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의 어느 하루(3)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나 아무래도 사기당한 것 같다.
아니 알바가 원래 24시간 풀로 뛰는 직업이야? 게다가 야간 근무복은 또 이게 뭐야?
옷을 갈아입으라는 선영의 말에 직원들은 라커룸에 들어가더니 간이 옷걸이에 걸려있던 또 다른 옷들, 그러니까 삼국시대 영화의 단역 알바가 입을 것 같은 그 옷들을 걸치고 나왔다. 카페 안의 장식들도 조금씩 바뀌었다.
테이블 위에 조각보를 깔고 나비 촛대를 올려놓고 꽃은 장미에서 매화로 갈아 꽂았다. 문희는 어디선가 갈대로 짠 바구니를 가져왔는데 뚜껑을 열자 반딧불이 같은 작은 벌레들이 한 무리 날아서 카페 곳곳에 퍼진다. 저거 그 녀석들하고 같은 종족인 것 같은데. 유리 등롱 수리를 맡았을 때 그 안에 있던 녀석들.
그동안 영화는 주방에서 부지런히 오가며 미리 장만해 둔 떡과 차와 고기를 데웠다. 카페에서 떡과 고기까지 팔다니. 이쯤 되면 카페가 아니라 식당인데.
정문은 닫히고 창문은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졌다. 선영은 카페의 북동쪽에 난 작은 뒷문의 걸쇠를 풀었다. 조명이 모두 꺼지고 촛불과 발광충의 빛만으로 밝혀진 가운데 자정이 되었다.
카페 안의 커다란 벽시계가 뎅 하는 종소리를 냈다. 열두시니까 열두 번은 울려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한 번뿐이다. 그러나 그 소리는 시간과 시간 사이를 가로지르며 이편과 저편의 경계를 긋는 것처럼 느껴졌다. 종소리 이편의 세상이 갑자기 고요하고 서늘해졌다.
공기가 바뀌었다고 느꼈지만 더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손님이 온 것이다.
첫 손님은 희끄무레한, 형체가 잘 보이지 않는 혼령이었다. 실루엣만 간신히 보였는데 긴 치마를 입고 있는 걸로 봐서 여자인 모양이었다. 누가 손대지도 않았건만 뒷문이 혼자서 삐꺽 열리자 그 사이로 스르르 들어온 여자 혼령은 가까운 테이블에 조용히 앉았다.
주문은 선영이 받았다. 그녀는 카페 에코의 미남 종업원이 가져다 준 녹차를 천천히 마시고는 왔을 때처럼 조용히 떠났다.
다음으로는 개인지 사슴인지 오묘하게 생긴 짐승이었다. 머리의 뿔로 문을 밀어서 열더니 재빨리 들어와서 의자 위로 폴짝 올라앉았다. 영화가 달려가더니 개처럼 낑낑대는 녀석의 주문을 어떻게 알아 듣고 고기를 접시에 담아 왔다.
개인지 사슴인지 분간이 안 되는 짐승은 접시에 코를 박고 한참 먹더니 배를 채우자 느긋이 나갔다.
손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많아졌다.
손님의 정체도 여러 가지였다. 도깨비나 혼령은 물론 본 적 있는 요괴도 본 적 없는 요괴도 끝없이 들어왔다가 떠났다. 짐승을 닮은 것도 있었고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으며 심지어 백은호도 잠깐 왔다 갔다.
그는 나를 보더니 눈썹을 움찔 모았다가 즐거운 얼굴로 속사포 같은 주문을 쏟아놓았다. 카페의 메뉴 중 절반은 부른 것 같은데 그걸 다 두 개씩 가져가겠다는 말에 직원들은 신났지만 받아 적는 나는 손가락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백은호가 떠난 다음에는 뱀 한 마리가 스르르 들어와서 차를 주문했는데 문희가 주문을 받으며 어찌나 탐스러운 것을 보는 눈으로 뱀을 훑어보던지 내가 다 오싹했다. 여기 온 후로는 살생을 안 하기로 했다는 말을 믿어야겠지.
