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미인(10)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을 바꿀 것 같지 않자 모란은 그렇다면 자신도 같이 가겠다고 따라나섰다. 호랑이의 냄새만 맡아도 벌벌 떠는 주제에 퍽이나 도움이 되겠다. 게다가 네가 가겠다고 하면 분명히 저 꼬맹이도…
“괜히 고집부리지 마요. 민폐잖아요. 우리가 가봐야 짐만 될 게 뻔한데.”
어라? 수호 녀석이 모란을 말리고 있었다. 학교 앞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꽤 잘난 체하면서 은근히 나를 무시하는 눈치였는데 상대가 호랑이 정도 되니 몸 사릴 줄도 아는구나. 그래도 막무가내는 아니라서 다행인데.
“뭘 기분 나쁜 눈으로 쳐다보는 거예요? 내 말이 맘에 안 들면 따라가 줄 수도 있고.”
수호 녀석이 나를 향해 툴툴거렸다. 별로 기분 나쁜 눈으로 본 거 아니거든.
모란이 수호의 태도를 나무라며 혼자 가려는 나를 계속 걱정했지만 틀린 말도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사실 나도 내가 걱정되기는 하다. 그리고 몸 사리는 건 사리는 거고 수호 녀석, 내가 혼자 간다는데 말리지도 않냐? 친한 척한 주제에 내 목숨하고는 안 친한가 봐?
그러나 달리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곳을 나오며 호랑이라 생각되는 노인에게 다시 오겠다고 한 약속이 있었다. 심지어 고기도 한 근 사가야 했다. 유하에게 부탁하자 잠깐 나갔다 오더니 근방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신선한 고기라며 새빨간 소고기 한 근을 내밀었다.
내가 호랑이에게 고기를 바치러 간다는데 유하도 별로 걱정해주는 기색은 없다. 아…뭐야. 나 갑자기 고독해지려고 해.
“늙은 호랑이 정도는 별 거 아니죠?”
소고기를 챙겨 들고 수리점을 나가는 내게 수호 녀석이 툭 던지듯이 물었다.
“기완인가 하는 호랑이 남자도 별 거 아니었잖아요.”
기완이라든가 그런 게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버릇없는 열다섯 살 소년의 퉁명스러운 얼굴이 어딘지 위태로운 표정을 하고 있어서, 나는 가볍게 웃어버렸다.
“너 내가 누군지 몰라?”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알아요.”
그런데 이 녀석은 아는 모양이다. 내 말에 표정이 풀리며 피식 웃었다.
“유하 누나가 저녁 반찬으로 소고기 전 부친대요. 너무 늦지 마요. 아, 그리고 이거.”
수호 녀석은 주머니를 뒤적여 뭔가 꺼내더니 내게 내밀었다. 뭐야? 이건. 과자? 당의를 입힌 캐러멜 종류인 것 같은데. 새콤달콤한 과일 맛의. 이거 아까 호랑이 굴로 가기 전에 모란을 진정시키려고 샀던 과자 중 하나 같다.
그런데 이 과자를 어쩌라고. 나 먹으라고?
“그 모습이 잘 안 보인다는 유령 같은 할아버지요. 그게 좋아할 거예요.”
호랑이에게는 고기를 바치고 안 보이는 유령 할아버지한테는 과자를 바치는 건가. 어떻게 본 적도 없는 유령의 식성을 아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잘난 체하며 가르쳐 줄 녀석의 모습이 눈에 선해서 관두었다.
나중에 다시 가겠다고 말은 했지만 이렇게 금세 가도 되나? 예의가 아닐지도 모르잖아. 먼저 연락을 드려서 스케줄을 확인한 다음 시간 약속을 잡아 장소와 상황에 걸맞은 차림으로 찾아뵙는 게 예의가 아닐까. 아니 딱히 가기 싫어서 예의 핑계 대는 건 아니고.
