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만물수리점 - 시계 소리(3)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기다리기 시작한지 하루가 조금 지난 후였다. 그러니까 다음 날 어두워질 때쯤이다.
수호는 차 뒷좌석에 잠시 몸을 눕히고 눈을 붙이고 있었다. 캄캄해지니 슬슬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잠결에 실린 정신이 무념과 몽상 사이를 부유했다.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아득하니 먼 곳에서 날아왔다. 히터 때문에 시동을 걸어둔 차가 나직이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섞여 뭔가 들렸다. 채칵, 채칵.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짧게 끊어지는 소리였다.
‘시계…’
그 소리를 들으며 수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다. 그런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고 있다니 이상했다. 차 안에는 시계가 없는데….
수호는 눈을 껌벅이며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았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아주 작은 불빛이었다. 그것이 허공에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불빛 하나가 그 원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채칵. 채칵.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났다.
지금은 이렇게까지 어두워질 시각이 아니라는 것도, 차 안에는 시계가 없다는 것도 잠시 잊어버리고 수호는 그 움직임을 따라 눈동자를 굴렸다. 채칵. 채칵. 녹색의 작은 불빛이 같은 색의 불빛을 따라 뱅뱅 돌며 원을 그리는 모습일 뿐인데 어쩐지 거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끝없이 맴도는 불빛을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채칵. 채칵.
소곤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가볍게 토닥이는 것도 같은 소리에 그는 멍하니 잠겼다.
채칵. 채칵. 채칵.
한 번에 한 칸씩. 푸른 불빛이 자신이 되어 원을 따라 도는 것 같았다.
채칵. 채칵. 채칵. 채칵.
언제까지나…끝없이…
푸른 불빛이 되어 어둠 속을 한 발씩, 한 발씩 무심히 걷는다.
채칵. 채칵. 채칵. 채칵. 채칵…
갑자기 소리가 멈췄다.
‘어…?’
소리와 함께 한 걸음을 디디려던 수호가 멈칫 섰다. 다시 채칵 채칵 소리가 들려왔지만 리듬이 흐트러진 순간 수호의 정신은 맑게 돌아와 있었다.
‘속임수에 걸렸다.’
오싹한 한기가 등을 쳤다. 아니, 등만 차가운 것이 아니다. 온 몸에 찬 공기와 바람이 느껴졌다. 위기감이 살갗을 간질였다.
“찔러라, 석.”
그가 나직이 명령했다.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옆구리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눈이 번쩍 뜨였다. 동시에 바로 앞으로 차 한 대가 쌩하니 지나갔다. 그는 인도와 차도의 경계에 서 있었다. 병원에서 좀 떨어진 길가였다. 도로가 곧고 통행이 별로 없어서 차들이 마음 놓고 달리는 곳이었다.
주차한 곳에서부터 걸으면 3분쯤 걸리는 거리다. 잠들어 있는 것과 같은 상태로 여기까지 와버린 것이다. 한 발만 더 걸었다면 차도로 내려갔을 터였다.
그는 자켓 주머니에서 손때가 묻어 반질거리는 돌멩이를 꺼냈다. 호두만한 크기의 차돌이었다. 표면에 붉은 색으로 진언을 적어 넣고 위급할 때 괴뢰로 사용하는 그의 오래 된 무기다. 방금 그의 허리를 찔러 환각에서 깨어나게 만든 것도 이 돌을 이용한 것이었다.
‘이렇게 나오시겠다?’
요양원 쪽을 돌아보며 수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염매술사란 이런 것이라고 드디어 체험한 셈이다. 시작부터 허를 찔려 당할 뻔했다는 생각보다,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상대에게 노기가 돋았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요양원을 향해 걸었다. 상대는 아직 근처에 있었다. 자신을 정확히 지목해 술법을 걸어왔다면 이미 병실에 들어갔었다는 뜻이다. 거기에서 부적이나 괴뢰를 발견하고 반대로 이쪽을 찾아낸 것이다. 그 정도는 각오한 바였지만 이렇게까지 쉽게 추적당한 것에는 수호도 약간 놀랐다.
이것은 술사의 실력일까, 아니면 염매의 능력일까.
병원으로 다가가 걸으며 병실에 심어 놓은 부적과 괴뢰의 기운을 읽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잠시 연결이 끊어졌었지만, 가까이 가자 부적 두 장의 기운이 읽혔다. 괴뢰는 거기에 없었다. 보란 듯이 고의로 내놓은 물건이었으니까 분명 술사가 발견하고 치웠을 것이다.
