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미인(7)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이봐요, 사진 찍지 마. 핸드폰 넣으시라고.
오늘 밤 인터넷에 ‘학교 앞에서 여학생을 무릎 꿇리고 괴롭히는 남자’ 뭐 이런 제목으로 내 사진이 올라올 위기에 처했다.
“일단 좀…”
피하자.
여학생의 팔을 낚아채서 날듯이 달렸다. 남학생이 뒤에서 혀를 차며 쫓아왔다. “어떡해? 납치하는 거예요?” “신고해!” 등등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무슨 소리입니까! 난 억울해!
하지만 다시 돌아가서 내가 실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요괴를 잡으려고 온 해명 도령인데 수상한 요괴인줄 알았던 여자애가 갑자기 나를 보고 무릎을 꿇고 절을 하더라고 설명할 수는 없잖아.
인적이 없는 곳으로 달려가서 숨을 돌린 다음 평화적인 방법으로 나를 곤경에 빠뜨린 소녀에게 따졌다.
“넌 뭐야? 그리고 갑자기 무슨 짓이야? 너 땜에 내 얼굴이 전국구로 팔려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되면 어쩔 거야, 응?”
어차피 밖에 나올 일 별로 없다는 사실은 잠시 잊자.
내 말에 소녀는 “제가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하고…이 죄를 어떻게…”라며 다시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아 좀….
급격히 우울해진 소녀를 달래기 위해 당분함량 높은 음식이 필요했다. 남학생 녀석이 내 주머니를 털어서 어쩐지 소녀보다 제 취향에 맞춘 것 같은 군것질거리를 사왔다. 어쨌든 덕분에 조금 진정이 된 소녀와 함께 근처 아파트 공원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도령께서는 저를 모르시겠지만 제 이름은 모란이라 하며 사형들과 함께 큰 은혜를 입은 바 있습니다.”
별로 아이답지 않은 말투로 제 소개를 한 다음 이야기해준 바에 따르면, 그녀는 원래 태령 윤문이라는 도사들의 무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가 뭔가 위험한 실험의 재료가 될 위험에 처했는데 간신히 도망쳤고 같은 운명에 처할 뻔한 사형들을 내가 구해줬다고 한다.
작년의 일이라는데 나는 기억이 없고.
소녀가 이야기하며 몇 번이나 감사를 하는 동안 옆에서 심드렁하게 듣고 있던 소년은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내게 물었다.
“그런데 정말 아저씨가 여기는 웬일이에요? 밖엔 잘 안 나오잖아요. 난 또 히키코모리나 광장공포증 같은 건 줄 알았는데.”
뭐 임마.
“수호.”
모란이 나무라듯 녀석을 불렀다. 수호라고 불린 남학생 녀석이 뺀질한 얼굴로 딴청을 부렸다.
“분명 도령께서도 이 학교의 소문을 듣고 걱정이 되어 오신 거겠지요? 수호의 부탁을 받고 살펴보고는 있었으나 막상 저도 뭔가 나타나면 대적할 방법은 없어 고민하던 참입니다.”
“소문이 났어? 어떤 내용으로?”
그야 아이들이 수백 명 있는 학교에서 생긴 일이니까 소문 안 나는 것이 더 이상한지도 모른다.
“근처 학교에는 소문 다 돌았고요, 저는 소문나기 전에 학원에서 들었어요. 무슨 연쇄살인범 같은 게 교실 천장에 숨어있다는 말도 있고 자살한 학생의 혼령이 돌아다닌다는 말도 있고 학교 보건선생님이 사이코패스라는 말도 있던데요.”
수호 녀석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연쇄살인범이나 혼령이 있으면 잡겠다고 여기 와 있는 거냐, 너희들은?”
얘들이 큰일 날 얘들이네. 요괴인 소녀는 그렇다 치고 입만 살아있는 남학생, 네 녀석은 뭐 믿고 이런 데를 얼씬거리는데?
