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의 외출(1)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꽤 이른 아침에 수리점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오는 건장한 여학생이 있다. 왜 학생이 이 시각에 여기 있어? 하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토요일이었다.
녀석이 열어젖힌 문은 벽에 부딪친 다음 삐꺽거리며 흔들렸다. 언젠가 쟤 때문에 수리점 문을 수리하게 될 것 같아. 어이, 수호 동생 수영이. 어머니께서 너만 잘 먹이시는 거니? 혹시 오빠 밥까지 뺏어 먹고 힘이 남아도냐.
녀석은 나를 보자 대뜸 “아저씨, 달님이 집에 왔어요?”란다.
그 녀석이라면 집에 왔어요? 라고 묻는 것보다 집에서 나갔어요? 라고 묻는 쪽이 긍정적 대답을 들을 가능성이 높단다.
“안 왔어요? 얼마나 오래요?”
모르지. 여기 있는 시간보다 나가서 노는 시간이 더 많은 녀석인데.
모르겠다는 내 말에 수영이는 눈썹을 찡그렸다.
“아무리 안 보여도 사흘에 한 번은 마주쳤는데 이번에는 거의 일주일째 달님이를 본 적이 없어요. 이상하지 않아요?”
어…그랬나? 마음 내키는 대로 왔다 갔다 하는 녀석이라 딱히 날짜를 세고 있진 않았는데.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나 역시 민치현의 야유회 이후로 녀석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야유회가 벌써…열흘 전이잖아.
유하에게 물으니 그녀 역시 그 후로 달님이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음, 아무리 방목 컨셉으로 자유롭게 키우고 있다지만 열흘 동안 집에 안 들어왔다니 조금 걱정이 되네. 그 녀석이 비록 해치이긴 해도 아직 어리고,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말하는 것과 사내아이로 변하는 것뿐이잖아. 강아지일 때나 사람 모습일 때나 특별한 능력은 없어 보이고…
지능도 높은 것 같지 않던데 혹시 길을 잃고 어디 먼데서 헤매는 거 아냐? 에이, 그래도 설마 개과인데 집 찾아오는 건 본능 아닌가? …해치는 개과 아니야?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사람으로 변해 있을지도 몰라. 그런데 사람 모습일 때는 꽤 귀여운 사내아이잖아. 누가 귀엽다고 데려간 거 아닐까? 그 녀석은 같이 놀자고 하거나 먹을 거 주겠다는 정도면 좋다고 따라갈 거야. 아니면 어리버리 돌아다니다가 고아인줄 알고 복지시설에 보내진다거나…그것도 아니면 앵벌이 집단에 끌려간다거나…요샌 장기 매매도 위험한데…
뭔가 상상할수록 상황이 악화되는 것 같다.
딱히 키운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명색이 함께 사는 아이인데도 열흘 동안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니 녀석에게 미안해졌다. 어쨌든 지금은 생각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유하에게 원강의 부적을 달래서 목에 걸고, 나는 수영이와 함께 달님이를 찾아 나섰다.
막상 찾으려고 생각하니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이럴 때 냄새 잘 맡는 요괴라도 있으면 도움이 될 텐데 그런데 그 냄새 잘 맡는 애가 달님이였지 참.
아쉬운 대로 백은호라도 불러 볼까? 하지만 백은호는 달님이라면 질색을 하니 도와줄 것 같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우선 수영이의 안내를 받아 달님이가 자주 출몰한다는 장소부터 뒤져보았다.
그런데 달님이 이 녀석, 어째서 이렇게 한적하고 음침하고 기분 나쁜 곳만 돌아다녔던 거야? 짓다 말고 방치된 콘크리트 건축물이라든가, 사람들의 발길이 별로 없는 공원 안쪽이라든가, 폐업하고 나서 버려진 식당 건물이라든가….
하나같이 안에는 빈 술병이나 담배꽁초, 더러운 모포나 과자 봉지 같은 것으로 지저분했고 벽은 낙서투성이였다.
뭐 학교 근처라든가 경찰소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한 모양인데 딱히 그런 곳도 별로 반갑진 않아.