싫은 걸음을 천천히 딛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거울 선생이었다. 그가 오더니 대뜸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라고 선언하듯이 말했다. 나는 약간 황당해서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저기요. 댁보다 요괴에 대해 아는 것도 많아 보이는 버릇없는 중딩 꼬마나 실제로 요괴라서 이 바닥에 대해 좀 아는 게 있는 모란에게도 오지 말라고 했는데 요괴라고는 며칠 전에 처음 본 지극히 평범하고 운동신경도 형편없는데 무모한 선생님을 데리고 호랑이 굴에 갈 것 같아요?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지만 이 선생님이 그래도 가야겠단다. 아이들이 자제하고 있으려니까 어른이 귀찮게 하네.
“상대가 호랑이라니까요. 실감이 안 나는 모양인데, 댁이 그 집에서 살아나온 게 천운이라고 해도 좋을 상황이라고요. 호랑이 몰라요? 동물원에서 본 적 없어요? 그 호랑이를 철창 너머에서가 아니라 코앞에서 만나는 거라고요.”
이렇게까지 설명해 줬는데 선생은 얼굴을 진지하게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혹시 제가 아는 분일지도 몰라서 그럽니다. 사진은 못 봤는데 집에 갔을 때 눈에 익은 물건을 본 것 같아서요.”
아니 선생님이 여학생 공략에 좀 밝은 건 인정하겠는데 상대가 호랑이라니까요. 그리고 호랑이가 아는 사람은 안 잡아먹나? 내가 지금 당당하게 호랑이 굴로 가고 있기는 한데 거기 가서 내 몸이나 건사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밝혀버릴까.
그런데 거울 선생의 태도가 꽤 단호해서, 결국 나는 “가서 잡아먹혀도 나는 모르니까 알아서 해요.”라며 승낙해 버렸다.
승낙해 버리기는 했지만, 한 손에 소고기를 들고 뒤에는 거울 선생을 데리고 호랑이가 산다는 집 대문 앞에 서자 슬슬 걱정이 되었다. 부디 호랑이가 소고기만 드시고 인간 고기에는 입맛을 다시지 말아야 할 텐데. 그런데 고기 한 근으로 배가 차려나. 몇 근 더 사와야 했던 거 아냐?
가서 다시 사올까? 들어갈까 말까 하고 있는데 마치 아는 것처럼 대문이 삐거덕 열렸다. 문 근처에서 서늘한 기운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유령 같은 할아버지다. 들어오라고 문까지 열어주는데 망설일 수는 없지. 거울 선생을 돌아보자 그쪽도 단단히 긴장했는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있다.
성큼 대문을 넘어 들어가자 선생도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나를 뒤따랐다.
대문과 마찬가지로 현관문도 우리가 가까이 가자 저절로 열렸다. 저 유령 할아버지 귀신 놀음으로 기선 제압하고 싶은 모양이신데, 나는 그런 걸로 쫄지 않거든요.
“허흐…”
뒤에서 추울 때 나는 숨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거울 선생이 어깨를 움츠리고는 창백한 얼굴로 떨리는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음, 이쪽은 기선 제압당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한 손에 꽉 쥔 거울을 놓치지 않으며 한걸음씩 떼어놓는다. 가련한 한편 귀엽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니 잠깐 20대 후반의 남성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위험한가. 그런데 정말로, 갓 태어나 꼬물거리는 강아지라든가 알에서 막 나와 털이 숭숭한 어린 새 같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겁먹지 마. 내가 두 손으로 감싸서 안전하게 지켜줄 테니까. 그가 내 손 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달달 떨던 선생이 이마에 주름을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손 아래에서 그의 몸이 천천히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 고, 고맙…습니다만 그…”
선생이 약간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자 그제야 내가 뭔가 묘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보다도 나이가 많을 다 큰 어른의 머리를 아이처럼 쓰다듬다니…. 그것도 남자…. 재빨리 손을 거두고 열린 현관문을 안으로 휙 들어갔다. 아, 어색해.
거실 안은 아까 왔을 때보다 밝았다.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열어젖히고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는 조명등도 켜져 있었다. 물을 끓이고 있었는지 공기는 따뜻하면서도 눅눅했다. 이 집의 주인인 풍채 좋은 노인은 아까 모습 그대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넓은 탁자 한쪽으로 바둑판을 치워놓고 이번에는 다구를 늘어놓고 있을 뿐이다.
