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152화 (152/218)

거울 속 미인(6)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담장을 넘어 학교에 들어온 것은 곧장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음질했다. 몸집으로 봐서 어른은 아니고, 이 학교의 학생인가 싶었지만 금세 생각을 바꿔야 했다.

속도가 빨랐다.

운동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데 4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작다고는 해도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50미터는 넘었다. 대각선으로 달렸으니까 더 길었을 것이다. 100미터 세계 신기록이 10초에 약간 못 미치는 정도니 이건 뭐 신기록 갱신…일 리는 없고 인간이 아니라는 결론밖에 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반대편으로 온 녀석이 학교 건물 안으로 쏙 사라졌다. 체육관이 있는 쪽이었다.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기운을 읽어보자 건물 안 어느 구석엔가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 것 같다. 가까이 가서 확인해 보려고 했지만 숙직 기사로 생각되는 남자가 숙소에서 하품을 하며 나오고, 정문으로도 일찍 출근한 차가 스르르 들어왔다. 조용하던 학교로 조금씩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잠시 후에는 안개가 슬슬 걷히며 일찍 등교하는 학생이 하나 둘 들어섰고, 점점 그 수가 늘어나더니 재갈거리는 소리가 꽤 시끄러울 정도로 많아졌다.

한밤중에는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일 뿐이던 학교가 산보다 소란하고 강보다 생기 넘치는 곳으로 변했다.

나는 학교로 들어온 요괴에게 다가갈 기회를 찾지 못한 채로 내내 옥상 위에서 기다려야 했다. 밤중에 돌아볼 때는 넓은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학교가 좁다싶을 만큼 아이들로 가득 차서 어디에도 눈을 피할 곳이 없었다.

요괴의 기운은 수업 중이면 건물 구석이나 가장자리를 슬슬 돌아다니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뛰쳐나와 아이들 사이에 섞였다. 그때면 녀석이 아이들에게 해를 입히지나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켜보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복도를 돌아다니거나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정도다.

운동장에 나왔을 때 살짝 엿보니 겉모습은 확실히 이 학교 아이들과 같은 또래였다. 게다가 교복까지 착실히 입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 살짝 내려가서 요괴에게 접근할까 생각해도 운동장에는 반드시 체육 수업중인 아이들이 있었다. 없다고 해도 곤란한 게, 만일 요괴가 도망치거나 반항하려고 들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제압할 방법이 없었다.

한낮에 애들 앞에서 요괴와 추격전을 벌일 수도 없고 그런 모습을 들켜봐야 내 꼴은 학생을 괴롭히는 이상한 아저씨 정도로 보일지도 모른다.

어쩌지 못하는 채로 옥상 위에서 시간을 보내다 결국 하교 시간이 가까워졌다.

아이들이 하나 둘 학교를 떠나기 시작했다. 최근의 기절 사건을 의식해서인지 가지 않고 놀고 있는 학생들에게 하교지도를 하는 선생님들도 보였다.

썰물이 나가듯 아이들이 빠져나가자 요괴는 거기에 섞여 학교 안을 맴돌고 있었다. 정문까지 갔다가 도로 안으로 달려왔다가 하며 아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이다. 학생들이 점점 줄어들고 몇 남지 않게 되자 요괴의 움직임이 좀 더 민첩해졌다.

녀석은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학교에 남아있는 아이들을 찾아다녔다. 기척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아이들이 보이면 말을 걸거나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뭔가 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심심해서 놀 상대를 찾아다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이다. 이야기를 나누거나 주변을 서성거리는 것 외에 딱히 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녀석은 한동안 그렇게 학교 안에서 아이들을 찾아다니더니 학교에 사람이 거의 없어지자 결국에는 슬슬 혼자서 그곳을 벗어났다. 녀석이 그냥 가버린다.

