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미인(5)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그날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 그녀가 방법이라면서 내놓은 것은 목걸이였다.
가죽 끈에 손가락 길이의 금속 원통이 매달려 있었다. 이것을 목에 걸고 있기만 하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말이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가죽 끈에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금속 통이었다. 통은 반으로 나뉘어 있었다. 위아래를 잡고 살짝 비틀자 분리된다. 안에서 돌돌 말린 종이가 나왔다. 노란색 바탕에 붉은 얼룩이라는 건 뻔했다. 제대로 펴보기도 전에 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뭔지 모를 부적이 세 장이나 겹쳐져 있었다.
“이게 뭔데?”
“이목천왕의 눈인 해와 달과 별로부터 감춰주는 부적이에요. 더럽히거나 손상시키면 효력이 없어지니 조심해요.”
이목천왕의 눈으로부터 감춰주다니, 구름을 모아서 하늘을 가리는 것보다 낫잖아. 이걸 가지고 있으면 맑은 날에도 밖에 나갈 수 있다는 거다.
“곧장 학교로 가서, 그곳의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바로 돌아와요.”
유하가 한 번 더 다짐했다. 뭐랄까 애한테 심부름 보내면서 “한 눈 팔지 말고 이것만 사서 바로 집에 와.”라는 엄마 같은 걸.
내가 애냐고 투덜거리려 했으나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는 유하의 얼굴을 보자 조금, 기분이 묘해졌다.
내가 뭔가 잘못할까봐 걱정하는 거니까 좋은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두근거렸다. 내게 집중해주고 있는 이 순간을 조금 더 즐기고 싶었지만 출발을 늦출 핑계가 없었다. 아아, 관심 받으려고 사고 친다는 아이들 심정이 이해가 되는데.
“다녀올게.”
아쉬운 마음으로 말하고, 약간은 충동적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쓰다듬었다기보다는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가 손가락 끝을 살짝 그러모은 것뿐이지만.
내 손 아래에서 그녀의 하얀 얼굴이 조금 붉어지는 것 같았다.
저 여자는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있을까? 수줍은 얼굴로 눈을 내리뜰 때 속눈썹이 떨리는 것을 보고 코앞에 서 있는 남자가 어떤 상상을 하게 되는지 알까? 머리를 쓰다듬는 손 아래에서 볼을 붉히면 그 손이 어떤 기대를 품게 되는지 모르는 걸까?
손가락으로 머리카락 사이를 헤치며 거기에서 풍기는 샴푸 냄새를 맡고 싶은 유혹을, 나는 간신히 뿌리쳤다.
수리점 밖은 가로등 때문에 밝았다. 조용하다. 지나다니는 차도 별로 없었다.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각이니 당연하겠지. 이쪽은 좋은 목적인지 몰라도 일단은 학교에 무단침입 해야 하는 입장이라 늦은 시각에 갈 수밖에 없었다.
수리점을 나서는데 인도 가장자리에 누군가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다가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취객인가 생각했지만 얼굴을 보니 거울의 주인이었다. 그쪽에서도 나를 알아봤는지 벌떡 일어나려고 했지만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도로 주저앉았다.
보아 하니 몇 시간은 저러고 있었던 모양이다. 수리점에서 도망치듯 나가더니 집에 안 가고 지금까지 여기에서 고민했던 건가?
말을 걸려고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더니 남자는 거의 발버둥 치듯 필사적으로 일어나서 다시 달아났다. 이번에는 확실히 멀리, 건물 모퉁이를 돌아서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가버렸다.
불쌍한 친구 같으니.
양심이 좀 무딘 사람이었다면 저렇게까지 고민하지 않았을 텐데. 고개를 저으며 나는 그를 동정했다.
그가 근무한다던 중학교는 수리점에서 20분 정도 거리였다. 서늘한 밤공기를 마시며 걷고 있으려니 이따금 하얀 불빛을 쏘며 거리를 달리는 차가 있을 뿐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지금은 사람 아닌 것들의 시간이었다.
어둠과 함께 스물 스물 기어 나온 도깨비, 혼령, 작은 요괴들이 도로 가장자리나 다리 밑 시커먼 그림자 속에 숨어 있다가 기웃기웃 고개를 내밀었다. 차가 지나갈 때 기웃, 사람을 보면 기웃, 멀리서 소리가 들려오면 기웃.
의식도 자의도 없이 부유하는 혼들이 물을 따라 흐느적 흐느적 걷는가 하면 나무 안에서 목신들이 호기심에 찬 눈으로 두리번거리며 소곤소곤, 저들끼리 비밀하고도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요괴나 신령뿐만이 아니다. 도둑고양이가 눈을 빛내고 있다가 휙, 도깨비처럼 사라져버리고 구석진 곳에서는 쥐가 조르르 달려 다녔다. 곤충은 별처럼 많아서 그것들의 기운을 느끼고 있으면 마치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같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웃으며 뿌려진 것 같은 그 작은 빛들을 구경하다가 문득 코앞으로 지나가는 찻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아, 학교 가야 하는데.