누군가의 집 근처에서도 놀았던 것 같다. 누가 사는지 모를 집 세 곳과 식당 두 곳과 상가 거리를 한 바퀴 돈 다음 수영이는 더 아는 데가 없다며 두 손을 들었다. 대충 수리점 근처에서 놀았으려니 생각한 것과 달리 녀석은 멀리까지 돌아다닌 모양이다. 우리는 버스로 네 정거장 쯤 떨어진 곳에 와 있었다.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찾아서는 안 될 것 같은데. 일단 모든 가능성을 확인해보는 게 좋겠다.
백은호에게 연락해서 복지기관에 새로 들어온 사내아이가 있는지 알아봐 달라 하고, 수호 녀석에게는 노앵설에게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나와 수영이는 시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소를 찾아갔다.
가는 도중 홈페이지에서 새로 들어온 유기견을 확인해 보았지만 달님이 닮은 녀석은 없었다. 버스는 40분쯤 달린 끝에 도시 외곽의 한적한 곳 큰 길 가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동물보호소는 길 안쪽에 동물위생 연구부 건물과 함께 있었다.
보호소의 직원에게 달님이의 모습을 설명하자 강아지를 몇 마리 보여줬는데 비슷한 녀석도 없었다. 그보다는 우리에게 꼬리를 흔드는 녀석들의 모습이 어찌나 추레하고 처량하던지 거기 두고 나오기가 불쌍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는 동시에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알고 있는 지금, 덥수룩한 털에 감춰진 진물 흐르는 눈이나, 털이 빠져 분홍색 살이 드러난 채로 절룩이는 다리를 쓰다듬어 치료해주는 것이 녀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보호소를 나오고 얼마 안 되어 백은호에게 달님이가 복지기관에 맡겨진 정황은 찾지 못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목소리에는 쓸데없는 일에 부려지고 있다며 투덜거리는 기색이 완연했다. 명색이 해치인데 내버려 두면 알아서 돌아오지 않겠느냐는 생각과 함께 안 돌아오면 더 좋고…라는 내심이 뻔했다.
뭐 백은호는 요괴니까 영물인 해치와 상성이 안 좋은 건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믿을 건 노앵설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수호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달님이는 모르는 거 같은데요? 아저씨가 잃어버린 이런 저런 물건 열댓 개 정도 읊어주던데 거기에 달님이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 잃어버린 물건들이 뭐냐고 묻자 녹색 체크무늬 셔츠의 위에서 두 번째 단추는 침대 밑에 있고, 설문조사 하고 받은 주황색 볼펜은 컴퓨터 책상 뒤로 떨어졌고, 50원짜리 동전 하나가 옷장 밑에…이런 식으로 이사할 때쯤이면 다 나올 것 같은 물건들의 목록이 줄줄이 나왔다.
그런데 이런 시시껄렁한 것까지 찾아내면서 달님이는 모른다는 거야? 말하자면 그건…
“달님이는 잃어버린 게 아니라는 거겠죠. 때 되면 돌아가지 않을까요?”
수호 녀석이 느긋이 말했다. 그건 그렇지만, 열흘이잖아. 아무리 달님이라도 열흘씩이나 돌아오지 않았던 적은 없는 것 같거든.
“어쨌든 좀 더 찾아보고.”
말은 그렇게 하고 전화를 끊었다만, 여기서 더 어떻게 찾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수리점으로 돌아가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수영이 녀석이 점심 먹을 시간이라며 집으로 가버리자 나도 혹시나 하고 수리점에 돌아가 봤으나 달님이는 없었다. 유하가 차려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나는 먹을 것을 보자 문득 떠올라서, 접시에 밥과 찬을 조금씩 덜어다가 수리점 앞 이팝나무에게로 갔다.
나무 아래 음식을 놓으며 달님이에 대해 묻자 두 그루 나무 안에서 목신들이 자기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한다.
“그러고 보니 어린 해치님이 어째 이번에는 오래 나가 계시네 그려.”
“별 수 없지 않나. 한창 자라실 때인데 이 근방에는 먹을 것도 부족하고…”
“그렇지. 그렇지.”
“그렇다고 멀리 간들 뭐 별 거 있나. 이곳 사람들이야 다 거기서 거기라.”