가까이 가자 노인이 힐끗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손짓했다. 아는 사람을 부르는 듯한 스스럼없는 태도였다. 아까 한 번 봤으니까 모르는 사이는 아니지만 불법 침입했던 사람들 상대로 참 여유만만한 분이시네.
그런데 아무래도 호랑이니까 눈치를 보며 슬슬 다가가는데, 뒤에 있던 거울 선생이 갑자기 내 옆을 지나 휙 나섰다. 이봐, 선생.
“선생님!”
거울 선생의 목소리였다. 댁이 선생이잖아. 그런데 거울 선생이 노인을 보며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이다.
노인이 두둑하니 살집 좋은 얼굴을 기분 좋게 휘며 웃었다.
“어서 오게. 내 집은 처음이지? 아, 두 번째인가.”
“선생님…”
노인을 보고 있는 거울 선생의 얼굴은 울상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야, 저 둘은. 아는 사이 같은데.
그때 주방에서 삐익 하고 주전자가 물 끓는 소리를 냈다.
“잠시 기다리게.”
노인이 무거운 몸을 움직여 주방으로 갔다. 그 사이 내가 거울 선생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였다.
“누구예요? 아는 사이? 무슨 선생님인데요?”
거울 선생은 여러 가지 표정이 섞여 복잡하게 울상지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초등학교 은사이신데…여기 중학교에서 다시 만나 뵈었습니다. 제가 막 발령 받았을 때 선생님은 은퇴 한 달 전이셨습니다. 이곳 중학교가 만들어진 후로 줄곧 계셨던 것 같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아아, 그러니까 그 중학교는 호랑이 노인의 직장이었나? 호랑이가 왜 직장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일 그곳에 나와 있었을 테니까 중학교는 호랑이의 영역이 되어버린 것 같다. 뭐랄까, 말 그대로 호랑이 선생님이었네.
“엄하지만 학생들을 정말 사랑하시고,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박학다식하고 강단 있고 그런 훌륭한 선생님이셨는데…그런데 선생님이…”
호랑이였다니. 그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그가 말끝을 흐렸다.
호랑이라도 딱히 아이들을 잡아먹은 정황은 없지만 일단 학교에서 기절 사고가 몇 번이나 났던 걸 생각하니, 그 일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해서 그의 마음은 괴로운 것 같았다.
주방에 들어갔던 노인이 뜨거운 물이 담긴 숙우를 들고 나왔다. 노인은 다관에 적당히 식은 물을 붓고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렸다가 이미 머릿수대로 준비해 놓은 찻잔에 하나씩 따랐다. 차 우리는 호랑이라니, 뭔가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묘하게 어울리네.
“온도를 낮추었으니 많이 떫지 않을 게야. 정선생, 자네는 아직도 녹차가 별로인가?”
호랑이 선생님이 거울 선생에게 묻는다. 거울 선생의 성이 정씨였구나. 그런데 알면서 왜 녹차를 주세요. 한 모금 마셔보니 유하가 우리던 것에 비하면 떫고 맛도 별로였다. 선생님, 자세는 정말 좋으셨는데 실력은 아직이네요.
“맛이 별로인가? 고기 요리는 제법 하는데 식물은 아직도 잘 다루지 못한단 말이야.”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하고 호랑이 선생님은 껄껄 웃었다. 본인은 기분 좋게 웃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울림에 섞인 결코 인간의 성대에서는 나올 것 같지 않은 초저주파의 진동으로 우리는 뱃속이 흔들렸다. 거울 선생 아니, 정선생이 찻잔의 차가 조금 흐를 정도로 손을 떠는 것이 보였다.
────────────────────────────────────
────────────────────────────────────
거울 속 미인(11)fin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몸을 뒤흔드는 것 같은 호랑이의 웃음소리가 잦아들고, 조용한 거실에는 찻잔의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남게 되었다.