다행히 길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았지만 과연 유하가 걱정할 만하다니까. 애처럼 딴 데 정신을 팔고 있었네. 그 후로도 계속 시선을 빼앗는 것들을 무시하며 나는 겨우 학교에 도착했다.
어둠 속에서 불빛 하나 없는 학교 건물은 시커멓게 그늘져 있었다. 길쭉한 4층 건물과 체육관으로 보이는 2층 건물로 이루어졌다. 운동장은 작았고 학교를 둘러싼 담 뒤편에는 아파트가 숲처럼 무성했다. 시늉으로 심어놓은 것 같은 나무 몇 그루와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밤벌레 말고는 깨어있는 것이 없다.
이렇게 밤에 학교에 와 보면 그 많은 괴담이 다 거짓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자살한 학생의 혼령이라든가 동상을 움직일만한 요괴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거든. 하긴 생긴 지 몇 년 안 된 학교에 원귀 같은 것이 생길 일도 없고.
이곳이 최근에 지어졌다는 것은 학교 외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전국의 학교는 같은 사람이 짓는 건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학교는 어디를 가도 다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음, 의외로 문교부에 건축양식에 관한 지침 같은 게 있는 걸지도 몰라.
낮은 담을 훌쩍 뛰어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학생들이 연달아 기절하는 사고가 있었으니까 경비가 삼엄하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삼엄은커녕 숙직실에서 자고 있는 사람 한 명이 있을 뿐이다.
하긴 새벽이고, 학생들의 기절사고는 주로 낮에 일어났다고 하니까. 중학교에서 늦은 시각에 학생들이 학교에 있을 일은 애초에 없잖아.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요괴 치고 대낮에 움직이는 녀석은 거의 없지 않나. 사고는 낮에 있었는데 밤에 돌아다니는 것이 효과가 있나 모르겠다.
그런 생각으로 대충 둘러보아서인지 한 바퀴 돌아본 학교에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특별히 이상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고 혼이라든가 도깨비 같은 것도 없고, 꽤나 깨끗해서 심심할 지경이었다.
담장 근처에 담배꽁초 같은 비행의 증거가 약간 남아있을 뿐이다.
역시 낮에 오는 수밖에 없을까. 하지만 대낮에 학교 관계자도 아닌 남자가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곧장 경비 아저씨나 선생님들에게 붙잡혀 쫓겨날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이런 짓까지 해야 하나 하는 심정으로 나는 학교 벽을 타고 올랐다. 문이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고, 창틀과 배관을 붙잡으며 어떻게든 옥상까지는 갈 수 있었다. 소설가의 저택에서 겪은 걸 생각하면서 떨어져도 다치지는 않으리라 싶어 시도한 일이었다.
옥상의 물탱크 아래쪽에 자리를 잡았다. 낮이 될 때까지 여기에서 버티는 수밖에.
옥상으로 들어오는 문은 단단히 잠겨 있어 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이곳이 곧장 내려다보이는 아파트가 한 동 있지만 물탱크 뒤쪽에 숨으면 되겠지. 누가 설마 일 없이 학교 옥상을 내려다보고 있을라고.
그런 생각으로 옥상에 느긋이 드러누워 별이 간신히 하나 둘 보이는 도시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난 것은 서너 시간 후였다고 생각한다. 시계도 핸드폰도 없어서 시간을 모르겠지만 일단 추워서 계속 자고 있을 수가 없었다.
눈을 떠보니 안개가 자욱했고 해는 안 보여도 푸르스름한 미명 속에 사방을 확실히 분간할 수가 있었다. 아침 6시쯤 되었을까. 찬 기운 속에서 잠들었다 깨어난 몸이 뻐근하니 아팠다.
몸을 조금씩 움직이며 학교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안개 속에서 누군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오는 것이 보였다. 어…저 사람 그 손님이잖아.
거울의 주인이자 어제까지의 내 손님이자 이 학교의 선생님인 남자가 힘없이 걸어오고 있었다. 옷을 보니 어제 입은 그대로다. 집에 안 가고 어디서 방황하다 새벽부터 출근한 모양이었다.
그의 불쌍해 뵈는 모습이 학교 안으로 사라지자 나도 그만 눈을 떼고 돌아가려고 했다. 그 순간 안개 속에서 뭔가 움직이는 또 다른 것을 발견했다. 정문에서 좀 떨어진 담장이었다. 그 뒤편으로 뭔가 기웃거리며 나타났다 숨는 것이 보였다.
이렇게 이른 시각에 학생은 아닐 테고. 몸을 낮추어 난간 아래로 숨기고 머리만 꺼내 살펴보고 있으려니 담장 뒤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던 것이 한 순간 훌쩍, 담을 넘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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