허탈했다.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거의 하루 동안 옥상 위에서 버티며 배고프고 목마르고 지루하고 피곤한 것을 참으면서 감시하고 있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다니. 요괴가 오기는 했는데 아무 일 없이 가버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잠깐 고민했으나 결론은 달리 없었다. 유일한 용의자를 쫓아가보는 수밖에.

녀석이 더 멀어지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급한 마음으로 훌쩍 뛰어내린 다음 생각해 보니 4층 건물의 옥상이다. 한 번 무사히 착지한 경험이 있다고 해서 두 번도 될 거라고 생각한 내 안일한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거지?

한 순간 두려움에 휩싸였다. 긴장하자 온 몸의 신경이 날카롭게 벼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면이 가까워지는 것과 함께 평소와 비교할 수 없이 확장된 감각이 내게 닥친 모든 상황을 알려주었다. 언제 어떤 근육을 움직여 어떻게 몸을 비틀어야 하는지 거짓말처럼 깨달았다.

허공에서 크게 한 바퀴 돌아 가속을 늦춘 몸이 학교의 정전에서 운동장으로 이어지는 계단에 흔들림 없이 착지했다. 15미터 넘게 허공을 가로질렀지만 충격은 거의 없었다. 굳이 체공시간을 늘리지 않고 곧장 떨어졌다고 해도 나는 무사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몸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심장은 분명…

아니, 그런 것을 생각할 시간은 없다. 곧장 요괴가 간 곳을 향해 뛰었다. 이미 멀어진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뜻밖에 아직 학교 근처였다. 담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 뒷모습은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지만 가까이 가자 느껴지는 요기 역시 묘한 데가 있었다.

요기와 함께 느껴지는 생기가 어딘지 낯설지 않았다. 요괴인 것 같기는 한데 그것이 또 아닌 것도 같고. 그 아닌 것도 같은 이유는 뭐랄까 사람 같달까. 조금 전까지 학생들이 우글거리던 학교 안에 있어서 인간의 기운이 묻어있는 걸까? 그래서 헷갈리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모호한 구석이 있었다.

천천히 걷던 녀석이 문득 멈춰 섰다. 그리고 돌아선다. 나를 똑바로 쏘아보는 얼굴이 보였다.

‘여자애잖아?’

짧은 머리에 입은 옷은 교복 바지라 멀리서 보며 남자애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 여자였다. 아 그러고 보니, 전에 수리점으로 쳐들어 와서 리코더를 맡겼던 수영이 녀석도 여학생인데 교복은 바지였지. 요즘에는 여학생도 바지를 입는구나. 몰랐던 것을 알게 되자 어쩐지 고리타분한 아저씨가 된 기분이다.

“나한테 볼 일 있어요?”

사내아이처럼 짧게 자른 머리라도 혼동하지 않을 정도로 예쁘장한 얼굴을 하고서, 여자애는 나이답지 않게 차분히 물었다. 하긴 요괴니까 겉모습이 아이 같다고 실제로 아이일 리도 없고.

“그런 셈이네.”

내 대꾸에 여자애가 시선을 위아래로 움직여 이쪽을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경계와 얕보는 기색이 반쯤 섞인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

“바쁘니까 빨리 말해요.”

“너, 학교에서 뭘 한 거야? 여기 학생은 아니지?”

말 돌리고 어쩌고 할 것 없이 곧장 물었다.

“무슨 상관이에요?”

정곡을 찔렸을 텐데 별로 겁내는 기색도 없이 여자애가 대꾸했다.

“요새 여기에서 아이들이 기절하는 일이 생기고 있거든. 그런데 이런 곳에 요괴가 어슬렁거리니 뻔하잖아.”

내 말에 여자애의 표정이 변했다. 변하기는 했으나 놀랐다거나 당황한 쪽은 아니었다. 눈을 가늘게 뜨며 입매가 굳은 채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화난 것 같다.

뭐냐, 방귀 뛴 놈이 성낸다더니. 정체가 드러나니까 도리어 화를 내는 거야?

