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176화 (176/218)

요령 소리(5)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나비의 몸을 치료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 따뜻한 기운이 넘치듯이 흘러서 어그러진 것을 바로잡고 새살이 돋게 했다. 그래서 긁힌 자국 하나 없이 깨끗한 몸으로 돌아갔지만, 그럼에도 나비는 여전히 말이 어눌하고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몸은 완전히 나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상태가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녀석은 얼이 빠진 것처럼 멍청해져서 눈을 끔벅이고 있다가 우리가 조금만 움직여도 깜짝 놀라 어깨를 떨었다.

윤병완은 이 녀석에게 무슨 짓을 어떻게 한 거야.

고작 한 나절 만에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변해버렸다. 도와주고 싶어도 내가 고칠 수 있는 것은 몸의 상처뿐이었다.

백은호가 얼굴을 찌푸리며 녀석을 두고 가자고 말하자 나비는 겁에 질려서 내 팔을 꽉 잡았다.

“백은호, 애가 겁먹잖아.”

애라고 하기에는 이제 성인으로 보이는 몸이었다. 게다가 거울을 마주보는 것처럼 나와 닮았다. 쌍둥이라도 이렇게까지 똑같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런 녀석이 넋이 빠진 얼굴로 떨고 있는 모습을 보는 기분은 복잡했다. 가여운 한편 녀석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그것이 나비 요괴에게 느끼는 감정인지 아니면 나와 닮은 부분 때문에 일어나는 감정인지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녀석이 약해진 모습은 보기 싫었다. 걸핏하면 유하에게 달려가서 고자질하거나 멋대로 경계하며 나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 약아빠지고 얄미운 녀석 쪽이 차라리 나은 것 같다.

내게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녀석을 달랜 다음, 유하와 함께 여기로 오게 된 경위를 물었다. 나비는 울상을 한 얼굴로 머뭇거리다가 더듬더듬 이야기 했다.

녀석은 놀이터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마술을 보여주면서 놀다, 한 여자아이가 신기한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을 봤다고 한다. 그 물건은 인형이었다. 그것을 가지고 있는 여자아이와 생김새도 입은 옷도 똑같은데다, 주인이 말을 할 때마다 인형도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하는 흉내를 냈다.

손을 넣어서 움직이는 것도 줄로 조종하는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 움직인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여자아이는 그것을 유혹하듯 보여주며 말했다.

- 네 머리카락을 몇 가닥 줄래? 그러면 인형을 빌려줄게.

나비는 당연히 승낙했다. 그러나 여자아이는 나비의 머리카락을 받자 다시 말했다.

- 네 머리카락을 몇 가닥 줄래? 그러면 인형을 줄게.

이번에는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준다는 말에 나비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머리카락을 뽑았다. 두 번째로 머리카락을 받은 여자아이가 다시 말했다.

- 네 머리카락을 몇 가닥 줄래? 그러면 인형이 되게 해줄게.

이상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비는 자기도 모르게 머리카락을 내밀었다. 그것을 받은 여자아이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은 것까지가 나비의 기억이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유하와 함께 이곳으로 끌려온 뒤였다.

“우리는 캄캄한 곳에 갇혀 있었어. 그런데 유하가 갑자기 커다랗게 변했어. 키도 커다랗고 손도 여러 개나 되고 이러엏게 커져서…벽을 부수고 밖으로 도망쳤어. 도망치니까 무서운 남자가 우리를 보고 호랑이가 되어서 쫓아왔어. 유하가 나무들을 휘어서 호랑이를 잡으니까 무서운 남자는 작은 새로 변해서 빠져나와 다시 우리를 쫓아왔어. 우리는 막 도망쳤는데…”

말하는 나비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때의 기억을 되돌리자 두려움이 함께 돌아왔는지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나를 붙잡은 손이 바르르 떨었다. 분명 조금 전 발견되었을 때의 처참한 모습이 된, 그 일을 떠올린 것이었다.

“유하는? 나무로 변해서 어디에 있는지 기억해?”

그 물음에 나비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흰자위 안에서 동그란 모양을 드러낸 검은 홍채가 내가 아닌 다른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녀석이 고개를 저었다.

“몰라. 몰라. 나는 아무 것도 몰라. 몰라. 몰라. 몰라.”

고장나서 자꾸만 같은 구간을 반복하는 것처럼 나비가 되풀이해 말했다.

“몰라. 몰라. 몰라. 몰…”

말하던 녀석의 머리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몸이 함께 쓰러지는 것을 백은호가 덜미를 낚아채서 잡았다. 나비는 기절한 것처럼 잠들어 있었다.