“연쇄살인범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보건 선생님 이야기도 말이 안 되고. 기껏해야 부유령이나 도깨비 정도겠죠. 이 학교에서 누가 죽은 적 없으니까 원혼이 붙어있을 리도 없고.”
말은 조리 있었다. 그래서 얘들은 부유령이나 도깨비 정도를 구경하러 온 모양이다. 그냥 평범하게 지나가는 길고양이나 게임 시디 표지 같은 걸 구경하면 안 될까?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도깨비나 혼령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깨끗했어요.”
모란이 말했다. 그건 나도 봐서 안다. 그런데 깨끗하면 좋은 거 아냐?
“지은 지 몇 년 된 학교잖아요. 이렇게 사람이 모이는 장소는 생기도 많이 남으니까 그걸 노리고 요괴들이 오거든요. 보통은 어두울 때 조용히 나타났다 날 밝기 전에 사라지는 약한 것들이지만요. 사람과 마주쳐도 별로 위험하지 않고요.”
수호 녀석은 백은호가 생각나는 모습으로 내게 설명했다.
그런 거냐? 어쩐지 밤중의 학교는 보통 건물과 다르게 훨씬 음산하고 기분 나쁘게 보이던데 그런 약한 요괴들 때문인지도 몰라.
“그런데 모란 누나 말로는 그런 것은 물론 부유령이라든가 우연히 지나갈 수도 있는 어떤 것의 흔적도 전혀 없다고 하니까…”
녀석이 모란을 힐끗 쳐다보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돌아보니 약간의 음기가 남겨졌을 뿐 학교 안은 깨끗했습니다. 비정상적일 정도입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서 못 오게 막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학교 주변에 그 이유가 있나 돌아보던 중이었습니다.”
아아, 학교 담장을 따라 걷고 있던 건 그런 이유였구나. 말하자면 내가 조사를 방해한 셈이다. 그건 좀 미안한데.
“어쨌든 얘들아. 거기까지 알아냈다면 확실히 사람이 아니라 요괴나 그 비슷한 부류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거잖아. 뭐가 나타날지 모르니 이쯤에서 돌아가도록 해.”
내 말에 소녀는 “도령께서 저희를 걱정해 주시니 이렇게 황감할 데가…”라고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러나 도령이 계시니 저희는 아무 두려움도 없답니다.”라는 말로 그만 돌아가라는 권유를 거절했다.
“아저씨는 아는 것도 별로 없어서 요괴를 만나면 허둥거리다 당할지도 모르잖아요.”라는 건 수호 녀석의 대꾸였다.
내가 요괴에 관해 별로 아는 게 없는 건 사실인데, 그건 그런데, 그렇지만, 그래도, 그게……반박할 말이 없어서 슬프다. 어쨌든 애들은 가라고 우겨보려는데 녀석들 뒤로 낯익은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거울 선생이잖아.’
내게 거울을 맡기러 왔던 그 손님이었다.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았는데 그 모양으로 봐서는 거울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거울과 앞을 번갈아보며 잰걸음으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저 분은 학교의 선생님 중 한 분이군요.”
내 시선을 쫓아간 모란이 그를 알아보고 말했다.
“손 안에 들고 있는 건 뭐예요? 핸드폰인가? 아닌데.”
수호 녀석이 멀리서도 알아보고 중얼거렸다.
“뭐지 몰라도 특별한 물건이라는 것은 알겠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
모란도 그쪽을 보며 말했다.
“거울이야. 호신부로 쓰는 것 같은데. 뭐 지금은 안에 이매도 하나 봉인되어 있고.”
대충 대답하며 시선으로 그를 좇았다. 내 대답에 두 소년 소녀가 놀란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거울 선생은 학교에서 북쪽으로 도로를 따라 가다가 이내 횡단보도를 건너 개울 위로 놓인 다리로 갔다. 이 개울은 도시의 남쪽을 동서로 가르고 있어 서쪽으로 따라가면 내 수리점이 나오고 동쪽으로는 아직 번화하지 않은 도시 변두리까지 이어졌다.
