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162화 (162/218)

요술객(3)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유리 상자 안의 사람들은 우리와 별로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론 초가집에 살고 옷은 한복인지 중국옷인지 구분이 안 가는 묘한 것을 입고 있었지만, 하루에 세 번 굴뚝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나고 밤이 되면 어두운 가운데 잠시 호박색 불빛이 보였다 꺼지고, 아침이면 밖으로 나와서 낮 동안 밭이나 논에서 일을 했다.

사내아이들은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놀았고 계집아이들은 나물을 캐거나 제 집 마루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바느질을 하거나 했다.

하루 동안 지켜본 결과 그랬다. 세 끼 밥을 먹고 잠도 자고 낮에는 일하고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밤낮은 이쪽과 반대인 것 같았다.

이건 정말 마술사의 재주로 만들어 낸 모형인가?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지켜보는 동안 새삼스럽게 다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기계적인 구석은 전혀 없고, 일과는 단순하지만 어제 본 것과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한다든가 똑같은 동작을 반복한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이게 정말로 기계 같은 거라면 컴퓨터가 숨겨져 있어야 해. 그것도 굉장히 복잡한 AI로 움직이고 있는 거라고.

그런데 외부의 존재가 들어가면 문제가 생긴다느니 하는 걸로 봐서 기계는 아닌 것 같고. 아니면 외부의 사람은 컴퓨터 바이러스 같은 게 되는 건가? 그게 아니면 이건 도술 같은 걸까?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도 도사에게 물어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지.

치파오 처녀가 했던 말대로, 오늘은 초가집의 마당에 我在这儿(나는 여기 있다)라고 적혀 있었다. 글자를 적은 장본인은 보지 못했다. 몇 십 분 동안 꼼짝 않고 그 초가집에 드나드는 사람이 있는지 기다려 봤지만 누구도 들어가거나 나가지 않았다.

어떻게 손을 댈 수도 없고 뭔가를 전달할 수도 없고, 마치 까마득히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유리 상자 안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 참 난감하네. 할아버지를 어떻게 빼내는가는 둘째 치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르겠다.

뭔가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백은호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자 녀석은 낮잠 자다 일어난 것 같은 나른한 목소리로 “만불산 말입니까?”하고 되물었다.

“본 적은 없습니다만 꽤 정교한 모형이었다고 하더군요. 새나 벌레의 모형이 스스로 움직이기도 했다는데 아마 괴뢰술이거나 귀신을 봉해서 부렸거나 했겠지요. 그것도 아니면 고대의 오토마타가 당시에는 놀라운 기술로 여겨졌던 걸지도 모르고요. 지금에 와서는 그때의 기술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 어떤 방식이었는지 모릅니다.”

치파오 처녀한테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만불산을 만든 것은 관오라는 요술객이라고 말하자 백은호는 코웃음을 쳤다.

“만불산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쪽은 요술객 외에도 많습니다. 어느 유파의 도사라든가 자동기계의 비술을 전수하고 있다는 가문이라든가…. 관오라는 요술객은 저도 들어본 적이 없어 모르겠군요.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웬 마술사가 만불산의 기술을 재현해 냈다면서 모형 상자 같은 걸 보여주며 돈을 받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마술사가 민치현인 것 같은데.

“요술객이란 본래 눈속임으로 먹고 사는 족속들입니다. 현란한 기술이지만 어디까지나 속임수이지요. 진실을 한 겹 감추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이는 겁니다. 도령이 봤다는 모형도 비슷한 거겠지요.”

감성이 메마른 여우 요괴는 냉정하게 말했다.

녀석의 감성지수는 일단 무시하더라도 결국 백은호 역시 자세한 건 모른다는 결론이었다. 구미호가 모른다니 이번에는 창고의 영감 도깨비에게 찾아가 보았다. 만불산에 대해서 뭔가 아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영감 도깨비는 백은호보다도 아는 것이 없었다.

“내 나이를 세 번 더해도 만불산 나이보다는 적겠소.”

