시켜야 했다. 이것은 사람의 혼이 아니고 분명 그 학생 본인도 아닐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하자 남자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안심하는 기색이었다.
“그럼 이건 뭡니까? 혼이 아니라면 무슨 요물입니까?”
나도 궁금하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대충 눙쳐서 넘기고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연락하겠다며 손님을 보냈다. 남자는 죄책감을 덜어서 조금은 가벼워진 얼굴로 나갔다.
‘이거 혹시 출장이 필요한 일 아닐까.’
거울 뒷면에 들어있는 요괴가 문제이긴 하지만 그보다 학교에서 기절한 채 발견되고 있다는 학생들 이야기에도 신경이 쓰였다. 이 요괴가 학생들과 관련되었다면 당연한 거고, 그렇지 않더라도 어쩐지 수상쩍은 기절 사건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이 요괴의 정체부터 알아내야 하겠지.
거울 든 손을 좀 멀찍이 떨어뜨려 놓고 나는 호박 속의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너, 사람 모습을 하고 있는 걸 보니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목소리 들리냐?”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는 모르겠는데 호박 속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저게. 나는 거울을 좌우로 살짝 흔들었다. 거울이 흔들리자 보석 안에 있던 소녀도 함께 좌우로 흔들리더니 그제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 목소리 들리냐고.”
이번에는 말과 함께 손짓을 하며 물어보았다. 호박 속의 소녀는 나를 잠깐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거두고 딴청을 부렸다. 얘가 대화할 생각이 없네.
그런데 대화할 생각이 없다고 나도 안 할 수는 없고. 일단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말, 외모를 칭찬한다든가 외모를 칭찬한다든가 외모를 칭찬하며 살살 구슬려 보았다. 반응은 없었다. 요괴라 그런가. 그럼 요괴는 무슨 말을 좋아하지?
‘내가 인간 여자 마음도 잘 모르는데 요괴 여자 마음 따위를 어떻게 알아.’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 건물에는 여자 요괴가 여럿 있었다. 같은 여자 요괴라면 말이 통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거울을 가지고 우선 유하에게 갔다. 하지만 유하는 지금 바쁘다며 쌀쌀맞게 거절했다. 좀 도와주면 어때서? 서운하지만 양이천왕이 머물 곳을 만드느라 바쁜 것도 사실이고, 애초에 요괴와 관련된 물건의 수리는 그녀의 일이 아니기도 했다.
다음으로 창고에 가봤으나 아직 낮이라 도깨비들은 깨어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영감 도깨비가 언제나처럼 병풍 앞 보료 위에서 뻐끔뻐끔 담뱃대를 빨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평소와 달리 기분이 별로 안 좋은지 토해내는 연기가 거의 장막처럼 그의 주변을 하얗게 가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양이천왕이라는 남자가 창고 안을 돌아다니며 잠들어 있는 도깨비들을 쿡쿡 쑤시고 다니는 중이었다.
도깨비들은 모두 물건의 모습을 한 채로, 다른 하늘에서 온 사람 몸의 천왕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성미 급한 물레 도깨비까지 아무 말 않고 있는 걸 보니 도깨비들에게도 저 남자는 편한 상대가 아닌 것 같다.
“남의 물건 멋대로 만지지 말고 나와요.”
보다 못해 내가 가서 한마디 하자 그가 눈동자만 굴려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사실 나와 별로 키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저 남자가 나를 볼 때면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네 보물창고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구나. 돌아갈 때 하나 가져가고 싶은데…”
그가 눈을 반짝이며 내게 말했다.
사신이 금품이나 향응을 요구하면 사신 행동강령 뭐 그런 규칙에 안 걸리나요? 거긴 공무원 부패방지법 그런 거 없어요? 확 신고해 버릴까 싶어도 저 작자가 바로 다섯째 하늘의 천왕이다.
그런데 처음 그가 왔을 때 유하가 술상을 차려놓고 먹게 하려고 애쓰던 걸 생각해 보면 사신인 주제에 이미 우리가 내주는 상을 받았단 말이야. 아니 오히려 그 자신이 손님 대접을 하라며 술상을 내놓으라고 말한 격이 아닌가.
옛날이야기에서도 곧잘 나오듯이, 사신이 인간에게 먹을 것을 대접받으면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런 것을 그는 스스로 받았다는 뜻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저 남자는.
“도깨비나 요괴들 귀찮게 하지 마요. 그 아이들만 아니면 가져가든가 말든가.”
내게는 별로 보물도 아니고.
내 말에 그가 씩 웃었다.
“그렇다면 이걸로 하지.”
그가 팔을 뻗더니 선반 위에서 뭔가를 집었다. 그것은 나무토막이었다. 30센티 정도의 길이에 말라붙은 잔가지가 조금 난, 도대체 왜 창고에 보관하는지 통 모를 평범한 나무토막이다.
요괴나 혼이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무슨 기운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맘대로 하고, 창고에서 나오기나 해요.”
양이천왕은 흡족한 얼굴로 나무토막을 코트 소매에 집어넣었다.
실수한 게 아닐까.
가슴 밑바닥에서 문득,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것처럼 그런 생각이 불어왔다. 줘서는 안 되는 것을 줘버린 게 아닐까. 뭔지도 모르는 걸.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아마 기억을 되찾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이런 불안을 느끼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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