뭐라는 거야? 이 목신들은. 말하는 걸 들어보니 달님이가 멀리 나가 있는 이유는 먹을 것 때문이라는 모양인데. 이 근방에 먹을 게 부족하다는 건 무슨 소리지? 유하가 밥을 안 주나? 그럴 리는 없는데. 그 수십 마리 애벌레들도 착실히 먹였던 걸 생각하면 어린 강아지 한 마리쯤 돌보는 거야 일도 아닐 텐데.
달님이 녀석 유하에게 미움 받나? 열흘씩이나 소식이 없는데 걱정하는 기색도 없는 걸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냐. 그래도 유하가 밥을 굶길 정도로 매정하지는 않잖아. 그럼 뭐야? 왜 멀쩡한 집 놔두고 바깥에서 먹을 걸 찾아 돌아다니는데.
혹시 녀석은 해치라 특별한 걸 먹는 걸까? 하지만 특별한 거라고 해도 유하라면 얼마든지 가져다 줄 것만 같은데. 유하조차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그런 걸 먹는 거야? 그러고 보니 해치는 뭘 먹고 살지?
전설 속의 해치라면 영물이니까 뭘 먹고 사는지 일일이 따지지 않지. 음…그러고 보니 나도 달님이 녀석이 뭘 먹는 걸 본 적이 없네.
‘아니, 먹는 비슷한 모습은 본 적이 있는데…’
문득 떠올랐다. 아마도 작년인 것 같은데, 요강을 잃어버렸다는 손님의 의뢰로 향랑각시의 거처에 찾아갔던 때의 일이다. 녀석은 향랑각시의 집 근처 숲에서 나무 사이에 코를 박고서 뭔가를 열심히 핥아먹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어두웠고 내 눈에는 아무 것도 안 보여서 뭘 먹었는지 알 길이 없다.
‘가만, 하나 더 있었나.’
그러고 보니 먹었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먹고 싶은 얼굴로 달려드는 모습은 본 것 같은데. 그것도 두 번이나.
한 번은 여우인 여화의 명함을 봤을 때. 또 한 번은 수호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 달님이는 여화의 명함을 보자 먹고 싶다고 졸라대며 달려들어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었지. 실제로 명함을 입안에 덥석 물기도 했고. 그리고 나를 공격하던 수호 녀석의 손을 물었던 적도 있다. 그때는 묘하다고 생각했지만 공격했다기보다 맛을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고 기억한다.
뭐야. 명함이나 손이라니. 무슨 식성이 이렇게 괴상해? 그것도 뭐 씹어 삼키는 것도 아니고 침만 묻히는 정도였으니까 실제로 명함이나 손을 먹으려던 건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녀석은 도대체 뭘 먹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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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의 외출(2)fin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목신들은 해치가 뭘 먹는지도 아나 싶어 슬그머니 물어봤으나 그들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평소에는 별 것도 아닌 내용으로 수다를 떨어대면서 필요해서 물어보면 꼭 저러지.
어쩔 수 없으니 온 국민의 개인교사 인터넷님에게 여쭤보지만 옛날 사람들이 과일과 곡식을 바쳤다는 내용이 검색되었을 뿐 해치의 주식이 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뭘까? 멀리까지 찾으러 가야 했다면 이 근처에는 없는 것일 테고. 수영이가 가르쳐 준 장소들을 지도로 찾아보아도 공통점이나 연관성은 없어 보인다. 수리점을 중심으로 사방에, 공평하게 퍼져 있다는 정도일까.
아아…역시 난 머리 쓰는 타입은 아닌 것 같아. 그냥 몸으로 때우자.
다시 밖으로 나가서, 이번에는 목신이 아니라 지나가다 만나는 모든 동물이나 신령, 요괴 따위에게 일일이 물어보기 시작했다. 수리점 앞 개울의 용신은 물론 길가의 나무, 나무 위의 새, 주차된 자동차 밑의 고양이, 다리 아래 지박령 등, 대화가 통하는 상대라면 누구에게나 말을 걸었다.
