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객(4)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마술사가 뭔가 보여주려고 애쓰면, 그 때가 바로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속임수를 쓰고 있는 때다?
그런데 마술사가 뭔가 보여주려고 애쓰는 그 때가 언제인지 이 상자만 보고 어떻게 알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이라는 건 또 어딘데.
나비 요괴 꼬맹이는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소리만 던져 놓고는 유리벽에 찰싹 달라붙어 더 이상 나나 나뭇잎 같은 것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나도 나비 요괴에게 신경 쓸 때가 아니어서 유리 상자를 살피는 데 집중했다.
마술사의 공연이라는 건 그게 속임수건 뭐건 어쨌든 일단은 공연장 안에서 일어나게 된다. 이 모형의 경우에는 유리 상자 안.
생각해 보자.
마술사가 뭔가 보여주려 애쓰는 것은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서다. 그 말인즉 관객의 관심이 다른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고, 그 뜻인즉 관객이 마술사에게 관심을 빼앗기지만 않으면 속임수를 눈치 챌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전혀 보이지 않게 속일 수는 없다는 거지.
마술사 민치현은 뭘 속이고 있는 걸까. 그 속임수의 증거가 어디에 은밀히 숨어있는 걸까. 내가 보지 않았던 곳,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곳이 어디일까.
나는 모형의 정교함이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나 거짓말 같이 섬세한 모습 따위에서 눈을 떼고 지금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곳을 찾아보았다. 내가 뭘 놓치고 있었을까.
유리 상자 안의 모든 곳을 구석구석, 맨 눈으로나 오페라글라스를 사용해서 살펴보았다. 지금이 저녁 무렵이라 유리 상자 안의 모형 세상은 슬슬 새벽이 되려는 참이었다. 푸르스름한 미명 속의 세상은 고요했다. 어두운 그 속을 수상한 데가 보이면 뚫어지게 쳐다보고 기다리고 이상한 느낌이 사라질 때까지 거듭 확인했다.
그런 식으로 늦은 밤이 될 때까지 눈을 혹사해 보았으나, 계곡에서 목욕하는 처녀들을 잠시 감상할 수 있었던 것 말고는 건진 게 없었다.
결국은 지쳐서 의자에 털썩 앉아 늘어져 버렸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뭔가 접근 방식이 잘못된 것 같은데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이쪽의 시각은 이제 새벽 3시. 유리 상자 안의 시간은 그림자로 봐서 대략 오후 3시 쯤인 것 같다. 유리 상자에 집중하느라 불도 켜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작업장은 캄캄했다. 이곳에 빛이라고는 유리 상자에서 나오는 햇빛 정도였다. 저쪽은 낮이니까…
아니, 그런데 뭔가 이상하잖아?
분명 저 안으로는 빛도 소리도 기운도 들어갈 수 없도록 밀봉되었다던데, 어째서 저 유리 상자 안의 빛은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거지?
나는 유리 상자의 빛으로 밝혀진 작업장을 둘러보았다. 분명히 저 빛은 이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저 안이 밤이었을 때 여기는 낮이었다. 그런데도 이곳의 빛이 유리 상자 안을 밝히지는 못했다. 들어갈 수는 없어도 나올 수는 있다는 걸까? 뭐랄까 이건 꼭, 매직미러 같은걸.
거울. 한 쪽에서 다른 쪽을 보기 위한 거울.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니까 하나가 더 떠오른다. 매직미러 말고도 그런 용도를 위한 거울이 있었다.
뭐야. 설마 그런 걸까.
오페라글라스를 들고 나는 다시 한 번 유리 상자 속의 사람들을 들여다보았다. 처음에 했던 것보다 더 집중해서, 더 시간을 들여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저것은 모형이 아니다. 실제로 살아있는 어떤 것, 요괴이든 인간이든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고 자신의 삶을 사는 그런 종류의 존재였다.
그렇다면 민치현은 유리 상자 안에 살아 있는 어떤 것들을 가둬놓은 걸까?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저 안의 사람들 모두 평온하고 불만도 없어 보이는 걸. 뭐…햄스터처럼 단순한 사람들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그렇지만 그래도 사람 모양을 하고 있는데 햄스터 같을 리는 없고.
그리고 애초에 저렇게 작은 사람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러니 결국 내가 닿을 수 있는 결론은 문제의 거울 뿐이다.
그런 것이 확실히 있기는 하다. 볼 수 없는 곳을 보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거울. 이쪽에서는 저쪽의 많은 것을 볼 수 있지만 저쪽에서는 이쪽을 잘 볼 수 없다. 그런 거울을 잠망경이라고 부르지.
어떨까. 만일 이 유리 상자가 잠망경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이것을 부순다고 해도 모형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내가 보고 있는 저 광경은 유리 상자 안에 있는 것이 아닐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왜 민치현은 유리 상자를 부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걸까? 뭔가 앞뒤가 안 맞잖아. 아니면, 이 상자가 잠망경이라도 부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걸까?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나는 지금이 새벽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치파오 처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그녀는 현재 시각을 떠올리기 전에 내 전화를 받았다.
“누구세요.”