거울 선생은 다리를 건넌 뒤 개울 옆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집에 가는데 네비게이션이라도 보듯이 거울을 힐끗거리며 걸을 필요는 없을 터다. 어디로 가는 거야? 저 선생.
나는 저도 모르게 그를 뒤따라갔다. 모란과 수호가 나를 따라 왔지만 여기에서 녀석들을 돌려보내려고 실랑이 할 수는 없으니 내버려두는 수밖에.
거울 선생은 그 후로도 한참을 걸어서 학교에서 꽤 멀리까지 갔다.
“학교에서 느꼈던 음기가 점점 선명해집니다. 그리고…”
뒤를 따라오던 모란이 문득 말했다. 소녀는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가 내가 돌아보자 낮은 목소리로 이어서 말했다.
“짐승의 냄새가 나는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누군가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 같습니다.”
그 누군가가 뭐냐고 묻자 소녀는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알 수 있는 것은 오래 산 짐승이라는 정도입니다. 태령에 있을 때도 순수한 요괴나 짐승은 만나본 적이 없으니까요.”
“짐승이라는 건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야?”
“영역표시를 한 냄새가 납니다. 오래 된 것 같고 먼 곳이라 냄새가 약하지만요.”
그, 개라든가 동물들이 다리 하나 들고 하는 영역표시 말이냐? 코를 킁킁거려봤지만 내게는 개울에서 올라오는 물비린내나 배기가스의 냄새 정도밖에 안 난다. 멀리에 영역표시를 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니 과연 요괴라는 걸까. 하지만 요괴라고 해서 아무나 냄새를 잘 맡는 건 아니겠지?
나는 새삼 소녀를 힐끗거렸다. 백은호도 그렇지만 인간으로 감쪽같이 변신한 요괴의 원래 모습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뭘 자꾸 힐끗거려요?”
소녀의 옆에서 나란히 따라오던 수호 녀석이 나를 쏘아보았다. 뭐냐, 여학교 근처에서 바바리 입은 아저씨를 발견한 것 같은 그 시선은. 조금도 전혀 요만큼도 이상한 생각은 안 했거든?
“멈췄습니다.”
모란이 앞을 가리키며 알렸다. 거울 선생이 걸음을 멈추고 어딘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르막길 위쪽에 집이 몇 채 있는데 그 중 하나인 것 같다. 그곳을 빤히 바라보던 선생이 거울을 내려다보며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멀어서 들리지는 않는데 거울과 이야기라도 나누는 모양새였다.
설마. 거울 속의 이매와 이야기하는 거야? 그럴 리가 없는데. 그 녀석과 무슨 수로? 아니면 이매가 선생을 홀린 건가? 그것도 아닐 텐데. 백은호 말이 거울 안에 봉인된 이상 이매라도 특별한 힘을 쓸 수는 없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못 빠져나오고 있을 텐데.
선생은 잠시 거울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윽고 그것을 품속에 집어넣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천천히 오르막길을 올라서 밤색 페인트가 칠해진 대문이 달린 집으로 갔다. 문 앞에 선 그가 대문을 두 손으로 밀었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잠겨있는 것 같다. 선생이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확인했다.
셋 다 이 순간만큼은 감탄스러울 정도로 마음이 맞아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날렵하게 각자 몸을 숨겼다.
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선생은 대문 옆의 담장으로 갔다. 그가 키보다 약간 낮은 높이의 담장위에 팔을 얹은 다음 버둥거리며 다리를 끌어올렸다. 저러다 누구한테 들키는 게 아닌가 내가 걱정스러울 정도로 엉성하게 담 위로 올라가더니 다음에는 굴러 떨어지듯이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선생님이 남의 집 담을 넘었어….”
수호 녀석이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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