나는 차를 마시는 체하며 정선생을 힐끗거렸다. 그는 찻잔을 양손으로 잡고 그것을 내려다보며 말이 없었다. 그의 얼굴은 어둡고 혼란했다.
그에게 이 상황이 어떤 충격을 주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 진짜 직업을 알게 된 최초의 한 순간 외에, 요괴들은 내게 별로 특별하거나 충격적인 대상이 아니었다.
그야 새로운 요괴와 마주칠 때마다 요상하고 낯설기는 하지만 그것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평생 요괴 같은 건 만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라고 믿었던 남자가 초등학교 은사가 사실 호랑이였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의 기분 같은 걸 어떻게 알겠어.
다만 그의 감정이 두려움이나 분노보다는 괴롭고 슬퍼하는 쪽에 가깝다는 것만을 알 수 있었다. 상대는 호랑이인데 말이야. 나는 저 늙은 호랑이가 언제 변덕을 부려서 본 모습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릴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경계를 늦추지 못하는 중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언제부터 호랑이였…아, 아니…”
정선생이 입을 열었다가 이내 더듬거리며 말을 멈추었다. 언제부터 호랑이였느냐고 물을 생각이었나본데 그야 태어날 때부터 호랑이인 게 당연하잖아. 설마 사람으로 태어나서 호랑이로 변하겠어. 본인도 말하다가 그것을 깨달았는지 당황하며 입을 다문 것이다.
“언제부터 사람들을 속이고 인간 행세를 했는지 궁금한 거겠지.”
호랑이 선생님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정선생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사실 하고 싶었던 질문은 그것이었나 보다.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못한 채로 정선생은 손톱 끝이 하얗게 변하도록 찻잔을 꽉 잡고 있었다.
“햇수를 세다 그만 둔지 오래 되었네. 처음에는 절에 머물러 있었는데 사람 모습을 하고서 좀처럼 늙지 않으면 스님이라도 보통 사람이나 매한가지로 꺼리기 마련이거든. 그래서 이 절 저 절로 옮겨 다니다가 나중에는 아예 인세로 내려갔지.”
절에서 사셨는데 고기를 드세요? 나더러 고기 사오라며. 식습관은 못 고치셨나.
“그때가 세종 12년이었나. 가물가물 하네. 그 후로는 십 년이나 십오 년에 한 번씩 사는 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지. 장사치 흉내를 내며 여기저기 꽤 돌아다니기도 하고. 중국이나 일본에 머물렀던 적도 있고. 여기 온 지는 30년쯤 되었네. 아마 옮기지 않고 가장 오래 산 곳 같구먼.”
세종 12년이면 언제야 도대체. 거의 6백년쯤 되나? 지금 확인 못한다고 사기 치는 거 아니죠?
“무슨 말씀이신지…모르겠습니다.”
울상을 지으며 정선생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모르겠다기보다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겠지. 거울 속에 있는 요괴에게는 금방 적응해서 대화도 하게 되었으면서 알고 있던 사람이 요괴였다는 것은 적응하기 힘든가 보다.
“하지만…”
마시지 않은 채로 조금씩 식어가는 찻잔을 손끝으로 긁으며 정선생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선생님, 왜 학교에서…아이들이…”
아이들이 기절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선생님과 관련이 있는 일인가. 그렇게 묻고 싶었겠지만, 말이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그는 괴로워하다가 마른침과 함께 꿀꺽 삼켰다.
“그 일은 참 미안하게 되었네.”
쓴웃음과 함께 호랑이 선생님이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걸세. 내 약속함세.”
호랑이란 교활하고 포악한데다 아무 생각 없는 무뢰한이라서 말이 통하지도 않는다는 소리를 모란에게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이라 느껴졌다. 이 호랑이에게는 거짓말도 속임수도 없었다.
그렇다니 이제 학생들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고 나는 안심해서 정선생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정작 안심해야 할 그의 표정은 아까보다 더 어두워져 있었다. 왜 그래?