“뭐가 뻔한데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여자애가 내게 물었다. 따지는 것 같은 말투였다. 그 화내는 모습은 왠지 유하를 생각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느끼자 나도 모르게 쩔쩔매고 말았다.

“그러니까…이상한 일이 생기고 있고, 거기에 사람이 아닌 네가…”

아까는 녀석이 수상하다고 확신해서 뒤쫓아 왔는데 쩔쩔매며 대답하다 보니 어라 이거 실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황상 의심할 만하지만 요괴라는 것 말고는 잘못된 것도 없고, 사실 요괴인 게 잘못도 아니고.

“그 학교 학생도 아닌 네가 거기에서 뭘 하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의심스러워서 쫓아온 거잖아.”

겨우 생각해 낸 이유를 말하자 소녀가 눈썹을 모았다.

“그렇게 말하는 아저씨는 학교에 있는 나를 내내 훔쳐보고 있었다는 거네요? 어린애를 훔쳐보는 남자는 뭐라고 생각해야 하죠?”

야! 그건 아니지! 차라리 요괴취급을 해줘.

펄쩍 뛰고 싶은데 변명할 게 없다.

“게다가 학교 안에 있는 걸 봤다는 건 아저씨 역시 그곳에 있었다는 거죠? 아이들이 기절하는 일이 생기는 곳에 어슬렁거리는 수상한 사람이 본인이라고 자백한 것 같은데요.”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말을 잘 해? 아냐. 얘는 요괴다.

“너 그런 식으로 덮어씌운다고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

“어, 아저씨 여기서 뭐해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내 말끝이 묻혔다. 이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남학생이 있었다. 훌쩍 큰 키에 마른 몸,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열여섯 가량의 소년이다. 입은 옷은 역시 교복이지만 이 학교의 것이 아니었다. 자주 본 디자인이었다. 수리점 근처 중학교다.

“아는 사람?”

여자애가 남학생을 향해 물었다.

“예, 누나. 전에 몇 번 이야기한 적 있잖아요. 아닌 것 같은데 해명 도령이라는 수리점 사장 아저씨.”

이봐, 아닌 것 같다는 건 또 뭐냐. 그나저나 말하는 걸 보니 녀석은 나를 알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수리점 사장이라거나 해명 도령으로 불린다는 것 이상으로 아는 느낌이었다.

“3학년 되고 바빠져서 놀러 못 갔는데 여기서 보니까 오랜만이라 반갑긴 하네요.”

사내애가 씩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 웃는 얼굴은 가장이 아니었다. 잘 아는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표정이다. 그런데도 어쩐지 어딘지 왠지 어째서인지 이상하게 녀석을 경계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는 했다. 뭔가 주머니를 털릴 것 같은 위기감이 조금…

“해명 도령이라고…?”

그런데 사내애에게 내 소개를 들은 소녀의 안색이 의외로 크게 바뀌었다.

“정말?”

차갑게 쏘아보던 눈꼬리가 금세 내려가더니 안절부절하는 기색으로 남학생에게 속삭여 물었다.

“그렇게 안 보이는 거 이해는 가지만 맞아요. 진짜 해명 도령이에요.”

짓궂게 웃으며 녀석이 대꾸했다. 그렇게 안 보여서 미안하구나.

어린애 상대로 좀 삐쳐서 인상 쓰고 있는데 여자애가 갑작스러운 행동을 했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더니 두 손을 땅에 짚고는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다.

“도령. 은인을 몰라 뵙고 크게 실례를 했습니다. 이렇게 황망할 데가…”

저기요. 황망한 건 나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냐, 너는?

길을 가던 남자, 아줌마, 사탕을 물고 엄마 손을 잡고 가던 아이에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아가씨와 강아지까지…어떻게 생각해도 여자애를 괴롭히고 있는 것 같은 남자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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