허허 웃으며 영감 도깨비가 말하는데 나는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하긴 아무리 도깨비라도 자신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수백 년 전의 일 같은 걸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결국 아무런 성과도 없이 작업장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백은호는 유리 상자가 눈속임일 거라고 단정 짓고 있었지만 도대체 뭘 어떻게 속였다는 건지. 이렇게 내려다보고 있으면 정말로 진짜 세상처럼 보이는 모형의 세계인데 말이야.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만. 먼 곳을 보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망원경.”

나한테 망원경이 있던가? 없을 걸. 하지만 혹시나 하고 유하에게 물어보자 잠시 3층에 다녀오더니 어떻게 봐도 오페라글라스라고 생각되는 것을 내게 내밀었다. 뭐 이것도 일종의 쌍안경이기는 하지.

유리 표면에서 모형까지는 50센티도 안 될 텐데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얼마나 선명하게 보일까? 좀 미심쩍었지만 오페라글라스에 눈을 대고 유리 상자 안을 내려다보는 순간 내 의심은 찬양으로 바뀌었다.

선명하게 잘 보이는 정도가 아니었다. 몇 십 배는 확대 된 상자 안의 광경이, 조금 전까지는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면 지금은 10미터쯤 앞에서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확대해 놓고 보자 나는 다시 한 번 감탄했다.

모형의 섬세함은 확대한 상태에서조차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맨눈으로 봤을 때 얼핏 초록색 극세사 손수건 같던 풀밭은 이렇게 확대해 놓으니까 뾰족한 풀잎 하나하나가 다 보였다. 도대체 무슨 수로 저렇게 만들어낸 건지 모르겠다. 요즘 과학이 많이 발전하긴 했나보다.

나무도 꽃도 길가의 돌멩이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었다. 그 섬세함은 지형에서 그치지 않았다. 언덕배기에서 풀을 뜯던 염소는 입의 움직이는 모양이며 깜박이는 눈이며 아무리 봐도 진짜 염소였다.

염소 같은 큰 짐승 뿐만이 아니다. 꽃 위를 돌아다니는 나비나 벌 같은 곤충들도, 얼핏 스쳐가 버려서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날아다녔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마을 쪽으로 시선을 돌린 내게 마침 물동이를 이고 마을 우물로 나온 처녀의 모습이 보였다. 무거운 물동이를 이고도 사뿐사뿐 걸어가 우물에서 물을 긷는 그녀의 모습을 보다가 이건 정말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얼굴이라는 건 짐승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 수많은 근육이 움직여 만드는 표정의 섬세함은 지금의 기술로도 쉽게 표현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물 긷는 처녀의 얼굴은 어떻게 봐도 진짜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런 걸 모형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을 살펴봐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저 유리 상자 안의 사람들은, 인간이거나 요괴이거나 그에 근접한 어떤 존재들이었다.

- 요술객이란 본래 눈속임으로 먹고 사는 족속들입니다. 현란한 기술이지만 어디까지나 속임수이지요.

백은호는 그렇게 말했었지. 진실을 한 겹 감추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이는 거라고. 그렇다면 이 유리 상자 속의 모형은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 걸까.

보여주는 거라면 물론 만불산의 기술을 재현해 냈다는 모형의 세계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 냈으되 스스로 움직이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형. 그렇다면 이 모형이 감추고 있는 건 도대체 뭘까.

요술객 민치현은 뭘 속인 걸까.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엉뚱한 곳에 집중시켜 놓고,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뭘 한 걸까.

유리 상자를 내려다보며 고민하는데 한쪽 팔이 따끔, 아파왔다. 아얏 소리를 내려 내려다봤더니 내 팔을 꽉 물고 있던 나비 요괴 꼬맹이가 인상을 쓰며 오히려 이쪽을 째려보았다.

“나 아침부터 지금까지 쭈욱 굶었어. 해명이가 계속 일하고 있어서.”

그러고 보니 오늘 내내 나비 요괴에게 물린 적이 없는 것 같긴 하네. 꼬맹이는 배고픈 얼굴을 하고서 내 팔에서 날개처럼 돋아나는 나뭇잎을 쳐다보며 침을 흘렸다. 먹을 것 가지고 야박하게 굴 수는 없고.