“선생님…도대체 왜, 그런…”
원망이 서린 목소리가 떨면서 흘러나왔다.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워하고…저는, 제가 이상한 것을 가지고 있어서 저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닌가…아니, 그런 것보다도 선생님은, 아니 저는, 아니, 이유가 뭡니까. 왜 아이들에게 그런 일이 생긴 겁니까. 선생님, 학교에서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던 그의 말은 결국에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토해냈다. 고통으로 흐려진 그의 눈이 차마 호랑이 요괴인 은사를 바라보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사과로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 호랑이 선생님과 관련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정선생은 소용돌이치는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분노, 배신감, 고통, 슬픔, 그런 것들에 둘러싸인 그의 품 안에서 거울이 희미하게 빛을 냈다.
호랑이 선생님은 괴로워하는 제자를 쳐다보았다.
“산에서 내려오기 전에, 내가 아직 호랑이 거죽을 쓰고 살 때 말일세. 나는 낮이면 그늘 밑에서 자다가 어두워지면 산마루를 뛰어다니며 사냥을 했지. 늙은 호랑이 중에는 짐승을 뒤쫓는 것이 힘들어지면 사람을 노리는 경우가 이따금 있었거든. 그러나 내 사냥실력은 썩 좋았다네. 위험을 무릅쓰고 인가에 내려갈 필요가 없었지. 하지만 드물게, 인간이 스스로 산에 걸어 들어오는 일이 있지. 호랑이가 다스리는 시각, 인시(寅時)에 말일세.”
날씨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천연하게 호랑이 선생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이 늙은 호랑이가 무슨 소리를 하나 귀를 기울였고 정선생은 다 식어버린 찻잔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느 날 내 산에 늙고 병든 남자 하나가 들어왔는데, 한낮에 비척비척 산길을 타고 올라와서 늦은 밤이 되도록 산속을 헤매고 있었더라네. 내버려 두었더니 바위 사이에 쓰러져서 아침까지 움직이지 못하더구먼. 가까이 가보자 고약한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네. 그 무렵 산 너머 인가에서는 전염병이 한창이었지.”
아마도 전염병에 걸리자 가족에게 버림받은 것 같았다고 호랑이 선생님은 기억했다. 산에 버려지자 노인은 집을 찾아가지 않고 반대로 산 속 깊이 죽을 곳을 찾아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러나 질긴 것이 목숨이라, 좀처럼 죽지도 못한 채 불덩이 같은 몸으로 끙끙 앓고만 있었다고 한다.
호랑이가 나타나자 노인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뻐하는 것 같았다. 백수의 왕이자 최강의 포식자인 짐승을 반기며 그가 말했다.
- 아이고, 신령님. 산신님. 이 늙은 것의 원을 들어줍쇼. 몹쓸 놈의 몸뚱아리가 어디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사지에 힘이 없어 죽지도 못하오니, 바라건대 신령님께서 이 늙은 것을 잡아먹어 주시면 병든 몸뚱이를 버리고 떠날 수 있겠나이다.
호랑이는 인육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 몸이 품고 있는 전염병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영역 안에 부정한 것을 둘 수는 없었으므로, 호랑이는 노인의 소원을 들어줄 겸 그의 몸을 깨끗이 먹어치웠다.
이미 오래 살아 요괴에 가까워진 호랑이였기 때문에 전염병에 걸린 인간을 먹는 것쯤은 두려워하지 않은 것이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의 혼이 어떻게 되는지 아나? 나는 그 전에 인간을 잡아먹은 적이 없어서 몰랐다가 그때에야 알게 되었지. 그 혼은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고 창귀가 되어 자신을 잡아먹은 호랑이의 주위를 맴돈다네. 저를 잡아먹은 호랑이를 받드는 시종이 되는 셈이지.”
우습다고 생각하는지 가련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를 묘한 표정으로 호랑이 선생님이 말했다.