“네가 한 거야?”

백은호를 쳐다보며 묻자 그가 귀찮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더 들어도 소용없으니 재워두는 편이 낫습니다. 데려가면 방해가 될 것이 분명하지만, 두고 가시지는 않겠지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

백은호는 혀를 쯧 차며 녀석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여우 요괴의 사이한 요기가 그 손에서 뭉클뭉클 새어나왔다. 뭘 하려는 건지 물을 사이도 없이 그의 손 밑에서 나비 녀석의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줄어들었다. 그러더니 사람의 모습이었던 녀석이 본래의 정체 그대로, 나비가 되어 버렸다.

백은호는 자신의 셔츠 앞자락을 찢어서 뜯어내더니 네모나게 잘린 천 위에 나비를 올려놓았다. 그 다음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나비의 몸이 스며들듯이 천 안으로 가라앉더니 마치 세밀화를 그린 것처럼 천에 나비의 그림이 남았다. 마술을 보는 것 같았다. 아니, 요괴의 술법이니 요술이라고 해야 할까.

“꽃향기를 맡으면 그림에서 나올 겁니다. 천이 찢어지거나 상하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나비가 스며든 천을 내게 주며 백은호가 말했다.

“응. 고마워, 백은호.”

이봐, 진심으로 한 말에 불편한 표정 짓지 마라.

“나무가 된 부인을 어떻게 찾을지나 궁리하십시오.”

백은호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의 말이 아니라도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다. 게다가 고민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그러나 부인을 찾으면 윤병완도 알게 될 테니…”

백은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것이 문제였다. 유하를 찾은 다음 얼마나 빨리 여기에서 나갈 수 있는가. 윤병완의 손아귀 안에 있는 것과 같은 이 상황에서 벗어날 길을 먼저 확보해야 했다. 그러자면 우선 환과 연락을 해서…

[들었어. 들었다.]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들었어. 들었어. 그 여자는 나무가 되었대.]

[들었다. 들었다. 그 여자는 나무가 되었구나.]

소곤소곤. 바람이 나뭇잎을 간질이는 것처럼, 풀잎이 서로서로 비비는 것처럼, 속삭여 주고받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도령이 나무를 찾아가겠지.]

[도령이 여자를 찾아내겠지.]

[여자를 데리고 도망가겠지.]

[문을 열고 나가겠지.]

[어떻게 한담?]

[어떻게 막을까?]

[오호라.]

[오호라.]

속삭이는 목소리가 탄성을 냈다. 뭔가 좋은 생각을 해냈다는 듯이. 그리고 그 생각이 떠오른 것을 기뻐하는 것처럼 웃었다. 웃음소리란 좋은 것일 텐데, 그것을 듣는 내 등허리가 어쩐지 서늘해졌다.

[태우자.]

[태워버리자.]

[나무들을 태우자.]

[모두 태워버리자.]

뭐?

[나무도 태우고 풀도 태우고.]

[꽃도 태우고 집도 태우고.]

[태워. 태워버려.]

[모두 태워버려.]

그 속삭이는 목소리가 땅속에서부터 불꽃을 끌어낸 것처럼, 갑자기 땅바닥이 뜨끈해졌다.

[태워라. 태워버려라.]

[나무도 여자도 태워버려라.]

아니, 뜨끈한 정도가 아니었다. 뜨거워지고 있다. 흙에서 하얀 훈김이 피어올랐다. 한증막에 들어온 것 같았다. 흙속의 습기가 안개가 되어 피어오르고 나자 발밑의 흙은 이제 바삭바삭하니 말라가며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풀들이 누렇게 시들었다가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나무는 당장 시들거나 하지 않았지만 이대로 계속되면 뿌리부터 말라붙어버릴 것이다.

백은호가 팔을 뻗더니 요기가 뭉클거리는 손을 허공에 뿌렸다. 하늘에서 바람이 일었다. 바람은 땅에서 피어올라 안개가 된 습기를 모아들였다. 그것은 마치 구름처럼 뭉쳤다가 이윽고 굵은 빗방울을 후두둑 떨어뜨렸다. 빗방울이 마른 땅과 나무를 적셨지만 미봉책일 뿐이다. 게다가 그의 힘이 미치는 곳은 눈에 보이는 장소뿐이었다.

유하가 어디에 있을지 몰랐다. 어디에서 나무의 모습을 하고 타는 듯한 열기에 괴로워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아찔해졌다. 뱃속에서부터 걷잡을 수 없는 뭔가가 꾸역꾸역 밀고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올라와서 몸을 채우고, 부풀리고, 더 갈 곳이 없어지면…

“도령!”