졸음이 잔뜩 배어 가늘어진 목소리였다. 그녀에게 사과하고 도사를 만났던 때의 일을 물어보았다. 치파오 처녀는 생각에 잠긴 건지 다시 깜박 잠든 건지 궁금할 정도로 오랫동안 말이 없더니 이윽고 약간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에도 이야기 했던 것 같은데 도사 말이 상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물론 가능하다고 했어요. 작은 곤충으로 둔갑해서 들어가면 될 테지만…하지만 그렇게 하면 할아버지가 만든 모형 안의 규칙에 분명 뭔가 문제가 생길 테니 내가 반대했죠.”
그러니까 도사가 말하는 ‘들어간다’는 건 상자 안으로 들어간다는 그 말이었다는 거지?
“할아버지는 상자 안에 있으니까 당연하잖아요. 새벽에 전화해서 왜 한 이야기만 다시 하게 만드는 거죠?”
치파오 처녀가 약간 날카로워져서 물었다.
“할아버지가 상자 안에 계신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나는 그녀에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했다. 어쩌면 저 유리 상자는 잠망경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며 우리 눈에 보이는 모형은 실제의 세계일지도 모른다고.
치파오 처녀는 내 말에 처음보다도 훨씬 길게 입을 다물고 있더니 이윽고 좀 더 또렷해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단양의 남굴 속 사람들…”
그건 또 뭐야?
“할아버지가 가끔 이야기 하셨어요. 깊은 굴 속에 사는, 일종의 지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에요. 동굴을 따라 땅 속 깊은 곳으로 가면 나온다는 곳이죠. 지하이지만 그 정경은 지상과 다를 바가 없고 따뜻하며 살기 좋은 곳이래요. 하지만, 설혹 그 세계에 간다고 해도 우리 눈에는 그곳 사람들이 제대로 비치지 않아요. 안개처럼 흐릿하게 보일 뿐이라고 해요.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곳 사람들도 우리를 볼 수 없고요. 피차 서로가 그림자나 안개인 것처럼…”
저기, 땅 속에는 현무암층이라든가 맨틀이라든가 뭐 그런 거 있지 않을까? 물론 별개로 저승 세계가 지하에 있다는 말도 있는데 내가 알기로는 따로 다섯째 하늘이라든가 그런 데 있다고 하고. 그리고 땅 속인데 어떻게 지상 같을 수가 있지? 거긴 해도 없을 거 아냐. 아니면 엄청나게 큰 발광체가 동굴 천장에 떡 하니 붙어서 태양 대신…역시 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정말로 그곳을 볼 수 있는 잠망경을 만드신 거라면, 그건 만불산과 비교할 수도 없는 굉장한 업적이에요. 게다가 직접 거기에 가셨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곳은 오랫동안 그냥 전설이었다고요. 실제로 다녀온 사람도 없고 존재한다는 증거도 없고 단지 이야기만 떠돌고 있을 뿐인…”
그런 곳이라면 찾아가기도 힘들잖아. 역시 유리 상자 안에 있는 편이 더 좋겠는데…. 잠망경 이야기는 그냥 취소할까?
“정말 그렇다면…다시 도사들에게 알아볼게요. 거기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도사들이 알지도 몰라요. 도령도 계속 알아봐 주세요. 그리고…그리고, 할아버지를 찾으러 가실 거죠? 반드시 모셔올 거죠?”
이제 완전히 잠이 깨버린 것 같은 그녀가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 뭐 별로 간절히 말하지 않아도 어차피 일이니까 하긴 할 거였다고.
그런데 땅 속의 세상이란 말이지. 하긴 땅 속이니까 이목천왕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걸까? 그건 마음에 드는 걸.
전화를 끊고 나서 유리 상자 안을 다시 보자 조금 전까지는 그냥 작은 동네처럼 보이던 곳이 뭔가 엄청나게 대단한 곳인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로 저곳이 땅 속 깊은 곳에 있다는 그 묘한 세상일까.
그 날 뒤늦게야 잠든 나는 정오를 넘긴 후에 겨우 깨어났다. 그것도 자의는 아니었고, 치파오 처녀의 전화가 온 덕분에 싫어도 깨어나야 했다. 뭔가 방법을 찾아냈나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녀의 목소리는 어두웠다.
“연락해볼 수 있는 도사들에게 모두 물어봤지만 다들 안 된다고 해요. 거기가 어디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갈 수 있느냐고요. 그리고 할아버지가 갔을 거라고도 믿을 수 없대요.”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어딘지 모를 땅 속 세상을 헤매는 것보다는 그냥 유리 상자 안에서 개미만큼 작아진 다음 돌아다니고 계신다는 쪽이 더 편할 것 같아.
그런데 어쩐지 그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어디인지 알면 갈 수 있다는 거야?”
내 질문에 치파오 처녀는 힘없이 웃었다.
“어디인지 알려면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잖아요.”
그건 아닐지도 몰라.
할아버지가 말했다며. 유리 상자를 부수지 말라고. 그렇다면 유리 상자에는 잠망경 외에 다른 역할도 있는 것이 아닐까? 이를 테면, 잠망경이 보여주는 그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거라든가.
물론, 어떻게 그걸 찾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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