잡아먹혀 죽은 것도 서러운데 자신을 죽인 호랑이의 부하가 된다는 말이야? 그건 좀…
“한 번 창귀가 되고 나면 호랑이가 또 다른 사람을 잡아먹어 새로운 창귀를 만들어내지 않는 한 벗어날 수가 없지. 그런데 나는 인육을 좋아하지 않았으니 다시 사람을 잡아먹을 일이 없고, 그래서 노인의 혼은 그 후로 쭉 나를 벗어나지 못한 채 이승에 남아있다네. 자네 눈에는 안 보이겠으나, 그 거울이라면 볼 수 있을 테지.”
호랑이 선생님이 정선생의 품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이지도 않는데 거기에 거울이 있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다.
“처음에는 혼령의 모습을 하고 있던 것 같으나, 수백 년을 이승에서 떠돌며 내 뒤를 따라다니더니 이제는 흐릿하니 그림자만 남았군. 그러나 여전히 그는 창귀라. 이 늙은 호랑이가 죽거나 새로운 창귀가 생기기 전까지 어디로도 갈 수 없겠지.”
수백 년 동안 호랑이의 부하가 되어 그 뒤를 따라다녀야 했다니 불쌍하다고 해야 할지 끔찍하다고 해야 할지.
“그것이 창귀라고 하나 그림자만 남은 채로, 아마도 오랫동안 내가 오가던 길을 아직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으이. 낮에는 학교에 있다가 하교 시간이 되면 돌아와서 내 시중을 들지. 내가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모양일세. 그래 학교에서 내가 있던 곳을 오가며 머물다가 공교롭게도 마주친 아이들을 본의 아니게 다치게 한 것 같네.”
창귀라고 하면 귀신의 일종일 테니까 과연, 그 음령한 존재에 닿은 아이들이 기절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나도 최근에야 겨우 그 일을 알게 되어서 다스리고자 하였으나, 말이 통하지도 않고 쫓아낼 수도 없고 저승으로 보낼 길도 없으니 난처했다네.”
말하며 호랑이 선생님이 현관문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뭔가 보이지는 않아도 거기에 서늘한 기운이 서려서 흔들리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정선생이 품속에서 거울을 꺼내 조심스럽게 비추었다. 거울의 작고 동그란 면 안에서 허연 쑥대머리를 하고서 여기를 노려보는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늙고 병든 몸을 벗어나고 싶어 했던 그는 과연 소원을 이루었으나, 대신 그 혼은 오랫동안 요괴의 규칙에 붙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뭔가 앞뒤가 안 맞잖아.
호랑이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떠오른 생각을 중얼거렸다.
“방법을 몰라서 난처해하던 중이면서 앞으로는 학생들에게 사고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약속할 수 있지?”
질문은 아니었지만 질문이 된 내 말에 호랑이 선생님의 찻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노인의 모습이어도 혈색 좋은 얼굴이 어쩐지 당황한 것 같다. 공연한 말까지 했다고 후회하는 눈치였다.
가만히 무릎 위를 노려보고 있던 정선생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어어…, 잠깐. 그러고 보니, 방법이 하나 있었구나. 뒤늦게야 나도 깨달았다. 창귀가 다시는 학생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
호랑이 선생님이 문득 생각난 것처럼 움직였다. 그가 주섬주섬 다구를 챙겼다.
“차가 다 식었구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녹차 말고 커피를 줄 걸 그랬네. 오늘은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게. 늙으니 손님과 오래 앉아있는 것도 힘들구먼.”
“선생님!”
정선생이 큰 소리를 냈다. 화난 얼굴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화가 났다고 해도 호랑이 선생님에게는 아닐 것이다.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그런…”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은 그 혼이 떠나지 못하고 창귀가 된다. 호랑이도 창귀가 된 사람도 바라지 않았던 결과지만 ‘그런 법’이었다. 사람을 죽이지 않고, 그러니까 새로운 창귀를 만들어내지 않고 본래 있던 창귀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호랑이가 죽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선생은 그런 법에 화가 나 있었다.
그러니까 그의 화난 목소리를 들어야 할 대상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지만, 나는 어쩐지 창피했다.