그러다 보니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묘한 시선이나 “우리 동네 요새 좀 이상한 사람이 늘었어.”같은 말을 듣게 되기는 했다. 그 늘어난 이상한 사람 중 하나는 머리에 꽃 꽂고 다니는 사신이겠지? 어쩐지 우리 형제가 이 동네 물을 흐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 시선에 아랑곳 않고 꿋꿋이 물을 흐리고 다닌 결과 가로수 위에 앉아있던 까치에게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아침나절에 한울 초등학교 근처에서 봤다오. 거 도령, 웬만하면 해치님 털 좀 다듬어 주시구려. 눈이 안 보일 지경이잖겠소.]
예….
사실 선물 받은 뒤로 내가 키우는 건 맞으니까 견주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동안 너무 신경을 안 쓴 것 같기는 해.
아침나절에 있었다고 아직도 거기 있을 리는 없지만 일단 한울 초등학교로 가보았다. 토요일이라 조용한 학교 운동장에서 공 차는 아이들이 몇 명 보일 뿐이다. 달님이 녀석은 없지만 학교 담장 아래에 모여 있는 참새들에게 물으니 두 마리가 봤다며 재잘댔다.
[아침이었소. 그렇지?]
[그렇지. 학교를 한 바퀴, 학교를 두 바퀴, 학교를 반 바퀴 돈 다음 죽림 마을로 갔소.]
[점잖게 걸어갔소.]
[걸어가면서 뭘 주워 먹었소. 그렇지?]
[그렇지.]
죽림 마을이라면 학교 바로 윗동네였다. 거기로 가는 길에 뭔지 몰라도 녀석이 먹을 수 있는 것을 발견한 모양이다.
참새들이 가리킨 길을 따라 가자 아파트 단지가 나왔다. 학교의 북쪽과 서쪽을 에워싸듯 지어진 그곳이 죽림마을이었다. 돌아다니며 달님이를 찾았지만 이번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 단지 안의 나무에 깃든 목신에게 녀석의 행적을 들을 수 있었다.
[아아, 그 어린 해치님이라면 조금 전까지 저기 계셨습니다. 저 차 밑에서 꾸벅꾸벅 졸고 게셨어요. 그러다 건물 안에서 누가 나오는 걸 보고 좋아하며 달려가셨는데 그만 그 사람이 차에 쏙 들어가 버리지 않았겠어요? 그리고는 차가 출발하니까 해치님이 차를 따라서 막 뛰어가시더라고요.]
차를 따라갔어?
[저어기로 가셨습니다.]
목신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갔지만 물론 달님이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차를 따라갔다니 상당히 먼 곳까지 가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람을 쫓아갔다는 말이야? 먹을 것을 찾아 온 녀석이 사람을 따라갔다는 건, 그 사람에게 뭔지 먹을 것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인데.
목신에게 그 사람과 그가 탄 차에 대해 좀 더 묻자 차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신 사람의 얼굴은 알려줄 수 있다고 한다. 목신은 그 말과 함께 내 앞으로 나뭇잎 한 장을 떨어뜨렸다. 아직 파랗게 생생한 잎이었는데, 그 안에 마치 그린 것처럼 사람 얼굴 모양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얼핏 보면 얼룩덜룩 물감이 묻은 것 같지만 음영을 이용해 꽤 정교하게 사람의 얼굴을 묘사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뭐, 먼저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야 하겠지만….
차를 탔으니 꽤 멀리까지 갔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달님이 녀석이 어디까지 따라갔을까. 시내라고 해도 차의 속도란 짐승과 비교할 바가 아닌데다 지치는 법도 없으니 금세 놓치지 않았을까. 하지만 달님이 녀석도 보통 개는 아니란 말이지.
나는 길을 따라가며 목신이 깃든 가로수를 만날 때마다 달님이를 봤는지 물었다. 다행히 목신들은 모두 자동차를 따라 열심히 달리던 어린 해치를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달려간 그들에 비해 나는 걸으면서 뒤를 쫓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거리는 점점 벌어졌다. 아파트 정문 앞에서 조금 전에 지나갔다는 말을 들었는데 한 시간 뒤에는 아까 지나갔다는 말을, 4시간 뒤에는 한낮에 봤다는 말을 듣는 지경이었다.