찾아온 도깨비 중에는 내 수리점의 창고에 사는 녀석들도 있었다. 부채 도깨비와 대빗자루 도깨비가 펄럭펄럭 날거나 팔짝팔짝 뛰어 와서는 술과 고기를 주문했다. 얘들아, 이 카페가 지금 고기와 떡까지 팔고 있기는 한데 술이 없단다. 그런데 기왕 정체성을 잃어버린 마당에 술도 좀 팔면 어떤가 싶기는 했다.
도깨비들은 고기를 먹고 나서 맛이 어떻다는 둥 고기는 있는데 왜 술이 없냐는 둥 한동안 수다를 떨다가 돌아갔다. 가면서 고기값으로 상평통보를 닮은 오래 된 동전을 던져줬다. 그것은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혼령도, 요괴도, 짐승도, 무엇을 먹고 마셨든 값은 늘 동전 한 닢이었다.
어차피 사방이 다 요괴 투성이니 별로 신경 쓰일 일은 없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몸이 점점 피곤해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잠도 오고. 그런데 아무리 요괴들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같은 종업원들이 24시간을 줄곧 일할 수가 있냐고. 요괴들은 잠 안 자나?
내가 약간 불평하자 영화가 고개를 저었다.
“항상 그런 게 아니라 오늘 하루만 그래요. 한 달에 한 번 그믐날만 밤에도 문을 여는 거예요.”
음? 그런 거였어? 그렇다면 선영 저 놈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힘든 날을 골라서 나를 부려먹은 거란 말이잖아.
어쨌든 카페의 북동쪽 문으로 수없이 많은 손님들이 들어왔다 나가는 동안 준비해 놓은 음식들은 거의 떨어져갔다. 그리고 시각이 3시를 넘자 손님들도 점점 뜸해지기 시작했다.
“영화, 예약석을 세팅해 둬라.”
손님들도 거의 없어지고 한적한 때, 선영의 말에 동자삼 요괴는 카페 안쪽에 테이블 세 개를 모아서 붙여놓고 거기에 잔이며 과일이며 다구 같은 것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날이라 예약까지 하며 오는 손님도 있나 보다.
어떤 손님들이냐고 묻자 영화는 싱글거리며 대답했다.
“선배님들이에요. 이 카페에서 예전에 일했던 분들이요. 그믐날 문 닫기 한 시간 전에 와서 잠시 놀다 가시는 거예요. 5시면 문을 닫거든요. 그러니 4시까지는 다들 오시지요.”
요괴 카페의 요괴 종업원 선배님들…?
“아아, 빨리 오셨으면 좋겠어. 멀리 떠나신 분들도 있어서 오늘 같은 날이 아니면 보기 힘드니까 말이야.”
문희가 음식을 나르며 기대감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죠? 아무 탈 없었다면 비란 누님도 오늘 볼 수 있었을 테…”
아무 생각 없이 대꾸하다 말고 영화가 화들짝 입을 다물었다. 문희도, 그리고 멀찍이서 쓰레기를 분리하던 선영도 잠시 멈칫했다.
비란이라면 죽었다던 나비 요괴의 이름이다. 그러고 보니 그녀도 이곳에서 종업원으로 일했었다고 했지. 꽃차는 그녀가 담당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아이 참, 오늘도 분명히 명선이가 오겠지? 명선이가 좋아하는 유자 정과는 어디에 뒀어? 응?”
문희가 부러 밝은 목소리를 내며 영화에게 물었다.
“아, 그거. 선반에…제가 가져올게요.”
영화가 후다닥 주방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명선이라니 또 어떤 요괴인가.
문희는 말하고 나서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총총 걸어가 자정이 된 후 잠가두었던 정문을 열었다.
“거기는 왜?”
내 물음에 그녀가 어깨를 으쓱 모았다.
“그믐날 밤에 단 한 명, 인간 손님이 오거든요. 그 사람을 위해 열어두는 거예요. 사람을 귀문(鬼門)으로 들어오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요괴를 위한 시각에 찾아오는 인간이라고? 누굴까.