그래도 예전처럼 달려들어 입으로 막 뜯어먹는 행동은 요새 안 했다. 나뭇잎을 한 장씩 똑똑 꺾어서 오물오물 먹는 걸 보니 유하가 식탁예절이라도 가르쳤나 보다. 그래. 너는 먹어라. 나는 일 하련다.

팔에서 나뭇잎이 똑똑 뜯기는 것을 느끼며 유리 상자를 내려다보는데 문득 작업장이 조용해졌다. 보니 꼬맹이가 우물우물 먹으면서 유리 상자에 코를 박고 안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잘 안 보여. 너무 작아.”

녀석이 투덜거렸다. 나비는 원래 눈 별로 안 좋잖아.

“이게 네가 좋아하는 마술사가 만든 거랜다. 민치현인가 하는. 이런 걸 마술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만.”

내 대꾸에 녀석이 눈을 반짝이며 다시 유리 상자를 들여다보았다.

“마술로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아…”

그러니까 이게 마술인지 요술인지 도술인지 아직 모른다니까.

그런데 녀석은 민치현이 만들었다는 한마디에 갑자기 열성적이 되어서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유리 상자에 매달렸다. 저기, 학구열도 좋고 호기심도 좋고 다 좋은데, 내 팔의 나뭇잎을 좀 깨끗이 수확해 주면 안 될까?

그러나 구경하느라 정신없는 녀석 대신 결국은 내가 내 팔에 난 나뭇잎을 똑 똑 끊어서 떼어내야 했다. 내버려 두면 계속해서 내 생기를 빨아먹으며 싱싱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할 테니까.

“넌 언제부터 마술에 관심이 있었던 거야? 사실 그런 눈속임보다 네 요상한 능력이 더 마술 같지 않냐?”

나뭇잎 만들어 내는 거 보여주면 인기 좋을 것 같은데. 나뭇잎 먹는 건 덤이고. 날개도 보여주면, 게다가 날아다니기까지 하면 어제 본 공연 못지않은 쇼가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녀석은 뜻밖의 대답을 했다.

“있잖아. 인간이 요괴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거잖아, 마술은. 마술사는 우리 같은 요괴를 좋아하는 것 같아. 그래서 나도 마술사가 좋아.”

예? 뭐야, 그게. 어째서 마술이 그렇게 해석되는 건데?

인간이 요괴처럼 보이려고…음…뭔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은 묘기를 보여주는 게 마술이니까 맞는 말인 것도 같다만. 그렇지만 실제로 마술사들이 요괴를 좋아한다고는…볼 수 없다고 말해주려는데 까만 눈을 반짝반짝 하면서 유리 상자를 구경하는 녀석에게 그런 말을 해줄 필요가 있나 싶고.

뭐 실제로 마술사들이 요괴를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잖아. 아니 최소한, 어제 본 마술사 중 하나는 진짜 요괴이고.

“그래서 넌 마술사가 되려고?”

“응. 요괴로 보이려고 하는 거 재미있어.”

넌 요괴로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요괴잖아. 어쨌든 그런 이유로 생후 3개월 만에 장래를 결정해 버린 거냐?

“어휴, 그래. 미래의 마술사 꼬맹아. 그런데 네가 보기에 이 유리 상자에는 도대체 무슨 속임수가 숨어있는 것 같냐, 응? 난 당최 모르겠다.”

“응. 나도 몰라.”

녀석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치만 나중에 마술사가 되면 알 거야.”

야, 그게 마술사가 된다고 저절로 알아지는 게 아니고. 그런 걸 알 수 있어야 마술사가 되는 거 아냐? 아니다. 내가 한 살도 안 된 요괴 상대로 뭘 설명하겠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고개를 기울이며 상자를 보고 있던 꼬맹이가 문득 말했다.

“그런데 그런 말이 있었어. 마술사가 뭔가 보여주려고 애쓰면, 바로 그때가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속임수를 쓰고 있는 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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