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185화 (185/218)

서천 만물수리점 - 시계 소리(2)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수호는 얼떨떨한 채로 스승의 집에서 나왔다. 아직도 허락을 받은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스승은 온화하여 화를 내지도 서두르지도 않는 사람이었으나 수련에 있어서는 엄격했다. 최초에 그 엄격함은 수련 자체에만 머물렀다. 하지만 호흡법만을 수련하는 시기가 끝나고 좀 더 다양한 술법을 배우게 되자 태도와 행동은 물론 생각과 본능까지도 통제하도록 가르쳤다. 교육에 관한 한, 그는 엄격한 것을 넘어 위협이나 속임수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는 했다.

그런 스승이 줄곧 강조해온 것은 힘의 사용에 대한 한계였다. 세계의 규칙을 읽는 법을 배우고, 그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게 움직이는 것은 물론 규칙 안에서도 최소한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도록 했다.

그런데 다른 술사와의 싸움이라는 것은 수호에게 최대의 효율은 고사하고 규칙 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가도 불확실한 문제였다. 이것을 스승의 신뢰로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아직은 예상하지도 못할 어떤 교육을 위해서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하긴 짐작은 의미가 없나.’

수호는 피식 웃었다. 말해주지 않는 스승의 생각을 알아내려고 애쓰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보다는 이제부터 싸움을 대비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어쨌거나 상대는 도사.

물론 제대로 된 도사일 리는 없지만.

염매술, 보통은 염매고독법이라고 해서 고독술과 함께 묶어 말하는 이 두 가지 술법은 그 방식이 잔인해서 성공할 수 있는가와 별개로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거기에 희생되는 생명의 값을 도사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술법이었다.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대개는 저주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 되돌아오는 보응은 술사를 망칠 수도 있었고, 저주의 경우에 실패하면 자신은 물론 가족이나 후대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런 것을 감안하고도 손댔다면 분명 피 맺힌 한이나 뼈에 새긴 분노를 이기지 못한 경우다.

하지만 저주와 상관없이 욕심으로 염매술을 이용하는 자들도 있었다.

염매란 일종의 원혼이다. 그것도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비참한 정혼(精魂)이었다. 그것을 만드는 사람은 젖을 뗄 무렵의 어린 아이를 훔쳐 와 죽지 않을 정도로만 굶기면서 몸을 마르게 만든다. 동시에 아이가 먹지 않고서는 못 견딜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조금씩 줘서 길들였다.

아이의 몸이 뼈와 가죽만 남을 정도로 바짝 마르면 대나무로 만든 통 안 깊숙이, 맛있는 음식을 한 움큼 집어넣어 유인했다. 그러면 아이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먹기 위해 머리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통 안에 자신의 몸을 구겨 넣으며 들어간다. 그때를 노려 술사는 아이를 단숨에 칼로 찔러 죽였다.

그러나 아이의 정혼은 자신이 죽은 것도 모르는 채, 오직 음식에 대한 일념으로 통 속에 머물고 그것을 봉인한 것이 바로 염매다.

그 과정의 참혹함이나 어린아이의 고통을 이용한다는 끔찍한 발상만으로 이미 인간의 길을 벗어난 사람이 아니면 시도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하물며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버는 자들이 염매술사였다.

그들은 염매가 들어있는 대나무 통을 가지고 부유한 집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리고 아이의 영혼을 이용해 사람들이 병에 걸리게 만든다. 술사가 주는 음식에 유인되어 아이의 혼은 시키는 대로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또 돈을 받고 나면 다시 고쳐주었다.

한 때 그런 염매술사들이 성행하여 관에서 단속을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문헌이 남아있을 정도니 사람의 욕심은 사람을 사람 아닌 것으로 만드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참혹한 짓을 하는 자가 깊은 도를 깨우치고 정진하여 자신을 다스릴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술사로서의 능력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문제는 그가 가지고 있는 염매다.

술사에게 길들여진 그 어린 원혼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을지 몰랐다.

영적인 힘으로만 따지면, 성인의 혼과 아이의 혼은 질적으로 달랐다. 무당 중에서도 어린아이의 혼이 실린 새타니가 특히 영험한 것은 그런 이유다. 세상에 물들지 않고 태어난 본래의 모습에 더 가까울수록 그 혼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졌다.

말하자면 수호의 상대는 술사보다 염매였다.

그러니 싸울 준비도 빈틈없이 해야 하겠지만 자신을 보호하고 상태를 단단하게 유지하는 것도 필요했다. 그러나 시간이 별로 없었다.