어떻게 좀 해봐요. 당신은 요괴를 물리치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잖아. 정선생이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건 뭔가를 물리치는 문제가 아니잖아. 호랑이와 창귀의 관계는 요괴 세계의 규칙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진다든가 호랑이는 토끼를 잡아먹는다든가 겨울이 되면 나무는 낙엽을 떨어뜨리고 잠이 든다든가, 그런 것과 같은 문제라고.
내가 관여할 수 있는 게…
두근. 두근.
하지만 내 심장은 분명히 내 생각과 반대인 것 같다. 안된다고 할 때마다 불평하듯 가슴 속에서 쿵 쿵 갈비뼈를 두드리는 것처럼 뛰었다.
이봐, 진정 좀 해봐. 창귀는 어디까지나 귀신이라니까. 혼이라고. 요괴라면 어떻게 해 보겠지만 혼은…
가만, 혼은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다섯째 하늘에 속해 있는 거잖아? 그리고 내 집 옥상에는 정신이 조금 이상한 것 같은 꼴을 한 사신이 하나 있고.
“기다려 봐요. 도움이 될 사람……비슷한 누가 있는 것 같으니까.”
나는 그들을 남겨놓고 수리점으로 돌아갔다.
일단 사람인데 사람 아닌 사신이자 내 형이라는 양이천왕은 옥상에 있었다. 몽골식 이동 주택인 게르를 닮은 모양의 천막 안에서 쿠폰북을 탐독하는 중이었다.
유하의 놀라운 손재주나 쿠폰북의 음식 사진을 좋아하는 사신의 취향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그에게 곧장 창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하는 일이 순력 사자라며. 이런 귀신 잡아가는 일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과 정선생과 호랑이에게 엄청나게 해를 끼치고 있는데.
양이천왕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다가 이야기가 끝나자 용건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했다.
“이 시루떡 말이다. 알록달록하니 보기에 참 좋은데 맛도 좋으냐?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인간들이 제상에 이 시루떡을 올려놓는 일은 한 번도 없어서 말이다.”
그건 시루떡이 아니라 피자고요, 누가 제상에 피자를 올려요. 그리고 지금 내 이야기 안 듣고 있죠?
“이거하고 이거, 그리고 이거, 아, 이것도 맘에 든다.”
양이천왕이 쿠폰 북의 사진을 콕콕 손가락으로 찍어 가리켰다. 잠깐, 지금 이 양반이…. 아니, 사신은 원래 그런 거 준다고 해도 거절해야 하는 거 아냐? 이 분은 대놓고 막 달라네.
그러나 어쩔 수 없지. 피자 네 판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거니까.
“알았어요. 사달라는 거 다 사줄 테니까 그 창귀나 좀 해결해 줘요. 됐죠?”
“그 시커먼 음료는 두 개 달라고 해라.”
양이천왕이 말했다.
사신이 아니라 걸신인 것 같은 천왕은 피자 네 판과 음료수 두 병을 받는 대신 호랑이의 창귀를 다섯째 하늘로 보냈다.
사신이 흐릿하니 그림자만 남은 창귀에게 다가가자 내내 보이지 않던 혼은 그제야 제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도 생전의, 아프지 않았던 때일 것 같은 깨끗한 모습으로 노인은 호랑이와 나에게 허리를 숙여 절한 다음 사신을 따라 갔다. 수백 년 만에 제 길을 떠나는 노인의 걸음이 가벼웠다.
며칠 후에 나는 정선생의 거울을 사기 위해 백은호를 보냈다. 그러나 “거울은 깨져서 팔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거울을 나온 요괴의 행방은 얼마 후에 알게 되었다. 거울 속 요괴와 거의 똑같이 닮은 소녀 하나가, 수리점 안으로 들어와서 멍하니 서 있다가 갑자기 “내가 왜 여기 왔지?”라며 놀라서 달아났던 것이다.
허둥지둥 떠나는 소녀의 그림자 가장자리에서 얼핏 요괴의 웃는 얼굴을 본 것 같지만 뭐 괜찮지 않을까. 사람에게 홀려 아이돌 스타를 좋아하고 인사도 할 줄 아는 이매 정도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