‘아직 부수지는 않았어.’
자신을 찾아내기 위해 가지고 나갔을 것이다. 그것을 이용해야 했을 테니까 당장 없애지는 않았겠지만 술법이 조금 전 실패한 것을 알았다면 역추적을 막기 위해서라도 버리고 떠나거나 부숴야 했다. 그러나 아직 아니다. 어쩐지 괴뢰는 무사했다. 뿐만 아니라 위치도 점점 명확해지고 있었다.
‘버리고 떠난 걸까?’
아니면 괴뢰를 남겨서 자신을 유인하려는 걸까. 이대로 찾아가도 괜찮은 걸까. 수호는 기운을 따라 걸으면서 잠시 고민했다.
괴뢰가 있는 곳은 요양원 뒤편의 산이었다. 요양원과 가까운 언덕배기 쪽은 산책길로 조경되어 공원 같은 분위기가 났지만 거기에서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길도 없는 산속이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관목의 앙상한 가지와 썩어가는 낙엽을 밟으며 수호는 천천히 이동했다.
거의 가까이 가는 동안 괴뢰는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괴뢰를 들고 있는 남자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호는 멀리서도 그의 깡마른 얼굴과 묘하게 번득이는 눈을 알아볼 수 있었다.
“영 맹탕은 아니었네.”
수호가 다가와서 10미터쯤 거리를 남기고 멈춰 서자 그가 말했다. 볼이 홀쭉하게 들어간 얼굴에 비웃음인지 감탄인지 모를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이는 40대 후반쯤으로 보였다. 후줄근한 야상점퍼에 짙은 회색의 헤진 바지를 입고 있었다. 지저분한 운동화도 어깨에 멘 낡은 가방도 그렇고 부자들에게 사기 쳐서 뜯어낸 돈은 다 어디에 쓰나 싶은 몰골이었다.
그가 들고 있던 인형을 수호에게 휙 던졌다.
“아직 배우는 중인 모양인데, 스승님 허락은 받고 하는 짓이냐?”
얕보는 말투였다. 수호가 어린 것을 보고 넘겨짚어 본 모양이지만, 사실 이 또래의 젊은이에게 염매술사를 상대하라고 맡기는 경우도 거의 없으니까 잘못 짚은 것은 아니다.
수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쪽이 얕보고 있다면 굳이 깨우쳐줄 필요가 없다.
되돌아온 인형에도 허튼 짓을 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만들어 놓은 그대로다. 오른 손에는 아까부터 줄곧 차돌을 쥐고 있었고 왼손은 조금만 흔들어도 손에 쥘 수 있도록 소매의 부적을 당겨 놓았다. 수호는 말없이 염매술사가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을 쏘아보았다.
오래 써서 귀퉁이가 닳아진 남색 더플 백이었다. 거기에 아까부터 숨길 수 없는 요기가 서리서리 맺힌 것을 느끼고 있었다. 길이나 크기 모두, 염매가 들어있기에 충분하다.
“이거 말이지?”
수호의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염매술사가 가방을 멘 어깨를 으쓱 당겼다.
“이것 때문에 온 거냐? 호기심인지 정의감인지 모르겠지만, 네 스승님이 가르쳐 주시지 않던? 길 밖의 길은 보지도 듣지도 말라고.”
남자의 목소리가 음산하게 낮아졌다. 해가 넘어가 어둑한 주변이, 어쩐지 더욱 어두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과연 그런 말이 있기는 했다. 아직 배우는 중인 어린 수호에게 스승도 같은 말을 들려준 적이 있었다. 정도가 아니면 걷지 말라는 의미겠지만 스승은 그 말을 하고 나서 무심히 덧붙였다.
- 그런데 길 밖의 길도 길은 길이라. 결국에는 갈림길 사이에서 어느 길을 택하여 걷느냐의 차이니 말이다. 너는 어느 길을 걸어도 후회하지 마라.
“들었죠.”
수호가 대꾸했다.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왼손을 흔들었다. 손끝에 잡힌 부적에서 불길이 훅 올랐다. 수호의 발밑에 던져져 있던 인형이 천천히 움직였다.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뽑은 조악한 수준의 인형이었지만 엄연히 곰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일어나는 것과 함께 천으로 만들어진 몸이 부풀어 올랐다.