4시간 동안 차와 달님이를 쫓아 걸은 나는 이제 도시를 완전히 벗어나서 집도 건물도 거의 보이지 않는 도로를 따라 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다른 도시가 나올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나저나 달님이 녀석, 아무리 먹을 게 좋다고 이렇게까지 멀리 와버리다니 네 식탐은 어떻게 되먹은 거냐. 애초에 그냥 혼자 알아서 돌아오려니 생각하고 집에 갔으면 좋았을 걸.
이쯤 되니 불평도 생기고. 뭐 몸이 힘든 것은 아니지만 몇 시간 동안 녀석을 뒤쫓고 있자 짜증도 나고. 그러는 와중에 겨우, 멀리서부터 달님이의 기운을 읽을 수 있었다.
‘아아…살았다.’
이제 집에 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녀석은 개의 모습인 채로 웬 건물의 닫힌 문 앞에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폴짝폴짝 뛰었다 하며 안절부절 하는 중이었다. 녀석은 나를 보자 쏜살같이 달려오더니 외쳤다.
“문! 문! 문이 닫혔어!”
야, 반갑다거나 미안하다거나 그런 말이 먼저 아니냐?
“명! 명! 문이 닫혔어! 문이 닫혔어!”
녀석은 팔짝팔짝 뛰면서 내게 왔다 건물 쪽으로 달려갔다를 되풀이했다. 아까부터 서성거리던 건물의 문이 닫혔다는 말인 것 같다.
그것은 크고 단순한 모양의 콘크리트 건축물이었다. 보아하니 창고나 무슨 작업장으로 쓰던 것 같은데 낡고 지저분한데다 문은 녹슬었고 주변은 쓰레기가 쌓인 걸로 봐서 방치된 지 오래인 모양이다.
“남의 건물에 멋대로 들어가려고 하지 마. 도대체 여기까지 왜 따라온 거야?”
달님이에게 물었지만 녀석은 대답 대신 문이 닫혔다는 말만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머릿속에는 건물 안으로 들어갈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았다.
건물은 버려진 것 같지만 근처에 세워진 차는 멀쩡했다. 달님이가 따라온 차가 저것인 모양이다. 여기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도착한 지 두 시간이 훨씬 넘었을 법한데 그동안 차 주인은 저 안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달님이가 워낙 성화이기도 하고, 나도 궁금한 마음에 살짝 문에다 귀를 붙여 보았다. 조용하던 안에서 문득 돌돌돌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레 같은 것이 움직이는 기척이었다. 그 소리가 문으로 점점 가까워진다.
나는 달님이를 들어서 안고 재빨리 건물 벽을 돌아갔다.
“문! 문!”
“잠깐 입 좀 다물어 봐.”
계속 외치는 달님이의 주둥이를 잡아서 막고 있으려니 문이 열리며 커다란 드럼통이 실린 수레가 하나 나왔다. 어…그런데 저거…
내가 잠시 드럼통에 정신을 판 순간이었다. 품속에 있던 달님이가 갑자기 뒷다리를 박차더니 내 팔을 벗어나 뛰어갔다. 잡을 새도 없이, 쏜살처럼 달려간 달님이가 수레를 밀던 남자를 향해 휙 뛰어올랐다. 조그만 몸이 남자의 머리 높이까지 솟구쳤다가 놀라서 고개를 돌린 남자의 얼굴에 그대로 달라붙었다.
“달님아!”
남자가 달님이를 얼굴에 붙인 채 뒤로 쓰러지는 것을 보고 나도 놀라서 달려갔다.
얼굴을 물었어? 설마 사람을 먹는 건 아니겠지? 물론 해치가 죄 지은 사람을 보면 뿔로 받는다든가 잡아먹는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달님아, 무슨 짓…어…?”
달려가서 달님이를 떼어내려던 나는 쓰러진 남자의 얼굴을 보자 멈칫했다. 눈 밑에 달님이의 이빨 자국이 붉게 나기는 했지만 다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남자의 표정 역시 놀랐다거나 화가 났다거나 한 것이 아니었다. 어리둥절한 듯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문득 정신을 차린 것처럼 일어났다. 그러고 나서는 이제 당황해서 나와 달님이와 자신이 옮기던 드럼통을 번갈아 보았다.