백은호가 외쳤다. 그를 보자 사람의 모습을 한 주제에 머리털이 하얗게 빛바래고 잘생긴 얼굴 끝이 뾰족하니 길어지려고 한다. 귀가 쫑긋해졌나?

“도령! 정신 차리십시오!”

그가 주춤주춤 물러나며 말했다. 어째서 뒤로 피하는 거야, 백은호. 여기에 뭔가 무서운 거라도 있어? 여우 요괴가 무서워할만한 어떤…그런 게…뭐였지…?

꾸역꾸역 올라오던 것이 멈칫거렸다.

문득, 어쩐지 공기가 차가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숯불 위에 서있는 것처럼 뜨거웠는데. 어째서 내 발밑은 하얗게 서리가 끼어 있는 거지? 아니 그보다는 뭔가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은데….

아냐. 그런 건 됐어. 그런데 이 몸이, 어쩐지 불편한데. 무겁고. 갑갑하고. 꼭 사람이 된 것 같잖아. 내가 인간 아이들과 놀려고 잠시 사람의 몸에 들어간 걸까? 아아 이제는 다 놀았으니 벗어버려야겠다. 인간의 몸 안은 오래 있기엔 갑갑해…

“악!”

발목을 꿰뚫는 듯한 고통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눈앞에 번쩍, 불꽃이 튄 것 같았다. 내려다보자 하얀 여우 한 마리가 내 발목에 이빨을 박아 넣고 있었다.

“너…백은호? 무슨 짓이야!”

녀석에게 소리치고 난 다음에야 깨달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며 아지랑이처럼 오르는 열기 속에서 바짝바짝 말라가는 나무들이 보였다. 유하! 유하를 찾아야 하는데!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이제 아예 불꽃과 같았다. 낙엽 사이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매캐한 냄새가 퍼졌다. 타고 있다. 낙엽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사방에서 나무들의 비명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대로 가면 정말 온 산이 다 타버릴 거야.

하지만 유하가, 유하는…

“유하!”

방법이 없었다. 소리를 지르는 것 말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유하! 유하아!”

내 목소리가 들릴까? 하지만 들린다고 해도 대답할 수 있을까? 그녀는 나무인데.

“유하! 유하야!”

어쩌면 그녀는 작은 나무나 풀 같은 것으로 변해서, 이미 뜨거운 열기에 시들어 쓰러진 것이 아닐까?

“유하아아아!”

목소리가 들리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천왕의 힘이 아니라 내 마음의 바람이었다.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들어줘. 내게 대답해 줘. 너를 찾게 해줘. 나를 불러 줘. 내게로 와줘.

짤랑…

그리고 소리가 들렸다.

짤랑…

맑은 금속성이었다. 얇은 쇠 안에서 작은 쇠구슬이 구르는 소리. 그런 소리가 짤랑 짤랑 어디선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것은 귀에 들리는 소리가 아니다. 마치 상여 앞을 걷는 요령잡이의 종소리처럼 혼을 부르는 소리였다.

이리 와요. 여기예요.

짤랑…짤랑…

소리가 나를 이끌었다.

내가 걸었는지 달렸는지 혹은 날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에 그녀가 있었다. 가늘고 긴 가지를 우수수 흔들며 타는 듯한 열기 속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나무이므로 말하지 못했다. 괴로운 신음도 울음소리도 낼 수 없었다. 나는 딱딱한 둥치를 끌어안았다. 나무속에서 두근 두근, 심장이 뛰었다.

팔 안에서 딱딱했던 나무의 몸이 천천히 부드러워졌다. 하늘하늘 흔들리던 가지가 내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조금 힘을 주어 내 목을 당겨 안았다.

“늦어서 미안해. 괴로웠지.”

유하는 대답하는 대신 내 목덜미에 파묻고 있던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하지만 내게 닿아있는 몸이 가늘게 떨고 있는 것을 느꼈다.

“지금 바로 돌아가…”

“도령!”

내 몸이, 유하와 함께 떠밀려 옆으로 쓰러졌다. 우리가 서 있던 그 자리로 화살 같은 바람이 가르고 지나갔다. 아니, 일부는 지나갈 수 없었다. 우리를 밀어내기 위해 뛰어들었던 백은호에게 부딪친 것이다. 고작 바람…아주 잠깐 그렇게 생각했지만, 백은호는 그것을 피하게 하려고 우리를 떠밀었다. 고작 바람.

‘아니야.’

그런 것이 아니었다.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지만 바람 같은 것이 아닌 뭔가 질기고 두려운 것이, 백은호를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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