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181화 (181/218)

서천 만물수리점 - 반달빗(3)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사실 혼자가 낫다고 말해봐야 안 통하겠지. 같이 가봐야 이것저것 잔소리만 해대서 불편하고 도움도 별로 안 되고 결정적으로 애초에 그 물건을 찾을 마음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면 안 되겠지. 수호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어디에서 찾으려고요?”

“너는 어디에서 찾아볼 생각이었는데?”라는 질문이 되돌아올 위험을 감수하며 수호가 물었다. 그러나 해명은 어깨를 으쓱 추어올렸다.

“글쎄다. 소중한 보물을 어디에 숨겼을까. 나라면 어디 떼어놓지 않고 가지고 다니겠지만 말이야. 요괴가 있던 집은 확실히 살펴봤었지? 느낌이 어땠어? 뭐 이상하거나 특별한 점은?”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수호는 핸드폰을 건넸다. 해명이 그 안에 있는 사진을 들여다보는 동안 수호는 영숙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천천히 사진을 넘기며 끝까지 본 해명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데 손님이 말한 물건들 말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놓았다던. 왜 그랬을지 짐작 가는 데 있냐?”

“청군여귀는 몸이 날래서 높은 나무 위로 잘 올라가요. 폐가에서도 거문고를 탈 때가 아니면 다락같은 데에 숨어있고요. 그런데 아파트는 다락이 없잖아요. 옷장 위에 숨어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몸도 작으니까 엎드리거나 웅크리고 있으면 의자라도 밟고서 일부러 보지 않는 이상 몰랐을 거예요. 집주인이 다친 후로는 며칠 동안 비어있다시피 했으니 싱크대 위 칸에서 지내지 않았을까요? 다락과 가장 닮은 데가 거기니까.”

“그런 곳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조그만 거야?”

뜻밖이라는 듯이 해명이 물었다. 수호는 새삼 청군여귀에게 공격당할 때가 생각나서 미간을 모았다.

“죽어라 도망치던 중이라 얼마나 작은지는 못 봤네요. 보통 키가 1미터 내외라고 하니까 대여섯 살이나 되는 나이의 아이랑 비슷하겠지만, 작아도 아이는 아니고요. 요술로 사람을 현혹해서 큰 모습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다고 해요. 어쨌든 칼자국이 난 곳을 봐서는 상당히 작아요.”

수호의 말에 해명이 새삼 출입문을 찍은 사진을 찾아보았다. 바닥으로부터 40센티 가량 올라온 곳에 사선으로 난 칼자국이 있었다. 일부러 아래를 공격한 것이 아닌 이상 거기가 가슴 높이일 터다.

“그렇게 작더라도 불편했겠네.”

싱크대 사진을 보며 해명이 중얼거렸다. 요괴가 불편한 게 대수야. 사람이 죽을 뻔했는데.

그러나 수호는 그의 쓸데없는 오지랖을 공박할 마음이 없었다. 저쪽은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같이 사는 것들도 도깨비에 어린 해치에다, 자주 만나는 친구도 요괴이거나 전에 요괴였던 사람이고. 심지어 여자 친구도…

“애초에 주인 있는 집으로 들어간 게 잘못이잖아요.”

머릿속에서 이어지는 생각을 잘라내며 수호가 말했다.

“그렇지.”

해명이 의외로 순순히 시인했다. 요괴에게는 요괴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거나 그런 말을 들을 줄 알았던 수호가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런데 어째서 불편할 줄 알면서 사람이 사는 집으로 들어간 걸까. 원래는 그런 요괴가 아니라며?”

“그건 아마…”

질문을 받자 반사적으로 대답을 생각해 낸 수호가 입을 열었다가 문득 멈칫거렸다. 본래 사람이 사는 집에 잘 나타나지 않는 청군여귀가 굳이 그 집으로 간 까닭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 사정이 뭔가는 굳이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청군여귀에게 귀찮음을 무릅쓰고 안 하던 행동을 하게 만들 만한 중요한 사정은 하나 정도였다.

“아마 사정이…청군여귀에게 생명의 상징인 그 물건이, 그 집에 있어서일 가능성이 높지요.”

결국 해명이 할 거라고 생각한 말을 자신이 하게 되자 싫은 얼굴로 수호가 대답했다.

“역시 그렇지? 그럼 가볼까?”

조금도 도움이 안 되는 사장이 즐거운 얼굴로 말했다.

잠시 후 수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두 사람은 청군여귀가 나오는 문제의 아파트로 향했다. 가는 도중 해명은 수호가 찍어 놓은 사진을 다시 하나하나 보면서 뭔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청군여귀는 어떻게 태어나는 거지?”

사진을 보던 해명이 문득 물었다. 수호는 힐끗 그를 돌아보았다. 요괴는 보통 태어난다기보다 만들어지지만…

“모르죠. 부모를 통해 태어나는 요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동물이나 곤충형이고, 인간을 닮은 것 치고 태어난다든가 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귀태나 계룡 같은, 결국에는 사람과 별로 구분이 안 되는 타입 말고는 인어 정도일까. 청군여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알려진 게 없네요. 그런데 그게 왜 궁금해요?”

“아냐.”

부드럽게 웃으며 그가 대답했다. 아니라는 건 대답하기 싫다는 말이다. 본인이 말하기 싫다는 것을 일부러 들을 생각은 없지만 가끔 그럴 때마다 수호는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저 남자는 10년 동안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가도 이따금 두꺼운 벽처럼 느껴졌다. 그럴 때면 수호는, 겉은 어른이면서 철없는 애처럼 보였던 예전의 그가 그리웠다.

예전의 그도, 예전의 수리점도. 그리고…

“지금 몇 시야?”