달님이는 남자가 쓰러진 뒤에도 얼굴과 목 같은, 드러난 피부를 샅샅이 핥아서 뭔가 먹더니 다음에는 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점점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식사를 하는 것 같았다.
안에는 남자가 가지고 나온 것 같은 드럼통이 몇 십 개나 더 쌓여 있었다. 저 안에 뭐가 들어있을지 짐작이 가는 나로서는 오싹한 수량이다.
남자는 이제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다가 내가 말을 걸자 질문하는 대로 술술 불었다.
역시 통 안에는 유해한 화학물질이 가득 들어있는 모양이었다. 상사의 지시로 그것을 통에 담아 몰래 버리는 것이 그가 하려던 일이었다. 전에도 몇 번이나 같은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자신이 하려는 일이 두려워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것이 남자의 말이었다.
어쩌긴, 신고해야지.
별로 기대하지 않고 자수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했지만 의외로 순순히 그가 핸드폰을 꺼냈다. 정말로 참회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약간 얼이 빠진 것처럼도 보였다.
그가 전화로 이곳 위치를 알리는 동안 달님이는 기분이 좋아진 얼굴로 창고에서 나왔다. 어쩐지 배도 통통해진 것 같고.
“배부르냐?”
녀석에게 물으니까 꼬리를 흔들며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응. 응.”
“넌 도대체 뭘 먹는 거야?”
“난 나쁜 마음을 먹어.”
강아지의 모습인 달님이가 대답했다. 나쁜 마음?
“나쁜 마음을 먹어. 많이 많이 먹고 커야 해. 크면 더 많이 먹고, 더 크면 더 많이 먹어. 난 큰 해치가 되어야 하는데 조금밖에 못 먹어서 못 크잖아.”
그래서 항상 돌아다니는 거냐?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찾아서?
“내가 더 크면 말도 잘하고 힘도 세진다. 멀리 가서 많이 많이 먹고 싶은데 명이 보고 싶으니까 멀리 갈 수 없어. 명이 나쁜 마음을 주면 좋을 텐데.”
그건 좀…. 그리고 여기까지 온 것도 충분히 멀거든요.
“난 네가 작아도 좋은 걸.”
내 말에 녀석이 눈을 깜박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처음으로 태양 아래에서 달님이의 눈을 본 것 같다. 지금 보니 황갈색 털에 가려진 녀석의 눈동자는 호박처럼 노란 색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연하고 어쩐지 어둠 속에서 빛을 낼 것 같은…그래, 이름 그대로 달과 같은 눈이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서 보름달을 담고 있는 것 같은 녀석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문득 생각났다.
달은 햇빛을 반사해.
해님이와 달님이 남매를 내게 준 이는 큰 형이었다. 하늘과 땅이 열두 조각으로 찢어지면서 열두 남매가 모두 따로 흩어질 때, 큰 형은 두 마리 해치 남매를 내게 주었다. 반려도, 거느린 수하도 없이 홀로 떠나는 나를 위한 선물이었다.
해님이는 큰누이처럼 나를 보살폈고 달님이는 어린 동생처럼 재롱을 피웠다. 그들은 내내 나와 함께 있었다. 나중에 해님이는 박선생을 보호하려고 보냈는데 인간에게 보내지는 것을 내키지 않아하던 그녀는 그 일이 끝나면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겠노라 했었다. 그녀가 본래 있던 곳, 그곳은 아마도 큰 형이 있는 곳일 터다.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다.
해님이도 달님이도 본래는 큰형인 이목천왕의 수하였다. 그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눈인 태양과 달과 별…그 중 하나를 나는 지금까지 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눈을 피해 잘 숨어있다고 생각하면서.
“너는 왜 크고 싶은 거지?”
달님이에게 묻자 녀석이 코를 킁킁대며 내게 가까이 왔다.
“난 더 커야해. 훨씬 커져서 명이를 지켜줘야 해. 명이는 아직 어리거든.”
나는 해명 동자일 때도 너보다 컸다고.
하지만 너를 보낸 그에게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아직 어린 막내겠지.
나는 언제쯤, 당신만큼 커질까?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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