궁금해 하는 내 얼굴을 봤는지 문희가 싱긋 웃었다.
“명선이라는 아이인데 이 카페가 생긴 후로 쭉 수십 년 동안 그믐날 밤의 손님이었어요. 선배님들도 어릴 때부터 봐와서 그런지 다들 귀여워하시고요. 저는 알게 된지 20년 남짓이지만요.”
적어도 20살 이상이면 아이라고 부를 나이가 아니잖아. 뭐 요괴들의 시간관념을 탓할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슬슬 예약 테이블도 준비가 끝나고, 선배님들이 오실 시각이라는 4시가 되었다. 그리고 과연 선배님답게, 시계바늘이 4시 정각을 가리키자마자 문이 열리며 밤의 카페 에코 종업원 복장을 한 요괴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모두 모르는 얼굴이었고 모두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중간한 요괴와는 다르게 감쪽같이 사람으로 둔갑하고 있어 기운을 읽기 전에는 나도 요괴인지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예약석이 점점 채워졌다. 몇 분 안 가서 두 자리만 남기고 모든 의자에 주인이 생겼다.
“명선이는 오늘 좀 늦나?”
아마도 선영이 오기 전에 카페의 미남 오빠를 담당하고 있었을 것 같은 근사한 미남자가 빈자리를 보며 물었다. 누구에게 질문했다기보다 중얼거린 것에 가까웠지만 옆에 앉은 아리따운 여성이 대답해 주었다.
“오는 길이 머니까요. 늘 조금씩 늦지 않았어요?”
“안형도 고지식해가지고. 슬쩍 날아오든지 눈속임을 써서 차라도 타든지 하면 될 게 아냐.”
미남자가 투덜거렸지만 정말로 불평하는 것은 아니다.
“안형님은 그런 분이니까요. 명선이와 함께 여기 오신지도 벌써 40년이 넘었네요.”
여자가 대꾸하자 다른 자리에 앉아있던 선배 요괴들이 “그렇지. 그렇지.”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현재의 종업원인 선영과 문희와 영화는 선배님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이것저것 챙기느라 바빴다. 선영이 내게 “선배님들이 오시면 도령은 그냥 구경만 해주십시오. 공연히 돕는답시고 일을 만들지 마시고요.”라며 아예 자리에 앉아있도록 했기 때문에 나는 카페 에코에 온 이후 처음으로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너무 한가해서 졸음이 오는 것도 같고…. 아니, 시각이 늦어서 그런가. 하긴 이미 새벽 4시를 넘었고 말이야. 그러니까 조금 졸아도 괜찮겠지.
그런 생각이 얼핏 드는 것과 함께 눈앞이 캄캄해졌다가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떠올랐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머릿속이 둔해져서 어떻게 막을 길이 없었다. 요괴고 알바고 모르겠다. 새벽 4시라고…
그리고는 고개를 푹 떨어뜨리며 잠이 들 찰나였으나, 딸랑 하고 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출입문이 열렸다.
“명선이다.”
예약 테이블에서 누군가 반갑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
────────────────────────────────────
에코의 어느 하루(4)fin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명선이? 명선이가 뭐지? 누가 명선이를 주문했나? 손님에게 인사해야 하나?
잠에 취해서 멍청해진 뇌가 두개골 안에서 젤리처럼 흔들렸다. 의자들이 끽끽 소리를 내며 밀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 앞을 우르르 지나가는 기척이 느껴졌다. 아무리 잠에 절여진 뇌라도 이쯤 되면 카페 안의 손님들이 일제히 몰려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된다.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을 떴다. 선배 종업원 요괴들이 출입문 앞에 모여 막 들어오고 있는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네느라 왁자지껄했다.
“안형님, 오늘도 걸어오신 거예요?”
“아우, 우리 명선이. 기분 좋아 보이네?”
“아빠가 머리 잘라줬어? 예쁘다.”
“문 앞에서 그러고들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와요.”
떠들썩하니 환영하던 그들이 다시 자리로 돌아가자 새로 온 손님이 뒤를 따랐다. 카페 바닥 위로 고무를 댄 바퀴가 돌돌 구르는 소리가 났다.
