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만물수리점 - 돌아갈 곳(2)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그러니까 전화를 걸어 일을 의뢰한 손님에게 사람을 잡아먹는 바다괴물이 있다는 말과 연락처와 만날 곳만 들었다는 이야기였다.
“구체적인 상황은 안 들었어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만나서 들으려고 했지.”
“정확히 뭘 의뢰하려고 하는 건지도 모르는 거예요?”
“가보면 알겠지.”
“장난전화일 가능성은?”
“에이, 설마.”
웃으며 대답하는 해명의 얼굴을 보고 수호는 잠깐 단전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저씨, 솔직히 말해요. 손님이 바닷가에 산다는 말만 듣고 무조건 오케이 한 거죠? 가서 아무 일도 아니면 그냥 바다에서 놀다 오겠다는 생각이었죠?”
“아, 아니거든요! 이래 뵈도 공과 사는 구분하는 사장님이거든! 왜 이러셔요. 설마 내가 일을 핑계로 바다에 놀러가서 배도 타보고 회도 먹고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도 돌아다닐 작정으로 리스트도 작성하고 지도도 챙겨서 온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너?”
“예가 뭐 그리 구체적이에요?”
“내가 좀 섬세해!”
말을 말아야지.
수호는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기차는 출발했고, 가서 별 일 아니면 하루쯤 놀다 와도 괜찮겠지 라고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마음으로 갔으나, 막상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수호의 생각은 바뀌었다. 아니, 생각이 바뀐 것은 역에 도착할 때부터라고 해야 할 것이다.
기차에서 내리는 그들에게 다가와 “김해명씨 맞습니까?”라고 묻는 남자가 있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해명에게 남자가 꾸벅 인사했다.
“사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차에 태워 광안 해변로를 달렸다. 바다가 보인다며 해명이 좋아라하는 동안 차는 해변로를 벗어나 비탈진 길을 오르더니 외국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근사한 저택 앞에서 멈추었다.
그들은 잘 가꿔진 정원과 수영장을 지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테라스로 안내되었다. 비치파라솔 아래에서 책을 읽던 남자가 그들이 오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50대 초반의 단정한 외모에 집인데도 구김 없는 셔츠와 바지 차림이었다.
“안명훈입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보내며 자신을 소개했으나 불필요한 일이었다. 그의 얼굴을 봤을 때 이미 누구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해명도 뒤늦게 깨달았는지 약간 놀란 얼굴로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물론 이유라야 ‘티브이에서 보던 사람을 실제로 봤다’ 정도겠지만.
안명훈은 말하자면 재벌 2세였다. 선영 그룹 회장의 둘째 아들로, 지금도 그룹의 전반에 관여하고 있지만 미래에는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을 것이 확실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어느 날 태어났더니 아버지가 재벌이더라는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건축업에서 모은 돈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지금의 선영 그룹을 만든 일등 공신 중 하나가 그였다. 다섯 형제 중 둘째이면서 장남을 제치고 후계자로 지명 받을 정도의 수완과 야심에 행동력까지 갖추고 있는 남자다. 주로 경제 뉴스 쪽이기는 하지만 티브이에도 신문에도 자주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안명훈은 왜소한 체구의 아버지와 달리 평균보다 큰 키에 잘 다져진 몸을 하고 있었다. 50대라면 슬슬 운동이 귀찮아질 나이다. 노년을 앞두고 해가 갈수록 몸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게 되는 때이기도 했다. 그러나 꼿꼿한 자세로 서서 두 사람을 바라보는 안명훈에게 나이에서 오는 빈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부탁드렸는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밖으로 새나가면 곤란한 문제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상황도 별로 안 좋고 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감사라고 해야 할지 변명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말이었지만, 정작 말하는 당사자는 별로 감사하는 표정도 변명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하기는 상대가 안명훈이고 보면 의뢰받는 쪽에서야 자세한 설명이 없어도 올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해명의 경우에는 그의 이름보다 바닷가에 산다는 쪽이 유효했던 것 같지만.
“전화로도 말씀 드렸지만 최근에 계속해서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통화 후에도 한 명이 더 없어졌습니다. 이걸로 다섯 명째입니다. 모두 제 집에서 일하던 사람들이고, 일단은 무단결근으로 처리하고 있지만 더는 무리겠지요. 경찰이 관련되면 필연적으로 매스컴도 붙고, 그렇게 되면 집안이나 회사에 모두 피해가 가기 때문에 최대한 늦추려고 했습니다만.”