아파트 안으로 들어서자 해명이 차창 밖을 내다보며 물었다. 시간 정도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확인하라고 말해봐야 “알았으니까 몇 시야?”라고 대꾸할 사람이다.

“11시 45분요.”

“연주하는 소리가 안 들리네?”

“저한테 칼춤 추느라 거문고는 흥이 깨졌나 보죠.”

“그럼 지금 가도 숨어있을까? 요괴가 맘먹고 숨으면 찾기 힘든데. 그때 그냥 나오지 말고 말이라도 걸어보지 그랬어?”

“전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누구랑 달라서요.”

수호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해명은 그 말에 피식 웃고 말았지만 수호는 진심으로 불평했던 것이다.

겉보기에 멀쩡한 저 남자가 신화나 전설에서나 나오는 해명도령이자 천왕이라고 하면 아무도 안 믿겠지. 물론 인간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초보자 장비 세트 입었다고 만렙 유저가 1레벨로 떨어지는 건 아니다. 분명 인간의 몸이지만 때때로 그는 터무니없는 힘이나 비상식적인 능력으로 수호를 놀라게 했다.

도술을 쓸 수 있다는 점을 빼면 보통의 인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수호에게 그는 인간보다 요괴에 가깝게 느껴졌다. 게다가 가끔은 저렇게 요괴 같은 말을 할 때도 있었다.

부적은 물론 무기 하나 없이 칼 든 요괴를 상대로 도망치는 것 말고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적인 생각은 분명 아닐 터다. 그런 점에서는 스승님과 비슷한 데가 있다고 해야 할까.

본래 여우 요괴였다가 인간이 된 자신의 스승을 떠올리고 수호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아파트 단지는 고요한 가운데 건물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 소리만 날카롭게 들려왔다. 며칠째 눈과 비가 섞여 몰아치는 추운 날씨라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로 들어서자 낮은 벽을 넘어 휭 하니 몰아치는 바람에 두꺼운 옷자락까지 펄럭였다.

집안은 아까와 똑같았다. 거실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약간은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 텅 빈 거실을 보고 해명이 코를 찡긋거렸다.

“이거 봐요.”

수호가 출입문에 난 흠집을 가리키자 해명은 허리를 숙이고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와, 이거 거의 뚫어버렸네.”

두꺼운 철문에 난 칼자국을 만져보며 해명이 혀를 찼다. 그 칼에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은 안 하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수호는 참았다. 어린아이나 여자에게는 약하면서 청년 이상의 남성에게는 미묘하게 무관심한 천왕님이었다.

두 사람은 집안을 돌아다니며 청군여귀가 숨겨놓았을 뭔가를 찾아다녔다. 물론 찾는 쪽은 주로 해명이었다.

수호는 이미 집안을 구석구석 보기도 했고, 영안이 어두운 편이라 본들 보통 물건과 구분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수행을 해온 덕분에 기운이나 겨우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도술을 쓰면 되겠지만 멀쩡하게 잘 보이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기력 낭비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슬슬 돌아다니며 요괴가 앉아있었을 자리에 가본다거나 베란다에서 바깥을 내다본다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해명이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뭔가 발견하는 기색은 없었다. 요괴는 정말로 맘먹고 숨은 것 같았다. 저러다 말겠지. 뭐 용케 발견하면 좋은 거고.

수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이 쌓인 아파트 주차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차장 건너편에는 자그맣게 놀이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놀이터라야 모래바닥 위에 그네 두 개와 벤치 세 개가 전부였다.

눈이 쌓인 그네가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거렸다. 녹슨 쇠고리의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네가 자그맣게 보이는 거리에다 바람소리도 심하고 베란다 문은 닫혀 있는데 그네 흔들리는 소리가 들릴 리가…

거기까지 생각한 다음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호는 눈동자만을 움직여 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보았다. 시야 가장자리로 베란다 건조대 위쪽에 초점이 흐려 잘 보이지 않는 푸르스름한 뭔가가 들어왔다. 그것으로부터 눈을 떼지 않으며 그는 천천히 왼손을 움직였다.

수리점에서 나오며 부적은 챙겨뒀지만 주머니 속에 있었다. 당장 쓸 수 있는 것은 소매 안에 접어둔 한 장 뿐이다. 손끝으로 부적 끄트머리를 잡아 끌어내리자 반으로 접힌 부적이 손바닥까지 내려왔다.

그것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서 언제든 쓸 수 있게 만들고 나서야 그는 조금 더 대담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요괴는 건조대 위에 올라앉아 자주색 저고리에 풍성하고 파란 치마를 부풀리고서 사뭇 도도하게 이쪽을 내려다보았다. 키는 1미터에도 미치지 않지만 어린아이의 짧은 몸이 아니다. 어른이 된 여성의 비율이라 움직임 없는 그녀의 모습은 정교하게 만든 밀랍인형처럼 보였다.

거문고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치마 너머로 삐죽이 내민 칼집의 끄트머리가 보인다. 아까 그를 공격했던 것은 바로 저 안에 든 칼일 터다. 수호는 칼에서 요괴의 얼굴로 시선을 옮기고 그녀의 무표정한 눈을 쏘아보았다.

아까는 아무 것도 없어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는 숨을 고르며 요괴의 공격을 기다렸다.

좀처럼 시선을 돌리지 않는 수호의 태도에 신경이 거슬린다는 듯, 요괴가 눈썹을 찡그렸다. 치마 위에 얹어져 있던 손이 움직이며 저고리가 바스락거렸다. 칼을 잡는가 하고 수호가 신경을 곤두세우는 순간

“아무래도 집안엔 없는 것 같은데?”

해명의 태평한 목소리가 거실에서 울렸다. 서로 노려보고 있던 요괴와 인간은 동시에 움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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