‘어…어?’
낯익은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길고 마른 얼굴에 째진 눈매, 인중이 긴 것이나 바가지 머리로 잘라놓은 것까지 똑같은 두 사람. 산책하면서 냇가나 길가에서 종종 만나곤 한 그 모자다. 아니…한 사람과 한 요괴라고 해야 하나. 밤이 되자 본래의 기운을 감추지 않고 드러낸 남자로부터 요기가 뭉클뭉클 퍼졌다.
그들은 함께 예약석으로 갔다. 남자가 노부인이 앉은 휠체어를 테이블 가까이 놓는 동안 다른 요괴들은 그들 앞으로 음식 접시며 음료수를 밀어놓았다.
노부인의 하나 남은 옆자리를 차지하려고 잠시 요괴들이 신경전을 벌였는데 재빨리 유자 정과를 먹여준 미남 요괴가 선택받은 것 같았다. 정과를 받아먹은 노부인이 입을 오물거리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짓는 것으로 승패가 결정되었다.
“무령 오빠 너무해. 맨날 명선이 옆자리를 차지하지. 지난 달도 지지난 달도 오빠가 앉았잖아.”
예약석의 선배 요괴들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의 모습을 약간 벗어난, 짧은 치마 밑으로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를 가진 여자가 약 오른 얼굴로 불평했다. 미남 요괴는 아름다운 입술을 삐죽이며 웃었다.
“명선이가 나를 제일 좋아하는데 어쩌겠어. 너희들은 명선이 어릴 때 모습도 모르잖아. 내가 업어주고 머리도 땋아주고 밥도 먹여주고, 안형과 함께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우리 명선이가 안형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바로 나거든?”
미남 요괴가 잘난 체하며 자랑하는 동안, 그의 자랑이 무색하게 노부인은 목에 냅킨을 둘러주는 선영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선영은 알게 된 후로 한 번도 본 적 없을 만큼 부드럽고 다정한 얼굴을 하고서,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부인이 어린아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다른 요괴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요괴니까 나이만을 생각하면 수백 살쯤 되었을지도 모를 그들이 확실히 연상이겠지만 그렇더라도 저런 노인을 아이 취급하는 건 어딘지 이상했다.
하지만 노부인은 그들의 태도에 아무런 항의도 않고, 오히려 밖에서 봤을 때의 무표정은 찾아볼 수 없는 편안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남자도 같았다.
음산하다 싶을 정도로 똑같은 얼굴에 표정 없던 그들은 요괴들과 함께 있는 지금이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것도 그렇지만 한쪽은 인간, 한쪽은 요괴인데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남자 쪽이 아버지인 것 같다.
“도대체 저 둘은 무슨 관계야?”
영화가 차를 준비하러 주방으로 간 사이에 나는 도와주는 체하며 따라가서는 속삭여 물었다.
“부녀지간이죠, 뭐.”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이 영화가 대꾸했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요괴에게 인간 딸이라니.
“그야 친딸은 아니고요. 명선이가 네 살 때인가 버려져 있던 걸 안형님이 주워 오셨대요. 그때는 안형님도 사람 고기를 가리지 않고 드시던 때라 아마 간식거리 삼아 가져오신 모양인데…”
야, 야. 그런 소리를 웃는 얼굴로 하지 마.
“그런데 잡아먹으려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 있는 걸 보고 명선이가 울기는커녕 좋아라 달라붙어서 놀더라나 뭐라나. 안형님이 당황해서 잡아먹지 못하고 데리고 있다가 아예 딸로 삼아 키우게 되었대요.”
“본래 모습이 뭔데?”
“이무기요. 안형님 그때 진짜 무서웠다던데. 용이 되려다 실패해서 성격 완전 삐뚤어지고.”
아니 난 지금도 무서울 것 같은데. 이무기라니…저 할머니는 어려서 겁이 없었나. 아무리 그래도 커다란 뱀을 보고 좋아라 같이 놀려고 했다니.