그쪽의 피해가 문제가 아니라 없어진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게 더 큰 문제일 테지만 그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보다 그런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감출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경찰에게 연락한다고 해도 뭔지 정체를 모를 괴물이 사람들을 데려갔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도 직접 본 것은 아니라 아직도 믿기가 힘듭니다만….”
안명훈은 미간을 좁히며 짧은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부탁드릴 것은 사람들을 납치하는 ‘그것’의 퇴치와 더불어 제 아내의 경호입니다.”
“경호요?”
뜬금없는 말에 수호가 되물었다. 물은 사람은 수호였지만 안명훈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해명에게 말했다.
“그것을 본 사람이 아내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없어지고 있는 사람들 역시 제 아내와 관련된 직원들뿐입니다. 저로서는 ‘그것’이 아내를 노리고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군요.”
“단순히 봤기 때문에 노린다는 겁니까?”
수호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안명훈도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금세 해명에게 돌아갔다.
“이 이상은 저보다 제 아내와 이야기 하시는 편이 빠를 겁니다.”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가벼운 발소리가 테라스 쪽으로 다가왔다. 봄이라지만 아직 쌀쌀한 날씨인데도 하늘하늘한 얇은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었다. 집안에서 테라스로 통하는 유리문을 열고 이쪽으로 오는 그녀를 보자, 해명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이고 수호는 안색이 조금 굳었다.
다가오는 여자는 사람이 아니었다.
놀랄 정도로 아름답고 분명 사람이라고 할 모습이었으나 동시에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까만 홍채 안에 노란 점을 찍은 것처럼 보이는 눈동자였다. 인간에게 있을 리 없는 기묘한 눈이다. 피부는 창백하다싶을 정도로 하얀데 드러난 양쪽 어깨에 거무스름한 무늬가 있었다. 그 모양이 대칭이라 얼핏 보면 문신으로 착각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분명히 피부의 무늬였다.
까만 머리카락을 거의 허리에 닿을 정도로 늘어뜨리고 있는데 머리카락 끄트머리에서는 검은 색이 점점 연해져서 거의 노랑에 가깝게 변했다. 누군가 봐도 염색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수호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저것은 눈동자의 노란 색이나 피부 위의 검은 얼룩과 마찬가지로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색이다. 인공의 요소가 조금도 없는 천연의 모습 그대로였다.
“인어를 실제로 볼 줄은…”
수호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다가오던 여자가 걸음을 멈추었다. 수호를 쳐다보는 눈이 차가웠다. 그러나 무어라 나무라지는 않은 채로 두 사람을 지나쳐서 안명훈에게로 갔다. 그가 두 사람에게 부인을 소개했다.
“내 안사람인 이연화입니다.”
‘확실히 안명훈은 기혼으로 알려져 있지만…’
선영 그룹의 로열패밀리는 누구나 사생활 관리를 꽤 엄격하게 했는데 그 중에서도 안명훈은 특히 유별났다. 지금 그들이 만나고 있는 이곳도 그가 가진 세 채의 집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세 채의 집을 돌아가며 머물렀는데 어느 곳이나 지대가 높고 외부인 단속을 철저히 하고 있었다.
‘인어와 결혼했다는 건가?’
나란히 선 그들은 부부라기보다 부녀지간 같았다. 50대 초반인 안명훈에 비해 아내는 20대 초반 정도로 밖에 안 보인다. 그렇다고 인어가 특별히 오래 살거나 인간보다 성장이 늦는 것은 아니었다. 결혼했다고 해도 최근이라고 봐야 했다.
“부인이 뭔가를 보셨다던데요. 사람을 잡아먹는, 바다괴물이라던가. 그게 뭔지 알고 있습니까?”
해명이 물었다. 인어라면 당연히 알지 않을까. 적어도 바다에서 살고 있을 테니 뭍에 사는 사람보다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대답은 뜻밖이었다.
“뭔지는 몰라요.”
부인인 인어가 쌀쌀맞게 대답했다.
“내가 본 건 물고기처럼 생겼는데 엄청나게 크고, 그것이 사람을 잡아먹는 광경이었어요.”
“그 물고기가 뭔지 모르는 건가요? 바다에 사는 거니까 인어라면 알 줄 알았는데.”
실례라고 생각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버리는 해명이었다. 여자가 눈을 흘겨 떴지만 이내 대답했다.
“전 어릴 때부터 뭍에서 살았어요.”
‘뭍에서 산 인어라고…?’
과연 그렇다면 모를 수도 있겠지만 인어가 어떻게 뭍에서 살 수 있었을까. 그러나 수호는 의문을 누르고 그녀에게 목격한 것을 좀 더 상세히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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