“크웡!”
앞발을 들고 뒷발로만 몸을 버티고 서서 포효하자 그 소리가 산속에서 메아리쳤다. 크기만 커진 것이 아니다. 그 모습도 어딘지 어색하게 느껴질 뿐 실제의 곰에 거의 근접하고 있었다.
“햐아.”
염매술사가 감탄사를 냈다. 놀랐다기보다 즐거운 구경을 하는 얼굴이었다. 곰의 커다란 몸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날쌘 속도로 염매술사에게 달려들었다. 술사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뭐라고 중얼거리는 순간에 달려들던 곰의 몸이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친 것처럼 쿵 흔들리며 멈췄다.
수호는 움찔 들썩이려는 몸을 간신히 제어했다. 곰이 어딘가에 부딪친 순간 술사인 그에게도 함께 충격이 온 것이다. 한 순간 심장이 꽉 눌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것을 참으며 오른 손을 폈다. 손에서 떨어진 돌이 아래로 데굴데굴 굴렀다.
“가라, 석.”
명령을 듣자 작은 차돌이 구르던 방향을 바꾸었다. 인력을 무시하고 산비탈을 거슬러 올라갔다. 차돌이 지나가는 자리에서 낙엽과 얕은 흙을 뚫고 돌멩이들이 하나 둘 기어 나왔다. 마치 자석이 쇠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차돌은 그것들을 하나씩 붙이며 점점 커졌다.
차돌은 곧장 술사에게 가지 않고 원을 그리며 그의 주변을 돌았다. 돌수록 그 크기는 점점 커졌다. 눈덩이가 불어나는 듯한 광경이었다.
이윽고 수박만큼이나 커진 돌들의 덩어리가 볼링공처럼 빠른 속도로 술사를 향해 굴러갔다.
쿵!
보이지 않는 벽이 한 번 더 공격을 막아냈다. 허공에서 힘의 막이 흔들리며 한순간 시야가 왜곡되었다. 염매술사의 깡마른 모습이 잠시 물속에 있는 것처럼 흔들렸다.
“흩어져라, 석.”
수호가 명령했다. 그 말에 뭉쳐 있던 돌멩이들이 확 흩어져 사방으로 굴렀다.
“쳐라, 석.”
술사의 주변을 빙 둘러싼 돌들이 다시 한 번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힘의 충돌이 일어났다. 그것과 함께 곰이 밀어붙이는 듯이 걸음을 옮겼다. 쿵쿵 내딛는 발소리와 함께 간격이 좁혀졌다.
“해치워!”
염매술사가 소리 질렀다. 어디선가 우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며 돌멩이들이 반대편으로 확 튕겨나갔다. 술사의 거의 앞까지 닥쳐왔던 곰의 커다란 몸도 여지없이 날아갔다. 버티고 있는 것은 진언이 새겨진 수호의 차돌뿐이었다.
“쓸모없는 새끼야, 다 쓸어버리라고!”
염매술사가 한 번 더 소리를 질렀다. 그것에 응하여 우는 듯한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힘의 장벽에 쿵쿵 부딪치던 차돌의 표면에 틱 소리와 함께 금이 생겼다. 그것을 본 수호가 재빨리 외쳤다.
“돌아가라! 석!”
차돌이 명령을 듣고 되돌아가는 순간 그것을 따라온 힘의 파도가 덮쳤다. 수호가 그 파도와 차돌 사이로 뛰어들었다. 수호의 몸이 힘의 파도와 맞부딪쳤다. 통나무와 통나무가 서로 힘껏 휘둘러져서 부딪칠 때와 같은 소리가 울렸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염매술사가 비틀거리고 수호의 몸이 나뒹굴었다. 충돌한 여파가 주변의 나무를 휩쓸었다.
충격이 몸을 뒤흔들었는지 염매술사가 허리를 구부리며 얕은 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은 나가떨어진 수호를 뒤쫓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쁜 숨을 쉬면서 그가 수호가 있던 자리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사람 대신 짚으로 만든 제웅이 하나 누워있을 뿐이었다. 그가 제웅을 집으려는 순간 거기에서 불이 확 오르며 순식간에 타버렸다.
“햐…이것 봐라?”
얼굴을 찡그려 웃으며 염매술사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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