“그치만 안형님도 대단하시지. 명선이를 키우기 시작하고부터는 인간들 사이에 섞여서 진짜 사람처럼 살았대요. 그 전까지는 인간만 보면 잡아먹었거든요. 용이 되려다 실패한 게 사람 때문이라고 해요.”
먹이로 삼았던 인간을 딸로 키운 요괴의 마음 같은 건 상상이 안 된다. 뭐랄까 눈앞에서 통닭구이가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걸 보는 그런 기분일까.
영화의 설명을 듣고 나서 다시 그들을 보니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그러나 내 심정 따윈 알 리 없고, 요괴들은 안형과 명선을 중심으로 웃고 이야기하며 카페 에코의 영업시간 끝자락을 즐겼다. 그리고 마침내 인시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뎅 하고 울렸다. 아침 다섯 시니까 다섯 번 울려야 하는 거지만 종은 단 한 번 울렸을 뿐이다.
종소리가 울리자 웃음소리와 이야기소리가 갑자기 그치고 카페 안은 고요해졌다. 요괴들은 일제히 시계를 바라봤다가 이윽고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며 미소지었다.
“즐거운 시간은 언제나 짧구만.”
“그러네요.”
“그럼 다음 그믐에….”
“다음 그믐에 다시 만나요.”
인사를 나누며 그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뒷문으로 떠났다. 소리도 없이 예약손님들이 가고 나자 마지막으로 남은 둘이 그제야 천천히 움직였다. 휠체어 바퀴가 돌돌 구르는 소리를 내며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마치 사람처럼, 날지도 않고 눈속임도 없이 한 발씩 걸어가는 이무기 요괴의 뒷모습을 나는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모두들 하루 동안 수고했습니다. 알겠지만 오늘은 카페 문을 열지 않으니 푹 쉬도록 해요. 내일 다시 봅시다.”
선영의 말에 종업원들은 기지개를 켜거나 하품을 하며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다.
“도령도 고생하셨습니다. 수리점까지 태워드릴 테니 옷 갈아입고 나오세요.”
선영이 나를 보며 말했다. 오오, 진짜? 웬일로 이렇게 친절한 거냐? 혹시 다음에 또 부려먹으려고 수 쓰는 거라면
“이 카페 알바는 다신 안 해. 특히 그믐날엔.”
딱 잘라 말하자 선영은 잘생긴 눈썹을 역팔자로 모았다.
“우리야말로 다시 도령을 쓸 생각 없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 같아서 기분 나쁘네. 내가 딱히 사고 친 적도 없고 시키는 일도 열심히 했는데 뭐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하지만 선영은 귀찮은 얼굴로 말했다.
“어쨌든 그믐날이면 잊지 말고 다시 오십시오.”
뭐? 왜? 다시 쓸 생각 없다며.
“이제 도령도 카페 에코의 ‘직원이었던’ 몸이 되었으니까요. 예약석을 한 자리 늘려두겠습니다.”
피식 웃으며 선영이 덧붙였다.
어…그게 그렇게 되는 거야?
선영은 자신의 차로 나를 수리점까지 데려다 주었다.
수리점에 돌아온 나는 잠들기도 어중간한 아침에 멍하니 있다가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식사를 했다.
“조금만 먹고, 잠시 눈을 붙여요.”
평소보다 적은 양의 식사를 내주며 유하가 말했다. 자야할 시간을 넘겨버려서인지 피곤한데 잠은 안 오고 배고픈데 입맛은 없는 채로 깨작깨작 식사를 하다 나는 식탁에 놓여 있던 방울 토마토를 집어 들고 생각에 잠겼다.
“뭘 그렇게 보는 거예요?”
내가 방울토마토를 너무 오래 보고 있었는지 유하가 물었다.
“아니…음…이게 딸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예?”
내 헛소리에 유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아냐. 그냥 해 본 말이야.”
웃으며 토마토를 접시에 내려놓았다.
음…하지만 방울토마토가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나를 아빠라고 부르면 귀여울 것 같기도 하고. 아아,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나도 착실히 나이를 먹고 있는 모양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