병자가 생긴 곳은 걸어서 20분 안에 돌아다닐 수 있는 범위였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비슷한 환자가 짧은 시간 안에 몇 명이나 생기면 누군가는 의심을 한다. 이번의 경우도 그래서 수호에게까지 알려진 것이었다.

그런 상황을 피하려고 보통은 시간과 거리를 두고 일을 벌이는 법이지만 이 술사는 달랐다. 성급하다 싶을 정도로 위험을 무릅쓰고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해치우고 떠날 생각인 것이다. 그렇다면 수호에게도 시간이 별로 없는 셈이었다.

환자의 가족과 접촉해 병을 고쳐주고 돈을 받는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가족들이 현대 의학의 힘으로 환자를 고칠 수 없다고 판단할 때까지의 시간 정도다.

얼마나 걸릴까. 의사가 환자들을 진찰하고 원인을 알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들게 되기까지는. 그리고 괴로운 가족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병자를 고치려고 하게 되기까지는.

거기에 걸리는 시간이 수호에게 주어진 시간이었다.

염매술사를 상대하기 위해 수호는 먼저 집에서 나와 수리점에 잠시 머물기로 했다. 방해받지 않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을 조용한 장소가 필요했다. 또 해명 도령이 있는 그곳은 어쨌든 천왕의 거처인지라 삿된 것들로부터 격리되어 좋은 기운이 흘렀다. 깊은 산속보다도 오히려 나았다.

“무슨 일인데? 응? 엄마랑 싸웠냐? 무슨 사고치고 도망 온 건 아니지? 진짜 말 안 해줘? 수영이한테 물어본다?”

가끔 한 번씩 들여다보며 묻는 해명 말고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수련할 장소가 필요한데 산 속까지 들어가기 싫어서 이리 온 거라니까요. 신경 쓰이면 그냥 산으로 갈게요.”

결국 수호가 정색을 하고 말한 다음에야 해명은 귀찮게 하지 않았다.

호흡으로 심신을 가다듬고, 때와 시를 가려 부적을 쓰고, 한편으로 수민과 연락해서 학생들의 집안에 변화가 생겼는지 확인하면서 그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치 산에서 수행하는 것처럼 음식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생식을 하고 물을 가려 마셔서 며칠 사이 본래도 갸름했던 얼굴은 더욱 여위었다. 대신 보기에도 눈이 맑아지고, 수호 자신은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끼게 되었다.

수민으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그런 생활을 한지 이레째 되는 날이었다.

“미현이가, 아버지가 입원했다는 학생인데요. 오늘 퇴원하셨대요. 그리고 태운이라고, 아예 안 나오게 된 학생이요. 그 애 어머니가 다음 달부터 다시 스터디 모임에 합류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병자들이 낫고 있다. 염매술사가 병을 고쳐주고 돈을 챙기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 집 더 있었지? 거기는 어때?”

“윤상이 어머니는 아직 병원에 계신 것 같아요. 애가 걱정되어서 그런지 요새 풀이 팍 죽었더라고요.”

“그 병원 어디야? 혹시 몇호실인지도 알아?”

수호는 수민의 대답을 듣자마자 외투를 걸치고 수리점을 나섰다. 필요한 것은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남은 것은 염매술사를 찾아내는 일 뿐이다.

윤상의 어머니는 도시 외곽에 세워진 큰 규모의 요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녀가 입원한 병동으로 가자 간호사가 명부를 확인한 다음 안내했다.

방은 독실이었다. 자주 발작을 일으키는지 침대에 묶인 환자의 몸이 딱하게 여위어 있었다.

‘아직 온 것 같지는 않고…’

주차장에서부터 입원실까지 쭉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수호는 조금 안심했다. 요기의 흔적은 없었다. 문지방 위에는 광고 스티커 뒷면에 숨긴 부적을 붙이고, 침대 밑에도 부적을 한 장 숨긴 다음 환자의 머리맡에 인형으로 위장한 괴뢰까지 남겨두고 수호는 병실을 나왔다.

이제부터는 기다려야 했다.

지금쯤 비슷한 환자들을 감쪽같이 고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윤상의 가족도 틀림없이 염매술사와 접촉할 터였다. 환자를 고치기 위해서 염매술사는 반드시 이 병원으로 온다. 수호는 그 때를 노렸다.

차를 병원에서 빼내 근처 길가에 세워두고, 그 안에서 지루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수리점에서보다 고달픈 시간이었다.

먹을 것과 물을 약간 챙겨왔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니 아껴야 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병실에 붙여놓은 부적과의 연결이 끊어지니 잠시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자동차 뒷좌석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하듯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생각보다는 빨리, 그 시간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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